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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순천문학관,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작가 정채봉의 문학을 만나다.

by 혜강(惠江) 2019. 6. 3.

 

순천문학관 탐방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작가 정채봉의 문학을 만나다.

 

 

글·사진 남상학

 

 

 

 

▲순천문학관 입구의 환영 표지판

 

 

  순천만국가정원을 관람하고 나면 다음차례는 순천문학관과 순천만습지(순천만생태공원)이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순천문학관을 가려면, 꿈의 다리 옆에 있는 정원역에서 소형무인궤도열차 스카이큐브를 이용하면 좋다.

 

 스카이큐브는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동천(東川)과 순천만생태공원을 이어주는 약 4.6㎞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데 현재는 문학관까지 운행한다. 스카이큐브는 상공에 설치된 레일에 따라 운전자 없이 자동 운행한다. 10m 상공을 가로지르는 스카이큐브에 오르면 발아래 펼쳐지는 순천만정원과 동천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시속 약 40㎞로 달리고 정원역에서 문학관역까지 편도 약 12분이 걸린다.

 

 

 

▲순천문학관까지 가는 무인궤도열차 스카이큐브

 

▲문학관역, 현재는 이곳까지 운행된다.  

 

 

  스카이큐브에서 내려서니 순천문학관까지는 50m거리, 도보 2분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제부터는 시야가 탁 트이고 순천만습지가 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순천만습와 파라솔

 

▲순천만습지, 순천문학관 안내판

 

 

순천문학관 주소는 순천시 무진길 130 (교량동 1134-4)이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순천만습지 쪽 동천을 옆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순천문학관 안내판

 

▲순천문학관 표지석

 

 

 몇 걸음 걸어가면 초가건물이 보인다. 반갑다. 바로 순천문학관이다. 순천만문학관은 순천 대표 작가인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작가 정채봉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관이다.

 

 

 

▲멀리서 본 순천문학관

 

 

  문학관은 주변 순천만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형 초가 건물로 되어 있다. 문학관은 김승옥관, 정채봉관 외에 다목적실, 휴게동 등 9동으로 구성되었다. 양 작가의 전시관은 그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순천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소설가 김승옥문학관

 

 

  순천문학관이라 쓰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먼저 김승옥관이다. 김승옥관에는 소설가 김승옥의 소설 원고, 영화 대본, 포스터, 신문기사 등이 전시돼 있다.

 

 

▲김승옥관은 생태환경에 어울리게 낮은 초가형태다.

 

 

  김승옥(金承鈺, 1941~ )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은 4세 때 부모와 함께 귀국해 전라남도 순천에서 살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1952년 『소년세계』와 『새벗』에 동시를 발표하고, 순천중학교에 입학한 뒤 교지에 콩트와 수필을 투고하는 등 그는 일찍부터 문학에 눈떠 두각을 나타낸다.

 

 

 

 

▲김승옥이 살아온 길

 

 

   1957년 순천고등학교를 거쳐 196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같은 해에 4·19를 경험한다. 그는 곧 교내 신문 『새세대』의 기자로 활동하는 한편,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한 『서울경제신문』에 만화 <파고다 공원>을 연재해 학비를 조달하는 등 문학과 그림에 걸쳐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재학 중인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생명 연습>은 시골 출신의 한 대학생이 겪는 서울 생활을 통해 소외(疎外) 의식을 그려내고 ‘극기’와 ‘자기 세계’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소설가 김승옥 사진

 

 

   같은 해 김현 · 최하림 · 강호무 · 서정인 · 김치수 · 김창웅 · 김성일 · 염무웅 · 곽광수 등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펴내고, 여기에 단편 <건(乾)> <환상수첩>과 이듬해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등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작품 <서울 1964년 겨울>로 제 10회 동인문학상 수상

 

 

  1964년 <역사(力士)〉를 선보인 그는 이어 『사상계』에 <무진기행(霧津紀行)>, 『문학춘추』에 <싸게 사들이기>, 『세대』에 <차나 한 잔>을 발표한다. <차나 한 잔>은 자신의 대학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신문 연재 만화가가 연재 중단 통고를 받는 과정을 도회의 어법으로 간결하고 재치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어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 1966년 <다산성(多産性)>, <염소는 힘이 세다>, 1967년 <내가 훔친 여름>을 발표함으로써, 1960년대 탁월한 감수성을 무기로 단편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개척해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승옥의 작품집

 

 

   한국 단편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단편 소설 <무진 기행>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전형성을 지닌 세 인물을 제시하여 인간의 고독과 소외, 의사소통의 단절, 피상적인 인간관계만을 강요하는 도시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무진 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은 순천이다.

 

 

 

▲<무진기행>의 모티브는 순천만이다.

 


<
무진 기행> 줄거리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 윤희중은 서른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이다. 그는 동거하던 여자가 떠나버리자 4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 남은 미망인이 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다. 결혼한 그는 곧 제약 회사의 전무 자리를 약속받는다. 며칠 후면 그 아내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될 몸이다.

 그러나 주인공 윤희중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이런 속물적이고 위장된 삶의 방식에 저도 모르게 혼란을 일으킨다. 그는 잠시 동안의 휴가로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무진을 찾는 행위는 순수한 인간관계, 순결한 사랑에 대한 주인공의 무의식적 갈망의 표현이다.

 그에게 무진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인 박, 중학 동창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음악교사인 발랄한 처녀 하인숙 등이다.

 문학 소년이었던 박은 그를 우러러보고, 출세한 속물인 조는 갑자기 출세한 그를 동류로 취급한다.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의 유혹에 몸을 맡기며,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 하고 그와 일주일 동안만 멋진 연애를 경험하고 싶다는 하인숙에게서 그는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그는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아내를 받고는 갈등한다. 서울로 가겠다고 작정한 후,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찢어버린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는 서울로 간다.』

 

 

 

▲무진기행

 

▲이어령교수의 평가

 

 

  윤희중의 결혼은 사랑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돈과 출세라는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다. <무진 기행>에서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 이익에 지배되는 배반과 무책임의 사랑이다. 작가는 「무진 기행」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 그중에서도 사랑이라고 일컬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의 양식을 통해 1960년대에 들어서 변화하는 한국인의 삶의 풍경과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김승옥의 소설을 영화화한 <안개>와 김동인의 감자

 

 

 그는 이후 <무진기행>을 <안개>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로 자리를 옮겨 시나리오 작가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김동인의 <감자>,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을 각색한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1968년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을 시나리오로 각색해 대종상 각본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승옥은 1969년 『주간여성』에 <보통여자> 연재 이후 한동안 붓을 꺾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절친한 친구였던 김지하의 구속이었다. 한 학번 선배였던 김지하는 김승옥과 막역한 사이였다. 김승옥은 본업인 글쓰기는 제쳐두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을 끌어 모아 김지하의 구명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작품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이어령이 그를 호텔에 감금하고 거의 반강제로 글을 쓰게 하여 단편을 하나 썼는데 그게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서울의 달빛 0장>이다. 김승옥의 후반기 작품인 <서울의 달빛 0장>은 1977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다.  1970년대 성(性) 관념을 소재로 하면서도 도식성(圖式性)에 빠지지 않고 뛰어난 통찰력과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 시대의 인간 문제를 그려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먼지의 방>을 연재한 신문

 

▲기독교 체험을 다룬 자료

 

▲기독교 문화대상 수상기록과 상패

 

 

 그러나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문학은 단명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먼지의 방> 일부가 신군부의 검열로 삭제되자 그는 펜을 던졌다.

 

 그런 가운데 김승옥이 1981년 4월 27일 새벽,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방언을 하는 등 거듭된 체험을 통해 그의 인생관,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어 인도 선교사로의 소명을 감당하기도 하고 성결신힉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기도했다. 한편 문단은 김승옥의 삶의 변화를 적잖은 충격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그는 그동안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소재로 작품을 써왔던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에게 붙잡혀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으로 인생관과 세계관의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기독교 신자를 박해하던  바울(사울)이 하나님을 만나 회심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면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2004년에 나온 <내가 만난 하나님>은 김승옥의 종교체험에 대한 간증서였다.    

 

 

▲김승옥이 하나님을 만난 뒤 출간한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의 회심 내용을 전하는 신문기사

 

 

 그는 2003년 2월, 절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이문구의 부음을 접하고 장례식장에 도착한 직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장애가 왔다. 그 후 기적적으로 몸은 회복되었으나 80에 가까운 나이이고 보니 활발한 활동이 어려운 형편이다.

 

 경력으로는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 샘터사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수상내역을 보면, 1964 제10회 동인문학상, 1968 제7회 대종상영화제 각본상, 1977 제1회 이상문학상 대상, 2012 제5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2014.10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김승옥문학상 작품집

 

 

    KBS 순천방송국은 2013년부터 김승옥과 그의 대표작 <무진기행>을 기리고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와 한국문학을 이끌 재능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김승옥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선발하고 있다.

 

 

동화작가 정채봉관

 

 

정채봉관 전경

 

 

  정채봉관은 김승옥관과 한 뜰 안에 있다. 정채봉관 역시 초가 형태다. 이곳에는 동화작가 정채봉의 육필원고 등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 정채봉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

 

 

   정채봉(丁埰琫, 1946~2001)은 순천(順天)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했으나 세살 때 여동생을 낳고 스무 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1948년에 일가족과 함께 전라남도 광양으로 이주하여 조모의 슬하에서 성장하는 동안 글쓰기로 외로움을 달래며 지냈다.

 

 

 

 

 

정채봉이 살아온 길

 

 

  1966년 광양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 중인 1973년 『전라남도 동아일보』 동화 부분에 〈꽃다발〉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으며 극심한 내면의 혼란에 시달리다가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그의 다양한 종교체험은 기존의 문학적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룡사 노송 벽화 이야기를 다룬 동화 <물에서 나온 새>(1983)나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소년의 일대기를 그린 소년소설 <성 유대철>은 모두 종교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희구한다. 그의 동화들은 빼어난 감수성을 앞세운 서정적 문체와 소설적 기교로 독자들을 흡인한다.

 

 

 

 

전시실 내부

 

 

   이후 11권의 동화와 7권의 생각하는 동화, 11권의 에세이집과 시집을 발표하였다. 특히 『물에서 나온 새』를 비롯하여 1984년의 『오세암』, 1991년에 나온 『생각하는 동화』(전 7권) 등은 모두 3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남겼다.

 

 

 

정채봉의 연대기 및 문학사상 

 

 

정채봉이 남긴 작품

 

 

 

  그의 대표작 『오세암』은 설악산의 오세암이라는 암자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동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는 천진무구한 다섯 살 난 어린이의 마음이야말로 불심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현대인들로 하여금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권하였다. 이 작품은 2003년 성백엽 감독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다음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오세암』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2003년 4월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동화집 <오세암> 

 

 

   방정환 · 윤석중 · 이원수 이후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한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또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샘터에 연재하여 한국에서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열어 어른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온 작가였다.

 

 

 

오세암 애니메이션

 

 

 그 외의 작품으로는 동화 〈돌 구름 솔 바람〉 〈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 〈눈동자 속으로 흐르는 강물〉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느낌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모래알 한가운데』 『그대 뒷모습』 『사랑을 묻는 당신에게』 등의 에세이집과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소설 〈초승달과 밤배〉 상·하권 등이 있다.

 

 

 

정채봉 전집

 

 

 

  한국 동화작가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와 『오세암』이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 번역 소개되며 한국의 대표 동화작가로 활약했다. 간암이 발병한 뒤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2001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순천시에서 2010년 순천문학관 내에 정채봉관을 설치하고, 2011년 여수MBC에서 ‘정채봉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정채봉문학상

 

 

  주요 경력으로는 1978년 월간 『샘터』에 입사하여 작고할 때까지 기자, 편집부, 기획실장, 이사 등을 지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과서 집필위원 및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계간 『문학아카데미』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1998∼2001)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잡지언론상, 새싹문학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동국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정채봉관 옆의 장독대

 

 

▲정채봉과 '순천 사랑'

 

 

 순천에서 문학적 꿈을 키운 두 작가를 만나고 나오니 문학관 내 부속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로 동천 하류에 널브러진 갈대들판이 반긴다.

 

 

 

순천문학관 부속건물 

 

순천만 갈대 들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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