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코·요세미티 국립공원
웅대한 자연미의 극치, 요세미티 국립공원
- 유령의 마을로 변한 은광(銀鑛) 캘리코 -
글·사진 남상학
라스베이거스에서 떠난 버스는 1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하루 밤을 지났으나 라스베이거스 야경의 현란함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안내자 스티브 조는 모하비 사막의 주인공이었던 인디언들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모하비 사막과 인디언, 모하비 사막을 지나는 동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그들. 미스터 조는 어제에 이어 또 다른 그들의 시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를 낭독해 주었다.
이제 두 사람 비를 맞지 않으리 /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 이제 두 사람 춥지 않으리 /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 / 서로가 서로에게 동반자가 될 테니까 / 이제 두 사람 두 개의 몸이지만 / 그들 앞엔 오직 오직 하나의 인생만 있으리라
이제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리라 /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리라 / 이 대지 위에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California)는 '꿈의 땅'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서부개척사의 실상은 인디언 추방과 학살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개척사(開拓史)지만, 이 땅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겐 멸망(滅亡)의 슬픈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그들은 사랑도 꿈도 빼앗겼던 것이다.
유령의 마을(Ghost Town)로 변한 은광(銀鑛) 캘리코
들려주는 시를 음미하며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감상하는 동안 은광촌 캘리코( calico) 입구에 도착했다. 캘리코 은광촌은 라스베가스에서 약 230km정도 떨어져 있어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둘러볼 수 있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입구의 도로는 포장도 되지 않아 부연 먼지만 일었고, 황토색이랄까 아니면 파스텔톤이라 할까 주변의 언덕과 산들은 나무 하나 없이 여자들의 주름치마처럼 골짜기가 패인 것이 온통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이런 곳을 관광지라고 찾아오다니~ ’ 순간적으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캘리코.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이 마을은 서부 개척시대인 1881년을 기점으로 연간 1,200만 불 규모의 은(銀)을 발굴하면서 급속도로 인구가 늘어나 1,200명 정도의 도시로 발전했다고 한다.
술집도 많이 생기고, 심지어 차이나거리, 홍등가 등의 유흥 지구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1896년경 은 값이 폭락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이내 텅 빈 유령의 마을처럼 변했다. 그 때부터 ‘유령의 마을’이란 뜻의 ‘고스트 타운(Ghost Town)’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더구나 이 마을이 더욱 유명해 진 것은 이곳에서 은을 캐던 많은 중국인들이 열악한 환경과 갖가지 악조건으로 인해 사망하여 마을 입구의 그들의 공동묘지에서 밤마다 통곡소리가 들린다는 소식이 퍼지면서였다.
그 후, 이 버려진 땅에 LA의 테마공원 "넛츠 베리 팜"(Knott Berry Farm)을 세운 월트 넛츠(Walter Knott)가 당시 은광촌의 사진을 기초로 캘리코 은광촌을 복원하여 1966년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 county) 정부에 기증하면서, 이 캘리코 은광촌은 유령의 마을 카운티 리저널 공원으로 주요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들러 참배하는 장소이다.
다소 실망스런 마음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재현해 놓은 광산촌을 옛 서부의 분위기였다. 서부 사나이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반가이 맞아주었고, 작은 마을은 낡은 판자 집과 술집들, 기념품 상점들로 형성되었다.
몇 개의 놀이 시설이 있다고 하나 날씨가 워낙 덥고, 주어진 시간도 별로 없어, 고스트 타운의 멋을 체험하기 위하여 마을 중간 우측으로 빠져 고스트 타운 캘리코 철도를 타 보았다. 이것은 고스트 타운 역에서 출발하여 공원 내를 도는 협궤열차로 고작 8분 동안 보드워크 주변을 순환하는 것이었다.
공원을 걸어 내려오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놀라 돌아보니 관광객들을 위하여 남녀 총잡이가 거리에서 벌이는 건맨 쇼였다. 건맨에게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겠느냐 물으니 흔쾌히 응했다. 캘리코 방문 기념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급히 차에 올랐다.
미국 최대의 농경지 메이거스필드
캘리코에서 나와 바스토우의 시즐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랜드 캐니언 관광 때 들러 점심을 했던 곳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99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린다. 지루하게 달려온 모하비 사막의 끝자락을 벗어나 푸른 초원 지대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이곳에는 로키 산맥과 캘리포니아 해안 지대 가까이 걸쳐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과의 사이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그 초입의 도시가 베이커스필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샌와킨계곡(San Joaquin Valley)의 남쪽 끝에 있는 베이커스 필드에는 지금 인구 25만 정도가 살고 있다.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밀·목화· 포도· 감자 등 농산물의 집산과 가공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인근 포도원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제조되는 포도주의 약 1/4을 생산한다. 도로를 따라 과일을 파는 광고들이 나붙은 것만 봐도 이곳이 과일의 산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874년 서던퍼시픽 철도, 1898년 샌타페이 철도가 들어오면서 시로 승격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자본가들의 투자로 관개공사가 실시된 이후 곡물· 앨팰퍼· 가축 생산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 1899년에는 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는 도로변이나 정원에 빽빽하게 유도화가 유난히 많이 피어 있다. 관상용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병충해를 막기 위하 방제용이란다. 유도화 나무의 뿌리에는 독성이 있어서 농산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의 접근을 막고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도로 변에는 최대의 농경지답게 과일을 선전하는 광고판과 과일가게가 많다.
▲바스토우의 시즐러 식당
안개에 싸인 요세미티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서 우리는 건포도의 도시 프레즈노(Fresno)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 6시 기상하여 6시 30분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삼나무 등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삼림 지대의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오른다.
다행히 안개가 걷힌 산세가 엄숙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커브길을 돌 때에는 신비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가수가 부르는 웅장하고 장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미국 전통의 노래(Traditional American Melody)로 불려지는 것으로, 작사자 뉴턴(J.Newton)의 "어메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의 원어 노래였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제목의 찬송시로 널리 애송되는 찬송가(찬송가 305장)이기도 하다. 이 노래 역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미스터 조(趙)가 특별히 준비하였다가 찬스에 사용한 것이다.
작사자 뉴턴은 영국 런던의 상선주(商船主)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기의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에게 쫓겨났다. 그 후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고 노예선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가며 열심히 일해 요행히도 배 한 척의 선주가 되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큰 풍랑을 만나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게 되자, 그는 얼마 전 읽은 켐피스의 <주님을 모방하라>라는 책의 유명한 구절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그후 그는 41세 때 놀랍게도 목사가 되어 영국 벅스의 올니(Olney)라는 곳에서 80세까지 천국 복음을 전도한 인물이 되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올니라는 곳에서 지은 이 찬송시는 자신의 회심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신의 간증인데, 시의 내용뿐 만아니라 웅장한 율조로 편곡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이 순간 이 곡이 놀라운 감격으로 다가왔다. 교회에서 늘 불러왔던 찬송이지만 노래의 감동은 장소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마음 속으로 '아멘, 아멘'을 되뇌이면서, 이제 나는 미국이 자랑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산책길에서 만난 프레즈노 거리의 조형물과 거리의 악사*
*요세미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 그 자연미의 극치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에 위치한 산악공원으로 총면적은 3,079㎢, 제주도(3027㎢) 보다 넓다.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4,000m급의 산들,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푸른 계곡과 거대한 바위봉우리,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장대한 폭포와 맑은 호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 공원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한 어느 여행가는 한 마디로 ‘웅대한 자연미(自然美)로 사람을 단번에 들뜨게 하고 감동시키는 곳’이라고 말했다. 60여종에 달하는 포유류, 200여종 이상의 조류가 서식하고 세코이어를 비롯한 30여종의 수종, 1300여종의 화초가 자라는 대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1868년 자연보호 운동의 선구자 존 무어(John Muir)라는 스코틀랜드인에 의해 발견되어, 이곳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회의 보호 법안에 링컨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1890년 지구촌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어렵게 이런 공원을 방문한다는 부듯함과는 달리 바깥 풍경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심상치 않은 날씨를 예고했다. ‘제발 비가 내리지 말아야 할 텐데 - ’조바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원 남쪽 입구 와워나 지구
울창한 숲으로 덮인 길을 따라 우리가 당도한 지역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남쪽 입구의 와워나(Wawona) 지구. 공원 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빅토리아풍의 와워나 호텔과 1850년대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요세미티 역사박물관이 있고, 요세미티에서 거대한 세코이어(Sequoia;삼나무의 한 종류)가 많기로 유명한 메리포서 그로브(Mariposa Grove)가 있다.
와워나 호텔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객실이 깨끗하며 레스토랑과 풀장, 그리고 승마장과 골프장을 갖추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숙박을 했다는 곳이다. 개인 소유라는 이 호텔이 국립공원 안에 어떻게 세워졌을까 궁금하여 물었더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에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역사박물관에는 요세미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절, 흙먼지 펄펄 날리며 산길을 달리던 포장마차와 복원해 놓은 지붕이 있는 독특한 다리, 개척 시대의 건물, 역마차 강도가 사용했다는 권총과 강도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측으로 들어가 만나는 메리포서 그로브는 수령이 2000년이 넘는 자이언트 거목들 200여 그루가 넘는다. 거대한 세코이어 줄기에 구멍을 뚫어서 마차가 지나가게 했다는 ‘터널트리’는 1969년 쓰러져 없어졌으나, 아직도 지름 11m, 높이 64m에 수령이 2,700년이나 된다는 세코이어가 버티고 있어 입이 쩍 벌어진다. 특히 1,000년이 넘었다는 쓰러진 세코이어를 그대로 둔 채 ‘무너진 왕조’라는 안내판을 붙여 관광에 이용하는 발상이 돋보인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 오르는 산길 와워나 로드(Waw0na Road)를 오른다. 길의 양쪽으로 50여m가 넘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로 우거진 길이다. 여기저기 고사목(枯死木)들이 넘어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관리(?)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자욱한 안개에 싸인 산세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더니, 오래 참았다는 듯이 빗줄기가 창문을 때린다. 덜컥, 날씨 때문에 오늘 관광을 그르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차는 빗속을 뚫고 고갯길을 올라 터널을 빠져나와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에 정차했다. 여기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전망 포인트의 하나인 터널 뷰(Tunner View).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전망 포인트에 섰다. 빗줄기가 약해진 것이 천만다행이다.
거대한 화강암 하프 돔과 엘 캐피탄
여기서 바라보는 요세미티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전면으로 엘 캐피탄(El Capitan)이, 우측 멀리로는 하트 돔(Half Dome)이 보이고, 또 우측 뒤편으로는 브라이들 베일 폭포((Bridalveil Falls)가 안개에 싸인 채 그 장엄한 자태를 내보이고 있어, 그 절경에 모두들 탄성을 질러댄다. 요세미티를 알리는 팸플릿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습이다.
엘 캐피탄(El Capitan)은 요세미티 관광의 거점으로 삼는 요세미티 벨리(Village) 좌측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화강암 암벽덩어리로, 계곡의 입구에 파수병처럼 서있다. 표고 2271m, 계곡으로부터의 높이는 1078m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으로 알려졌으며, 수직으로 쭉 뻗은 절벽이 보는 이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엘 캐피탄은 특히 전 세계 암벽 등반 전문 산악인들에게 경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며, 암벽타기의 시기인 여름이면 바위에 매달려 경사면을 오르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하프 돔(Half Dome)은 요세미티 벨리의 동쪽 에 위치하고 있다. 말 그대로 둥근 형태의 돔을 칼로 반을 뚝 잘라버린 모양의 반달형 암벽이다. 요세미티에서 가장 특이한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엘 캐피탄과 더불어 암벽 전문가들의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하프 돔은 표고 2,695m, 여름 한낮의 바위 표면 온도가 섭씨 100도 가까이 올라간다고 한다. 하프 돔의 북쪽으로 둥글게 보이는 봉우리는 노스 돔(North Dome)이다.
와워나 전망대에서 진행 방향으로 요세미티 공원을 흐르는 멀세드 강의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니, 오른쪽의 브라이들 베일 폭포의 물줄기가 위용을 뽑내며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더구나 낙하지점에서 생겨나는 하얀 물보라가 마치 ‘신부의 베일’처럼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토록 많은 수량의 물줄기가 쏟아진단 말인가. 그야말로 경탄을 금치 못할 장관이다.
*드디어 요세미티의 진면목이 드러나다.*
*엘 캐피탄*
*하프 돔*
요세미티 밸리와 위용을 자랑하는 요세미티 폭포
우리가 탄 버스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요세미티 밸리(Yosemite Valley)에 도착했다. 이곳은 공원 안의 비지터 센터와 호텔, 슈퍼마켓, 우체국, 병원,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또 볼거리가 많아 요세미티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관광 거점으로 삼는 곳이다.
광광객들은 이곳에서 요세미티를 가장 넓게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전망할 수 있는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 등을 둘러보거나 현지 투어에 참가한다. 글레이셔 포인트는 요세미티 계곡 남쪽에 솟은 표고 2,199m 절벽 위에 세워 놓은 전망대다. 전용버스로 40분 가까이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경관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슬아슬하지만, 깎아지른 단애 위에서 360도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정면에는 하프 돔, 오른쪽엔 버널폭포와 네바다폭포, 왼쪽으로는 요세미티 폭포와 엘 캐피탄, 뒤로는 리틀 요세미티 계곡, 아래쪽은 머세드 강과 촌락이 그림처럼 펼쳐져 탄성을 자아낸다. 시간이 부족하여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고, 요세미티 폭포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요세미티 밸리는 높이 600m~1200m 정도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요세미티 빌리지 뒤쪽에 있는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 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미국 내에서는 가장 긴 폭포로, 740m의 3단 폭포로 위용을 뽑낸다. 빌리지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상단에서 쏟아진 물이 부서져 흩어지고, 다시 하단으로 물줄기를 이루어 쏟아낸다. 수량이 많은 6월이어선지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쏟아내며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는 부연 안개처럼 계곡을 덮고, 흩어지는 물보라는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의 옷을 적실 정도이다. 암벽 위쪽에서 눈 녹은 물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렇게 쉼 없이 엄청난 물을 쏟아내며 요세미티 계곡을 굉음으로 뒤덮는 것일까. 떡 벌어진 입이 쉽게 닫히지 않았다.
자연보호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그 경관도 장엄하지만, 요세미티를 통하여 나타낸 미국인들의 자연보존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앞서 말한, 자연보호 운동의 선구자 존 무어(John Muir)는 요세미티를 발견하고 이곳 자연경관에 감탄하고서 무엇보다 먼저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호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보호 법안 통과를 위해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국립공원 지정이라고 생각하여 국립공원 지정을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설명에 의하면,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원 관리소는 1980년 세계 국립공원사상 처음으로 '공원관리 종합계획(GMP)'이란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실천에 옮겼다. 첫 작업으로 공원 안에 자가용을 추방했다.
방문객이 일단 공원에 들어서면 타고 온 자동차를 두고 셔틀버스를 타도록 유도한다. 폐쇄된 자동차도로는 대부분 자전거 전용도로로 전환했고, 철거된 야영장은 고유의 식물을 심어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될 수 있게 했다.
계곡의 중앙에는 공원을 관리하는 기본 시설인 경찰서, 화재예방시설, 재난구조대만 남기고 모두 제2단지로 옮긴 것이다. 국립공원의 존재 의미를 국민 이용편의에서 자연보전 중심으로 전환했다. 난개발로 인한 공원을 훼손을 막기 위하여 도로도 넓히지 않았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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