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부산 이주홍문학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아동문학가

by 혜강(惠江) 2022. 4. 7.

 

이주홍문학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아동문학가

 

 

글·사진 남상학

 

 

 "오늘도 어제같이/ 따스한 날/ 충이랑 식이랑 준이랑/ 현이네 집에 와/ 말판놀이 하고 있다/ 밥 먹으러 가라 두 번 세 번/ 할아버지가 재촉을 해도/ 마루 밑에 옹기종기/ 신들을 벗어 놓은 채/ 아이들은 들은 둥 만 둥/ 말판놀이에만/ 정신을 뺏기고 있다. (이하 생략)"

 - 이주홍의 동시 「현이네집」 중에서

 

 

 

 

  이 글은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인 향파(向破) 이주홍(李周洪, 1906~1987)리 쓴 동시 「현이네 집」의 일부이다. 또래 아이들이 끼니때가 되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리듬감 있게 노래하였다. 쉽고 짤막한 어휘를 사용하여 어린이들이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놀이에 열중하는 풍경을 노래한 시이다.

 

  합천에서 태어난 향파 이주홍은 광복 후 부산에 정착한 후에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소설, 동화, 동시, 수필, 번역서 등 200여 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작가이며, 아동문학의 선구자다.

 

이주홍문학관은 향파 이주홍의 문학 정신을 계승·발전·육성시키고 부산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이주홍문학재단이 산 동래구 온천동(온천 1동 435-24)에 2002년 건립하였다.

 

  본래 문학관은 이주홍 선생이 1971년부터 1987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 1동 177-18번지 건축했으나 2004년 지역 개발 공사로 인해 현 부지에 신축 이전하였다. 이주홍문학관은 요산문학관, 추리문학관과 더불어 부산의 3대 문학관이다.

 

 

 

향파 이주홍 문학거리

 

  명륜역에서 내려 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은 예쁘고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향파 이주홍 문학거리’라는 이름으로 600m에 걸쳐 조성되어 그의 시와 삽화 등을 소개해 그의 문학활동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향파문학거리’라는 멋진 표지판과 이주홍 선생의 시가 적힌 그루터기다. 이주홍 선생의 문학 글귀와 그 도서의 표지를 디자인해 팻말처럼 걸어두었다.

 

  특히, 문학거리에는 이주홍 선생의 얼굴 형상의 조형물이 있고 가로등을 대신하는 듯한 펜대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다. 이 펜대 조형물의 각각에는 이주홍 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천공 방식으로 색깔이 변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거리에 설치한 뾰족한 만년필 촉, 공중전화 부스 모양으로 꼬맹이 도서관이 자리해 거리의 작은 쉼터가 되기도 한다.

 

  이 문학거리는 문학적 정취가 묻어나서 그런지 여러 가게와 카페가 많이 들어섰다. 가게들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서 이 거리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이주홍문학관

 

  이주홍문학관은 470여㎡에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297㎡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강당 및 세미나실은 시민도서관과 문학 세미나, 토론회 장소로 사용하고, 2층은 전시관이다.

 

  전시관에는 작가가 소장하였던 1만여 점의 서적과 유품 및 서화 1만여 점과 함께 이주홍이 생전 창작 활동을 펼친 서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특히 전시관에는 특히 쉽게 볼 수 없는 이주홍의 만년필과 수첩 등 작가의 애장품을 비롯하여 전국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받은 편지가 보관되어 한국 근현대 문학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또한, 전시품 중 희귀본으로는 1930년대 이주홍 선생이 직접 제호와 표지화와 삽화와 작품을 발표했던 『신소년』(1934년 폐간) 잡지철과 1936년 이주홍 선생이 창간했던 카프 계열 순수 문예지 『풍림』지 묶음이 있고, 카프 계열의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했던 『별나라』(1935년 폐간) 잡지철이 있다.

 

  이주홍문학관은 매년 이주홍문학축전, 이주홍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기행, 이주홍학생백일장 등의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주홍문학재단에서는 부산의 이주홍문학관과는 별도로, 이주홍의 예술적 가치를 기리고 지역 문화유산 보존과 탐방코스로 개발하여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부산과는 별도로 2011년 12월 경남 합천군 용주면에 개관한 이주홍어린이문학관과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이주홍문학의 장신을 드높이고 있다.

 

 

 

이주홍의 생애와 활동

 

  이주홍은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에서 태어나 1918년 합천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20년 상경하여 고학하다가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에서 일하면서 문학수업에도 전력하였다. 광복 후 동래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49년부터 부산수산대학 교수로 있다가 1972년 정년퇴직한 뒤 부산수산대학의 명예교수를 지냈다.

 

  1925년 『신소년(新少年)』에 첫 동화 「뱀새끼의 무도(舞蹈)」를 발표하고, 1929년 『조선일보』에 첫 단편소설 「가난과 사랑」이 입선,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소년소설 「눈물의 치맛감」(1929) 등을 비롯하여 많은 동요·동시·소년소설·희곡·소설을 창작하였다.

 

 

  1930년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 참여하여 카프의 기관지 『음악과 시』의 인쇄인으로 활동하였고, 동화 「천당」(1933)·「군밤」 (1934) 등을 발표하고, 프롤레타리아 동요집 『불별』, 순수 문예지 『풍림(風林)』(1936), 『신세기』(1940)의 편집일을 했다.

 

 

 

  1943년에는 희곡 「여명」이 『매일신보』 현상모집에, 시나리오 「장미의 풍속」이 조선영화주식회사 공모에 당선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말 경찰에게 체포되어 거창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이 무렵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적극 가담하여 좌파 행보를 이어 나갔다. 한편, 아동 잡지 『새동무』를 편집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중앙집행위원 및 맹원(盟員)이 되고 이어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위원을 지냈으나, 동래중고등학교 교사로 부산에 살면서 프로문학단체와 결별하였다.

 

 

 

  1947년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1965년 동인지 『윤좌(輪座)』 창간, 1966년 종합 문예지 『문학시대』을 주재하였고, 구상(具常)·송지영(宋志英) 등과 함께 1978년 동인지 『갈숲』 동인으로, 김정한(金廷漢)·박지홍(朴智弘) 등과 ‘윤좌(輪座)’ 동인으로 활동하며, 부산아동문학회를 창립하였다.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노동자들 사이의 인정을 그린 지저깨비들(1966), 사회의 부조리의 축소도를 보여주는 고발소설 유기품(遺棄品)(1967), 의로운 폭력 세계의 한 단면을 그린 유기품(1976) 등이 있으며, 장편 소년소설로 아름다운 고향(1954)이 있다. 동화로는 소녀들의 순수한 동심이 별처럼 빛나는 섬에서 온 아이가 있다.

 

 

 

  단편 창작집 『조춘(早春)』(1956)·『해변』(1971), 장편 창작집 『탈선 춘향전』(1952), 수필집 『예술과 인생』(1957)·『조개껍질과의 대화』 (1962)·『뒷골목의 낙서』(1966), 장편 소년소설 「이순신장군」(1955)·「피리부는 소년」(1957) 등이 있다.

 

  동시선집 『현이네집』이 출간되었고, 사망한 후 소설과 희곡 작품을 갈무리한 『이주홍 소설 전집』, 『이주홍 극문학 전집』이 출간되었다.

 

 

 

  이주홍은 50여 년 동안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 수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엄청난 양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작품은 풍자와 해학을 주축으로 한 흥미성을 중시하여 이른바 읽혀지는 재미성을 주장하는 아동문학가를 대표하기도 하였다. 또, 전래동화와 역사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원숙한 느낌을 주며, 구성이 치밀하고 문장이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7년 부산시 문화상, 1962년 경상남도 문화상, 부산대학 학술공적상, 1968년 눌원 문화상, 197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3년 한국 불교 아동문학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 훈장,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 1987년 3·1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창작집과 교과용 도서 등 200여 권에 이를 정도의 다채로운 활동을 한 그는 1987년 81세로 삶을 마감하고 부산 자택에서 사망, 경상남도 양산시 백운 공원묘지에 묻혔다.

 

  현재 1988년 동래구 금강공원에 이주홍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문학비에는 이주홍의 동시 「해같이 달같이만」이 새겨져 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 아버지란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하고/ 불러보면/ 오오- 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 ⃫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밖에 없는/ 이름들 ⃫ 바위도 오래되면/ 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만 오랠/ 이름.”

 

 

 

◎상세정보

 

►주소 : 부산 동래구 금강로61번길 20-12 (온천동 435-24)

►전화 : 051-552-1020

►관람 : 화~토 10:00~17:00 (점심시간 12:00~13:00)

►교통

·지하철 : 부산 지하철 명륜역 5번 출구에서 도보 7분

·버스 : 온천프라자 정류장에서 77, 80, 110,131 탑승, 도보 2분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