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강화도, 섬 전체가 박물관인 섬

by 혜강(惠江) 2024. 2. 10.

 

강화도 여행

 

섬 전체가 박물관인 섬

 

글·사진 남상학

 

 

 

  강화도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 하늘이 열린 땅, 마니산 참성단으로부터 160여 기에 이르는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 몽골족의 침입에 맞서 싸운 대몽항쟁의 중심인 '고려궁지', 부처의 힘을 빌어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바란 '팔만대장경',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왕실의 피난처로서 곳곳에 '5전 7보 53돈대, 영원한 제국을 꿈꾼 정조대왕이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한 외규장각 등이 이곳 강화에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병자호란과 구한말 서구 열강의 빈번한 외침에 맞서 고군분투했던 강화도는 한 마디로 국방의 보루였다. 강화도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드넓은 갯벌과 해안 풍경, 그리고 낙조의 아름다움까지, 강화가 품고 있는 풍경과 지금까지 살아온 강화의 역사 이야기는 광활한 갯벌만큼이나 끝이 없다. 섬이긴 하나 수도권에서 지척일 뿐 아니라 강화대교나 초지대교를 건너면 쉽게 갈 수 있는 강화도, 그 강화도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보자.

 

단군의 유적을 찾아가는 여정

 

민족의 영산, 마니산

 

 

 

  강화도 마니산(472.1m)은 한 민족의 얼이 서린 명산이다. ‘마리산’, 또는 머리산으로도 불린다. ‘마리란 고어(古語)머리를 뜻하며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의미한다.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어 먼 곳에서 보면 그 모양이 아름답고 웅장한 명산으로 꼽힌다.

  그 중간 봉우리 정상의 참성단은 「고려사」나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고 한다. 남한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단군 유적인 이곳은 국가 사적 제136호로 지정돼 있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제단의 하단은 하늘을,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 참성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개천절에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 성화를 채화하는 성스러운 장소다.

  정상까지 가는 탐방로는 2개 코스. 계단로는 왕복 4.8km로 짧지만 1004계단을 오르는 게 쉽지 않다. 단군로 코스는 왕복 7.2km로 제법 길지만 걷기에는 무난하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가량 걸으면 정상 부근 참성단에 도달한다.

  서해를 조망하며 동남쪽으로 뻗은 암릉을 따라 내려오면, 중턱에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희정선사가 창건한 정수사와 함허동천이 있다.

 

►꽃살문이 아름다운 정수사과 함허동천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후 이곳 지형을 보고 불자가 가히 삼매정수(三昧精修)에 들기 합당한 곳이라 여겨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할 때 정수사(精修寺)라 했던 것을 조선 세종 5년(1423) 함허대사가 중창하고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

  108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정수사는 단정한 아름다움으로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대웅보전은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앞뒷면이 서로 다르다. 무엇보다 대웅보전의 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살문이다.

   강화읍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함허동천을 지나 2km쯤 달리면 정수사 돌비석이 보이고, 입구부터 절집까지는 1km 남짓, 걷기에 충분한 거리다.

  함허동천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 해서 그의 호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산세가 빼어나고, 항상 맑고 깨끗한 기운이 가득하다 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많다

 

► 전등사, 삼랑성에 둘러싸인 호국사찰

 

 

  정수사에서 그리 멀리 않은 길상면 온수리에 전등사가 있다.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일명 정족산성) 지나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 전등사가 얼굴을 드러낸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 공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 해서 전등사(傳燈寺)로 개명했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판각되어 옮겨진 법화경 목판 104매가 보전되고 있다. 대웅전의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나부상)이 추녀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데, 자비를 베푼 도편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야기인즉, 불사에 참여한 도편수가 마을의 주모와 사랑에 빠졌다. 공사를 마치고 혼인할 생각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맡겼는데, 여인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도편수는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을 찾아 나서는 대신 대웅보전, 네 귀퉁이에 그 형상을 새겼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참회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요 유물로는 범종과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전등사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 상 일괄이 모두 전등사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다. 명부전 맞은편 왼쪽 언덕을 약 100m 오르면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 터가 복원되어 있다.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가 병인양요 때 전등사로 옮겨 조선실록과 서적을 토굴에 보관해 왔다. 또한, 전등사 동문 입구에는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1866년 병인양요 때 당시 조선수비대장이던 양헌수(梁憲洙) 장군이 승군 50명을 지휘하여 프랑스군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등사는 호국사찰로서 굳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찰 경내에는 전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고 긴 세월 풍상과 역사의 상처를 안고 오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선사시대의 유적 찾아가기

 

 부근리지석묘(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세계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돌을 고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고인돌은 흔히 지석묘라고도 불린다. 당시 고인돌은 지배층의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고인돌에는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의 두 가지가 있다. 강화 하점면 부근리 지석묘(고인돌)는 2~3천 년 전의 무덤과 장례의식의 기념물로 선사시대의 문화와 기술, 사회현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지난 2000년 전남 화순, 전북 고창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강화도에는 주로 고려산 기슭에 10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흩어져 있는데, 고인돌 공원 한가운데에 1기가 서 있다. 일명 부근리 고인돌로 불리는 이것은 경기지방을 비롯하여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이다. 높이 260cm, 뚜껑돌은 길이 650cm, 너비 520cm나 되는 거석이고, 그 밑에 2매의 굄돌이 받치고 있다. 크기와 세련된 조형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인돌로서 당당하기 그지없다. 전형적인 북방식 형태를 보여주는 이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규명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강화도에는 부근리 고인돌 외에도 강화읍, 송해면, 내가면에 걸쳐 고인돌군이 있는데, 고려산 북쪽 경사면의 높은 능선 위 평탄한 지대에 약 20∼30기의 북방식 고인돌들이 분포되어 있다.

 

► 강화의 역사가 있는 곳, 강화역사박물관

 

 

  고인돌 공원 바로 옆에 강화역사박물관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 · 현대까지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 중심으로 강화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이다. 2개 층으로 구성된 강화역사박물관은 2010년 개관하였으며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하여 영상실, 강당, 뮤지엄 샾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역사를 시대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둘러보려면, 매표소에서 바로 2층으로 올라가 선사시대를 먼저 살펴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고려와 조선 시대를 차례로 둘러보는 것이 편리하다.

  2층에는 상설 유물전시실과 체험관이 있다. 상설 유물전시실은 구석기부터 청동기에 이르는 선사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신나는 청동기 시대 탐험과 강화의 열린 바닷길 이야기 등 강화의 역사를 체험해보고 익힐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공간이다. 스크린을 통해 퀴즈와 퍼즐을 풀어볼 수 있고, 참성단의 선녀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강화의 열린 바닷길 이야기는 그림자 연극을 보여준다. 바닷길을 통해 고려청자를 필리핀으로 보내야 하는 강화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밖에 고려산 오련지, 전등사 나녀상, 손돌, 보문사 석실 나한상 등 강화에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구성해놓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1층은 고려. 조선 시대 등 근·현대의 강화 유물과 민속사를 볼 수 있는 전시장이다. 강화도 수난의 역사, 조선 시대 말 서구 열강의 빈번한 침략으로 발생한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등 가슴 아프지만 잊어선 안 될 역사적 사건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딱딱한 역사가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역사의 현장이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해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특별전이 열린다. 그리고 강화 역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실과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 강화자연사박물관

 

 

  강화역사박물관이 강화에 사는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강화자연사역사관은 인간과 공생해온 자연의 역사를 보여준다. 2015년 11월 개관한 자연사박물관은 4,888㎡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2,712㎡ 규모이다.

  우선 로비에 들어서면 향유고래의 골격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2009년 1월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에서 좌초된 고래를 해체, 건조하여 골격을 제작한 후 전시한 것인데, 발견 당시 전체 길이가 무려 14.5m, 무게는 20t이었다고 한다. 전시실에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광물, 생물 표본 및 화석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시설로는  층의 기획전시실, 1층과 2층에 걸쳐 있는 상설전시실이 있다. 1층의 상설전시실은 총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태양계의 탄생, 다양한 생물로 가득한 지구,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 인류의 진화라는 주제로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다룬다. 2층의 상설전시실은 총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생태계와 먹이그물, 종과 집단을 유지하는 번식, 위장과 모방, 강화갯벌, 생물의 이동이라는 주제로 생물의 생태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강화갯벌을 다루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기획 전시 외에 자연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과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부대시설로 2층의 야외정원과 1층의 체험실 등이 있어 관람객의 다양한 경험을 돕는다.

 

역사가 서린 강화 도심 둘러보기

 

►강화 고려궁지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는 고려 시대 몽골 침입 당시에 사용한 궁궐터가 있다. 고려가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 19)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까지 38년간 사용되었다. 최우(崔瑀)가 2천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의 궁궐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하였다. 궁의 정문 이름은 승평문이었고, 양측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廣化門)이 있었다. 이후 몽골과 화친 후, 1270년(원종 11)에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면서 강화 고려궁은 정궁의 지위를 잃고,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 건물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631년(인조 9)에 고려궁지에 행궁을 건립하여 국난 시 이용하고자 강화유수부,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세웠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하여 거의 소실되었다. 이때 프랑스군은 의궤를 비롯한 340여 책의 왕실 문서와 은괴 수천 냥을 약탈해 갔다.

  현재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명휘헌, 이방청 등이 남아 있으며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조선의 보물창고로 불렸던 외규장각도 2003년 복원되었다.

 

►용흥궁 (유형문화재 제20호)

 

 

  고려 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흥궁이 있다. 용흥궁은 사도세자의 직계후손인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 4년(1853)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元範)이었다.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廉氏)이다. 1844년(헌종 10) 회평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 살면서 강화도령으로 불렸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는데,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용흥궁도 원래는 보잘것 없는 초가였으나, 1853년 철종이 보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지금과 같은 집을 지었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었다. 용흥궁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바로 위쪽에는 사적 424호로 지정된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코프(Corfe, C. J. 한국명 고요한)에 의하여 1900년(광무 4)에 건립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코프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가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를 베푼 것은 7년 뒤인 1896년 6월 13일 강화에서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이러한 인연으로 강화에 제일 먼저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 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하여 입구 계단, 외삼문ㆍ내삼문ㆍ성당ㆍ사제관을 동남향 세로축으로 배치하였다. 외부공간의 구성이 불교사찰의 구릉지가람(丘陵地伽藍)과 비슷하며,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축이면서도 교회 기능에 충실한 내부공간을 연출함으로써 초기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 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강화 기독교역사 기념관

 

 

  강화군 강화읍 용정리 1086-7에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이 있다. 강화군은 항일운동에 앞장선 성재 이동휘 선생,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봉진 선생 등 다수의 기독교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더리미 순교터, 강화읍 성공회성당 등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더욱 불타올랐던 기독교인들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은 자랑스러운 강화군의 신앙적 유산과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연면적 1,877㎡, 지상 2층 규모로 2022년 개관한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은 상설전시관, 기획전시실을 비롯하여 공동집회실, 어린이체험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로비에는 영국 로다 선교사의 공덕비와 100년 이상 된 종이 전시되어 있고, 상설전시관에는 ‘강화의 역사와 믿음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교산교회, 니콜라회당으로 시작된 강화 기독교의 전파 과정, 초기 선교사와 강화 기독교인의 삶, 기독교를 통한 만인이 평등한 교육·문화·의료체계 구축, 강화 기독교인의 3.1운동과 항일운동, 기독교 가치와 실천의 공간을 조성했다. 또한, 성재 이동휘(강화중앙교회), 송암 박두성(교동교회), 유봉진(길직교회) 등 기독교 인물들을 통해 기독교의 근대사적 가치와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기획전시실에는 한인 최초의 성공회 사제인 김희준 신부의 사제 서품증과 강화부흥회 기록 등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공동집회실과 어린이체험실 등을 운영하며, 성지순례길 체험, 어린이 청소년 체험학습, 교육연구, 전시기획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강화 기독교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매주 일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국방유적을 따라 걷다

갑곶돈대 (사적 제306)와 강화전쟁기념관

 

 

  강화대교를 건너 바로 만나는 갑곶돈대는 강화 8경의 하나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아 만든 관측·방어시설이다. 강화도에는 5개의 진(), 7개의 보(), 그리고 53개의 돈대(墩臺)가 있다. ''은 공격적 활동을 하는 곳이고, ''는 주로 방어를 주요 기능으로 하였으며,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초소 역할을 하였다. 규모로 보면, ‘돈대라고 보면 되고, 따라서 돈대를 포함할 수 있고, ‘돈대를 포함한다.

  갑곶돈대는 고려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과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부른 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유래했다. 갑곶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어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에 상륙하였을 때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하여 달아났다.

  본래는 옛 강화대교 입구의 북쪽 언덕에 있었으나, 지금 사적으로 지정된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이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강화전쟁기념관은 갑곶돈대 내에 있다. 강화전쟁기념관은 4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1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주제관으로, 돌화살촉, 고리자루칼 등을 전시하였다. 2전시실은 고려 시대의 철제은입사 투구, 철투구, 철도자 등을 전시하고 있다. 3전시실에서는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 걸고 싸웠던 깃발인 수자기와 면제 갑옷 등을 볼 수 있다. 4전시실에는 조선 시대 주력 화포인 불랑기포, 항일 의병들이 사용한 화승총 등 근현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항일 의병을 체험하는 코너와 포토존도 있다.

  이곳 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역사의 고비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호국정신을 드높이는 듯 우람하게 서 있다.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날을 제외하고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나 야외공원은 연중무휴 언제나 개방한다.

 

►광성보 (사적 제227)

 

 

  갑곶돈대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광성보에 다다른다.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로 강화외성을 쌓았고, 광해군 때 이를 고쳐 쌓은 뒤 효종 9(1658)에 여기에 광성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는 광성보 안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의 소속 돈대가 완성되었다. 1745년(영조 21)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안해루(按海樓)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했다.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魚在淵)이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싸웠다.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고 분전했으나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다. 이때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그 후 1976년에 와서 복원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군관을 비롯한 49인의 장사와 200여 명의 군사가 전사하였다. 현재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무명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과 무명용사비,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9시부터 18시까지 연중무휴 개방한다.

 

►덕진진 (사적 제226)

 

 

  광성보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덕진진에 이른다. 덕진진은 강화 12진보의 하나로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를 위하여 1658년(효종 9) 때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포대 · 덕진포대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곳으로서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 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대포도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또,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현재 문루 · 포대와 성곽 · 돈대가 남아 있다. 남장포대는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해상에서 적에 노출되지 않은 반월형 천연 요새여서 특별했다.

 

►초지진 (사적 제225호)

 

 

 덕진진 바로 남쪽, 초지대교 바로 북쪽에 초지진이 있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지은 요새이다. 병자호란 이후 서해안 수비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들이 강화도와 강화도 근처로 옮겨오게 되었는데, 초지진은 1656년(효종 7)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을 강화로 옮겨 진으로 승격시켰다. 초지진에서는 인근 초지돈대 · 장자평돈대 · 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로서, 화력의 열세로 결국 점령당했고, 군기고와 화약 창고 등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또, 1875년(고종 12)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면서 일시적으로 복구되었던 초지진 포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돈대와 터의 기초만 남아 폐허가 되었다가 1973년 초지진의 초지돈만 복원되었다.

현재 타원형의 초지돈대에는 포좌 3개, 총좌 100여 개, 실제 조선 시대 말기에 사용하던 대포가 1문 전시되어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평화관광지로 떠나는 여행

 

  강화도 북쪽 양사면과 송해면은 한강 하류 남방한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다. 과거 북한의 선전 방송의 확성기 소리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한시도 경계를 멈출 수 없는 곳에 평화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강화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도 최북단 양사면 철산리 언덕배기 제적봉에 개관했다. 공식 명칭은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이다. 이곳은 2006년 말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지역이다. 황해북도 개풍군 대성면 삼달리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2.3km로 가깝다.

  평화를 염원하며 2008년에 문을 연 강화평화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타 지역에서는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1층에는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염원소, 강화와 북한 특산품 판매장, 음식점이 있다. 2층에는 전쟁 관련 자료 전시실, 통일에 대한 열망, 통일 후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옥외전망대도 있다. 전쟁 당시 깨진 철모에 노란 나비가 와서 앉은 전시물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3층에는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실과 옥외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 하구는 남과 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고, 민간 선박도 들어갈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누구도 가지 않는 잠잠한 바다로 남아 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예성강과 우측으로 개성공단,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좌측으론 연백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 모습과 선전용 위장 마을, 개성공단 탑, 송악산, 각종 장애물 등을 조망할 수 있다. 또, 스크린 시설이 있어서 흐린 날씨에도 영상을 통해 북한 전경 등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전망대 건물 앞에는 '제적봉'이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1966년 '공산당을 제압한다'는 의미로 제적봉이라고 명명했으니, 이곳은 정전 70년이 지나도록 아이러니하게도 '제적'과 '평화'라는 상반된 단어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망배단(望拜檀), 북한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시설이다.

  휴관일 없이 연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강화읍에서 버스로 가려면 강화버스터미널에서 1, 26번 버스를 타고 강화평화전망대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까지이다.

 

►바람이 머무는 곳, 연미정

 

 

  강화도 동북단 월곶리, 이곳 역시 한때 민간통제구역이었다가 2008년부터 해제되어 출입이 가능해졌다. 강화평화전망대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이 정자는 월곶돈대 위에 세워졌다. 지형적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연미정(燕尾亭)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연미정은 남쪽으로 흐르는 염하(鹽河)의 첫머리에 있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고종이 사립 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전해진다. 또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연미정은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정자 양쪽에는 500년 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강화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정자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조선 시대 방어시설인 돈대와 지금의 군 초소가 공존하는 연미정에선 한강하구 너머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고, 군 초소 우측으로 무인도인 유도가 내려다보인다. 앞마당처럼 바다가 앞에 있어도 배를 띄우지 못하는 설움처럼 역사의 거친 물살이 언제 그치고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고대해 본다.

 

강화갯벌 탐사 여행

 

  강화도 남단 도로를 달리다 보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검은 해변을 만나게 된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낸 강화갯벌은 강화 남부지역, 석모도, 볼음도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어 세계 5대 갯벌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이 일대 4억 4,880만m2 (1억 3,600만 평)의 갯벌을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하여 보호 · 관리 중이다.

 

►강화갯벌

 

 

  강화 황산도 남단, 동막해변, 선두리, 장화리 일대 349㎢의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강화갯벌은 우리나라 서남해안 간석지의 11.4%, 경기도 간석지의 41.1%를 차지할 만큼 단위 갯벌로는 서해와 남해안을 통틀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보존상태가 좋아 유기물이 풍부하고 해수의 유통으로 산소가 잘 공급되기 때문에 생물상이 다양하다. 갯벌에서 사는 생물로는 게, 망둥어, 민달팽이, 참게, 조개,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어서 철새들이 많이 몰려든다. 봄, 가을에는 번식과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일본, 호주 뉴질랜드 사이를 이동하는 도요물떼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여름에는 세계적인 희귀종 천연기념물 제205호인 저어새 번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칠면초군락, 해홍나무 군락, 세모고랭이 군락 등 염생식물이 풍부하여,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강화갯벌은 경제적 생산성은 물론 자연 정화능력, 해양생태계의 보물창고로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을 잘 보존하고 가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광활한 갯벌, 동막해변

 

 

  강화도 남단 화도면 동막리에 있는 동막해변은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며 갯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활처럼 길게 휘어진 백사장 뒤로 수백 년 묵은 노송들이 늘어선 해변에 물이 빠지면 직선거리로 4㎞까지 갯벌이 드러난다. 그 갯벌에 칠게, 가무락, 고둥, 갯지렁이 등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어 가족 단위의 여름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변 한쪽으로는 ‘저어새 보러 가는 길’이라는 해안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저어새는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강화 갯벌에서 번식지가 발견된 바 있다.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물이 들면 폭 10m, 길이 200m의 해변이 멋진 해수욕장으로 변한다.

  해변 동쪽에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축조된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강화 남단의 갯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인천국제공항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일몰시간을 전후로 해서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강화갯벌센터

 

 

  갯벌에 대한 이해와 각종 체험을 해 보려면, 동막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강화갯벌센타가 있다. 강화갯벌터센터로 들어가는 길에는 노랑부리백로와 큰 기러기 상, 천연기념물 제205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갯벌의 대표새 저어새 가족상이 반긴다. 정원엔 갯벌과 친숙한 새들이 돌탑 위에 줄줄이 전시되어 있다. 설명판은 간단하지만, 갯벌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생물들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강화도 지역의 갯벌 분포도의 모형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강화도 전체 갯벌 면적은 강화도 보다 넓다. 특히 갯벌센터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차리∼동막리∼동검리로 이어지는 강화 남단 갯벌은 강화갯벌의 25%에 해당하는 90㎢에 달하고, 육지로부터 최대 6㎞까지 바다로 뻗어나가 있다.전시장에는 강화갯벌의 4계절 생태계 모습과 그곳에서 서식하는 각종 야생조류, 동식물 등을 테마별로 만날 수 있다.

  또, 강화갯벌의 모습과 저어새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는 망원경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도서관과 갯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실험실이 마련돼 있다. 지하 1층 영상실에서는 저어새를 비롯하여 강화갯벌에서 살고 있는 새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지하 1층에서 밖으로 나가면 야외 강의실이다. 이곳에서는 환경운동연합에서 갯벌과 환경에 대해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체험이 아쉽다면, 넓은 동막해수욕장을 이용하면 된다. 동막해수욕장은 이미 갯벌체험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물이 들어오면 해수욕도 가능하다.

 

►낙조가 아름다운 장화리 마을

 

 

  화도면에 있는 동막해변 가까이에 장화리 마을이 있다. 이곳은 동막해변과 이어지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갯벌 중 하나이자 서해 3대 일몰 촬영지다. 물이 빠지면 천연기념물 제 419호로 지정된 장화리의 갯벌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3~4km의 갯벌에는 농게, 칠게, 달랑게, 모시조개, 대합, 상합, 동죽, 짱뚱어, 민칭이, 따개비, 큰구슬 우렁이, 방게 등 온갖 생명체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장화리 갯벌이 펼쳐진 해변에 갯벌 탐구 학습장인 해양환경탐구수련원이 있다. 폐교된 화도초등학교 장화 분교를 새롭게 단장해 해양탐구수련원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 해양환경전시관에는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을 비롯하여 서해안에 서식하고 있는 각종 생물의 사진패널과 화석과 고생물 등이 다양한 모형과 시뮬레이션, 박제 형태로 전시되어 있어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한편,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체험교실을 운영한다.

  그런가 하면, 장화리 일대 너른 갯벌은 사진작가들에게 멋진 일몰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밀물 때는 잔잔한 수면 위를, 썰물 때는 넓게 펼쳐진 갯벌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부드럽고 장엄한 색조가 인상적이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며칠 동안은 솔섬으로 해가 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촬영 포인트는 장화리 환경수련원 앞이다. 해지기 전에 미리 도착해서 수련원 앞의 제방을 거닐다가 적절한 위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적석사와 낙조봉

 

 

  강화군 내가면 고려산 서쪽 기슭에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적석사 사적비(事蹟碑)에 따르면, 416년(장수왕 4) 인도 승려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현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적비와 범종루, 관음굴, 산신각, 수선당, 종무소 등이 있다. 경내의 감로정은 나라에 변란의 조짐이 생기면 우물이 마르거나 물이 흐려져 마실 수 없게 된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적석사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적석사 뒤에 만들어 놓은 낙조봉(340m) 때문이다. 적석사에서 15분 정도 오르면 낙조봉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안의 일몰은 국내 3대 낙조 명소로 알려질 만큼 아름답다. 작은 섬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일몰을 촬영하러 사진 동호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고려산 진달래 군락

 

 

 적석사를 품고 있는 고려산(436m)은 진달래 군락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송해면 등에 걸쳐 있는 고려산은 4월 중순이면 한창 물이 오른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산허리를 감싼다.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어나는 곳은 정상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km구간. 이곳만큼 넓은 면적에 잡목 하나 없이 진달래만으로 화원을 이룬 곳도 드물다. 간간히 바람이 산자락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요동치는 분홍빛 꽃물결은 상춘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군락지 산행은 다섯 코스인데 대개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이 세 절에서부터 시작된다.  

  1코스 : 백련사 - 진달래군락지 (3.7km, 소요시간 1시간 20분)

  2코스 : 청련사 - 진달래군락지 (2.9km, 소요시간 1시간)

  3코스 : 고비고개 - 진달래군락지 (2.4km, 소요시간 1시간)

  4코스 : 적석사 - 진달래군락지 (5.2km, 소요시간 1시간 50분)

  5코스 : 미꾸지고개 - 진달래군락지 (5.8km, 소요시간 2시간)

  그중에서도 진달래 군락지와 가장 가까운 곳은 백련사다. 이곳에서 진달래 군락지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축제 기간에는 백련사로 오르는 차량통행을 금지해 고인돌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고인돌공원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는 약 2.5km로 아스팔트 포장길이 말끔하게 다져진 데다 죽죽 뻗은 전나무가 양옆으로 줄지어 있어 걷기에 알맞다.

 

강화도 포구 여행

 

황산포구(황산도)

 

 

  황산포구는 강화해협 남단 황산도에 있는 포구로, 황산도는 전에는 섬이었지만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어 길이 생기면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초지대교 건너서 좌회전하여 약 500m 정도 가면, 왼쪽에 고기잡이 배 모형 황산도 어판장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양어장 제방을 건너 좌회전하면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돛을 단 큰 배 모양의 황산도 어판장이 나온다. 어판장이라기보다는 어촌계 회원들이 운영하는 회센터들이 줄지어 붙어있다. 이 횟집들은 황산도 앞바다에서 직접 잡은 제철 생선들을 부담 없는 가격에 맛볼 수 있어 싱싱한 횟감을 찾는 이들에게 필수 코스가 되었다.

  또, 이곳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황산도 어촌전시관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강화 어촌의 변천사와 고기잡이에 사용했던 어망, 그물, 해녀들이 쓰던 망태기 등 어민들의 손때 묻은 어구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어촌의 생활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시관에서 어촌생활을 학습하였다면, 포구 앞 갯벌 위에 나무로 만든 관찰로를 걸어보자. 이 길을 걷자보면 햇볕을 즐기러 나온 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구멍으로 쏜살같이 숨는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신기한 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황산포구는 강화나들길 8코스 (황산주차장-섬암교-동검도 입구-택지 돈대-분오리돈대, 동막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시작점이다. 짧게 걸으려면 황산도 주차장을 출발하여 황산도를 한 바퀴 도는 것을 추천한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물줄기, 상쾌한 바닷바람, 드넓은 갯벌, 움푹 패인 갯고랑 등은 황산도만이 주는 선물이다.

 

선두리포구

 

 

  해안도로를 따라 황산도, 동검도 입구를 지나면 길상면 선두리, 가천대학교 강화캠퍼스 못 미쳐 바닷가에 선두5리 선착장과 어판장이 있다. ‘선두리 5리 어시장’이란 푯말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광활한 갯벌 사이 길게 뻗은 선착장에는 작은 고깃배 몇 척 정박해 있다. 그 초입에 어선의 배 이름을 그대로 붙인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간혹 좌판에는 말린 생선을 내놓고 팔기도 한다. 파시(波市)의 영광과 소란스러움, 번잡함과 풍요로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포구는 그 자체로 질펀한 삶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그 옆 선두 4리 어판장도 마찬가지다. 번잡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안 드라이브를 겸하여 오히려 호젓한 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따가운 햇볕을 받은 갯지렁이며 조개, 게 등이 부끄러운 듯 속살을 드러낸다. 물고랑이 된 갯골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선수포구, 후포항 (화도면 내리)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에서 여차리, 장화리를 거쳐 조금 지나면 선수포구가 있다. 석모도 남단이 눈앞에 보인다. 선수포구는 강화도에서 가장 큰 포구로 알려져 있다. 공식 명칭은 후포항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선수포구로 더 많이 불린다. 갯벌과 고깃배, 갈매기 무리 등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작은 어촌 마을이며, 볼음도·주문도 행 배가 출항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수포구는 밴댕이 포구라고 별칭이 붙여질 만큼 밴댕이가 많다. 포구 일대는 썰물과 밀물의 간격이 유난히 크고 갯벌 환경이 좋아 밴댕이가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강화도 밴댕이는 5~6월이 제철이지만 계절이 지나도 심심찮게 고깃배에 잡혀 들어온다. 이때쯤 선수포구에는 밴댕이회와 밴댕이구이의 별미를 맛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포구를 찾는다. 어판장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은 어선을 소유하고 있어 밴댕이를 직접 잡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물이 빠진 포구 주변으로는 갯벌이 드러난다. 해안을 따라서는 데크 길이 놓여 있는데 코스가 길지 않아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외포항, 외포리선착장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외포항은 석모대교가 놓이기 전, 석모도행 페리를 타던 곳이다. 석모도의 서포리선착장과의 거리는 1.5㎞, 페리를 타면 10분 이내에 석포리선착장에 도착한다. 전에는 석모도, 주문도, 볼음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붐비던 곳이었으나 요즘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여전히 포구 근처에는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신선한 회를 즐기려는 사람포구 앞에 자리한 외포항젓갈수산시장에서 새우젓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외포항젓갈수산시장은 전국 추젓의 70%가 생산되는 곳이다새우부터 낙지오징어조개명란창난 등 젓갈류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수산시장이다특히 매년 10월이면 강화도 새우젓 축제가 외포항에서 열리고 김장을 위해 젓갈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강화나들길

 

 

  걷기위주로 여행하고 싶다면 강화나들길을 걸어보자. 강화나들길은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 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조선 시대에는 외세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다.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18km, 6시간) : 강화버스터미널~갑곶돈대

  2코스 호국돈대길(17km, 5시간 50분) : 갑곶돈대~초지진

  3코스 고려왕릉 가는길(16.2km, 5시간 50분) : 온수공영주차장~가릉

  4코스 해가 지는 마을길(11.5km, 3시간 30분) : 가릉~망양돈대

  5코스 고비고개길(202km, 6시간 40분) : 강화버스터미널~외포여객터미널

  6코스 화남 생가 가는길(18.8km, 6시간) : 강화버스터미널~강성보

  7코스 낙조 보러 가는길(20.8km, 6시간 40분) : 화도공영주차장~갯벌센터~화도공연주차장

  8코스 철새 보러 가는길(17.2km, 5시간 40분) : 초지진~분오리돈대

 *9코스 교동도 다을새길(16km, 6시간) : 월선포선착장~화개산~월선포선착장

 *10코스 교동도 머르메 가는길(17.2km, 6시간) : 대룡리~머르메~대룡리

 *11코스 석모도 바람길(16km, 5시간) : 석모도선착장~보문사

 *12코스 주문도길(11.3km, 3시간) : 주문도선착장~주문도선착장

 *13코스 볼음도길(13.6km, 3시간 30분) : 볼음도선착장~볼음도선착장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11.7km, 3시간 30분) : 용흥궁~갑곶돈대

 15코스 고려궁 성곽길(11km,. 4시간) : 남문~동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13.5km, 4시간) : 창후여객터미널~외포여객터미널

 17코스 고인돌탐방길(12km, 4시간 20분) : 강화지석묘-오상리고인돌군

 18코스 왕골공예마을 15km, 4시간 30분) : 강화역사박믈관~강화역사박물관

 *19코스 석모도상주해안길(10km, 3시간 30분) : 동촌~상주버스종점

 20코스 갯벌 보러 가는 길 (23.55km, 7시간 30분) : 분오리돈대~화도공영주차장)

  강화나들길 코스는 현재 20개 코스에 총 310.5㎞에 달한다. 석모도 2개 코스 26km, 교동도 2개 코스 33.2km, 주문도 11.3km, 볼음도 13.6km를 제외하더라도 강화 본섬 14개 코스는 226.4km에 달한다.

  길게 이어진 길, 때론 한적하고 고즈넉한 길, 불어오는 바람에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섞여 있고, 한낮의 햇살은 따사롭다. 강화나들길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걷노라면 새로운 풍경과 세계가 펼쳐진다. 주제에 따라 나눠져 있어 원하는 대로 길을 선택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