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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프랑스, 독일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 절대 왕조의 상징

by 혜강(惠江) 2006. 1. 21.

 

파리 베르사유 궁전 (Palais de Versailles)
 

프랑스 절대왕조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

 

 

글·사진 남상학

 

 

 

 


 

   파리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달리면 파리 남서부 20km 지점에 프랑스의 숲과 샘과 고성의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이 그 유명한 부르봉왕가의 별궁 베르사유 궁전이 있는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 일드 프랑스는 파리 반경 100km 지역을 일컫는 말인데, 이곳에는 베르사유를 비롯해 퐁텐블로 등 옛 고성들과 대성당인 사르트르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루이 14세 궁전으로 세워진 프랑스 절대주의 왕제를 상징하는 건조물이다. 궁정을 호화스럽게 장식해 권력과 재력을 내외에 과시하였으며, <내가 곧 국가이다>라고 말한 의도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궁전이다.

 

   루이 14세부터 루이 16세 까지, 즉 프랑스 대혁명 당시까지의 프랑스 절대 왕권 시대의 영화의 극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건물의 규모, 절대왕정의 예술품, 100ha나 되는 대정원이 관람객의 입을 벌리게 한다. 전체길이 550m인 이 궁전은 1만 명을 수용한다.

  베르사유 궁을 방문할 때 궁 안의 뜰을 지나 궁으로 들어가면 먼저 소장품의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게 되고, 또다시 그 궁전 뒤로 펼쳐진 정원의 광대함과 정교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궁의 기원은 1631년 루이 13세가 자그마한 수렵용 성을 지은 데서 시작된다. 그 후 루이 14세가 왕의 절대적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작된 공사는 무려 50년이나 계속되었다. 

  프랑스의 이름난 건축가와 화가, 조각가, 원예가, 공예가,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밤낮 없이 혹사당했다. 그러다가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궁전은 처참히 파괴됐지만 제 2차 세계대전 후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늪지대이던 곳을 전국에서 운송해온 흙으로 메워 기초를 다졌고, 나무를 옮겨 심었으며, 강의 흐름을 바꾸어 분수를 만들었다. 거대한 펌프로 세느 강물을 끌어올렸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치장을 다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인 1682년 왕궁을 루브르에서 이곳 베르사유로 옮겼다.


   궁전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의 귀족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질탕하게 놀았다고 한다. 이것은 왕가에 대해 언제 반기를 들지도 모르는 봉건 귀족들의 진을 빼놓으려는 루이 14세의 전략이었다고 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비운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궁전 내부에는 루이 13세와 14세, 프랑스 혁명 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 뿐만 아니라 바로 그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며 나중에 자기 스스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의 향취도 맡을 수 있어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묻힌 한 시대의 영화와 사치, 그리고 극에 달했던 권력의 무상함까지 느끼게 한다.  

   궁전은 2개의 층으로 되어 있지만 제단 위의 조각과 천정화가 볼 만한 예배당(chapelle)과 그 앞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뜨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오페라의 방을 제외하곤 주로 볼거리는 2층에 위치하고 있다.  

  2층에는 루이 14세의 침실, 베르사유 평화조약이 개최되었던 ‘거울의 방’ 등 모두 15개의 크고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 끝에 <전쟁의 방> <평화의 방>을 두었다.

 

  대 접견실은 한편으로는 레하클레스 살롱, 그랑자빠르뜨망(Grands Sappartements)이라 불리는 6개의 살롱과 그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이며, 다른 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이 화려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가이드 관람은 그랑 아파르트망(grand apartment)에서 시작하여 거울의 방을 거쳐 왕비의 침실(chambre de la reine)을 주로 복도를 따라 방의 소장품들을 보는 것이므로 혼잡한 때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랑 아파르뜨망은 이탈리안 바로크 양식으로 금(金)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이다.

 

  이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거울의 방'이다. 1687년 망사르가 완성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길이 75m, 높이 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 

  전쟁기념 기록화와 역대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궁정 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였다고 한다. 현재 궁전중앙부·교회·극장을 제외한 남북 양 별관에 많은 미술품을 전시해 놓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숲과 분수로 가득한 베르사유 정원 

 

 

  궁에서 빠져 나오면 궁전 뒤로 펼쳐지는 100ha가 넘는 광대한 정원이 베르사유 정원이다. 루이 14세는 공사기간 중 거의 매일 현장에 나와서 간여하며 정원 조성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그는 '베르사유 정원의 안내'라는 제목의 노트 속에 정원을 효과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그려두기도 했다. 이 코스를 따라 돌아보면 확실하다. 

  정원의 물을 대기 위해 만든 거대한 인공의 운하와 언덕, 그리고 기아학적 아름다움인 프랑스식 정원이 감탄을 자아낸다. 화단과 분수의 조경이 가공할만한 권력과 미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정원에는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1천여 개의 분수를 만들었는데, ‘거울의 방’ 아래 있는 물의 화단,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조각 분수 라톤 분수, 아폴로 분수, 좌우 화단과 분수가 베르사이유 궁전 건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리석으로 된 견고한 그랑 트리아농은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미 빛 대리석으로 된 외관과 실내장식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분수들 중에서도 가장 큰 넵튠의 샘(bassin de neptune)을 비롯해 테라스 앞의 라톤의 샘(bassin de latone)은 가장 운치가 있고, 녹색융단이라 불리는 잔디밭을 지나 있는 아폴론의 샘(bassin d'apollon)은 뛰어난 예술품이기도하다. 


   5월에서 9월까지 일요일 오후 5시에는 '분수와 음악의 쇼'가 펼쳐진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음악과 어울려 춤을 추는 수많은 분수들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원에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2개의 궁들이 있는데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과 쁘티 트리아농(petit trianon)라 불린다. 그랑 트리아농은 넵튠의 샘에서 트리아농 거리를 걷다보면 있는데 1687년 루이 14세가 퇴임 후 부인과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쁘티 트리아농은 1762년 루이 15세 때 지어진 것으로 후에 루이 16세가 마리 앙트와네 트에게 주었고 실내 장식은 그녀의 취향에 따라 변경되었다.  정원을 둘러본 다음에는 중앙의 십자형 수로(Canal)에서 보트를 탈 수도 있다.

 

 

 

 

  권력은 무상한 것. 하지만 그 자취는 지금까지 남아 베르사유의 정원에서 아름다움으로 꽃피고. 관광객들은 그것을 구경하러 간다. 당시에는 국민들의 혈세로 화려하게 지어질 때 원성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관광수입으로 프랑스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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