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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인천 영흥도, 수도권에서 가까운 최고의 해양 휴양지

by 혜강(惠江) 2021. 2. 1.

 

인천 영흥도

 

수도권에서 가까운 최고의 해양 휴양지

 

 

·사진 남상학

 

 

 

영흥대교, 이 다리를 지나면 영흥도에 닿는다.

 

 

  영흥도는 섬이지만 배를 타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2000년 11월 대부도와 선재도를 연결하는 선재대교가 개통됐고, 2001년 11월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가 준공됨으로써 서울과 인천, 경기 서남부지역과의 접근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로써 대부도-선재도-영흥도로 이어지는 길은 수도권에 사는 이들에게 바다를 가르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다.

 

  차를 몰고 대부도를 지나 선재대교에서 바라본 선재도선착장 주변 모습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다. 해안을 따라 아담한 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바다에는 30척이 넘는 배들이 얌전히 정박해 있다. 선재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바다의 풍광과 만나는 길에서 두 개의 섬이 반갑게 맞이한다. 하나는 CNN이 인정한 목섬이고, 다른 하나는 측도다.


  선재도에서 목섬까지의 거리는 500여m. 목섬은 흔히 말하는 ‘애기섬’이다. 왼쪽에 보이는 작은 섬은 세계 관강포털사이트에도 자주 등장하는 목섬이다. 그런데 이 목섬이 유명한 것은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선재도와 연결된다. 선재도 주변 해안은 서해 특성상 모두 개펄로 뒤덮여 있지만, 신기하게도 목섬으로 이어진 길은 깨끗한 모래로 이어져 있다. 쓰레기가 없는 거의 유일한 무공해 섬이다.

 

  하루에 두 차례 물에 잠겼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한 바퀴를 도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밀물이 되어 그 길이 잠기더라도 언덕 위에서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멋지다. 물이 빠진 목섬 주위 개펄은 어민들의 생활터전이다. 굴과 낙지 등이 많이 나는 고마운 개펄이다.선재대교보다는 훨씬 웅장하다. 서해대교의 축소모형이라 할까.


  측도는 사람이 사는 작은 섬으로 다리로 연결된다. 측도를 지나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영흥대교가 있다. 이 다리를
넘는 순간부터 영흥도 여행은 시작된다. 시원스럽게 뚫린 교량을 달리는 맛도 맛이지만, 다리 양쪽으로 햇살 받아 빛나는 은빛 바다에 떠 있는 섬과 작은 고깃배들이 물살을 헤치며 지나가는 정경은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준다. 멋에 취해 차창을 열면 상쾌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간질이고, 만약 해무(海霧)라도 자욱하게 끼는 날이면 꿈을 꾸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선재대교
선재대교를 지나며 바라본 선재선착장
목섬
영흥도는 선재대교, 영흥대교를 차례로 지나 진입한다.

 

 

영흥도, 애뜻한 그리움의 표상(表象)

 

  영흥도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초등학교 시절 1년 정도 살았고, 그 기간에 나는 영흥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영흥도가 가슴에 저려오는 이유는 가난과 싸운 아픈 기억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영흥도에서 사는 동안 아버지가 타지에서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을 들었던 아픈 기억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때 영흥도에서 가까운 작은 섬 이작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북한군이 그 섬에 상륙했고, 전세가 바뀌자 국군이 장악했다. 이 와중에 시달림을 받고 몸이 쇠약하여 사직했다. 생활이 어려운 처지가 되자 우리 가족은 면소재지인 영흥도로 이사를 했다. 영흥도는 바지락 생산지로 먹고 살기에는 자원이 넉넉한 영흥도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섯 식구의 영흥도에서의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힘든 일을 해 보지 않은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나는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캐야 했다. 이런 애처로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픈 몸으로 복직을 신청했고, 강원도 영월군 연덕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가족을 섬에 남겨두고 혼자서 그것도 아픈 몸으로 벽지(僻地) 초등학교에 부임하신 아버지는 두 달이 채 못 되어 외로운 곳에서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래서 영흥도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섬이 되었다.

 

  작은 눈으로는 잴 수 없는

  드넓은 갯벌 위에
  형형색색 무늬의 바지락을 캐며
  이랑이랑 아픈 삶을 일궜지.

  한나절 뙤약볕이 허기로 쏟아지면
  긴 강둑에 앉아 잡풀처럼 흐느끼다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포성(砲聲)을 들으며
  비릿한 바다 내음에 잠들곤 했지.

  누가 내 아버지의 귀향을 막았을까
  어머니의 눈가에 소금기가 쌓여
  마른 모래 언덕을 이루고
  칭얼거리는 파도는 영문 모르고 갯벌만 핥고 있었지

   - <졸고>『나의 사랑 영흥도』의 일부

 

  나는 한국전쟁 중에 영흥도에 있었다. 생계를 위하여 바지락을 캐야만 했던 영흥도의 갯벌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아픈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그 해 여름이 지나고 영흥도를 떠났지만, 그래도 영흥도는 내 가족, 내 삶의 한 과정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면서도, 한편으로서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나는 성인이 된 뒤에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출렁거리는 물결 벗 삼아
  썰물을 따라가며 바지락을 캐던
  의지(意志)의 땅, 진두 갯벌
  내게 생존의 방식을 가르쳐준
  뽀얗게 흙먼지 피던 날들

  그것이 가슴 저린
  내 그리움일 줄이야
  홀로 외롭게 가슴 뜯는
  노래일 줄이야.

   - <졸고> 『추억의 섬2』에서

 

세월이 가면 지난 시절의 아픔과 슬픔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 남는 것. 그런 이유로 영흥도는 나에게 어느 새 애뜻한 그리움의 표상(表象)이 되었다. 기억을 실타래처럼 풀어헤치며 나는 영흥대교를 단숨에 건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선착장이다.

 

 

 

 

주말 인파로 북적이는 선착장

 

  영흥도 선착장은 인천에서 영흥도를 경유하여 서산까지 운항하던 황진호, 은하호 등 여객선이 닿던 곳이다. 영흥대교가 개통된 뒤로는 연안 여객선의 뱃길이 끊어졌지만 선착장 시설이 확장되고 새로 지은 건물들이 고층건물이 들어서서 시간의 변화를 실감나게 했다.

 

  선착장에는 고깃배들이 여럿 정박해 있고, 선착장 입구에는 낚시점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비록 여객선은 끊겼지만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영흥도 어민들은 선단을 조직하여 바다 낚시를 하려는 낚시꾼들을 태우고 인근 해역으로 연일 출조한다. 출조의 범위는 자월도, 이작도, 승봉도, 덕적도, 그리고 멀리는 풍도, 육도 등을 망라한 지역이라고 했다. 영흥도 인근 바다는 자연산 광어와 우럭으로 유명하다. 영흥도에서 낚싯배들이 성황을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으로 영흥도 선착장에는 꽤 규모가 큰 수협 공판장과 수산물직판장이 있다. 따라서 횟집들이 즐비하다. 수협 수산물직판장은 바로 옆 수협 공판장을 통해 인근 바다에서 잡아오는 수산물을 반입한다. 그리고 하루에 2차례씩 수족관 물을 교환하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으니, 생선들이 싱싱할 수밖에 없다. 언제 가더라도 그날그날 잡아오는 우럭, 놀래미, 숭어, 꽃게, 낙지, 소라 등 최고 수준의 신선한 자연산 수산물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또 영흥도에서 나는 바지락은 감칠맛이 깊기로 소문이 나 있다. 주말에는 넓은 주차장이 비좁을 정도로 차들이 밀려온다. 수산물직판장은 매월 둘째·넷째 주 수요일에는 문을 닫으니 참고할 것.

 

 

영흥도 선착장, 고깃배와 낚싯배들이 즐비하다
수협 공판장(위)와 수산물직판장(아래)
수산물직판장, 여기서 싱신한 회를 맛볼 수 있다.

 

해군 영흥도전적비

 

  선착장을 둘러보고 해안 따라 서쪽으로 5분쯤 이동하면 연평해전에서 북괴군 함정과 교전 중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호와 동종의 해군 퇴역함 263호가 전시용으로 정박해 있다. 함정 출입구에 자물쇠가 잠겨 내부를 보지 못하고 언덕 위에 있는 해군영흥도전적비(戰跡碑)를 보러 갔다. 전적비를 보기 위해서는 해안에서 100여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언덕 위에 올라와 보면 평평한 분지다.

 

  이 전적비는 이곳 영흥도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운 해군부대원과 영흥도 반공 청년단원들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功勳)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우리 군은 28일 만에 대구까지 후퇴했다. 낙동강에 최후 전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8월 24일 해군 첩보부대는 영흥도를 거점으로 첩보공작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아 9월 1일 미 극동사령부 첩보부대에 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를 감지한 북한군이 인천 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영흥도를 공격해 오자 해군 첩보 부대원들과 영흥도 청년 방위대원들은 이에 맞서 싸웠다.이 전투는 우리 해군의 포사격 지원으로 북한군을 격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뒀으나 우리 해군 첩보 부대원과 영흥도 반공 청년단원 등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영흥도에서 들어와 살기 1년 전 일이다.

 

  우리 해군 첩보부대가 영흥도 첩보공작(Opertion Xray)을 성공시킴으로써 9월 15일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영흥도에서 멀지 않은 작은 섬 대이작도에서 살면서 인천 앞바다 해상에서 미국함정이 인천 하늘로 쏘아올린 조명탄의 불길과 포성을 산 위에 올라가 구경하는 어린아이였다.

 

 

전시중인 해군 퇴역함 263호정

 

 

십리포 해변의 소사나무 군락

  해군전적비를 보고나서 십리포 해변으로 향했다. 십리포 해변은 영흥도 북서쪽 끝자락에 있다. 십리포 해변으로 가는 길은 북쪽 해안을 따라 난 길로 가야 한다. 우측으로 멀리 길마섬이 아득하게 보이는 드넓은 진두 갯벌이 펼쳐져 있다. 예전에 시린 손으로 바지락을 캐던 그 갯벌이다. 영흥도 갯벌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밥줄이나 다름없다. 검은여선착장 왼쪽 건너편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갯벌에서는 굴이며 바지락을 양식한다. 갯벌도 갯벌이지만 뻘 사이사이로 뾰족이 솟은 검은 돌덩이에서도 굴은 잘 자란다. 동네 사람들은 그래서 검은여를 목숨 걸고 지킨다.

 

  십리포 해변은 선착장에서 10리 정도에 있어서 '십리포'가 되었을 뿐 해수욕장의 길이는 고작 200여m밖에 안 된다. 굵은 자갈과 왕모래가 바닥을 뒤덮고 있어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소리가 어울어진다. 해안 양쪽 끝의 암반 지대는 굴을 딸 수 있게 허용하므로 썰물 때는 바위와 갯벌에서 개와 고동, 바지락 같은 조개를 캐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밀물이 되어 해안으로 물이 차오르면 훌륭한 해수욕장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양쪽으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 바다의 정취를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 주차장이 협소하여 피서철에는 길에 차를 세우므로 진입하기가 어려운 것이 다소 흠이다.

 

   그런데 십리포해수욕장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해안 뒤편에 형성된 소사나무(일명 서어나무) 군락이 바다와 어울려 해안의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사나무란 서어나무의 한자 이름인 서목(西木)에서 온 것이다. 서어나무보다 훨씬 작게 자라는 나무이니 소(小) 자를 넣어 소서목(小西木)으로 불리다가 소서나무에서 소사나무로 변했다.

 

  이 소사나무 군락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던 주민들이 150여 년 전 척박한 땅에 방풍림(防風林)으로 조성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함께 심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다 죽고 생명력이 강한 소사나무만 살아 남아 지금 350여 그루가 스크램을 짜고 마을을 지키는 장정들처럼 마을을 지킨다.

 

  그런데 이들 소사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하나같이 술 취한 듯 비틀비틀, 구불구불 얽히고 설킨 채로 자라 괴수목(怪樹木)을 이루었다. 마치 해안에서 설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 독특하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따지고 보면 영흥도 주민의 고단한 삶의 한 단면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닐까.

 

  척박한 땅에 뿌리 박고
  매서운 칼바람 막으려다
  뒤틀린 생명이거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저 모진 근육질의 인내를
  나는 이제 사랑해야 하리

  옹이진 마디에서 꿈틀대는
  비명소리를 탁, 탁
  이제는 힘찬 용솟음으로 
  솟구쳐야 하리.

    - <졸고> 『소사나무의 꿈』 일부


  영흥도에 대한 남다른 체험을 가진 나로서는 소사나무가 단순히 미학적(美學的)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강인한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고자 하는 삶의 고단한 역정과 무관할 수가 없었다.

  5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소사나무는 나뭇잎이 무성한 한여름에는 햇빛과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나무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어준다. 그래서 피서객들은 소사나무 그늘 아래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겼다. 하지만 요즘에는 소사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훼손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알고 울창한 소사나무 군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해변 보행로 한쪽에 ‘인천상륙작전전초기지’ 비(碑)가 있다. 십리포 해수욕장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이 비는 영흥도해권전적비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우리 해군과 영흥도 주민들의 거룩한 희생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십리포 가는길, 영흥도 북쪽 해안길이다.
영흥도 바지락 최대 생산지 진두 갯벌
십리포해변,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나 있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십리포 해안의 소사나무 군락지
십리포해변에 선 '인천상륙작전전초기지'비

 

십리포해변데크
해변길 전망대에서의 조망
되돌아 오는 길

 

장경리 해수욕장과 일몰 감상

 

  장경리 해수욕장은 십리포해수욕장의 남서쪽에 있다. 차로 10분 거리로, 3km쯤 떨어져 있다. 100여 년이 넘는 노송 지대 1만여평이 자리잡고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 주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솔밭길을 제공하고 있다. 해변은 작은 모래로 되어 있는 백사장이 약 1.5㎞나 펼쳐져 있다. 이곳도 십리포 해변이나 마찬가지로 갯벌에서는 게나 고둥을 잡을 수 있고, 또 망둥어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어느 핸가 친구들과 찾아간 장경리 겨울 해변에서 투망으로 동어(숭어의 새끼) 수십 마리를 잡은 적이 있다. 물론 투망은 투망의 명수인 친구가 한 것이었지만 겨울바다가 내어준 뜻밖의 선물에 우린 환호성을 질렀고, 소금을 뿌려 연탄불에 구워먹으며 긴 시간 우정을 다지던 기억이 새롭다. 십리포보다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수평선 너머로 서해 낙조가 장관이어서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다. 바닷가 주변에는 펜션과 깨끗한 민박, 식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묵었던 집은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경리의 "바다와 들녘". 그 날 저녁 민박집 주인(함안행 씨)이 일몰 포인트가 좋다며 알려준 일몰을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바로 장경리 해변의 서쪽 신노루 마을 뒷산인데, 일몰의 장관을 보기 위해 여러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그 모양과 색채를 달리하는 일몰의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몰려가는 검은 구름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기도 하고 초콜릿 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언뜻언뜻 얼굴을 드러내는 저녁해의 모습이 어찌나 처연해 보였던지 나는 그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 어떤 목숨이 / 저토록 장렬하게 / 불탈 수 있다 하던가 / 세상의 헛된 욕망 불사르고 / 끓어오르는 의분을 삼키듯 / 어떤 생명이 저토록 처절하게 /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 하던가"(『일몰을 보며』에서)

 

 

 

장경리해변의 이모저모
장경리 일몰

 

 

갯벌 체험으로 좋은 용담이 해변

 

  용담이 해변은 영흥도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영흥도 내의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개발이 늦은 편이나 백사장과 50∼100여 년 된 해송 군락지가 함께 어우러져 약 800여m 가량 펼쳐진 아담한 해변이다.

  용이 승천한 연못이 있다고 해서 '용담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연못 근처 샘의 물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곳 갯벌에는 낙지, 소라, 굴, 바지락, 동죽, 게 등이 많아 간조 시에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수욕
장 앞쪽으로 영흥화력발전소 송전탑이 지나가고 공간도 좁아 해수욕보다는 친구들이나 가족단위 조개잡이터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통일사와 국사봉 산행


  영흥도(永興島)는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솟으며 형성된 자그마한 산줄기가 섬 전체에 걸쳐 뻗어 있다. 최고봉인 국사봉(156.3m)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주능선에 큰 기복 없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편안한 산행이 가능하다.

 

  특히 국사봉 정상 전망대의 조망이 멋지다. 섬 안에는 해발 123m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왕기의 후예들은 날마다 산봉우리에 올라 그리운 도성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과 융성을 기원하였다 하여 그 봉우리를 '국사봉(國思峰)'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국사봉까지는 십리포 해수욕장에서부터 약 5㎞에 이르는 임도(林道)를 따라 오르면 된다. 임도는 가벼운 등산을 즐기거나 산악자전거를 타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인천 송도 신도시와 시화호, 인천항을 드나드는 외항선과 섬 주위의 낚시배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국사봉 주변으로 등산로들이 뻗어 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코스다. ‘당작골 등산로’와 ‘양로봉 등산로’ ‘도장골 등산로’ ‘진여부리 등산로’ ‘망태산 등산로’ 등이다. 이들 등산로 대부분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로 좋다.

 

  장경리해수욕장에서 700m 거리의 국사봉 산자락에 에 통일사(統一寺)란 절이 있다. 조선 시대에 건립됐다가 1992년 대규모 중창불사를 한 것인데, 최선규 스님이 한국전쟁 당시 북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의 애타는 가슴을 달래며 하루 빨리 통일이 오기를 기원하여 건립한 것이다. 약 200여 명의 신도가 있는데 멀리 부산에서도 이 곳을 찾아 망향의 설움을 달랜다고 한다.

 

 

국사봉에 오르다
국사봉에서의 조망
국사봉 기슭에 자리한 통일사

 

영흥화력발전소와 에너지파크


  영흥도 서남쪽 94만평 부지에 화력발전소가 있다. 영흥도는 2004년까지만 해도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어촌마을이었고, 주민들의 소득 수준은 또한 매우 낮은 처지였다. 그러나 2004년 7월 영흥도 서남쪽 해안가 310만㎡ 부지 위에 용량 80만kW인 1, 2호기 화력발전소를 건설함으로써 조용했던 섬은 수도권 전력 사용의 메카로 등장했다. 지금은 1~6호기까지 확장되어 하루 최대 508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력은 수도권 전력의 20%를 담당 하고 있고, 생산 전력 중 60%를 서울과 경기지역에 공급할 만큼 비중이 높다.

 

  다행히 석탄을 태우는 데서 나오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은 법적허용 기준보다 낮다고 하지만, 화력발전소 측은 멍에처럼 따라붙는 환경문제를 고려하여 영흥도 주민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쓰는 눈치다. 외관으로 보이는 건물 외벽은 물론 주변 도로와 발전소 경내의 청결 상태 등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지역 개발 차원에서 발전소 바로 옆에 테마공원인 '에너지 파크'를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6만5천㎡ 면적에 10개 테마로 이뤄진 이 공원은 2007년 문을 연 이후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전기 및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에너지 사용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초·중·고 및 유치원 학생들에게 에너지 체험학습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전기 에너지 체험관인 e-오디세이는 놀이를 통해 배우는 에듀테인먼트 개념으로 운영 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뚜뚜’의 가상 캐릭터와 함께 ‘에너지 팩토리’, ‘빛과 요정의 숲’, ‘에너지 갤럭시’, ‘빛과 물의 별’로 전기와 신재생에너지의 생성원리와 활용에 관한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이름 그대로 에너지 공원이다. 영상관에서는 잃어버린 빛을 찾아 떠나는 뚜뚜의 모험이 3D 입체영상으로 전개된다. 옥외에는 공연장과 야외공연, 분수대, 산책로 등이 있어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다. 1월1일, 근로자의날, 설날 추석연휴에는 휴관하며, 입장은 무료다. (문의 : 영흥에너지파크 070-8898-3570)

 

 

영흥화력발전소 : 출처:힌국일보(20.11.29)
에너지파크의 외관과 내부
에너지파크의 e-오딧세이(위)와 하모니홀(아래)
에너지파크의 야외공원

 

여행을 마치면서

 

영흥도는 한 마디로 변화의 섬이었다. 내 어렸을 때와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주변 다른 섬들에 비하면 훨씬 빠르다. 영흥도가 눈에 띠게 변한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그중에서 일등 공신은 교통의 혁명으로, 배에서 다리로의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흥 화력발전소의 건설에 따라 일자리와 복지 혜택이 다른 섬보다 많다는 점이다. 현재 발전소 건설 인력이 2000~3000명에 달하며 앞으로 더욱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닷물과 해변이 깨끗한 해수욕장을 세 개나 가지고 있어서 피서하기에도 좋고 갯벌체험으로도 적합하다. 또, 연근해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혀 관광객들의 구미를 돋구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해변 곳곳에 예쁜 펜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은 찾아올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흥도는 앞으로도 다른 섬들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행 정보

 

○ 교통

 

 

대중교통
버스=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정류장에서 790번 좌석버스 하루 18회(05:50~22:10) 운행, 약 1시간 소요.( 문의 : 신강교통 032-773-8885) 혹은
인천 구터미널(용현동)에서 하루 네 차례 버스가 운행한다 .

 

자가운전 = 가는길은 크게 두 가지. 시흥시 시화산업단지에서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에 들어가거나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IC에서 빠져 대부도행 지방도로를 타는 방법이다. 대부도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선재도, 선재도를 관통하면 북동쪽 끄트머리에 영흥대교가 놓여있다.

 

 

○ 숙박 정보
- 미스터와이펜션 : 옹진군 영흥남로9번길, 010-3089-3369

- 태양펜션 :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156번길 33-17, 010-2609-4361

- 영흥도 펜션타운 : 옹진군 영흥면 영흥북로 145-22, 032-884-0007

- 인썸호텔 : 영흥면 영흥로757번길, 032-882-7400

- 하와이비치 : 옹진군 영흥면 영흥서로446번길 36, 032-886-9300

- 오블리크198펜션 :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251번길 25-56, 010-6592-1982

- 블랙트리글램핑&하우스블랙트리캠핑 : 영흥면 영흥로757번길, 010-6775-3050

 

 

 

○ 식당 정보

- 영흥일번지식당 : 생선회, 매운탕,옹진군 영흥면 영흥북로 3, 032-882-1018

- 만나뜨락 : 뜨락정식, 생선구이, 찜.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255, 032-880-1616

- 바다고양이횟집 : 회정식·양푼바지락칼국수, 영흥면 영흥북로 010-5642-3709,
- 영흥도바지락해물칼국수 : 칼국수, 영흥면 영흥북로, 032-886-3644
- 본토칼국수 : 바지락손칼국수, 영흥면 영흥북로, 032-890-4145
- 플로레도커피 : 아메리카노·카페라테, 영흥면 영흥로, 032)89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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