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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이천 설봉 문학동산, 굴곡진 역사 속 얼룩진 영욕(榮辱)의 자국

by 혜강(惠江) 2021. 7. 8.

 

이천 설봉 문학동산

 

 

굴곡진 역사 속 얼룩진 영욕(榮辱)의 자국

 

 

글 사진 남상학

 

 

 

 

  이천의 설봉 문학동산은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雪峯山, 394.3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설봉공원은 2001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이끈 중심지였으며 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해마다 열리는 이천도자기축제, 이천쌀문화축제의 개최지이자 시민의 편안한 휴식처이다.

 

  설봉공원에는 도자기사업협동조합, 설봉호수, 도자기공원, 이천시립박물관, 국제조각공원, 시립월전미술관, 문학동산, 놀이터, 국궁장, 현충탑, 충효동산, 영월암, 공연장과 주차장 등이 들어서 있다. 도자기공원 안엔 세계도자센터, 곰방대가마, 도자기판매장, 도예 공방, 전통가마, 야외옹기전, 설봉산 장작가마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중 문학동산은 설봉공원 대공연장 옆 이천 세레피아로 오르는 왼쪽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설봉공원 문학동산에는 뛰어난 시인들의 시비가 많이 설립되어 있어 시민의 문화 예술적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채수영 시인의 <설봉산>을 비롯하여 이육사의 <광야>, 윤동주 <서시>, <새로운 길>, 조지훈의 <승무>, 유달영의 <젊은 하루>, 구상의 <오늘>, 허영자의 <감>, 이건청의 <하류>, 박건웅의 <옥잠화>, 경규희의 <새벽약수터>, 성기원의 <눈속의 여인>, 김태룡의 <교감> 등 문인 10여 명의 시가 조각 작품들과 함께 설치돼 있다.

 

 

 

 

 

이천의 진산 설봉산, <설봉산> 시비(詩碑)

 

 

  이천의 설봉산(394.3m)은 이천의 진산(鎭山)이다. 이천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부악산·무학산·부학산이라고도 부른다. 험준하지는 않으나 산세가 오밀조밀하여 운치가 있고, 주봉(主峰) 부근에는 혼합림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으며, 기암괴석이 많다.

 

  삼국시대 격전장의 역사를 담은 설봉산성을 비롯하여 이천의 성현을 모신 설봉서원, 불교 문화의 산실 영월암이 있고, 시민의 안식처 설봉공원 등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설봉산은 이천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채수영의 <설봉산> 시비는 이천 사람들이 설봉산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설화의 성터를 돌아가는

    부악은 머리이자 가슴이라

    나래 펼친 학의 깃바람으로

    설봉호에 내려오면

    하늘이 담겨지는 파문들이

    햇살을 춤추게 한다

 

    깊이로 맺은

    마음 고운 사람들

    산정 사잇길 돌아

    정갈하기 맑은 바람과 더불어

    시내로 내려오면

    가슴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는 눈엔

    설봉호의 물이 고인다

 

    사람 내음이 그리운 날은

    장날의 소음이 박자를 맞추는 곳에서

    깊은 정을 전달하는 인심 따스한 것도

    설봉산에서 내려온 물과 바람 탓이라면

    이천 사람들은 그 정기를 담아

    맑은 가슴으로 산다.

 

 

  시인 채수영(蔡洙永. 1942∼)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월간문학 신인상”(1978), 평론 <시(詩)의 거리론(距離論)>으로 “예술계” 신인상(1983)을 받았다. 그 후 신흥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하고 종합문예지 “문학세계” “시세계” 주간을 맡기도 했다.

 

  시집으로 <목마른 잔(盞)>, <바람의 얼굴>, <세상도(世上圖)>, <그림자로 가는 여행>, <푸른 절망을 위하여>, <새들은 세상 어디를 보았는가>, <들꽃의 집>, <언어의 자유를 위하여>, <황금연못>, <햇살 정원>, <사람 물이 들고 싶다> 등이 있다.

 

  <설봉산> 시비는 이천시가 협조하고 이천 문인협회가 후원하였으며, 부악문학회가 세운 것이다. 채수영 시인은 인천에서 출생했으나, 이천에서 살면서 이천 부악문학회 지도교수로서 후학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다.

 

 

 

 

 

지조 높은 시인들의 시비

 

  다음으로 이육사의 <광야>를 읽어본다. 육사는 일제 암흑기에 민족적 저항을 시도하다가 순국한 시인이다. 시인의 의식 속에는 반일 저항의 감정이 알게 모르게 배어들어 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그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다. 본명은 원록(源綠)이다. ‘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囚人) 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1933년 <황혼>으로 등단하여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청포도> 등이 있으며, 유고 시집으로 “육사 시집”(1946)이 있다.

 

  <광야>는 광야라는 광활한 공간과 현실 초월적인 시간 인식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신념을 드러낸 저항시이다. 시인은 광야에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를 생각하고, 현재가 민족적 비극의 시기이지만, 반드시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을 희생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윤동주 시비에 새긴 <서시>나 <새로운 길>은 언제 읽어도 감명을 주는 작품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북간도 출생으로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 <참회록>(1948) 등이 있다.

 

  <서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서시(序詩)>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 전체의 내용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연희전문 졸업을 1개월 앞두고 쓴 이 작품은 그의 정신을 대표한다. 그가 가야 할 길이 식민지 일제의 질곡(桎梏)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의지와 신념으로 민족을 위해 광명을 선사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고결한 지성으로 불굴의 절조를 노래한 것이다. 그는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종교적인 자세로 하늘에 대고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다. '부끄러움이 없기를 …괴로워했다'라는 것은 다소 모호한 표현이면서도 이 작품에서는 희구에 대한 강한 이미지로 부각되어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역시, 윤동주 시인의 남다른 의지가 드러나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년 5월 10일의 날짜가 찍힌 <새로운 길>이라는 시에서 윤동주 시인은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했다. <새로운 길>에서 '길'은 인생을 상징한다. 말하는 이는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제나 가야 할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보여 준다. 말하는 이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존재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평화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특별한 표지석 두 개

 

  그런데 설봉공원 문학동산에는 시비 대신 땅바닥에 설치한 특별한 표지석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신소설 작가 국초(菊初)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시인 (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에 관한 것이다.

 

  이인직은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신소설 작가로 이름을 떨쳐 이천의 자랑이었다. 그래서 문학동산을 만들며 이인직의 문학비를 건립하였다.

 

  그는 1908년 원각사를 중심으로 신극 운동을 전개하면서 <설중매>를 각색하고 <은세계>를 집필하여 무대에 올렸다. 또한, <혈의 누>, <귀의 성>, <치악산>, <모란봉> 등의 작품 등 사실적 산문 문장을 최초로 구사하여 한국의 신소설 문단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은세계>, <혈의 루> 등에서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등 친일 의식과 반민족 의식을 드러냄으로써 비난을 면치 못했다.

 

 

 

 

 

  또한, 문학동산에는 문학동산을 만들면서 이육사, 윤동주 등과 함께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비를 건립했다. 그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화사집”(1941)을 통하여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등을 통하여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하여 한국 현대시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데 기여했다. <국화 옆에서>는 교과서에 수록되는 등 그의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학도병을 찬양한 글을 게재하는 등 그의 친일행적이 문제가 되자, 2020년 11월 이천 시민단체들이 두 문인의 기념비와 시비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별도의 표지석을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이천의 정기서린 명산 설봉산 자락에 자리한 문학동산에 반민족 친일파 이인직, 서정주 기념비가 있다는 것은 이천은 물론 전 민족적 차원의 수치”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친일행적을 기록하여 설봉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겠으나 어쩐지 굴곡진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대조적인 두 부류 시인의 행적들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대학 시절 ‘시론(詩論)’ 강의에 심취하게 만들었던 스승 조지훈 시인의 <승무> 시비가 나를 맞이한다. 스승을 뵙듯 반갑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은 시인이며 국문학자이다. 경북 영양 출생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1939년 “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그는 동양의 회고적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에의 향수, 민족의 한(恨)을 고전적 운율로 노래하였으며, 박두진, 박목월 등과 “청록집”(1946)을 간행하여 청록파라는 이름을 얻었다. 시집으로 “청록집”(공저), “풀잎 단장”(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승무(僧舞)>는 숭무라는 춤을 통해 세속적인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춤추는 동작의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이 시는 4음보의 율격이나 소재면에서 전통성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시에 사용된 ‘하이얀, 감추오고, 모두오고, 감기우고’ 등의 시적 허용과 ‘이 밤사, 삼경’과 같은 예스러운 표현, 그리고 수미상관의 구조 등은 이 작품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세속적 번뇌의 승화라는 주제 의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그밖의 시인들의 시비들 ◎

 

 

 

 

  우리는 시를 통해서 자연의 모습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이 발견의 경험은 인생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시적 발견의 감동은 인생, 자연, 사회, 우주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보다 너그럽게 성숙된 눈을 갖추게 한다. 설봉공원안에 문학공원을 조성한 것에 감사하며, 나는 문학동산을 내려와 다음 목적지인 안흥지와 애련정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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