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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4

초토(焦土)의 시 8 / 구상 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里)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2020. 3. 7.
초토(焦土)의 시 1 / 구상 초토(焦土)의 시 1 - 구 상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거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출전 《초토의 시》(1956) 초토(焦土) :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여기서는 6·25 전쟁 이후의 비극적인 상황 하꼬방 : 일본어 ‘하꼬’(상자)와 ‘방(房)’의 합성어, 상자, 궤짝 등을 잇대어 지은 판잣집 체니 : 처녀 (함경도 방언). 흥거러워진다 : 마음에 여유가 생겨 흥겨워진다. ▲이해.. 2020. 3. 7.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일러스트=권신아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생래(生來).. 2020. 2. 8.
구상문학관 탐방, 구도의 길 떠난 문단의 선비 왜관 구상문학관 구도의 길 떠난 문단의 선비 (경북 곡군 왜관읍 왜관리 785-84, 054-973-0039 ) 글·사진 남상학 구상문학관을 보기 위하여 구미에서 왜관으로 차를 몰았다. 구미에서 왜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왜관(倭館)은 조선시대 일본인이 건너와서 통상하던 곳이었다. 본래 왜관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왕래하며 통상을 하고 일본 사신의 유숙을 위해 설치한 공관의 일종이었다. 당시 왜관이 설치된 곳은 부산을 비롯하여 서울과 낙동강변 등 10개였는데, 칠곡의 왜관은 유독 그 지명이 현재까지 그대로 존속되어 왔다. 세월과 함께 남아 있어야 할 왜색의 잔재가 사라진 소도시 왜관읍에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구상문학관이 세워졌다. 그의 문학관이 이곳 왜관에 세워진 이유는 구상 시인의 본적.. 2009.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