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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러시아

모스코바,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를 찾아서

by 혜강(惠江) 2005. 12. 16.

 

모스크바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의 두 축(軸), 러시아의 심장

 

 

·사진  남상학

 

 

 

 

- 바실리 성당 앞의 연인들 -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칠 것만 같은 동토(凍土)의 나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이끌어 가는 4대강국의 하나였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실제적인 지리상의 거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그렇긴 해도 영화 "백야(白夜)"와 "닥터지바고"의 낭만으로 애틋하게 기억되기도 하는 곳. 일반적으로 러시아연방 (Russian Federation), 즉 구 소련을 생각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들이다.

    1991년 사회주의가 붕괴된 후 10여년이 지난 오늘, 정치·경제적으로는 매우 혼란한 상태임에 틀림없지만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지극히 러시아적인 과거 권력의 흔적들과 더불어 봇물처럼 들이닥친 서구사회의 모습이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광경들을 만날 수 있다.  



러시아(Russia) 땅을 밟으며 

 

   러시아는 총면적 17,08만㎢로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그 영역은 북동 유럽에서 우랄 지역을 거쳐서 시베리아와 극동 지방에 이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는 세계 최장 단일 철도시스템으로 모스크바로부터 블라디보스독까지 10,000km를 달리며, 동쪽 태평양에서 서쪽 발틱 해까지의 광활한 실크로드와 유라시아를 관통한다. 그래서 국토의 동서 양극 지역간 시차가 총 11시간대에 달한다.

   또 영토가 넓기 때문에 러시아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서쪽으로는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핀란드, 남쪽으로는 중국, 몽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터키, 동쪽으로는 북한과 접하고 있다. 전체 인구는 1억 5천만 명에 달한다.

  4-6세기에 걸쳐 러시아인의 선조인 동슬라브족이 정착하여 종족 동맹을 형성한 이래, 10세기를 전후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비잔틴 문화가 부흥하였으나 한때 몽고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러시아공국을 수립하여 로마노프 왕조를 거쳐, 볼셰비키 혁명으로 프로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공산주의 이념으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한 이후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등으로 이어지는 철권정치를 이어왔다.

  그러나 1985년 고르바초프는 스탈린 정책을 비판하고 소위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을 본격화하면서, 1991년 12월 25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제도를 추구하는 러시아 연방을 탄생시킴으로써, 유물사관에 입각한 철권통치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의 푸틴 대통령은 옐친에 이어 ‘강력한 러시아 재건’의 기치를 들고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을 위한 구조적 개혁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3일 동안의 지극히 짧은 일정이지만, 이번 러시아 여행을 통하여 구소련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모스크바와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아보며 그들이 이룩한 문화적 자취와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  러시아에 대한 사전 예비지식이 별로 없는 터에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 모스크바 세르미치 공항 -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가면서 

 

 

  러시아 역사학자인 리콜라이 카라마진은  “러시아를 알고 싶으면 모스크바로 가라”고 말했다. 모든 세대의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국가의 권력과 힘이 발전되는 중심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표트르 1세 대제가 러시아 국가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전할 때에도 모스크바의 수도 이름을 그대로 남겨두고, 모스크바를 새롭고 아름다운 건물로 장식하였다.


   9시간 좀 넘는 비행 끝에 모스크바 세르미치 공항을 밟았다. 공항은 대국(大國)의 수도에 있는 공항답지 않게 너무나 협소하고 초라했다. 동관(銅管)을 잘라 장식한 어두컴컴한 천정 아래서 입국심사를 위해 오랜 동안 줄을 서야 했다. 일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굳은 채 무뚝뚝해 보였다. 입국통과 심사가 더디고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공항을 빠져나와 느끼는 풍경은 공항에서 만난 사람과는 달리 싱그럽고 시원해 보였다. 도로 왼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자작나무 숲과 오른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벌판이 심상치 않다. 

   대국의 면모가 엿보였다. 시가지에 들어서면서 아파트군(群)과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모스크바(Moskva)는 한 마디로  러시아 내  또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모스크바 공화국의 수도로,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면적이 878,7㎢, 인구는 850만 명이 넘는 세계적인 도시이며, 구 소련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지리적으로는 동 유럽 평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과 동쪽의 평평하고 낮은 지대를 따라 흐르는 모스크바 강의 계곡과 그 지류에 터를 잡았다. 

   도시 내에 흐르는 모스크바 강의 길이는 502km. 유역면적은 1만 500㎢. 볼가강 유역에 있는 오카강의 왼쪽 지류이다. 스몰렌스크-모스크바 고원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볼가강과 합류해 카스피해로 흘러든다.  강은 11월 후반~4월 전반까지 얼어붙는다. 모스크바 운하에 의해 볼가강과 연결되며, 이 운하의 하류 쪽은 항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평균 해발고도 120m의 지점에 위치하여, 모스크바 강의 3단의 하안단구, 남서부의 '레닌 언덕'이라고 불리는 해발고도 250여m의 고지, 동부의 저지, 북부의 구릉 등 기복이 많은 지형 위에 시가지가 발달되어 있다. 그만큼 모스크바는 강으로 하여 더욱 돋보이고. 모스크바 시가지는 마치 과녁판과 흡사했고, 그 과녁의 중심부에 냉전 시대 막강 권력의 상징인 크렘린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모스크바 여행은 크렘린과 붉은 광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로 되어 있다.

 

 

- 크렘린궁의 토로이츠카야 망루 -

 

- 막강 권력을 상징하는 러시아 국가 문장 -



막강 권력의 심장 크렘린 (Kremlin)

 

 

 백악관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던 양대 축인 크렘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이카 이전에는 접근을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최대의 관광명소로 바뀐 것이다.  모스크바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면, 그 중 가장 매혹적이고 완전무결한 곳이 러시아의 백악관인 크렘린인 셈이다. 

  크렘린(총면적 28 만㎢, 성벽길이 20개의 탑을 합해 2.2㎞)이란 '성벽'이라는 "도시 중앙의 성채”라고 불리는 견고한 성벽과 망루(望樓)로 둘러싼 러시아 도시의 중심 부분이다.  15세기에 건립을 시작, 막강 권력을 자랑하던 수많은 러시아 황제 짜르가 거쳐갔고, 레닌 스탈린부터 지금의 푸틴 서기장까지 숨가쁜 권력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붉은 벽돌담에 둘러싸인 크렘린엔 20개의 아름다운 종루와 궁전 교회 등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제정 러시아의 영광을 웅변하고 있다. 크레믈린 대궁전을 비롯하여 차르의 권위와 종교를 대변하는 우스펜스키 교회의 황금빛 십자가와 볼셰비키 혁명을 상징하는 트로이츠카야, 마로비츠카야 망루의 붉은 왕별이 한 울타리 안에 동거하고,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짜리(대포, 1586년 주조)와 역시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짜리(종, 1733년-1735년 주조)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라노비따야 궁전, 황후 황금내실, 쩨렘노이 궁전 등에는 700여개 객실에 2만여 개의 촛대로 장식되어 있다. 19세기의 가구, 샹데리아, 융단, 악기 회화, 조각 등의 걸작이 가득 전시되어 있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떨어지지 않는 호화로움을 자랑한다. 

  왼쪽의 병기고 건물, 오른쪽의 무기고 건물, 각종 국제회의와 발레 등이 열리는 대회 궁전, 외국사절들을 접견하는 우스벤스키 사원(성모승천 사원), 연병장으로 이용되던 타이니츠키 정원 등이 볼만하다.  제정시대에 각종 공식 행사가 열렸던 소보르나야 광장, 짜르의 대관식이 치러지던 우스펜스키사원 등 볼거리가 수없이 많다.

 

 

 

- 짜리:대포(1586년 주조) -

 

- 짜리:종((1733-1735년 주조) -

 


사회 변동의 무대가 된 붉은광장 (끌라스나야 쁠로샤지)


   붉은광장은 전차를 앞세운 부대의 행진이나 군인들의 의전행사 등으로 국내 TV를 통해 자주 접해보는 곳이다.  이전에는 시내 중심부에 있던 시장이었으나, 15세기 말부터 크렘린 정면의 광장이 되었으며, 짜르의 선언이나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상업 광장· 화재 광장 등으로 불렸다가 17세기 말부터‘아름다운(끌라스나야)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끌라스나야’는 '붉은' '아름다운'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혁명기념일이나 메이데이 행사 때 이 아름다운 광장의 모든 건물들에 붉은 색의 현수막이 걸리고, 수많은 인파가 붉은 깃발을 들고 이 광장에 운집하여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였으므로, 이 광장을 ‘붉은 광장’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붉은 광장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광장 입구에 마련된 제로 포인트를 거치게 된다. 모스크바 시내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둥그런 선반에 나침반 형상을 해 놓고 있다. 

  광장을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크렘린 궁 외곽이 서 있고, 그 아래 레닌묘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모두 입점해있는 국영(國營) 굼 백화점이 있고, 정면에는 모스크바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기는 바실리성당이 늠름하게 서 있다. 광장 입구에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문화유산들이 전시된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한 나절 우스펜스키교회의 양파를 닮은 5개 돔은 여름 햇살을 받아 황금빛이 더 찬란하고, 크렘린의 견고한 벽돌담은 붉은빛이 더욱 선명하다. 지금은 돌로 뒤덮이고 말았지만, 러시아 사회의 변동의 무대가 된 이 붉은 광장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단순한 호기심을 떠나 격동의 역사 속에 족적(足跡)을 남긴 많은 인물들을 상상하게 될 것이고, 나름대로 역사를 평가할 것이다.

 

 

- 붉은 광장 입구 -

 

-혁명기념일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던 붉은광장 -

 

 

러시아의 영웅 레닌의 묘(墓)



   붉은광장의 중앙 크렘린 성벽 앞에 레닌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23계단을 내려가면 전시실 중앙부에 레닌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다. 알렉세이 시추세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후 1929년에는 적토색 화강암 건조물로 다시 지었다. 묘는 피라미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유서 깊은 크레믈린의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레닌은 1924년 1월 21에 숨을 거두었는데, 최초의 레닌 묘는 알렉세이 아블리코조프에 의해 유체를 보존키 위채 특수 화학 처리했고, 그 다음 해부학자 바리비요프, 카루시스, 생화학자 즈바르스키 이 세 사람이 레닌의 유체를 죽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 처리해 놓았다.  

  붉은광장에 레닌의 묘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보면, 레닌이 러시아인들에게 영웅으로 추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실 레닌은 볼쎄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혁명 후 대혼란 속에 빠져있던 소련을 신경제정책으로 극복한 영웅이었다. 트로츠키, 스탈린, 흐루시초프 등은 역사의 재평가라는 면에서 오명을 남겼지만, 레닌만은 소련의 역사 속에서 지금도 찬연히 빛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종교를 부정하는 소련 속에서도 레닌만은 신격화된 존재인 듯했다.  

  1953년 이후 스탈린도 레닌과 함께 이곳에 안치되었으나, 1961년 제22회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를 규탄하는 비밀 연설을 한 후로 스탈린 유체는 레닌 묘 뒤쪽의 일반 묘로 옮겨졌다. 레닌 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전나무가 심겨 있는 곳에는 10월 혁명 때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과 병사들의 묘가 있다. 그리고 크레믈린 벽을 좁다랗게 나누어서 그 안에 고리키, 키로프, 나제지다 크루프스카야(레닌의 처) 등의 유골도 안치해 놓았다. 

  이전에는 레닌의 묘에 상당히 긴 방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어서 관광객이 이야깃거리로 보러 오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마침 내부 수리 관계로 공개하지 않아 발길을 돌리긴 했으나, 굳이 여기까지 와서 혁명가의 시신을 보기 위해 안개 낀 동굴 속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다행인 셈이다.  

     붉은광장을 가로질러 레닌묘 앞을 지나 바실리 사원이 있는 곳까지 걸으며 변모해 가는 붉은광장의 모습들을 머리 속에 체크해 본다. 관광객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지나간다.  배꼽티를 입고 스스럼없이 혁명 광장을 활보하는 젊은이들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한 레닌의 시신을 지키는 무표정한 모습의 또래 병사들이 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도시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 크렘린 성벽 밑에 있는 레닌의 묘 -

 

 

모스크바의 상징 바실리 사원(St.Basil Cathedral)  



  흔히 붉은광장이 아름다운 것은 바실리 사원이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붉은광장 남쪽, 모스크바 강쪽으로 나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 바실리 사원은 러시아 교회 건축의 백미(白眉)로 알려져 있다. 

   200여 년간 러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몽골의 카잔 한(汗)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반 대제의 명령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사원의 이름은 이반 대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수도사 바실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555년에 착공한 건물이 1561년에 이르러 완성되자,  이반 대제는 그 사원의 아름다움에 탄복하여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설계자인 포스토닉과 바르마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47m 높이의 양파머리 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덟 개의 양파머리 지붕들로 이루어졌다. 카잔과 치른 8개의 전투를 상징하는 8개의 작은 교회와 그 위의 첨탑을 만들고, 그것을 총체적으로 통일시키는 하나의 주 건물과 첨탑을 세운 다음, 러시아 목조 건물의 나무 지붕 형태를 여기에 가미시켰다.

   이 사원은 비잔틴의 건축 양식과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다채색의 꾸쁠을 불규칙한 형태로 배열해,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여 모스크바의 상징적인 사원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바실리사원 앞에는 1612년,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의 정육점 주인 "미닌"과 수즈달의 대공이었던 "드미트리 파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불균형이 가져다 주는 묘한 아름다움

 

 

러시아 전 역사를 보여주는 국립역사 박물관

 


   바실리 사원과 마주한 붉은광장 북쪽에 네 개의 탑을 가진 붉은 벽돌 건물이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이곳에는 로모노소프에 의해 모스크바 대학의 자그마한 학교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나,  1875~1881년에 세르비트와 세묘노프가 붉은 벽돌로 다시 건물을 지었는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 것은 혁명 후의 일이다. 전시 내용은 혁명 이후를 제외한 러시아의 전 역사에 관련된 것으로 석기 시대 것부터 있다.

  전시품이 너무 많아서 전부 돌아보기는  힘들지만 이반 대제의 의장이나 패주하던 나폴레옹이 버리고 간 침대와 <코로코르>지 초판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주화, 메달, 장신구, 가구용품, 사본 등 다양한 전시품들이 많이 있다.

 

 

- 붉은 벽돌로 건축된 국립 역사 박물관 -

 


러시아 최고급 굼 백화점



  붉은광장의 북동쪽, 레닌묘의 맞은편에 있는 것이 러시아 최고급 백화점 굼이다. 원래는 국영백화점이란 뜻으로, 지금은 민영화되면서 국영을 뜻하는 이니셜 'G'가 떨어져 나갔으나, 그대로 '굼'이라고 부르고 있다.  굼에는 지방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찾아온다.  1890~1893년에 걸쳐 세워진 이 백화점은 1953년에 대폭 수리한 오래된 건물로 매우 고풍스럽다.

    내부는 가운데가 마치 거리처럼 시원하게 뚫려 있고, 1층과 2층에 온갖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형태이다.가운데는 분수가 있어 매우 아름다운 멋을 연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과 합병한 상점이 많이 늘어 분위기도 상당히 바뀌었는데 텔레비전, 비디오는 물론이고, 다양한 색의 비누, 이탈리아제 구두나 스웨터, 아르마니나 크리스찬 디올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망라되어 있다. 러시아의  마트료쉬카, 사모바르, 크리스탈, 그제리 도자기, 모피 코트나 모자도 팔고 있다. 

    2층에는 카페와 패스트푸드 가게가, 1층에는 카페가 있으므로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다. 1층 중앙에는 극장의 매표소가 있다. 구경도 할 겸 상점 몇 곳을 들어가 보았지만 점원들의 태도가 태평이다. 우리네의 백화점이나 시장 같은, 물품을 팔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영 보이지 않았다. 체질상으로 아직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일까.   

 


  

- 굼 백화점(1890-1893 건축) -

 

- 건물과 건물 사이는 2층에서 난간으로 연결되고 지붕이 덮여 있다 - 

 

 

시내를 조망하기 좋은 참새 언덕 (구 레닌 언덕)



  이 언덕은 유난히 참새가 많다고 하여 '참새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참새 언덕은 모스크바 강과 크렘린을 비롯한 모스크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 아스탄키노의 TV 탑 외에는 이 언덕이 가장 높다.  언덕이라기보다 나즈막한 구릉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한데, 벌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모스크바 지형으로 볼 때 그래도 가장 높은 편이다. 이 언덕을 한때는 레닌언덕이라고 불렀다. 


  주말이면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들이 몰려와 기념사진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이곳은 일종의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옛 소련군의 견장과 훈장, 화폐, 레닌 조각상, 인형 등을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있다. 소련군 군모와 방독면, 대검, 적외선 망원경 등 군수용품도 인기. 이곳에선 물건 값 흥정하는 재미가 흠뻑 묻어난다.

   참새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모스크바 시가지는 그리 활기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음울한 잿빛. 짙은 스모그는 아니더라도 왠지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라보는 모스크바 국립대학(Moscow University)의 정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람하고 듬직해 보인다. 알렉산드롭스키 정원 맞은편에 붉은 금속 울타리로 되어 있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스탈린 양식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최고의 학부이다. ‘엠게우’로 알려진  1755년에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에 의해 설립된 이래 25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대학이다.

   당 관료들의 연줄이 작용하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모스크바 대학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뽑기 때문에 전국의 수재들이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모스크바대학을 졸업 하면 러시아 사회의 엘리트로서 장래가 보장된다.

    개교 당시 모스크바대학교는 역사박물관 자리에 위치했으며, 3개 학부(철학, 법학, 의학)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18개 학부 및 산하 연구소에서 25,000여명의 학생과 5,000여명의 아스피란트(박사), 5,000여명의 연구원 그리고 매년 158개국에서 약 1,500여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는 것은 까다롭지만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곳이다. 중앙에는 30층짜리 건물의 관리 탑이 있고 그 양 옆으로는 기숙사가 있다. 30층의 건물에 들어갈 때는 여권을 수위에게 제시해야 하고 올라가면 모스크바 시내를 조망해 볼 수도 있다. 

   우리의 관광 일정에는 모스크바 대학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아 레닌 언덕에서 바라보고 나서, 어둠이 내린 밤에 조명이 잘 보이는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레닌 언덕의 노점상들 -

 

- 레닌동상 -

 

- 레닌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

 

 

젊음과 문화의 상징, 아르바트 거리(Arbat Street)


  모스크바는 거리와 광장, 그리고 동상의 도시다.  모스크바의 거리 중 으뜸은 푸쉬킨 광장과 러시아에서 가장 큰 맥도널드 가게, 그리고 고풍스런 건물이 밀집해 있는 트베르스카야 거리. 그러나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보려면 집시와 예술가들의 고향인 아르바트 거리를 둘러봐야 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인 푸쉬킨, 레르몬토프, 뚜르게네프 등이 어릴 적 뛰놀던 거리로, 러시아의 몽마르뜨로 불리는 곳이다. 15세기 시대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써, 러시아 귀족문화의 정점이다. 

  모스크바의 몽마르트르인 아르바트 거리는 약 2㎞. 아르바트 광장에서 러시아 국립도서관까지의 아르바트 거리는 혁명 전의 고(古)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아르바트 광장에서 모스크바 강까지의 도로의 폭은 80m로 넓어졌고, 많은 빌딩이 늘어서 있어 현대적인 길이 되었다. 1987년 시에서 자동차 통행을 막으면서 보행자의 천국으로 자리 잡았다. 스탈린 양식의 거대한 외무성 건물까지 계속되는 아르바트 거리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현재 모스크바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겨우 20m 정도의 좁은 길목이지만 보행자 천국이 되어 있어 주말이면 굉장히 붐빈다. 보행자의 거리가 된 이후 수없이 몰려드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젊음과 개방의 거리가 되었다. 

  거리는 즉석에서 캐리커처나 초상화를 그려주는 무명화가, 목각 인형인 마트료시카를 비롯한 민예품을 파는 노점상, 경쾌한 슬라브 음악에 맞춰 즉석 춤판을 벌이는 젊은이들로 주말이면 항상 붐빈다.

    그 중에서 예브게니 박탕코바 극장 건너편의 허름한 골목 하나. 자유를 갈망하는 록 음악으로 고르바초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의 한 축으로 우뚝 섰던 고려인 3세 빅토르 최가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던 곳이다. ‘빅토르 최의 벽’으로 불리는 낡은 시멘트벽엔 1990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요절한 그를 추모하는 낙서로 가득하다. A4 용지에 복사한 빅토르 최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골목에선 20∼30명의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그들의 우상인 빅토르 최를 노래하고 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푸쉬킨과 부인의 동상은 아르바트 거리 끝 무렵에 있다. 푸쉬킨 탄생 200주년을 맞아 1999년에 세운 것으로 맞은편 청록색 건물이 그가 신혼 시절을 보냈던 곳. 부인의 애인과 결투 끝에 죽음을 맞은 푸쉬킨을 기리기 위해 부인의 동상까지 나란히 세운 짓궂은 발상에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빅토르 최의 음악이 살아 있고 그를 기억하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르바트 거리에 서면 모스크바의 정열과 낭만을 한껏 느끼게 된다.

 

 

 

-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무명화가들 -

 

- 추모 낙서로 가득찬 '빅토르 최의 벽'-

 

- 러시아 작가 푸쉬킨과 부인의 동상 -

 

 

버스 타고 시내 투어


   아르바트 거리를 둘러본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투어를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러시아 무대 예술의 메카, 볼쇼이 극장(Bolshoi Theatre).  하얗고 단단한 기둥 위에 아폴론 마차의 뒷발로 일어서 있는 4 마리의 말이 보이는 단아한 건물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세계 일류의 발레, 오페라,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들은 17, 18세기에 서구에서 들어 온 것을 바탕으로 로맨티시즘, 리얼리티, 쇼셜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불멸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술의 한 가운데에 볼쇼이 극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76년에 건립되어 2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발레, 오페라, 그리고 연극예술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볼쇼이 극장에서는 순회공연을 떠나는 여름 시즌을 제외하고는 항상 최고 수준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한 현 상황에서 극장 시설이 낙후, 현재 2억 달러의 비용이 드는 보수비를 지원하기 위해 전 세계의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또 하나, 모스크바에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 있다. 원래 크렘린의 출성(出城)으로 지금은 여성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정말 정취가 있는 곳이다. 수도원도 훌륭하지만 또 하나 꼭 보아야 할 것이 묘지다. 이곳에는 고골리, 체호프 같은 문인들과 천재 성악가 샤라핀은 물론 흐루시초프 전 서기장 같은 저명인사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 외에도 유명한 트레치코프 미술 박물관(Trejakov Gallery), 톨스토이 박물관(Tolstoy Museum)을 들러보고 싶었으나, 정해진 일정 때문에 버스 안에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볼쇼이 극장(1821-1825, 설계:오니보베와 마마미하일) -

 


궁전처럼 보이는 모스크바 지하철

 


   러시아의 두 번째 행선지 성 피터터스부르그로 떠나가 위해 기차역에 도착하여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인근 모스크바의 지하철 모습을 돌아보기로 했다.  100여m 지하로 뚫린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는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급격하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다른 도시들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단순히 지하철을 타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궁전 같아 보인다는 게 첫 인상이다. 대리석과 모자이크, 청동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핵공격에도 끄떡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모스크바에 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두 구간 정도는 꼭 지하철을 타보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웅장한 모습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 모스크바 지하철 이모저모 -

 

 

모스크바를 둘러보고 나서



  짧은 시간이지만 모스크바를 둘러보고 나서 느끼는 것은 러시아는 여전히 저력을 가진 나라라는 점이다. 끝을 모르는 넓은 평원, 풍부한 자원, 문화적 유산, 우주여행을 최초로 시작할 만한 기초과학의 발달 등 부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 70여 년간 유물사관(唯物史觀)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역사적 과오만 없었다면, 러시아는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자유의 허용, 시장경제로의 회귀, 오랫동안 닫혔던 교회의 문을 다시 열었지만 아직도 모든 면에서 경직된 모습은 여전했다. 최대의 백화점인 굼을 방문했을 때도 점원들은 시장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인지 상품을 팔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성당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지일 뿐 경건한 예배의 처소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역력했다. 모스코바 중심가에 우리나라 대기업의 간판이 내걸리고, LG 간판이 내걸려 아예 LG 다리로 명명된 곳을 지나 모스크바 시가지를 젊은이들이 현대 자동차를 타고, 삼성 핸드폰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이제 이념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시대는 끝이 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코스모스호텔 앞 평화를 상징하는 청동여인상과 우주박물관의 거대한 기념비 끝에서 금방이라도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미사일 조형물이 조금은 어색하게 보였다.

 

 

 

  어제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하루 동안 수박겉핥기로 모스크바를 둘러보고 떠난다는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한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위안 삼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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