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칠성조선소
70년 역사 쇠락한 조선소가 '핫플' 카페가 되다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46번길 45)
글·사진 남상학
▲칠성조선소 건물
청초호 인근에 있는 석봉도자기미술관을 둘러보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부근 카페를 찾아갔다. 추천받은 곳은 칠성조선소, 카페 이름이 칠성조선소라니! 의아한 생각으로 3분 정도 걸었다. 주변은 쇠락한 주택과 간혹 폐허 같은 건물들이 온통 뒤섞여 있는 골목 끝에 허름한 단층 건물에 칠성조선소라는 글씨가 보였다. 정문 기둥에도 칠성조선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칠성조선소의 글자가 선명한 대문과 건물의 글씨
칠성조선소의 간판 글씨는 최 대표의 아버지이자 2대 대표였던 최승호씨가 쓴 글씨다. 옛 조선소들은 배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뱃머리에 직접 글씨는 새기는 전통이 있었다. 조선소마다 개성이 뚜렷해 글씨체만 봐도 어느 조선소의 배인지 알 정도였다. 60년 역사를 지닌 속초 칠성조선소의 옛 간판 글씨가 서체디자인개발전문사 ‘산돌’에 의하여 서체 상품으로 출시돼 화제다.
낡은 대문으로 들어서자 칠성조선소 마당 끝으로 푸른 청초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초호 뒤로 바다와 청초호를 가로막고 있는 청호동의 고층건물도 보이고, 왼쪽으로는 설악대교와 주변에 정박한 배들도 보인다.
▲칠성조선소 앞뜰에서 바라본 청초호
뜰에 세운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을 살펴보니, 이곳은 실제로 배를 만들었던 조선소였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배 목수 일을 했던 실향민 고 최철봉씨가 6‧25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1952년 생계를 위하여 이곳 청초호 일부를 메워 배 목수 일을 시작한 것이 칠성조선소였다. 최철봉씨는 한국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속초에 자리를 잡았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2017년까지 65년 동안 3대에 걸쳐 운영되었다.
▲칠성조선소 앞뜰에 놓은 표지석
조선소 문을 처음 열었을 때의 이름은 원산조선소였다가 칠성조선소로 바꿨다. 일제강점기에 고향에서 배 만드는 일을 했던 그가 속초에 조선소를 내자 배 주문이 밀려들었다. 배 짓는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는지 조선소는 크게 번창했다. 속초의 인구가 늘고, 고기잡이가 번성했던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번창했던 조선소에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어획량이 줄면서 어선의 수요가 줄고, 철선과 플라스틱 배가 등장하면서 목선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후 칠성조선소는 목선과 함께 철선을 제작하고, 배를 수리하면서 조선소를 유지했지만, 최철봉, 최승호, 최윤성 씨로 3대에 걸쳐 이어온 칠성조선소는 결국 2017년 8월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전시관(위)과 카페 '칠성조선소 살롱'(아래)
그러나 칠성조선소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대째 조선소를 운영한 최윤성씨가 칠성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꿔 2018년에 새롭게 개장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공간은 전시관으로,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은 카페로 바꿨다. 가족들이 살던 집은 북살롱(서점)으로, 공터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개조했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조선소는 그렇게 재탄생했고, 배 목수들이 떠난 자리를 관광객들이 채웠다.
과거 목수들과 기계, 전자 장비 전문가들이 모여 배를 만들고, 수리하고, 해체하던 공간은 조선소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시장이 되었다. 전시장 안에는 배에 장착되는 기계들과 옛날에 사용했던 각종 서류와 등록증, 당시 사진, 1987년도 신조 공임 등이 곳곳에 붙어 있고 한쪽 공간에는 제작되고 있는 소형 목선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이 옛날 조선소였음을 보여준다.
▲전시관 내부의 전시물
전시장은 조선소 건물만이 아니다. 바깥 넓은 마당에는 배를 진수시키는 데 쓰이는 레일과 배를 묶는 데 쓰이는 쇠사슬과 목재 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 전체 공간이 역시 전시장 역할을 한다.
오른편 작은 건물은 북살롱(서점), 이 북살롱의 이름은 ‘동그란책’. 놀랍게도 그림책방이다. 원래 1952년부터 가족들이 살던 집이었다. 당시의 집안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보통 ‘칠성북살롱’, 혹은 ‘칠성조선소북살롱’으로 불리는데 이곳에선 다양한 종류의 그림책과 제로웨이스트 소품을 비치해놓고 판매한다. 지역 출판사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한쪽 벽면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이라는 설명과 함께 집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책을 보는 재미도 있고, 진열된 패션 소품들과 액세서리, 굿즈 등도 흥미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와 청초호의 풍경도 일품이다.
▲ 북살롱 ‘동그란책’ 건물(위)과 내부 모습
왼쪽 규모가 큰 건물이 카페 '칠성조선소 살롱'이다. 이 카페는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이었다. 건물 내부는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 콘크리트 구조. 시멘트벽은 그대로 두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크게 냈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든다. 커피를 주문해 2층 창가에 앉으면 바로 청초호가 그 모습이 드러나고 멀리 속초의 변신을 대변하듯 청호동의 고층건물들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칠성조선소 카페 한켠에는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기가 놓여 있다. 여기서 볶은 원두로 칠성조선소 블랜딩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일부는 강원 지역 내 다른 카페들에도 공급 중이다.
▲카페 내부 전경(위)과 2층 모습(중), 그리고 우리 일행(아래)
▲내부 주문처(위)와 로스팅 공간(아래)
여기에다 칠성조선소 공간을 활용하여 뮤직 페스티벌, 전시 프로그램 등 문화행사 개최를 통해 공간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브랜드의 밀도를 높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는 현재 도시재생사업의 본보기가 되었다. 도시재생사업이 오래된 것을 무조건 부수지 않고 보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라면 칠성조선소만큼 어울리는 공간도 없으리라.
여기에 독특한 분위기와 커피 맛이 매스컴을 타면서 카페 '칠성조선소 살롱'은 속초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4000여 명, 지금도 매년 4만 명이 방문하는 소위 ‘핫플레이스’다.
▲전시관 내의 기확전 '걱정교환소' 전
커피를 내리는 뒤쪽에선 칠성조선소 레저 선박부가 독립해 설립한 '와이크래프트보츠)'가 여전히 레저 보트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새로운 문화 자산으로 재생된 이곳이 도시계획도로가 관통하며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철거가 될지 모르는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어쩔 수 없으나 옛것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칠성조선소 역사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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