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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3

고향(故鄕) / 백석 고향(故鄕) -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神仙)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결*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시집 《동방평론》(1932) 수록 ◎시어 풀이 *북관(北關) : ‘함경도’의 .. 2020. 6. 3.
고향 / 곽재구 고향 - 곽재구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꽃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둑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택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이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 시집 《사평역에서》(1983) ◎시어 풀이 ·오막돌집 : ‘오막’과 ‘돌집’을 합한 것. ‘오막’은 오두막의 준말, 사람이 겨우 들어가 살.. 2020. 4. 15.
고향 / 정지용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출전 《동방평론》(193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화자가 변함없는 고향의 모습을 확인하지만 자신이 마음속에 간직한 옛날의 고향이 아닌 것을 깨닫고 그에 대한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실감은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고향의 황폐화에 따른 상실감이 아니라 화자 자신의 정서와 인식의 변화로 인한 상실감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회고적이며 애상.. 202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