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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4

사랑법 / 강은교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시집 《그대는 깊디 깊은 강》 ▲이해와 감상 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내적인 응시를 강조하는 시로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차분하고 서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침묵 속의 응시와 성찰로 일.. 2020. 4. 10.
일어서라 풀아 / 강은교 일어서라 풀아 - 강은교 일어서라 풀아 땅 위 거름이란 거름 다 모아 구름송이 하늘 구름송이들 다 끌어들여 끈질긴 뿌리로 긁힌 얼굴로 빛나라 너희 터지는 목청 어영차 천지에 뿌려라. 이제 부는 바람들 전부 너희 숨소리 지나온 것 이제 꾸는 꿈들 전부 너희 몸에 맺혀 있던 것 저 바다 집채 파도도 너희 이파리 스쳐 왔다. 너희 그림자 만지며 왔다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이 세상 숨소리 빗물로 쏟아지면 빗물 마시고 흰 눈으로 펑펑 퍼부으면 가슴 한아름 쓰러지는 풀아 엉차 어영차 빛나라 너희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 있는 것들 - 출전 《소리집》(1982)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힘없는 민중을 자연물인 ‘풀’에 비유하여 민중이 지닌 끈질긴 생명력을 환기하면서 민중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2020. 4. 9.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출전 《우리가 물이 되어》(1987)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가정법 형식을 통해 삭막하고 황폐.. 2020. 4. 8.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