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물랑루즈, 몽마르뜨
'빨간 풍차'의 물랑루즈와 거리화가의 천국 몽마르뜨
- 비잔틴양식의 흰 돔이 빛나는 사크레퀘르 대성당 장관 -
글·사진 남상학
에펠탑에서 내려온 우리는 몽마르뜨(Mont Martre)로 향했다. 몽마르트르는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는 곳이다. 프랑스 서민들, 특히 거리화가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을 찾는다.
몽마르뜨는 프랑스 센강(江)의 오른쪽 언덕에 위치한 파리의 북부지구에 있다. 해발 130m의 언덕으로 된 이곳은 일찍이 포도밭이나 풍차가 늘어선 전원지대였으나, 1860년 파리에 병합된 이래 많은 문인(文人)·화가가 모여들어 환락가로서 발전하였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 19세기의 자취가 완연한 옛 거리가 있다.
- 고흐의 몽마르뜨의 풍차
일찍이 테오도르 룻소, 제리코, 코로, 시슬레 등이 이곳 풍경을 그렸고, 작곡가 베를리오즈도 여기서 리스트, 쇼팽 등과 어울렸다. 고흐가 그린 <갈레트의 풍차>에는 농촌다운 몽마르트가 그려져 있다. 로트레크의 작품 무대였던 '물랑루즈'에서는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삶을 구가하였다.
언덕 밑에 살고 있던 르누아르는 1871년 '물랭 드 라 갈레트'에 모여 춤추는 남녀를 주제로 유명한 그림을 남겼고, 1900년에 처음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온 19세의 피카소도 '물랭 드 라 갈레트'를 그렸다. 이밖에 마네와 드가도 로트레크와 어울려 다니며 밤마다 예술을 논하고 술을 마셨다.
그러나 지금은 테르트르 광장 주변의 골목에 무명화가들이 모여서 관광객을 상대로 싸구려 그림을 그릴 뿐, 몽마르트르에서 예술가의 이미지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예술가들은 모두 몽파르나스로 옮겨가고, 몽마르뜨는 환락가로 변해 버렸다.
빨간 풍차로 알려진 사교클럽 물랑루즈
버스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말로만 듣던 물랑루즈(Moulin Rouge)의 빨간 풍차가 눈앞에 나타난다. 물랑루즈는 ‘빨간 풍차’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리 몽마르뜨르에 실존하는 클럽이다.
이곳은 낭만과 사랑 그리고 마약, 매춘 등 환락 산업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곳으로 금박 장식이 화려한 무대 공연장과 퇴폐적인 사람들의 옷차림과 웃음소리,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창부 댄서들이 캉캉춤을 추며 각 계층의 원초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인물들이 마구 등장하여 혼을 쏙 빼놓는다. 이것이 물랑루즈의 시작이었다.
덕분에 19세기말, 프랑스 파리의 호화로운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바즈 루어만 감독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틴(니콜 키드먼)을 등장시켜 가장 호화로운 영화 “물랑루즈”를 만들었다. 나는 언젠가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세계 그리고 치명적인 유혹이 있는 곳!” 이라는 코멘트를 내 건 물랑루즈라는 영화의 소개 책자를 본 적이 있다.
▲영화 '물랑루즈'의 포스터
이 영화는 고전적인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작가인 주인공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분)은 아버지의 정돈되고 이성적인 세계를 떠나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의 자식들'이라고 불리는 보헤미안의 자유, 아름다움, 진리, 열정, 사랑의 세계로 찾아든다. 그리고 클럽 '물랑루즈'에서 가장 매혹적인 무용수 새틴을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 말한다.
Never knew I could feel like this
이런 기분 느끼게 될 줄 몰랐어요.
Like I've never seen the sky before
하늘을 처음으로 본 기분이랄까요
I want to vanish inside your kiss
그대의 입맞춤 속으로 사라지고 싶어요.
Every day I love you more and more
날이 갈수록 그대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만 가네요.
Listen to my heart
내 심장소리를 들어보세요.
Can you hear it sings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나요.
Telling me to give you everything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기위해 말해주세요
Seasons may change
계절은 바뀌죠.
Winter to spring
겨울에서 봄으로
But I love you until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The end of time
세상이 끝나는 지.
그렇지만 물랑루즈에 거액을 투자한 공작은 투자를 조건으로 새틴을 가지려 한다. 사랑과 자본 사이에서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다. 크리스티앙이 아버지의 세계에서 떠나온 이 공간은 바로 혁명이 만들어 낸 자유의 공간이다. 역사는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난 인간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지만 인간은 그 자유를 다시 자본주의 질서에 내주었다.
자유롭고 열정적인 클럽 물랑루즈의 공간은 자유와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인 듯싶었지만, 그들이 사랑을 위해 도시를 떠나려고 시도하는 것도 무위에 그치고, 결국 '물랑루즈'의 운영주는 그들의 사랑을 끝내 포기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개봉과 함께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화려한 세트와 감각적인 영상, 감미롭고 강렬한 음악이 어우러진 한 마디로 '미치고 환장하기에 좋은' 영화다. 영화 안에서 배경이 되는 장소가 사교계의 정점이었던 물랑루즈인 이유도 있지만, 화려한 의상과 춤, 그리고 음악으로 가득한 것이 특색이다.
영화 덕분에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평균 우리나라의 웬만한 기업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해 방문하는 손님이 약 십만 명 정도, 주로 중상류층 고객들만 받느다고 한다. 지금도 물랑루즈의 생명은 항상 섹시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공연위주이며, 서커스도 하고 묘기도 한단다.
여기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작은 상점들이 계속 이어진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와 기타 소리가 들린다. 모두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빼앗는 듯한 기분이다.
몽마르뜨 언덕에 우뚝 솟은 사크레퀘르(Sacre Coeur) 성당
▲사크레퀘르 성당
좁은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고 나니 언덕 위로 성당 앞마당이 나왔다. 광장에는 잔디가 유난히 푸르고, 성심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사크레퀘르 성당 앞 계단에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반백의 노인이 먹이를 주면서 비둘기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비둘기는 노인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손등에 아무런 적의를 느끼지 않고 몰려든다. 한 편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발을 멈추고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리고 올려다 보이는 성당의 하얀돔은 에펠탑에서 바라볼 때보다 더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이 언덕 꼭대기에는 11세기 로마네스크양식의 생 피에르교회와 비잔틴양식의 흰 돔을 가진 사크레퀘르 대성당이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사크레퀘르 대성당을 관람한다. 이 성당은 보불전쟁 후, 1876년 시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카톨릭교도들의 헌금으로 짓기 시작하여 43년 후인 1919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비잔틴 양식의 거대한 세 개의 하얀 돔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유난히 빛난다 눈이 부시도록. 관광객들은 성당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놓는다. 성당 건축 초기에는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고 해서 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파리 시민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세계 각국에서 하루에 3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평안과 안식이 감도는 실내에 들어서서 스테인드글라스가 발하는 빛을 바라보면 내 영혼을 신비한 종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착각에 빠진다. 성당에서 나와 테라스에 서서 바라보는 파리 시가는 정말 아름답다.
에펠탑, 개선문, 몽파르나스의 빌딩숲이 모두 발 아래 있다. 몽마르트르는 해발 100m 에 불과하지만, 320m의 에펠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현기증 나는 전망과는 다른 환상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남쪽 산기슭의 피가르 광장, 블랑슈 광장 일대는 카바레 물랭 루주(붉은 풍차)를 비롯한 환락가를 이루고 있는데, 수천 수만 개의 지붕 위에 독특한 굴뚝을 뿔처럼 달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앙증스럽다. 그런 가운데 고색창연한 풍차가 도시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아,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다.
▲사크레퀘르 성당 안팎의 모습
▲사크레퀘르 성당 앞에서 바라본 전망
화가들의 거리, 몽마르뜨 언덕
▲고흐의 몽마르뜨의 술집
성당 서쪽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으로 올라갔다. 영락없는 프랑스판 100년 전의 저잣거리 모습을 즐기며 크레페 카페와 기념품 상점을 지나치면 화가촌이라 불리는 곳이 나타난다.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이곳 몽마르뜨 언덕에서 모여 살았기에 더욱 흥미를 끈다.
거리의 화가들이 즐비하고 그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이 언덕에는 지금도 많은 무명 화가들이 캔버스를 차려 놓고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준다. 신기한 듯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젤 앞에서 서투른 한국말로 `초상화 그리세요'하고 말한다. 수염이 텁수룩한 프랑스인이었다.
거리의 화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관광객을 상대로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용케도 한국인을 알아보고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몽마르뜨는 분명 화가들의 삶의 현장이자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곳을 찾은 기념으로 초상화 한 장을 그릴 텐데 좀 아쉽다. 그 둘레에 즐비하게 들어선 가게는 그림과 각종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야말로 돈 없는 가난한 예술인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에도 손님들이 모여 몽마르뜨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이곳에는 피카소, 고호와 같은 화가들의 옛날 살림집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부근의 몽마르뜨 묘지에는 H. 하이네·스탕달·공쿠르형제·A. 뒤마 2세 등 예술가의 무덤이 많다.
일찍이 미친 듯이 그림만 그리다 젊은 나이에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도 무명시절에 여기에서 초상화와 그림을 그렸고 그림들을 팔아 살았으며, 현대미술의 거장인 피카소도 무명시절 이곳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피카소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도 몽마르뜨 언덕에서 그렸다고 하지 않는가.
▲피카소가 몽마르뜨에서 그린 작품 '아비뇬의 처녀들'
프랑스의 화가 르누아르도 몽마르뜨를 좋아해서 이곳에서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몽마르뜨 사람들은 “우리는 파리 사람이 아니라 몽마르뜨 사람들”이라고 몽마르뜨를 끔찍이 사랑하며 깊은 애정을 갖고 이곳에서 살아간다.
몽마르뜨는 특별히 관광을 할 만한 명소는 없지만 예술인들이 점령한 오랜 역사의 현장과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예술인들이 낭만과 향기로운 분위기가 돋보여 몰려든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쯤 거쳐 가야 하는 세계인의 명소가 되고 있다.
데르트르 광장을 등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저녁노을 이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곧 붉은 태양과 함께 붉게 물들기 시작할 채비다. 갑자기 이 몽마르뜨 언덕에서 노을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몽마르뜨의 거리 모습
▲몽마르뜨에서 바라본 전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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