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문(訪仙門)
선계(仙界)로 통하는 문 '제주 방선문'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이동 3819-11
글·사진 남상학
제주문학관 탐방 중 이영화 문화해설사의 소개로 방선문 계곡을 찾았다. 숲이 우거진 계곡 길을 달려 찾은 곳은 속세와는 동떨어진 신선이 머무는 곳처럼 사람의 발길이 뜸한 깊숙한 곳이다.
방선문(訪仙門) 계곡은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계곡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인 한천(漢川) 상류 약 6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방선문은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다는 계곡의 입구로서 이름 그대로 선계(仙界)로 통하는 문이나 다름없이 뛰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일찍이 ‘영구춘화(瀛丘春花)’라 하여 제주도의 뛰어난 명승지인 영주 10경(瀛洲十景) 중 하나로 꼽힌다. ‘영주’는 제주도의 옛 이름이다. 방선문 계곡은 봄에 골짜기 주변에 철쭉꽃이 곱게 피어 계곡물에 비친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가을이어서 아름다운 꽃은 볼 수 없으나 간혹 깊은 계곡에 드리워진 단풍이 꽃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곳은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신선을 만났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옛날 백담에서는 매년 복날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는데 이때마다 한라산 산신은 방선문 밖 인간세계로 나와 선녀들이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 복날 미처 방선문으로 내려오지 못한 한라산 산신이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게 되었고, 이에 격노한 옥황상제가 한라산 산신을 하얀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뒤 한라산 산신은 매년 복날이면 백록담에 올라가 슬피 울었고, 하얀 사슴의 연못이라는 백록담의 이름은 이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방선문은 이 계곡 중간 지점에 있는 큰 바위를 가리키는데, 계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계속 이어진다.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 사이사이에 핀 철쭉꽃이 절벽을 붉게 물들인 모습은 상상만 해도 황홀해진다.
방선문 일대는 한국 고전문학 중 해학소설의 백미이자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인 '배비장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예부터 제주에 부임한 목사를 비롯한 지방관리나 유배인을 포함한 많은 선비와 문인들이 이 계곡을 찾아 풍류를 즐겼다.
방선문 곳곳에는 그들이 남긴 마애명(磨崖銘, 바위에 새긴 서각)이 50여 개, 글씨가 선명한 것들이 많아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역사 문화적 요소와 자연경관이 두루 어우러진 방선문 계곡은 201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바위에 새긴 글씨 마애명( 출처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 도착해 보니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지난번 태풍의 영향으로 비위에 균얄이 발생하여 낙석 위험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방선문 계곡의 근간이 되는 한천이 건천이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겨울철 쌓인 눈이 녹아야 비로소 길을 열어주므로 이런 선경은 그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나 싶다.
하는 수 없이 방선문 입구 참꽃 산책로를 걸으며 산책길에 세운 시비(詩碑)를 둘러보고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살짝 드러낸 계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비가 온 뒤라 안개가 끼어 잘 보이진 않았으나 어렴풋한 모습에서도 범상치 않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 '등영구(登瀛丘, 들렁귀)에 올라'라는 시다. "石竇呀然處 巖花無數開 花間管絃發 鸞鶴若飛來" . - 홍중징(洪重徵) 지음, 기미(1739년) 초여름(己未首夏)
""바워굴 입을 크게 벌린 곳 / 바위 틈 사이로 봄꽃 만발하였네 / 꽃 사이로 봄노래 피어나면 / 난학이 아스라이 날아든다네."
방선문의 풍경을 시로 읊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시다 . 셋째 귀절의 '開'와 넷째 귀절의 '來'를 운으로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보아도 획이 꿈틀대는 듯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자연에 인공이 가해지면 훼손되는 것이 보통이나 홍중징의 이 시는 방선문의 성가를 배가시켰다고 평가된다.
암반과 기암괴석들이 골짜기를 이룬 오묘한 풍경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번잡한 시내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 이런 계곡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다.
2004년부터 매년 동굴소리연구회 주관으로 이곳에서 방선문 계곡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고 한다. 출입 통제로 가까이 접근하여 탐방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으나, 제주여행에서 새롭게 발견한 장소여서 의미가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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