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최명희문학관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전북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29 / 063-284-0570
글·사진 남상학
최명희문학관은 경기전 동문에서 가까운 한옥마을 안에 있다. 아늑한 마당과 소박하게 꾸민 공원을 갖춘 최명희문학관은 대하소설 <혼불>로 널리 알려진 전주 출신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삶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부지 1,679㎡(509평)와 총면적 493.2㎡(160평),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2006년 4월 개관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의 문학을 기리는 아담한 문학관은 정갈하게 단장된 앞마당(정원), 문학관 정원에는 아기자기한 조각품과 소품들이 놓여 있어 마치 최명희 작가의 독자 사랑을 보는 듯하다. 작고 아담한 공간이지만 혼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문학관은 전시실인 ‘독락재(獨樂齋)’와 지하에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로 이뤄졌다. ‘독락’이란 당호는 홀로 자신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서 이룩한 문학의 높은 정신을 기리는 의미다. ‘비시동락’은 말 그대로 따로 때를 정하지 않고 노소동락(老少同樂), 교학상전(敎學相傳)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문학강연, 세미나, 기획전시 등으로 사용된다.
문학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작가의 육필 원고가 쌓여 있는 전시실, 전시실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는 물론, 작가가 생전에 사용한 문방사우와 서재가 재현되어 있다. 작가가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편지들을 비롯해 <혼불>이나 생전의 인터뷰·문학강연 등에서 추려낸 말들로 이뤄진 동영상과 각종 토론자를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국내 월간지 최장 기록을 세우며 월간 <신동아>에 소설을 연재하는 7년 동안(1988∼1995) 손으로 썼던 원고의 3분의 1 정도가 통유리 안쪽에 원고 탑으로 세워져 있는 것. 그 앞에 서니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최명희는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북대학교를 나와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한 최명희는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인 〈혼불〉 제1부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1988∼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 10권으로 묶어 완간했다.
그의 대표작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며느리 3대가 겪는 애절한 삶의 역정과 당시의 풍속을 생생하게 린 대하 장편소설이다. 그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 말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 마을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청암 부인이다. 열아홉에 청상이 된 그는 조카인 이기채를 양자로 맞고 쓰러져가는 이씨 문중을 일으켜 세운다. 사촌 여동생 강실을 좋아한, 이기채의 아들 강모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허효원과 결혼하게 되지만, 강실을 잊지 못한다. 강모는 징병을 피해 만주로 떠나고 병세가 깊어진 청암 부인은 죽음을 맞는다. 때마침 거멍굴의 상민들도 종으로 짓눌려 왔던 지난 세월의 한을 갚으려 하는데 상민 춘복은 강실을 범하고 만다. 이 일로 강실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여 그녀의 뱃속에는 춘복의 아이가 자란다. 가문이 점점 기울어져 가는데, 장손인 강모는 만주로 가서 소식이 없고, 효원은 아비 없는 아이를 낳는다. 청암 부인의 별세 이후 가문을 지키는 일은 이제 3대 종부인 강모의 아내 효원의 몫으로 남겨진다.”
(출처 : 다음백과)
특히 〈혼불〉은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여느 대하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무속신앙·관혼상제·관제·직제·신분제도·의상·가구·침선·음식·풍수 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 듯 환하고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최명희가 17년 동안 <혼불>에 기울인 공은 각별했다. 그는 1994년 64일간 <혼불〉의 주요 무대가 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瀋陽), 무단강(牧丹江)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끝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하는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우여 한 마디, 파나가는 심정으로 썼다"
고 한다. 그녀는 암에 걸려 몇 차례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원고지 1만 2,000매 분량에 이르는 이 작품의 집필과 수정·보완 작업을 매듭지었으며, 작품 완간 1개월 뒤 기어코 쓰러져 입원해야 했다. 그는 3차례의 수술과 2년여 투병 생활 중에도 제6∼7부의 집필 계획에 골몰할 만큼 작가 정신이 강인했다.
따라서 <혼불>을 읽기가 쉽지 않다. 민속학, 국어학, 역사학, 판소리 분야에서도 인정할 만큼 고증이 치밀하고 토속 어휘가 많아 속도가 붙지 않고 지루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모국어로 전통문화와 민속·풍습을 치밀하고 폭넓게 복원해낸 대하소설 〈혼불〉(전 5부 10권)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그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1998년 8월, 호남재단이 주관하는 제8회 호암상 수상소감의 일부다.
“다만 저는, 제 고향 땅의 모국어에 의지하여 문장 하나를 세우고, 그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없이 고단한 길이겠지만,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저는, 저의 삶과, 저 자신이, 서로 깊은 이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의 편지에서)
최명희는 〈혼불〉 외에 〈몌별 袂別〉·〈만종 晩鐘〉·〈정옥이〉·〈주소〉·〈제망매가〉 등의 단편들을 남기고, 1998년 52세 나이에 눈을 감았다. 참으로 아까운 나이다. 어디선가 중년의 아주머니가 단아한 모습으로 책 한 권 들고나올 것만 같다. 잠시 숙연한 느낌이 들었으나 한편 부듯한 마음으로 발길을 되돌려 나왔다.
▲가는 길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29 / 063-284-0570
▲관람 :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에는 휴관한다. 관람은 무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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