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 &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 동부 농업지대의 우거진 숲과 드넓은 평원
글·사진 남상학
오늘은 미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 날이다. 밤 늦게 산호세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떠오르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든 시간에 우리를 애틀란타에 내려놓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로 가는 직항로가 없어 애틀란타를 경유하게 되었다. 밤잠이 부족한 터라 3시간의 대기 시간에 잠시 눈을 부칠 수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채플힐까지 차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대지는 서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우거진 숲, 드넓은 평원, 숲 가운데로 난 하이웨이. 대충보아도 이곳이 산림이 우거지고 농업을 주로 하는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공항에서 둘째아들이 살고 있는 채플힐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숲 속에 조성된 단지 안에는 깔끔한 3층 구조의 목조 가옥들이 들어서 있고, 그 막다른 집 1층이 경우가 사는 집이다.
채펄힐(Chapel Hill) 아들집에 여장을 풀다
채펄힐에 있는 경우네 집에 도착하여 감사의 기도부터 드렸다. 경우가 이곳의 UNC에 와서 MBA과정을 이수하게 된 것과 지난 1년 동안 세 식구 아무 어려움 없이 지내게 해 주신 것, 아내와 나를 포함하여 다섯 식구가 열흘 동안 서부여행을 잘 마치게 된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었다. 특히 두 살배기 지연이가 여행에 동행한 일은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가까이에 조카 광수네가 살고 있어 형집을 내왕하며, 형수의 도움을 받으며, 같은 교회(한마음교회)를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조카인 광수는 일찌기 이곳 UNC로 유학와서 이곳에 터를 잡고 이제는 이민자로서 온 가족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채펄힐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중부 오렌지 군의 한 도시인데, 더럼에서 남서쪽으로 19㎞ 떨어져 있다. 지명은 한때 정착촌 언덕 교차로에 서 있던 잉글랜드 뉴호프채펄 교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가까이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와 듀크대학이 있어 인접한 카버러 읍(서쪽)과 함께 대학촌을 이룬다.
여독도 있고, 잠도 보충할 겸 며칠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으나, 짬짬이 식료품과 물품 구입을 위해 한국 물건을 파는 롯데마트, 동양 상회를 찾아가곤 했다. 아무리 가까운 상점이라 해도 자동차로 20분 정도 달려가야 했다. 그러나 워낙 주변 환경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인데다, 인근에 교육 수준이 높은 대학으로 하여 더욱 격조 높은 마을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첨단산업 유치에도 힘을 기울여 롤리·더럼·채펄힐 등 3개 도시를 연결하는 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에는 IBM을 비롯한 33개사의 연구소가 세워져 세계에서도 유명한 연구단지가 되었다.
롤리의 번화가에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UNC) 캠퍼스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는 주민에 의해 세워졌고, 미국의 첫 주립대학으로써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훌륭한 학부 프로그램에 의해 10세대 동안 학생들에게 보다 높은 교육을 제공하였고, 주 뿐만 아니라 미국을 이끄는 사람도 배출되었다.
본 대학은 연구중심의 대학이다. 19세기부터 독특한 학부 및 전문 프로그램을 제공하여왔다. 기본적인 기능으로 연구, 학문 및 창조적인 공부를 위한 것이며, 교육은 발견에 의해 전달되며 현재의 지식으로 제공된다. 본 대학교의 목적은 주 및 국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부와 창조적인 노력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본 대학교는 연구, 자유로운 탐구 및 개인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환경에서 모든 수준의 학생들을 교육한다. 이것은 지식을 확장하고 발표 및 서비스에 의해 인간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고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롤리의 번화가에 위치한 캠퍼스는 853만 8748㎡의 대지에 기숙사를 포함해 150개의 건물이 있다. 롤리캠퍼스 인근에 40만 4680㎡ 규모의 센테니얼 캠퍼스와 수의학 단과대학캠퍼스가 있다. 현재 재학생수는 대학생이 약 2만 2천명, 대학원생이 7천여 명이며. 전임 교원수는 1만 5000명이 넘고, 교수 1인당 학생수는 15명 정도라고 한다.
교내에는 약 300개의 동아리와 54개의 스포츠 클럽이 활동 중인데, 특히 노스캐롤라이나는 2005년 3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토너먼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리노이를 75-70으로 따돌리고, 지난 93년 이후 12년 만에 전미 대학농구 타이틀을 되찾아오는 영예를 안음으로서 소위 `3월의 광란'을 평정했다.
둘째아들과 함께 캠퍼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경영학 MBA과정 캠퍼스의 강의실에 들어가 보고 그 건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감리교계 사립대학 듀크(Duke University)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더럼에 있는 감리교계 사립대학. 1830년대 랜돌프에 설립된 브라운즈 학사가 이 학교의 기원이다. 1839년 유니언 인스티튜트로 개칭하였고, 1841년 인가, 1851년 개편하여 트리니티 칼리지가 되어, 1853년에 최초의 학사학위를 수여했다.
189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는데, 워싱턴 듀크가 이전비용을 기부하고 또 다른 지역 산업가인 줄리안 S. 카의 부지를 기부했을 때였다. 1924년 듀크 기금을 기초로 듀크 대학이 형성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24년 공식적으로 설립된 듀크대학은 그 뒤로 물적 학문적 확장을 계속했다. 특히 이스트 캠퍼스는 그레고리안 양식의 건물들이, 웨스트 캠퍼스는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환경의 캠퍼스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 켐퍼스의 듀크채플은 1930년에 완공되었다.
학문적으로는 이전부터 미국 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학부과정과 의학대학에 이어, 1904년 법학대학원이, 1938년엔 환경대학원이, 1969년 경영대학원이 각각 설립되어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대학 재학생은 7천여 명, 대학원 재학생은 6천여 명, 교수는 1천 5백 명이다.
이런 환경적, 학문적인 명성에 힘입어, 현재 듀크대학은 미국 전체 대학 중 전반적인 평가에서 평가가 97년 3위, 98년 6위를 기록해 미국 젊은이들이 최고로 가고 싶어하는 대학으로 성장했으며, 의학, 법학, 경영학, 환경학, 신학 등 대부분의 석사과정 역시 미국내 TOP 10으로 매년 선정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비교적 짧은 역사로 인해 미국 외의 국가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듀크가 최근 학문적인 명성과 급격히 증가한 외국인 학생의 비율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배려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Duke대학에서 더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자명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학인 듀크대학 출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엘리자베스 돌, 클린스캔들을 담당했던 캐네스 스타검사 등을 들 수 있다.
윈스턴 살렘(Winston Salem)의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성촌(Salm Square)
채플힐에서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윈스턴 살렘이 있다. 채플힐에 살고 있는 조카 광수(누님의 큰아들)가 추천하여 그 식구들과 함께 윈스턴 살렘의 올드 살렘(Old Salem)을 방문했다.
이곳은 1760년대 미국에 정착한 모라비아교회(Noravian Church) 교도들이 모여 이룬 일종의 집성촌(集成村)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엔 넓은 정원과 교회, 신학교를 비롯하여 병원, 빵 제조 공장, 가구 공장, 구둣방, 수공예, 마구간 등 삶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1770년대부터 건립한 것이다. 교리상으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하여 초기부터 자기들만의 생활공간을 별도로 갖추는 경우가 많았다.
모라비아 교회는 독일 모라비아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독교 교파로, 그 기원은 15세기 초 보헤미아에 있던 후스의 추종 세력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헤미아 형제단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앙 집단은 1772년 모라비아 지방 헤른 후트에서 찐쩬도르프(M. L. Zinzendorf) 공작의 지도 아래 철저한 금욕적 신앙공동체로 재조직 되면서 모라비아 형제단(Moravian Brethren)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루터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초기부터 선교사를 여러 곳에 파송했다. 1732년 서인도제도 흑인들에게, 1733년 그린랜드에 선교사를 보냈고, 1738년에는 볼러(Bohler)가 런던 페터 레인에 정착하여 신앙 집단을 조직했는데, 감리교 창시자 웨슬 리가 이 모임에 참석하여 신생의 체험을 한 것은 유명하다. 모라비안아우크스고백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외에 기독교는 교리 체제를 부인한다.
감독, 장로, 집사 등의 칭호는 사용하고 있으나, 정통교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라비아 기독교는 단순하고도 비세속적인 기독교로 알려지고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 마을의 약도를 받아들고, 잘 정리된 길을 따라 교회, 신학교, 병원, 약국, 빵집, 그들이 사용하던 가옥들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박물관(Museum Center)을 관람했다. 교회는 작지만 아름답고, 교회 내부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특히 그들만의 묘지는 방대한 면적에 깨끗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반딧불이 반짝이는 한적한 시골풍경 메이플 담(Maple Farm)
조용한 시골마을 채플힐에서는 볼거리가 별로 없고, 농사를 위주로 하는 마을 풍경을 접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아들의 제안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찾아간 곳이 집에서 30분~40분 정도 거리의 메이플 담(Mapl Farm).
길가 주변에 들어선 농가와 가축들, 그리고 초지와 담배를 재배하는 밭들과 옥수수 밭들이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자아낸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온난 습윤한 기후로 경제활동의 중심은 농업이며, 담배 생산량이 미국 내에서 1위에 속한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여 담배의 폐해에 대하여 잘못 말했다가는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면화·옥수수·콩·밀·보리·귀리·땅콩·고구마·복숭아·사과 등을 산출이 많으며, 고기소·돼지·닭·칠면조 등의 산출액도 크고, 풍부한 삼림자원으로 목재·가구산업이 성하며, 가구생산도 미국 제1위라고 한다.
메이플 담에는 농촌의 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언덕 위에 있는 방문자 휴게소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농촌 풍경을 조망할 수 있고, 또 휴게소에서는 산 너머로 지는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지는 해를 보려고 달려가 겨우 시간을 맞췄다. 구름이 좀 끼긴 했으나 특별한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퍽 다행이었다. 휴게소 밖의 목제 흔들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농촌의 풍치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의자 주변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반딧불이었다. 어린 시절 섬에서 살 때 보던 그 반딧불을 이곳에서 보다니 - 그 시절 밤에 반딧불을 호박꽃 속에 넣고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내는 반딧불을 처음 보는 것이라고 너무 신기해 했다. 물론 두 살배기 지연이도. 그런데 순간 휴게소 앞에 펼쳐진 널따란 옥수수 밭은 반딧불 밭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점점이 밤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이는 맑은 물,깨끗한 공기를 상징하는 생물이다. 청정 환경의 지표생물인 것이다. 반딧불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면 공기 속의 오염물질이 몇 ppm인지, 하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몇 ppm인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반딧불이는 또 자연회생의 신호이기도 하다.
행여 차에 그 반딧불과 충돌을 하지 않을까 조심하며, 이 땅은 아직도 축복 받은 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쁘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톱 세일 비치(North Topsail Beach)에서의 게잡이
노스캐롤라이나는 동쪽으로 대서양에 연해 있어 캠프·낚시터·수영시설이 풍부한 113㎞에 이르는 하테라스(Hatteras) 곶 국립해안공원이 방대한 지역에 걸쳐있다. 얼마 전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가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해안공원의 아름다움과 함께 해양 스포츠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멀기도 하고, 너무 방대한 지역이라 제쳐놓고, 동남쪽으로 3시간여를 달려 톱 세일 비치로 향했다. 둘째 경우가 친구들과 같이 게를 잡은 경험도 있어서 그곳을 택했다. 톱세일 비치는 대서양을 끼고 길게 누운 섬인데, 설프 시티(Surf City)와 짧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를 통행하는 배들이 오르내릴 때에는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개폐식 다리였다.
다리를 건너기 전 푸드 마트에서 게틀과 미끼로 쓸 닭날개를 샀다. 게틀은 5m 정도의 끈에 맨 끝에 납봉을 달고, 납봉 아래 철사 핀이 있어 그곳에 미끼를 끼도록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섬에서 돌게(박하지)를 잡을 때 쓰던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중앙에 있는 다리를 중심으로 게잡이 포인트는 다리 건너 오른쪽 공원 근처와 남쪽과 북쪽에 걸쳐 있었는데, 파도가 없는 육지 쪽의 해안에 자리 잡은 배들이 드나드는 공동계류장이었다.
계류장에 노끈의 한쪽을 묶고 핀에 미끼를 끼어 물속에 던진 다음 잠시 뒤에 계류장에 매놓은 끈을 잡아당기면, 미끼를 먹던 게(불루 크랩, 꽃게)가 수면까지 달려오는데 수면에서 뜰채로 잡아 올리는 것이다. 별 기술이 없어도 잡을 수 있으나 재빠른 게를 잡기 위해서는 순간 포착을 잘해야 실패하지 않고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꽃게를 잡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높은 파도 속에서 그물을 던져야 하는데, 여기서는 연안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낚시를 하는데도 정해진 규정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점이다. 손바닥 크기 이상이래야 하고, 그보다 작은 것은 잡아서는 안 되고 잡더라도 다시 놓아주어야 한다. 그들의 철저한 준법의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역 땅에서 손쉽게 잡은 것으로 게 찌개를 해먹고, 남은 것은 게장을 담갔다. 맛도 한국산과 별 차이가 없다. 경우의 말로는 3월과 8월 하순이 크고 살이진 게들을 잡는 적기라고 했다. 동부에 체류하는 보름 동안 게잡이가 신이 나고 즐거워 온 가족이 세 번이나 이곳 비치를 찾았으니, 없어진 게만도 무려 100마리는 넘을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톤 방문
사우스캐롤라이나 1박 2일 중, 첫 방문지는 찰스톤이었다. 먼저 찰스톤을 방문하고, 사우스케롤라이나에서 자랑거리로 선전하는 머를 비치로 이동하여 1박을 하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날이 발기도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출발 때부터 강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날이 밝을 때쯤 되었는데도 빗줄기와 안개 때문에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빗줄기는 더욱 강해지는데, 되돌아 갈 수도 없는 터라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빗속을 달린지 4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비가 그치고 순조롭게 드라이브를 할 수 있었다. 찰스톤에는 6시간이 지나서 도착하여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우리 옆을 지나던 50대가 넘어 보이는 여성이 친절히 말을 걸러왔다. 한국인이었다. 1960년에 이곳에 와서 살고 있다는 여성은 동족애를 발휘하여 찰스톤 여행의 정보를 친절히 알려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찰스톤은 사우스 캐롤 라이나 주 찰스턴 군의 군청소재지 이면서 시이다. 1670년 영국인이 세운 도시에서 유래하며 대서양 연안에 있는 주요 항구들 중에 하나로, 남부지방 문화의 중심지이다. 유서 깊은 건물들과, 역사 유적지들로 둘러싸여 있는 찰스턴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특히 1864년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의 본부로 전쟁을 선포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찰스톤 박물관은 1773년에 건설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써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장식 예술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자연사를 비롯 고고학, 조류학과 관련된 품목들을 포함하여 50만여 점의 수집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찰스턴 실버, 패션, 토이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방문하고 나서, 서서히 차를 몰고 다운타운 거리를 둘러보았다. 유서 깊은 작은 도시는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18세기의 교회와 저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명소로 꼽히며, 시간마다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는 도심 곳곳에서 듣게 된다.
특히 히스토릭 디스트릭트(Histroric District)에는 교회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전경 등을 만나게 된다. 깔끔한 길 양 옆으로 고풍스런 가옥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마차들이 분위리를 돋우어 준다.
에쉴리 강과 쿠퍼 강이 접하고 있는 좁은 반도의 끝에 있는 배터리(Battery)를 따라 매력적인 찰스턴 스타일의 맨션들이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싸여 있고, 이 맨션들은 하버와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쿠퍼 강(Cooper River) 다리를 가로질러 가면 매우 고풍스러운 마운트 플레즌트(Mount Pleasant)의 도심이 나오는데, 빌리지 주변에는 남북전쟁 이전의 주택들과 상점과 카페들이 들어서있는 타운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만 있으면 랜딩 주립공원을 비롯하여 꽃길로 꾸며진 산책로가 일품이라는 미들톤 플레이스 정원, 그리고 남부동맹군에 의하여 1861년 4월12일에 최초의 전쟁 발발 포격이 이루어졌던 샘터 요새(Fort Sumter)도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었으나, 해안 휴양지 머를 비치를 향하여 북쪽으로 다시 차를 몰았다.
노스 머를 비치(North Myrtle Beach)에서의 꿈같은 하루
찰스톤에서 17번 도로를 이용하여 곧장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잠을 설치고 아침식사도 부실하여 피곤이 밀려왔지만, 유명한 해양 휴양지 머를 비치에 간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곳곳에 보트 진열 판매장이 있고, 각종 해양스포츠와 관련된 상점들이 있는 것을 보면 대서양을 끼고 달리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우거진 숲 사이로 파란 잔디로 옷 입은 벌판은 이곳이 유명 골프장이 있음을 말해 주었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정돈된 해안 마을이 우리를 맞이했다. 별장을 비롯하여 각종 놀이시설과 리조트, 스포츠용품점, 식당들이 우리가 숙소로 예약한 베이 워치(Bay Watch) 리조트까지 줄을 이었다. 이목을 끌기 위해 대형 상어나 고래, 폭포, 화산 등으로 장식한 시설들은 가히 장관이다.
베이 워치는 해안에 인접한 고층 리조트로서 넓은 수영장을 갖췄고, 바로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어 수영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편리했다. 광대한 모래사장에는 울긋불긋한 비치파라솔 아래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고, 파도를 타며 수영하는 인파 뒤로 보트와 요트의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방 배정을 받아 짐을 정리하고 나서 우리는 이날의 부식을 마련하기 위해 게를 잡으러 갔다. 겨우 서너 마리를 잡아 찌개로 저녁 반찬을 했다. 땅거미가 내리고, 휘황찬란한 불빛이 밀려오는 물결 소리에 하염없이 조는 듯,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새벽이 되어 바다로 나가 모래사장을 맨발로 물가를 따라 산책했다. 모래가 곱고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결 따라 밀려온 작은 고기 새끼들이 파닥거리는 것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대서양변 아름다운 비치에서의 행복한 하루를 보낸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올랐다. 7번을 타고 계속 북진하여 머들 비치에서 생각만큼 게를 못 잡은 한(?)을 풀기 위하여 노스캐롤라이나 톱 세일 비치(North Topsail Beach)로 올라가 다시 게를 잡았다. 우리에게 꿈같은 행복감을 안겨 준, 비치에서의 1박 2일은 미국 여행의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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