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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베트남, 필리핀, 인니, 말레이

베트남 호치민시, 그리고 메콩델타의 미토와 유니콘섬

by 혜강(惠江) 2005. 12. 4.

 

베트남(Viet Nam)-호치민, 미토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치민시와

 

메콩델타의 미토, 유니콘 섬

 

 


· 사진 남상학

 

 

 

 

 

   어제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서 출발하여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에 도착한 것은 밤 7시20분이다. 전쟁의 피해가 극심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호치민시는 공항에서부터 캄보디아 시엠립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시가지의 네온사인이 화려하고, 상점들은 많은 상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북적이는 인파는 자유분방하면서도 활기가 있어 보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끝없이 거리를 메우는 오토바이의 행렬이었다. 이곳에서 오토바이는 생활 그 자체라고 했다.

 

 



사이공으로 귀에 익은 호치민(Hochiminh)시

 

   1965년부터 거의 10여 년간 우리의 맹호, 청룡부대가 파병했던 땅 사이공, 전쟁 당시에는 우방이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에는 새롭게 관계가 정립된 곳이다.  오랜 동안 전쟁에 시달린 사이공(종전 후 호치민으로 개칭)은 예전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후원을 받은 남부 베트남의 수도였다. 

   사이공은 종전 후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북부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였다. 면적은 서울의 3배,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인구는 미등록 인구까지 합하면 서울 인구와 맞먹는다고 한다.  해발 10m 내외의 낮은 평야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도인 하노이에서 1,738km 떨어져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호치민은 경제상업 중심지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지대가 형성된 지는 불과 300년밖에 안 되었으나 삼각주 지역의 비옥한 퇴적층에 위치한 만큼 농작물과 산업용 목재 생산량이 많다. 약 2세기 전에는 일본과 중국, 서양의 무역상들이 사이공 선착장으로 몰려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사이공은 베트남의 교역 중심지로써 '동양의 진주'라 불렸다. 더구나 이곳은 수로가 발달하여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수로를 따라 보트를 이용해서 여러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이곳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대한(對韓) 감정이 어떤 지를 안내인에게 물어보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참전했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안내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통일이 된 후에도 자기들을 도와준 것에 대하여 여전히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우리가 묵을 Legend Hotel은 시설이 꽤 좋은 특급이었다. 로비도 넓고 화려했으며 룸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곧바로 곤한 잠자리에 들었다.

 

 

 



해먹과 생동감 넘치는 아오자이 물결

 

  어제 앙코르 유적을 둘러보느라 지친 몸이었으므로 오늘은 기상 시간이 다소 늦추어져 여유가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베트남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메콩델타 지역에 위치한 미토(Mito, 美土)로 향했다. 

  안내인이 우리를 위해 냉커피를 사겠다며 중간 지역의 작은 휴게소에 정차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식탁과 해먹(hammock)을 빽빽하게 설치한 간이 휴게소였다. 한쪽 귀퉁이에는 그 집 아이인 듯한 어린애가 해먹에 누어 잠을 자고 있다. 해먹은 남쪽나라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그물침대의 일종이다. 더위에 적응하려는 그곳 사람들이 편히 누워 쉬거나 자는데 즐겨 이용하는 것이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여유를 즐기는 팔자 좋은 모습처럼 보인다.

   가끔 우리는 남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야자수 두 그루에 양쪽 끝을 매단 흔들리는 그물침대를 본 적이 있다. 해먹에 누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평화스럽게 보였다.  브라질 원주민이 하막(hamack)이라는 나무껍질로 그물을 떠서 나무 사이에 매달아 잠잔 것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이런 여유로움과는 달리 베트남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의 하나는 베트남 여성들이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통해서 흰색 아오자이를 입고 몰려 있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베트남 여자고등학생들이라고 한다. 흰색의 유니폼이 멋있어 보였다. 어떤 학생들은  한껏 멋을 내느라 아오자이 색깔에 맞춰서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하얀 장갑을 낀 학생들도 있고, 예쁘게 수를 놓은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멋있다.

  저렇게 분주한 것은 자전거를 타고 인근에 있는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깡마른 몸매에 착 달라붙은 아오자이를 입고 한 폭의 그림처럼 아오자이 물결이 유유히 흘러간다. 

  우리는 가끔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의 맵시를 예찬하는 말을 들어왔다. 가냘픈 허리에 솟아오른 가슴,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보일 듯 말듯 드러나는 겨드랑이 아래 허리살,  간소하면서도 몸에 딱 달라붙어 몸매의 선이 그대로 살아나 그 특유의 여성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움과 산뜻함을 느끼게 한다.  

   이 아오자이는 흰색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무조건 흰색이지만,  젊은 여성일수록 하얀 아오자이나 파스텔 톤의 아오자이를 입고, 결혼을 한 여성은 진한 색의 아오자이를 선택한다고 한다.  하늘색 아오자이를 입은 이들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고, 호치민의 탄손낫 공항의 면세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란색 윗옷에 하얀 바지가 공식 복장인 것 같았고,  공항 내부 근무자들은 파란색 윗옷에 하얀 바지를 매치한 아오자이를, 스튜어디스는 자주색을 입었다. 이 외에도 그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여기서 나는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의 미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아오자이의 맵시와 함께 그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들의 ‘생동감’이다.  아오자이 복장에 날개를 단 듯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날아다니면서 계속 뿜어내는 재잘거림은 하얀 아오자이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이것이 바로 젊은 베트남의 활력이 아닐까.

 



메콩강에 떠있는 아름다운 땅, 미토(My Tho)

 

  우리의 호치민 방문은 호치민시보다는 메콩델타 지역인 미토를 중심으로 삼았다. 미토는 글자 그대로 ‘美土’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도시였기 때문이다. 미토는  호치민에서 남서쪽으로 약 70㎞ 가량 떨어진 곳, 메콩강 주변 자연제방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메콩강 하류지방은 17세기까지만 해도 캄보디아의 크메르인들이 주로 살았지만 늪지가 많아서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지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17세기 말경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대만) 화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들어오면서 농지와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세기부터는 프랑스의 근대적인 토목기술이 응용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발달한 도시가 되었다.

   메콩강 하류 유역 도시 중에서도 인구 9만 명의 미토(My Tho)는 메콩 델타(삼각주)의 전형적인 시골 분위기와 함께 고기잡이와 쌀농사로 유명한 곳이다. 난초와 코코넛, 과일로 명성이 높다.  메콩강의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삼각주 덕분에 쌀, 바나나, 귤, 코코넛, 망고 등과 같은 농산들이 많이 재배된다. 미토는 쌀 국수의 일종인 '후티유'면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값싸고 맛 좋은 식당들은 대부분 베트남의 아침식사인 '퍼'(쌀국수) 전문점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며 호치민 시와도 가까운 까닭에 아름다운 전원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미토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메콩강 크루즈를 즐긴다. 그리고 크루즈는 대부분 미토 앞의 메콩강 중앙에 놓여있는 네 개의 섬인 드래곤 섬, 코코넛 섬, 유니콘 섬, 벤트레 구를 방문하여 지류 양쪽으로 펼쳐진 정글 투어와 함께 각 섬에서 제공하는 코코넛 캔디와 벌꿀 와인 등을 시식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독특한 양식의 빈트랑 사원(Vinh Trang Pagoda) 방문 

 

  미토 탐방에 앞서 먼저 찾은 곳은 빈트랑 사원.  미토 시내에서 약 1㎞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원식 사원이다. 열대 과일들이 숲을 이룬 곳에 위치한 이 사원은 Bui Cong Dat에 의해 19세기 초에 건설되었다. 이 사원은 건물 양식이 독특한데, 중국 양식과 베트남 양식, 그리고 캄보디아의 앙코르 스타일이 적절하게 복합된 사원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5층 높이에 178개의 기둥이 우아한 건물의 동체를 받치고 있다. 한 폭의 수채와 같이 무채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지각색의 자기로 장식되어진 고풍스런 느낌의 지붕장식은 감탄스럽다.

    빈트랑 사원에서는 또 다른 풍경을 감상하게 되는 것은 스님들의 수도 광경이다. 단 한시도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빼곡한 일정 속에도 늘 편안한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또 남다르게 검소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은 세속에 얽혀 사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베트남 최대의 삼각주, 유니콘 섬 탐방

 

   메콩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은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의 약 2배 가량 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이면서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나타낸다. 그 중에서 유니콘 섬은 가장 큰 삼각주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거미줄처럼 뻗어 나온 지류에 의지하여 발달된 비옥한 지역이다.

   미토에서 관광선을 타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메콩강의 지류를 가로질러 유니콘 섬에 닿는다. 안내하는 현지 베트남 아가씨는 한국말이 익숙하다. 아오자이를 입은 안내양의 설명을 듣는 동안 관광선은 섬에 닿는다. 이 섬에 닿으면 구수한 느낌이 드는 향촌의 풍경과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몇몇 주민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관광객들에게 해맑은 눈빛으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 말 그대로 평안한 느낌을 가진 고향의 느낌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듯하다.

  유니콘 섬은 섬 전체가 열대 과수의 농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에 올라서면 잘 단장된 정원의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연못가에 지어놓은 휴게실이 정겹다. 여기 온 손님들은 이 휴게실에서 정성껏 마련된 음료와 각종 열대 과일로 대접을 받는다.    과일들은 모두 이곳 유니콘 섬에서 재배된 것들이다. 이곳의 과일들은 계절과는 상관없이 농부들에 의해 가꾸어지고 수확되며, 이렇게 생산된 열대과일들은 자그마한 보트에 실려 과일도매상이나 딜러에게 넘겨져 호치민시를 비롯한 베트남 각지로 팔려 나간다.

    과일 농장을 따라 걷는 길은 각종 과일들이 손을 내밀면 딸 수 있는 거리에 주렁주렁 열려 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과일 제품을 만드는 상점과 기념품을 파는 집들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모두가 이곳에서 나는 꿀과 과일들로 만든 제품들이다.

 

 

 

 

메콩델타의 생태계를 한눈에 경험할 수 있는 쩡크선 투어 

   

   쩡크선 투어는 메콩델타 하류 지역의 4개의 삼각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유니콘 섬 안에서 수로를 탐험하며 관광하는 코스이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짜여 진 이 좁다른 수로는 열대 우림이 터널 형태로 우거져 있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반적으로 쩡크선이라고 하면 큰 규모의 범선을 떠올리지만 베트남 쩡크선 관광에 사용하는 배는 관광용으로 제작된 좁고 자그마한 규모의 배로 정원이 4명이다. 각종 열대 과일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사이로 작은 수로가 있어 이 수로를 따라 베트남 메콩델타 지역의 생태계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다.

    흙탕물을 튕기며 두 사람의 뱃사공이 앞뒤에서 삿대로 밀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소요시간은 보통 15~20분. 관갱객들은 배에 비치된 베트남 모자를 쓰고 이 특별한 체험을 모두 즐거워한다.

 

 



호치민시에 귀환하여 점심식사

   유니콘 섬을 방문하고 미토로 돌아오는 길은 즐겁고 유쾌하다. 섬으로 돌아올 때는 현지인 안내원이 유창한 우리말로 ‘소양강 처녀’등의 가요를 멋지고 구성지게 불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앵콜을 받아 세번까지 불렀다. 마지막 한번은 최근 유행하는 젊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 한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데 어려운 우리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어떻게 배웠냐고 물었더니 혼자서 독학했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땅 미토와 유니콘 섬을 뒤로 하고 나와 호치민 시 가까이 와서 쭝릉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강가에 있는 집은 잘 정돈된 정원식 식당이다.  메뉴는 베트남 고유의 전통음식이었다. 상에 오른 것들은 코끼리생선, 스팀보트, 볶음요리, 튀김, 베트남 쌈 등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코끼리생선은 생선을 튀겨 접시에 세워 내오는 음식인데, 코끼리 모양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여 국가에서 직영하는 식당이란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쇼핑센타 구경을 했다. 여기도 정부에서 경영하는 상점이었다. 코너마다 젊은 여성판매원들이 자주색 아오자이를 입고 서서 손님을 맞이하며 상품 구매를 돕는다. 

 

 

 



벵에 선상 디너 및 호치민 야경

 

  벵에 선상디너는 사이공 강에 띄워 놓은 대형 관광선에 올라 야경을 감상하며 베트남 전통식사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배의 규모는 굉장히 커서 3층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관광의 필수 코스로 되어 있다. 

  강 위에 뜬 배이므로 호쾌한 느낌을 주며, 베트남 전통 요리로 식사하는 동안 선수(船首) 쪽 무대에선 관광객의 국가별로 가요를 열창하는데 국내 가수를 뺨칠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리고 간간이 마술도 보여준다.

   저녁 강바람 때문인지 여기선 더위도 맹위를 떨치지 못한다. 3층 갑판에 올라 호치민시의 야경을 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이곳에서 보는 강변 건물의 네온사인이 화려한 도심의 야경과는 사뭇 다른 호치민만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약 1시간 30 정도 지나면 배는 떠난 부두에 다시 닿는다.  

 

 

 

 


아름다운 프랑스 건축물, 노틀담성당

 

   노틀담성당은 동커이 거리 북쪽으로 막다른 길에 중앙 우체국과 나란히 서있으며, 1877년에서 1883년 사이에 세워진 프랑스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철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어, 호치민시의 프랑스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된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으며 정면에 40m 높이의 두개의 첨탑이 솟아있다.

   내부는 베트남식이 가미되어 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베트남인 신자들이 하루 두 번 출입이 허용될 뿐 관광객들의 관람용으로 개방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한 치도 타협할 수 없는 공산주의의 한가운데서 총보다 무서운 문화의 힘을 느끼게 된다.  빼어난 건축미로 시민은 물론 여행자들의 사진 찍기 1호의 명소로 손꼽힌다.

 

 

 

 

프랑스 통치 시대의 산물, 중앙우체국

 

  프랑스 통치시대인 1886~1891년에 설립된 중앙우체국은 노틀담 성당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베트남에서 가장 큰 우체국이다. 우체국 정문 입구 상부에 큼지막한 시계가 있어 지나는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우편업무 뿐만 아니라 국제전화, 팩스, 전보, 텔렉스가 가능하고 공중전화 카드나 시내 지도도 구입할 수 있고 기념우표도 판매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업무를 진행한다.



 

 

 

호치민시에서 씨클로 탑승

 

  찌는 듯한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면 선선해진 호치민의 밤거리에는 씨클로를 타고 야경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 더위를 식히는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강변에는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눈에 띈다.

    씨클로(CYCLO)는 자전거를 개조하여 앞쪽에 좌석을 설치한 것으로 현지인이나 관광객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씨클로 운전사들도 대부분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려 드는데 보통 1시간에 1달러 정도면 된다. 이러한 씨클로는 여행자들이 호기심에서 애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먼저 이용 전에 목적지를 밝히고 가격을 사전에 정해놓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 씨클로 운전사가 손님을 폭행, 강탈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씨클로를 타는데 또 하나의 문제는 호치민시의 매연이다. 수많은 오토바이에서 뿜어내는 배기가스는 거의 살인적이다. 정부에서 수입량을 제한한다고 하지만 이제 한계선을 넘은 듯하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 그리고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마무리

  베트남은 아직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재로 변모하는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교육열이 매우 높으며, 생활 의욕이 매우 강하고, 자유분방할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오랜 전쟁을 통하여 체득된 생활력이 바탕에 깔린 탓일까.  떠나자니 아쉬움이 짙게 깔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수도 하노이로부터 남쪽 호치민까지 베트남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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