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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백령도 : 남한보다 북한이, 한국보다 중국이 가까운 섬

by 혜강(惠江) 2024. 9. 23.

 

백령도

 

남한보다 북한이, 한국보다 중국이 가까운 섬

 

·사진 남상학

 

 

  백령도는 남한 땅보다 북한하고 가깝다. 백령도와 인천을 오가는 뱃길이 220km 남짓, 북한의 황해도 장연군과는 15km, 중국 산둥반도가 195km 거리에 있으니 말이다. 백령도는 서해 5중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백령도는 두무진이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지니고 있어, 4시간이 소요되는 뱃길을 마다하지 않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대청도 관광을 마친 나는 오후 1시경 대청도 선진항 선착장에서 백령도행 여객선을 탔다. 대청도에서 떠난 배는 20분이 지나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백령도 용기포선착장

 

백령도, 무공해 청정 해역이며 관광의 명소

 

  서해 5도 중 하나인 백령도는 일제 말까지도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이었으나 해방을 맞아 38선이 남북을 가르면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해 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6.25 전쟁 시 백령도는 피아(彼我)의 격전지였으며,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정전협정에 따라 남한의 ‘서해 5도’의 하나로 남아 군사적으로 요충지가 되었다.

  백령도는 90년대 초까지 국내 13번째 큰 섬이었으나, 1993년 3년에 걸친 방조제 공사와 간석지 매립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현재는 46.37㎢ 면적의 국내 8번째의 큰 섬이 되었다. 섬 전체를 통틀어 1,500여 가구, 5,000명 정도 살고 있다. 백령도의 마을은 부두, 면사무소 주변, 두무진 해안가 등에 집중해 있다. 작전지역이어서 어업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탓에 전체 가구 중에서 7%만이 어업에 종사하고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생산되는 쌀은 백령도 주민과 군용으로 사용하고도 남는다.

 용기포항 등대가 위치한 백령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천연기념물과 명승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백령도 관광 내용을 용기포 선착장을 기점으로 남쪽 해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진행하며 대충 정리해 보았다. 사진 일부는 1차 여행 때 찍은 것으로 보충하였다.

 

▲백령도 관광지도

 

►용기포 등대 해안

 

  선착장에 내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용기포 신항 옆의 용기포 등대 해안이다. 산책로를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 접근할 수 있는 등대 해안에는 규암이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생긴 다양한 지질 구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안에는 해식 절벽과 해식동굴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2019년 6월 국가 지질공원이 된 백령·대청 국가 지질공원은 한반도에서 거의 관찰되지 않는 10억~7억 년 전의 신 원생대 암석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곳은 두무진, 사곶해변, 콩돌해안, 진촌리 현무암, 용틀임 바위 등과 함께 백령 지질 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자세히 보면, 바위마다 품고 있는 색다른 무늬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바위의 지문이자 시간의 나이테다. 해안의 정상에는 등대가 하나 있었다. 1960년대까지 사용하다 지금은 전망대가 들어섰다.

 

 

►사곶해변 (천연기념물 391호)

 

  등대해변에서 나와 그 옆에 있는 사곶해변으로 갔다. 원래 사곶 해변은 석영 성분이 많아 단단한 규조토가 3km 이상 펼쳐진 곳으로 유명하다. 해안은 경사가 거의 없을뿐더러 물이 빠지면 너비 300m의 단단한 규조토 백사장이 형성된다. 이런 규조토 해안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단 두 곳밖에 없다고 한다.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모래가 촘촘하고 단단해서 6·25 때 유엔군이 임시 활주로로 사용했었다. 어찌나 단단한지 밟아도 발자국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자동차가 시속 100㎞ 이상 달릴 수 있는 신비의 해변이다. 모래 속에 비단 조개, 게, 골뱅이 등이 서식한다.

  해변 뒤에는 해송과 해당화가 어우러져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주변에는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 해안 가까운 곳에 백령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곶냉면 집이 있다.

 

 

►서해최북단백령도비와 백령호 

 

  사곶해변 끝자락 돌로 이어 만들어진 제방 넘어 백령도 유일의 담수호인 백령호가 있다. 그 담수를 배경으로 도로변에 서해최북단백령도비가 우뚝 서 있다. 기념비 우측 앞쪽으로는 사곶해변 바다와 이어진 갑문이 있고, 그 물길을 따라 서해최북단백령도비 옆으로 내륙 쪽으로 백령호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는데, 1970년대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간척 사업으로 지금의 농경지와 백령호가 탄생했다. 덕분에 이 농경지에서는 백령도 거주민은 물론 주둔해 있는 군인들까지 먹고도 남을 정도의 많은 벼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

 

  서해최북단백령도비를 지나 백령대교를 건너면 바로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가 있다. 백령대교는 바다와 담수호를의 경계인  갑문 옆에 놓인 다리로서 그 길이는 10m에 불과하다. 아주 짧은 다리임에도 '대교'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큰 것(대)’을 좋아하는 국민 성향 때문인지, 백령도에 하나밖에 없는 다리여서 애교로 붙인 것인지 아무튼  '대교'라는 이름을 단 다리치고는 국내 가장 짧은 셈이다.

  백령대교를 건너 해안가 낮은 언덕에는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 오르면 숲길 사이에 꽃보다 예쁜 버섯들이 반겼다. 언덕을 올라 만나는 전망대에선 왼쪽으로 사곶해변과 망망대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담수호인 백령호와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좋다.

 

▲사곶 조망명소로 가는 길가에서 만난 버섯 

 

►콩돌해안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동남쪽으로 콩돌로를 따라가면 바로 콩돌해안에 닿는다. 콩돌해안은 사곶해변과 함께 백령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해변이 둥근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갈들의 모습이 마치 콩과 같다 하여 '콩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 해안에 깔린 이 둥근 자갈들은 0.5∼2㎝ 정도의 것으로, 이는 규암이 부서져 파도에 부딪히고 씻기기를 반복하면서 콩처럼 작은 돌이 된 것들이다. 이 작은 자갈들은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엷은 청색 등 형형색색을 이루고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고, 밀려드는 파도에 자갈 구르는 소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주의할 점은 콩돌의 반출 금지, 해수욕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한편 콩돌해안 앞바다에는 인천시가 천연기념물 331호로 지정한 물범이 200∼300마리가 살고 있으나 해마다 줄고 있다고 한다. 

 

 

►유서 깊은 중화동교회

 

  콩돌해안에서 서쪽으로 이동, 장촌포구 앞에 있는 용틀임 바위를 지나면 중화동교회에 이른다. 중화동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사에 있어서 1896년 솔내교회와 새문안교회 다음으로 세워진 유서 깊은 교회로 유명하다. 그리고 솔내교회에 이어 두 번째 태어난 자생교회이다.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키츨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했다고 한다.

  중화동교회는 김성진과 허득으로부터 출발했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정쟁에 휘말려 백령도로 유배당한 김성진은 뭍에서 가져온 신약성경을 자신이 머물던 집 주인인 허득(許得)에게 전하며 함께 예수를 믿기로 정하고, 개화파 정치가 허득은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한학 서당이 있던 자리에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이듬해에는 장로교의 공식적인 첫 한국 선교사였던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가 배로 건너와 허득, 최영우, 허윤, 김흥보, 허간을 비롯한 7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다시 한 해 뒤에는 첫 교역자인 한연일 전도사가 부임하며 중화동교회는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중화동 교회 내 백령기독교 역사관에서는 한국기독교 100년사를 살펴볼 수 있다. 또, 교회 앞에 있는 연화리 무궁화는 높이가 6.3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크며 꽃이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521호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하고 있다. 또,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팽나무가 오랜 역사를 증명해 준다. 

 

 

►천안함 위령탑

 

  중화동에서 서북쪽 연화리, 천안함 피격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는 천안함 위령탑이 서 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당하였다. 당시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되었으며, 구조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였다.

  "비록 육신은 죽었다 하나 그 영혼, 역사로 부활하고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자유대한의 수호신이 되리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원혼을 달래고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 23월 건립됐다. 위령탑은 세 개의 삼각뿔이 8.7m 높이로 치솟아 있다. 주탑은 우리 영해와 영토, 국민을 언제나 굳건히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중앙에 있는 보조 탑에는 46용사 얼굴을 담았으며 좌측에는 추모시, 우측에는 비문을 각각 새겼다.

  주탑 하단부 중앙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해 북방한계선(NLL) 사수를 위해 산화한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겠다는 해군 장병들의 의지를 표현했다. 조국 수호 의지와 호국기상을 상징하는 위령탑을 바라보며, 그저 '장하다'라는 말뿐 다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나는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백령도의 백미, 두무진 

 

  천안함 위령탑에 헌화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백령도의 백미인 두무진(頭武津), 수천 년 풍상이 빚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4km의 해안선의 바위 지대를 일컫는다. 바위의 모습들이 마치 투구를 쓴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두무진’이라 불렀다. 1997년 12월 30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두무진을 제대로 보려면 먼저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두무진 전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해상관광을 위헤 두무진 항에서 유람선을 탔다. 두무진 항에서는 황해도의 서쪽 끝 장산곶과 불과 12km밖에 안 된다. 배에서 보는 두무진의 모습은 장관이다. 수억 년 동안 파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바위들이 바다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라니~.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경과 풍랑에 깎인 채 60m나 치솟아 있는 선대암을 비롯한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각종 기암괴석이 무려 4km에 걸쳐 푸른 바닷물과 어울려 아름다운 비경을 펼쳐낸다. 1시간여에 걸친 해상관광은 그야말로 탄성의 연속이었다.

 

 

  해상관광을 마치고 두무진의 색다른 멋을 보기 위해 샛길로 두무진까지 걸어갔다. 두무진 포구에서 해당화가 곱게 핀 서쪽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된다. 길목에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작은 비석이 있다. 북녘땅 장산곶이 건너다보이는 백령도 두무진 포구의 아담한 해안선 자락에, 1995년 해병대 흑룡부대 장병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오솔길을 만들면서 세운 것이다.

  ‘통일로 가는 길'을 지나 작은 계단을 오르고 또 고갯마루를 넘으면, 기암괴석들이 푸른 바닷물과 조화를 이룬 두무진의 절경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해안가 바다 위로  30∼40m 높이의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을 가까이서 보게 되니, 더욱 웅장하여 멋 있게 보였다.  

 

 

►고봉포구, 사자바위

 

  고봉포구는 두무진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백령도 북쪽 해안 포구이다.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포구 앞에 솟아 있는 사자바위 때문이다. 사자와 닮았다고 하여 사자바위라고 불린다. 한 마리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 고봉포구 앞바다를 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는 동안 그 형태가 마모되어 사자라기보다는 이구아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구의 방파제와 연결되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소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방파제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고봉포구

▲고봉포구 앞의 사자바위

 

심청각, 고대소설 심청전을 테마로 한 기념관

 

  고봉포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심청각이다. 심청각은 고대소설 <심청전>을 테마로 한 기념관이다. 바다 건너 북한 땅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진촌리 산 위에 서 있다.

  백령도에 심청각을 세운 이유는 인당수로 알려진 장산곶 앞바다와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바위, 심청이 타고 온 연꽃이 해안에 밀려왔다는 연화리 마을 등 심청전의 전설과 일치하는 지명이 백령도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심청이의 출생지인 황해도 황주와 당시 상인들의 중국 교역 루트가 황해도 장산곶 부근 포구에서 백령도 근해를 거쳐 산둥성, 남경, 상해 등 중국의 동·남해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상 2층으로 건립된 심청각은 기와지붕에 단청을 입힌 서까래와 붉은색으로 단장했다. 심청각 내에는 <심청전>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발굴·계승함과 아울러 '효' 사상을 함양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애향심을 달래도록 구성했다. 심청이 환생 장면, 심청전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심청각 뜰에는 효녀 심청상과 북한 장산곶을 살펴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심청각 주변에는 안보교육 차원에서 퇴역한 포와 탱크를 배치하였다.

 

▲심청각에서 바라본 북한땅, 장산곶이 구름 속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감람암포획 현무암분포지

 

  감람암포획 현뮤암분포지는 백령도 진촌리에서 동쪽 1.3km 정도 떨어진 하늬해변에 있는 이색 지질 명소이다. 해안선을 따라 지름 5~10cm 크기의 노란 감람암 덩어리가 들어 있는 용암층은 두께가 10m 이상이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암이 분출할 때 함께 올라와 만들어진 것으로 지하 깊은 곳의 상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곳 하늬해변에는 백령도의 마스코트인 점박이 물범의 최대서식지이기도 하다. 백령도 주변에서 발견되는 물범은 은회색 바탕에 타원형 점무늬를 가진 잔점박이 물범으로 여름이 가까워지면 서해의 풍부한 먹이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백령도를 찾는다. 탐밤안내원의 말로는 백령도에 물범이 200~300마리 정도 서식한다고 한다. 그만큼 청정해역이란 뜻이기도 하리라.  특히 물범바위는 그들에게 휴식터이자 생존경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망원경으로 멀리 바다위에 떠있는 물범바위를 관찰해 보니 물범 드 마리 정도가 바위에서 쉬고 있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시기이므로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원의 말이다. 22년 전 내가 백령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유람선에서 카메라를 당겨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려놓았다.

 

▲물범시진 (22년전, 백령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유람선에서 찍은 것)

 

►청정 지역의 특산품들

 

  백령도 관광을 마치고 백령도 청정식품 영농조합법인과 백령도특산물직매장에 들렀다. 백령도 청정식품 영농조합법인에서는 해풍을 호흡하며 자란 싸주아리 쑥차를 마셨다. 첫맛은 썼으나 뒷맛은 두고두고 깨끗했다. 면역력 증진과 혈액 순환, 피로 회복, 신경통에 좋다는 백령도 싸주아리 약쑥으로 만든 백령약쑥 제품 선보였다.

  백령도특산물직매장에서는 백령도의 특산물인 까나리 액젓, 다시마, 돌미역 반건조 생선, 쑥으로 만든 건강식품 등을 팔고 있었다. 특히 백령도 까나리액젓은 5월 백령도 근해에서 잡은 까나리를 소금과 함께 자연 발효시켜 만든 액젓으로 유명하다. 까나리는 가늘고 길며 몸빛은 은백색, 등 쪽은 녹갈색인 바닷물고기로 멸치와 비슷하다.

 

▲백령도 특산물인 쑥, 까나리액젓, 돌미역들

 

  백령도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객선을 탔다. 바람이 불고 파고가 높아 인천에서 백령도로 나오는 배편은 통제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서둘러 백령도에서 빠져나오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한 바다로 나오니 파도가 뱃전을 때리고 배가 몹시 흔들렸다. 별 탈 없이 인천까지 돌아왔으나 백령도 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기회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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