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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남도

천연기념물 호두나무가 자라는 천안 광덕사

by 혜강(惠江) 2007. 1. 30.

 

천안 광덕사 

 

천연기념물 호두나무가 자라는 천안 광덕사

 

글·사진 남상학

 

 

 

▷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된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천안시 광덕면 광덕산 밑에 있는 광덕사. 천연기념물인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는 유서 깊은 광덕사를 찾아 나섰다. 광덕사는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699.3m) 동남쪽, 그리고 태화산(455.5m) 서남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현판에는 태화산 광덕사(泰華山 廣德寺)라고 쓰여진 것이 의아하다. 태화산(455.5m)은 5-6km 북쪽에 있는 산이고, 바로 뒷산은 광덕산699.3m)인데, 아마도 천 년 전 그 시절에 이곳 지역의 산 이름은 태화산으로 불리다가 광덕사가 들어선 후에 그 뒷산이 광덕산으로 이름 지어지고, 오랜 후에는 이 지방의 지명마저 광덕이 되었기 때문일까?  

 

  일주문 앞쪽은 ‘태화산 광덕사’, 뒤쪽은 ‘호서제일선원’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참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의 도량임을 짐작케 하듯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조선 초기에 세조가 지병을 치유하려고 다녀가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며, ‘호서제일선원’이란 편액을 보더라도 한때 충청, 경기 지역에서 가장 큰 절로 꼽힐 정도로 사세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짐작하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해발 700m에 가까운 광덕산은 가파르기는 해도 정상까지 관목이 우거져 있고, 오염되지 않은 광덕천이 소리 없이 흘러내려 가고 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한 등산객들이 광덕산을 많이 찾아온다. 

 

 

 

 

 

   광덕산 밑에 있는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37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흥덕왕 때(832년)에 진산화상(珍山)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한때는 89개의 암자를 거느린 경기· 충청 지방에서 가장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거의 불타버려 옛 영화는 찾을 수 없으나 조선 선조 때 희묵(熙黙)이 중건하고 석심(釋心)이 보수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대웅전(보물 246호)을 비롯, 명부전, 천불전(247호), 범종각, 적선당, 자광당, 보화루, 일주문, 화장교 등 주요 전각들은 근래 10여년(1974~1985년)에 걸쳐 중건하였다. 산내에는 길상암, 안양암 등 두 암자가 있다.

 

  또 이곳에는 지정문화재로 광덕사 고려사경(高麗寫經)인 《금은자 법화경》(보물 390호)와 《금자사적기(金字事蹟記)》 《세조어첩(世祖御帖)》 등 문화재, 그리고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 석탑(251호), 석사자 2기(252호) 부도(235호), 대형 후불탱화 3점이 남아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덕사 표지판을 따라 들어서는 들머리에 ‘천안광덕사호두나무’라고 쓴 도로 안내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부터 300m라 아주 가까운 거리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으로 흐르는 계류가엔 유마거사의 글과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 의 한 구절을 옮겨 적은 팻말도 보인다. "색(色)과 공(空)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다"라는 말과 "우리의 목표는 풍부 하게 소유함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 삶의 부피보다는 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는 글귀가 광덕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광덕사 입구에는 우람한 크기의 ‘호두전래사적비’가 우뚝 서있다. 고려 충렬왕 때(1290) 이곳 출신인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서 볼모로 잡혀갔던 왕족을 모시러 갔을 때 그곳 호도(胡桃)맛에 매혹, 우리나라에 없던 과일인 호도 열매와 묘목을 들여와 심은 것이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처음 심어진 유래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열매의 모양이 복숭아 비슷하여 ‘복숭아 도(桃)’를 붙여‘호도(胡桃)’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새 과일 이름에‘오랑캐호(胡)’자를 붙여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생각이 대견하다.

 

  어찌 되었든 천안이 호도의 고장이고, 호도과자가 천안의 명물로 자리 잡은 데는 그 이유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호두’를 표준어로 삼고 있지만 , 이 말의 어원은 ‘호도(胡桃)’에서 발음이 변한 것이다.

 

 

 

 

 

  지금도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절의 보화루 앞에 남아 있는 5그루의 묘목들은 수령 400이 넘는 것으로, 그 중 둘레가 4.1m의 고목은 호두나무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또 요사채 옆에도 키 큰 호두나무가 서있어 이곳 광덕사가 호두의 원적지임을 알게 해준다. 

 

  바로 극락교를 통해 계곡을 건너면 정면으로 2층 구조의 보화루가 보이고 보화루 앞에 고목인 듯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데, 이것이 국내 호두나무의 최고령 목으로 알려진 광덕사 호두나무다. 호두나무가 서있는 화단에는 유청신호도시식지(柳淸臣 胡桃始植地)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다.  

 

  극락교를 건너 보화루로 들어서는 계단 우측에 있는 호두나무는 땅에서 올라온 1m쯤서 V자 형태로 가지를 뻗었다. 밑동의 굵기는 어른 서너 아름은 족히 되며 벌어진 가지의 굵기도 한 아름으로 끌어안기는 어림도 없다. 4∼500년으로 추정하는 나무의 두꺼운 껍질이 마치 군살 박힌 시골노인의 손을 닮았다. 보화루를 나들며 합장하는 신도들에게 답례라도 하듯 가지 하나는 아예 허리를 굽힌 양 입구 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광덕사 입구에서 그 오랜 동안 오가는 사람을 지켜보았을 호두나무야말로 성불한 불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 백 년 합장한 듯 허리를 굽힌 모양이 그렇고 수천, 수만 번은 들었을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촘촘한 나이테에 걸렸을 테니 이보다 더한 불성이 어디 있으랴. 1998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된 나무다.

 

 

 

 

 

   숙연한 산사에 울려퍼지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호두나무 밑을 지나 보화루(普化樓)로 들어서면 우측은 불교용품점이고 좌측엔 오가는 이 마음 쉬어가라고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휴게소로 들어서면 원목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와 탁자가 있고 마실 수 있는 차가 준비되어 있다.  

 

  보화루 밑을 통과하여 몇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대웅전 앞에 일부 훼손된 채 서 있는 것이 3층 석탑이다. 고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석탑이 절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 했다.  그리고 좌측에는 최근에 세운 듯한 효년대군이 사경(寫經)하신 ‘부모은중장수태골경합부(父母恩重長壽胎骨經合部)(보물 제 1247호 유래비)’의 보물지정기념비가 서 있다. 

 

「세조 10년 단오날이 지나 태화산의 서기(瑞氣)가 광덕사에 서렸다. 따라서 광덕사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서광(瑞光)을 내며 분신하였다. 그 때 효녕대군이 사리25과를 모셔다가 세종대왕과 자성왕비에게 드렸다. 그리고 가을에는(훈민정음 창제반포 22년 후) 효녕대군이 뜻을 세워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임금에게 품신하여 왕명으로 한계희, 강희맹 등 학자들을 시켜 한문불경을 처음으로 한글불경으로 번역할 때 효녕대군이 총감수자가 되어 교정한 곳이 이곳 광덕사이므로, 지금 그 법화경이 광덕사를 떠나 하나는 동국대학교에, 그리고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으로, 그 두 개가 광덕사로 돌아오기를 소원하며 세운 것이다. 」

 

 

 

 

  석탑을 우측으로 하고 석(石) 사자상이 양쪽에서 외호하는 돌계단을 다시 오르면 그곳이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주불(主佛)로 오른쪽에는 아미타여래를, 왼쪽으로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현재의 광덕사 대웅전은 1872년(고종 9년) 중건하였던 것을 1983년에 해체하고 전의 모양대로 재현한 것이다. 

 

  해체 시 발견된 대형 주춧돌이 통일신라의 양식이어서 광덕사의 창건시기를 알 수 있게 한다.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맛배지붕으로 된 다포계통식(多包系統式) 건물이다. 잘 다듬어진 길다란 받침돌로 만든 기단 위에 기둥자리를 조각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측면 중앙기둥만 사각기둥이다.

 

   대웅전 안에 있는 후불탱화만은 건륭6년이라는 화기(畵記)가 적혀 있어 조성 연대가 영조 17년(1741)임을 알 수 있다. 이 탱화는 임진왜란 이후 대대적인 불교 중흥기의 불화라고 한다.  

 

 

 

* 불교회화(탱화) : 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

 

 

  대웅전 좌측으론 적선당(寂禪堂)이 있고, 우측에는 지장보살과 열시왕을 봉안하고 있는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마당 오른쪽엔 종무소와 공양간이 있는 한 채의 전각 육화당(六和堂)이 있는데 이 전각 좌측에도 호두나무의 원적지답게 또 하나의 커다란 호두나무가 기와지붕 처마와 툇마루 끝에 맞대어 있다.

 

  보화루 우측으로 나란히 있는 범종각은 마곡사 범종각을 닮아있다. 본사와 말사지만 많이도 닮았다. 종각의 형태만 그런 게 아니라 산 이름도 똑같이 태화산이니 마곡사와 광덕사는 법계의 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명부전과 종무소 전각 사이를 지나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계단 위 높직하게 산신각이 있고 부도밭이 있다. 그리고 5층 석탑도 있다. 이 석탑의 각층 4각에는 종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 석탑은 어딘지 어색하고 오히려 대웅전 앞에 있는 예전의 돌사자가 앙증하면서도 재미있다. 화장교를 지나 계곡 너머에는 천불전이 있고 위족으로 자광당과 길상암이 있다.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우측으로 비구니 암자인 '안양암(安養菴)'에 들렀다.  암자의 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극락전이 있고, 영 옆으로 건물을 배치했다. 암자치고는 꽤 넓은 뜰은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다.

   안양암을 나와 주변을 바라보니 밭들이 온통 호두나무다. 광덕사 입구에서 보게 되는 호두 밭과 호두나무 가로수들도 놀랍다.  호두의 원적지, 국내 호두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는 양산지에 걸맞게 절 주변도 온통 호두나무다.   그래서 광덕사는 사찰로서도 유명하지만 호두 전래지로서의 문화 유적지로서의 가치가 매우 커서 반드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서 광덕사와 안양암은 광덕산 중턱에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여 2003년 11월 절 소유지를 지나가는 등산로 곳곳에 화단과 돌담 등을 설치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도록 길 폭을 좁혔다. 그러자 광덕산 중턱에 건물을 지은 업자가 “통행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렇게 맞붙은 법정공방에서 법원은 광덕사와 안양암 스님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결정은 또한 두 도량의 광덕산 지키기에 함께한 지역 환경단체, 광덕산을 자연환경보전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천안시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기도 했다.

 


천안 호두과자

 

 

 

 여기서 잠시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에 대해 언급하자면,  호두과자는 우리의 교통문화와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전국의 고속도로는 물론 지방도로에서도 휴게소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따끈하게 금방 구운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도심 한복판 도로에서도 간단한 음료와 함께 한 봉지에 1천∼2천원 하는 호두과자를 즉석에서 구워 판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되고 우리 일상에 가깝게 느껴지는 호두과자지만 그 내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호두과자는 그 기원이 천안 ‘학화호도과자’에서 비롯됐다. 천안역에서 100여미터쯤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할머니호두과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1934년, 천안사람 조귀금(작고)씨 부부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20살이던 심복순(86) 할머니는 지금도 깔끔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 내력이 무려 66년을 헤아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심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해 온 호두과자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학화호도과자의 맛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그래서 전국에 퍼져 있는 호두과자들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맛과 품질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차원의 진짜 호두과자를 예전과 꼭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내고 있어 호두과자를 좋아하거나 제과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화호도과자는 우선 만드는 과정부터 색다르다. 호두과자의 바탕이 되는 밀가루 반죽을 물로 하지 않는다. 계란과 물을 약간 섞은 묽은 우유에 설탕을 가미해 믹서기에 돌린 시럽으로 반죽한 뒤 잠시 숙성과정을 거친다. 호두과자의 속을 장식하는 팥도 붉은팥과 흰팥(흰동부)을 가려 쓰는데, 팥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물을 세번쯤 갈아준다. 팥독을 씻어내며 가라앉힌 앙금을 물엿처럼 녹인 설탕에 비벼 한번 더 찜을 하듯 열을 가해 물기를 알맞게 빼준다.

  그리고 구울 때 호두 한알을 8쪽으로 나누어 한 조각씩 얹어 다 구워진 뒤에도 호두조각이 살짝 내비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호두과자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하루 반나절이 걸린다. 인공적인 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순도가 높은 과자여서 구어놓은 뒤 10일이 경과해도 딱딱하게 굳어지기는 하지만 쉬거나 상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오히려 진짜 호두알맹이처럼 딱딱해진 호두과자는 더 뛰어난 별미고, 우유에 잠시 불려 우유와 함께 3∼4개만 먹으면 아침식사를 대신해도 좋을 정도로 맛과 영양에서 손색이 없다.

 


*  가볼만한 맛집 *

  광덕사 아래 동네에는 등산객과 광덕사를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있다. 그 중에서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은 한정식과 참나무 바베큐를 자랑하는 ‘산자락’( 041-567-0747 , 5544). 광덕사에서 내려와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잠시 올라가 청운교 건너에 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마치 펜션처럼 깔끔한 식당이다.  

 

  메뉴는 오리바베큐, 등갈비바베큐, 삼겹살바베큐, 삼겹살, 등갈비, 오리가 섞여 나오는 모듬바베큐 등이 있는데, 휴양지 음식답지 않게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다. 모두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이외에도 도토리무침, 선지해장국 등이 있다. 깔끔한 식당에 걸맞게 조용하고 친절하다.

 

 

 


*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천안삼거리->1번국도->대전 공주방면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회전->행정리->천안공원묘지->광덕면->광덕사 / 천안역과 버스터미널 앞에서 일반버스 61번이나 좌석버스 600번을 타면 광덕사 앞 주차장이 종점이다. 광덕사에서 다시 천안으로 나가는 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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