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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조선조 으뜸 궁궐, 경복궁(景福宮)

by 혜강(惠江) 2007. 3. 27.

 

조선조 으뜸 궁궐. 경복궁

 

영욕(榮辱)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

 

 

글·사진 남상학

 

 


   경복궁(景福宮)은 너무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조 제일의 궁궐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경복궁은 330여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경복(景福)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복궁은 정문격인 광화문을 비롯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사신들을 맞았던 근정전, 침전으로 쓰였던 강령전,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후원인 경회루, 향원정 그 외에도 지선당, 집경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경복궁은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으나 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8년에 중건되었다. 그후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건물만 남았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으나,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홍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광화문-홍예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공간이며, 가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되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경복궁은 한 왕조의 궁이면서 찬란한 문화의 집결체라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고 건축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 그래서 찬찬히 둘러보면 경복궁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는 사시사철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어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고 그 사이로 보이는 향원정은 한국 건축의 단아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 깔끔하게 조성된 궁궐은 계절에 맞추어 피어나는 꽃이며 나무들로 도심의 휴식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리고 추석이나 설날을 전후해서 전래놀이를 즐길 수 있고, 경내에 민속박물관(民俗博物館)과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이 있어 아이들의 좋은 학습장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하차하여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광화문이다. 수-월요일에 걸쳐 하루 여섯 차례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10인 이상 단체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금-일요일에는 ‘궁궐지킴이’와 ‘궁궐길라잡이’의 자원봉사 해설사가 해설을 맡는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안내도 하루 네 차례 받을 수 있는데, 홍례문 안쪽 경복궁 안내실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관람시간은 3월-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6시까지(5월-8월은 7시까지 연장), 11월-2월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이며, 매표는 관람 1시간 전까지 한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 관람요금은 어른 3,000원(20인 이상 단체 2,400원), 청소년 1,500원(10인 이상 단체 1,200원). 경회루를 관람하려면 5,000원의 특별 관람료를 추가로 내야한다.(모든 사람에게 적용됨)

 

먼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광화문>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북악과 삼각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큰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 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
  한국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흘러내리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라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흐르는 푸른 광명을
  광화문-저같이 의젓이 그 날개 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측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널따란 다락이 있어
  아래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분 내음새로 오히려 태고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서는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이 시는 경복궁의 정문격인 광화문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국적 광명(光明) 사상’을 노래한 작품이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는 표현에서 필자가 광화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광화문(光化門)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문으로 한국과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 건축물 중 하나이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였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한다. 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근정전(勤政殿)

 

  국보 223호. 흥례문과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보물 812호)에 들어서면,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근정전 마당으로 조정(朝廷)이라 불렀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법전(法殿, 正殿)으로, 그 이름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궐 안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 건물로 왕권을 상징하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궁궐전각 밑에 놓인 섬돌) 위에 다시 낮은 기단을 만들고 2층 건물을 올렸는데, 안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통층이다. 회랑으로 둘러싸고 평평한 돌을 깐 근정전 앞마당이 바로 조정이다. 남쪽 회랑에 근정문을 두었고 그 바깥에 다시외행각을 둘러 또 하나의 마당을 조성했으며, 외행각 남쪽에는 흥례문을 내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근정문 바깥 영역을 철저히 파괴했으나, 2001년에 흥례문과 외행각, 영제교 등을 복원하여 제 모습을 되찾았다.


사정전(思政殿)

 

  사정전은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편전이며, 좌우에 있는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을 들여 겨울철에도 이용할 수 있었다. 세 건물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은 마치 왕이 신하를 거느리고 있는 듯하다.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며, 강녕전 뒤에 있는 교태전은 중전마마인 왕비의 침전이다. 교태전 뒤에는 수석과 나무로 아름답게 꾸민 계단식 화단인 아미산(峨嵋山) 후원을 두었다. 이곳의 굴뚝은 보물 811호로 지정되었는데, 아미산 후원의 핵심 조형물이며 몸체에 매화와 국화, 십장생 등 여러 무늬의 조각을 새겼다.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

 

  흠경각은 천문기기와 해시계 등 과학기구들을 보관하던 곳이고, 함원전은 조선초 불교행사에 쓰이던 곳이다. 농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왕실의 내밀한 신앙을 위해 왕과 왕비의 침전 바로 곁에 세워졌다.

 

 

자경전(慈敬殿) 일원 
  

 보물 809호.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를 위해 궁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게 지은 건물이다. 서쪽의 아름다운 꽃담은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무늬로 장식했고, 북쪽 안 담장에는 정교하게 장식된 십장생 굴뚝(보물 810호)이 있다.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輯敬堂)

  중궁전 뒤쪽으로 발굴 조사를 끝내고 복원중이다. 홍복전, 광원당 등 대규모 침전지역이다.  그 가운데 함화당과 집경당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향원정(香遠亭)과 건청궁(乾淸宮)

 

  아름다운 향원정 연못 북쪽에 고종 내외가 거처하기 위해 지은 별궁이 건청궁이다. 궁궐 속의 또 하나의 궁으로 민강 사대부 건축 형식과 궁궐 형식이 뒤섞여 있다.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다.    



집옥재(集玉齋) 일원  

 

 왕이 서재로 사용하였던 곳으로 본채인 집옥재 좌우로 협길당과 팔우정 건물이 나란히 있는데 모두 복도로 연결해 안으로 통할 수 있다. 중국풍 건물인 집옥재와 팔우정의 내부 공간 역시 이국적이다.


경회루(慶會樓)

  국보 224호. 왕이 주재하는 잔치를 벌이던 곳으로, 높은 누마루에 오르면 서쪽 인왕산의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2층 공간은 3겹으로 나누어지는데, 중심부의 마루면이 가장 높고 바깥으로 갈수록 한 단씩 낮아진다.

 


수정전(修政殿)과 궐내각사(闕內各舍)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을 설치해 훈민장음을 창제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일대에는 승정원, 의약청, 검서청 등 왕을 직접 보좌하는 관청들이 있었고, 이들을 궁궐 안에 있는 관청 건물이란 뜻으로 권내객사라 하였다.

 

민속박물관(民俗博物館)

 

   경복궁 동북쪽에 1975년 4월 11일 개관하였다. 대지 3만 9627㎡(1만 1987평)에 본관 1만 4803㎡(4478평)를 포함하여 합계 1만 6253㎡(4917평)의 건물이 있다. 개관 초기에는 문화재관리국 산하였으나 1979년 국립박물관 소속으로 직제가 개편되었으며, 1982년 옛 중앙박물관 건물로 이전하고 1992년 시설공사를 벌여 지하 1층 지상 3층에 옥탑층을 갖춘 건물로 단장하였다. 지하 1층은 수장고(收藏庫), 지상 1층은 중앙홀과 3개의 상설전시장 및 강당·어린이체험교실, 2층은 행정실, 3층은 열람실이다.

  상설전시마당 제1전시실에서는 한민족생활사, 제2전시실에서는 생업 공예 의식주, 제3전시실에서는 한국인의 일생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기획전시, 야외전시 마당을 열고 있다. 야외에는 돌하르방, 장승동산, 디딜방아, 연자방아, 대장간, 원두막, 정자, 무인석과 문인석 등이 야외에 가득하여 아이들과 함께 돌아보기에 좋은 공간이다.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4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새로 단장한 전시공간에는 영조 임금의 초상을 비롯하여 세종금보, 임금의 도장을 보관하는 외함, 임금의 의자, 영친왕비 대홍원삼, 편경, 별자리 지도, 평면 해시계, 오목 해시계, 간평 해시계, 측우대, 왕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신구 등 격조 높은 왕궁의 보물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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