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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베트남, 필리핀, 인니, 말레이

다낭 여행 (1) : 활기 흘러넘치는 다낭에서 '젊은 베트남'을 만나다

by 혜강(惠江) 2019. 2. 3.

 

다낭 여행 (1)

 

퇴직교사들과 함께 떠난 베트남 중부 여행 

활기 흘러넘치는 다낭에서 '젊은 베트남'을 만나다 

 

 

· 사진 남상학

 

 

 

  밤늦게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081㎞를 4시간 30분 정도 날아서 베트남 다낭에 도착했다. 평생 한 직장에서 근무한 퇴직교사 7명과 친구 한 분 모두 8명으로 구성된 우리 여행팀은 다낭을 비롯하여 베트남 최후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와 그 왕조의 흔적이 남아있는 호이안을 둘러볼 계획으로 출발했다. 

 

 

 

 

▲ 출국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다낭 국제비행장에 착륙하여 입국장을 나서니 우리 여행의 인솔자인 김동헌 부장이 피켓을 들고 기디리고 있었다. 숙소로 오는 짧은 시간에 우리는 김동헌 부장으로부터 자기 소개와 함께 우리가 묵을 호텔, 내일의 기상 시간, 식사 안내 등 설명을 들었다.

 

 

 

 

 

▲다낭국제공항 도착

 

 

4성급의 피비텔 호텔(Fivitel hotel Da Nang)

 

 

 이번 베트남 여헹 중 우리가 묵을 숙소는 다낭국제공항에서 2㎞ 거리에 있는 4성급 호텔 피비텔(Fivitel hotel Da Nang)이었다. 이 호텔은 한강(Sông Hàn)변 쩐다리(Tran Thily) 옆에 위치하여 뒤로는 한강의 물줄기와 구시가지가 펼쳐지고 앞으로는 신시가지와 미케 해변이 훤히 보였다. 우리나라의 한강(漢江)을 연상케 하는 한강변이어서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은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깨끗했고, 25층을 3개의 엘리베이터가 24층까지 오르내린다. 1층에는 안내데스크, 기념품점, 미니바가 있고, 식당은 4층에 있었다. 24층에는 미니수영장, 마사지실, 피트니스 시설과 옥상으로 연결되는 스카이바를 운영하는 등 제법 호텔의 면모를 갖춘 셈이다. 호캉스가 가능할 만큼 시설이 괜찮다.

 

 옥상에선 주변 전망을 즐기며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옥상정원을 만들어놓았다. 호텔 이용하는 이는 누구나 옥상에 올라 바람을 쐬며 주변 경치를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우리는 3일간 이 호텔에 머물며 옥상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호텔 옆은 ‘유로 빌리지’라는 고급주택지여서 주변 역시 조용하고 깔끔했다.

 

 

 

 

 

 

 

 

 

▲우리가 짐을 푼 피비텔호텔(Fivitel hotel Da Nang), 아래 사진은 옥상정원

 

 

호텔 옆 한강을 가로지르는 쩐다리(Tran Thily)

 

 

새벽, 용다리까지의 산책

 

 

  숙소에서의 첫날 밤은 고단했던지 숙면을 취했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식사 전까지 여유시간이 있어서 같은 층에 머물고 있는 여 선생님들과 아침 산책을 나섰다. 서울 같으면 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일 텐데 이곳은 이른 아침인데도 18도 내외라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멋진 다리가 보여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발길을 옯겼다. 이름은 '드래곤브릿지'라고도 불리는 용다리. 용다리는 다낭 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드는 길이 약 7㎞의 한강(Sông Hàn)을 가로지르는 6개의 다리 중 하나라고 한다. 다리 위로 용트림하는 구조물을 설치하여 이름이 '용다리'로 불리게 되었단다.

 

 이 용다리는 다낭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큼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주말 오후 9시면 거대한 용머리가 불을 뿜는 퍼포먼스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용다리까지의 아침 산책

 

 

 호텔에서 용다리로 오가는 길에는 유럽풍의 상류층 고급 주택 유로 빌리지(EURO Village)라는 주택단지가 있다. 정원이 아름다운 유로 빌리지는 아마도 다낭에 근무하는 외국인이나 상류층이 거주하는 듯했다. 강에 인접해 있는 주택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출입구마다 입출입을 감시하는 등 보안이 철저했다.

 

 

 

 

 

 

▲호텔 옆 산책길에서 만난 유로 빌리지 (아래 사진은 호텔 옥상에서 촬영한 것)

 

 

 호텔 식당에서 조식뷔페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먼저 다낭 투어에 들어갔다. 차에 오르면서 우리 여행의 인솔자인 김동헌 부장으로부터 베트남과 다낭에 대한 여러가지 내용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다.

 

  베트남의 역사와 한국과의 관계, 베트남 화폐 사용 방법, 베트남인들의 의식주, 다낭에서 둘러볼 장소 등 그의 설명은 상세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우리 일행은 흥미 있게 경청했고 다낭 여행에 큰 도움을 되었다. 먼저 다낭 투어에 앞서 그의 설명을 바탕으로 베트남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우리를 태울 미니버스가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다.

 

 

베트남의 지리와 농산물

 

 

  베트남은 동쪽으로는 통킹만, 남쪽으로는 남중국해, 남서쪽으로는 타이 만과 닿아 있으며, 북쪽에 중국이, 서쪽에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베트남의 국토 면적은 330,341㎢인데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북의 길이는 약 1,650 Km이고 동서의 길이가 가장 좁은 곳은 약 50 Km밖에 안 된다.  베트남의 동북부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중동부 지역은 해안 저지대로 남중국해 쪽으로 비스듬히 비탈져 있는데, 송코이 강 삼각주에서 메콩 강 삼각주까지 펼쳐져 있다.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메콩 강의 하류 5% 정도가 베트남에 속해 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긴 국토의 특성 때문에 열대, 아열대, 및 온대 기후를 두루 갖추고 있다. 대체로 북위 18도 이남지역은 열대기후, 북쪽은 온대 겨울 건조기후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의 계절은 동절기(11월~4월)와 하절기(5월~10월)로 나뉘지만, 남부 지방에서는 두 계절 사이의 큰 차이가 없다.

 

  산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는데 근래에 들어 커피, 후추, 캐슈넛과 같은 환금 작물 재배가 크게 늘었다. 베콘 강 하류인 남부 저지대에서 생산되는 쌀은 1년에 2~3모작이 가능하여 베트남은 쌀 수출국이다. 특히 쌀, 커피, 후추 등은 세계 시장의 1, 2위를 다툰다.  그러나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우리 여행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 호이안, 후에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의 역사는 굴곡진 역사였다. BC 200년경 세워진 베트남 독립 왕국은 중국으로부터 2차례 정복되었다가 1802년 통일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1883∼1939년간에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1939∼45년간에는 프랑스 속령으로 지배를 받았다.

 

 그후 베트남은 1945년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 영도 아래 베트남 독립을 선언했다. 프랑스에 대항해 7년 동안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은 결국 1954년 베트남이 승리하면서 종결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다시 1954년 7월 21일, 우리나라가 남북한으로 양분되듯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임시 분할되어 그후 베트남은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의 친(親)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미국의 개입하여 베트남 전쟁이라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때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이 치열해진 1960년대 중반 미국의 요청에 의하여 월남에 파병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를 결정하자 한국군도 단계적으로 철수를 시작하여 1973년 3월 최종적으로 철수한 바 있다.  

 

 1973년 휴전이 되고 미군이 철수한 후 1975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공격하여 남베트남 정부를 붕괴켰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그후에도 베트남은 1978년 캄보디아군 사이의 국경분쟁, 중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런 와중에 베트남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간 기업들에 대한 자유화 조치를 감행했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많은 아시아 및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했으며, 이로써 국제적인 고립상태에서 벗어났다. (다음백과 참조)

 

 

 

▲베트남은 강대국의 침략은 물론 지정학적으로는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관계

 

 

 대한민국과 베트남 관계는 1956년 대한민국과 베트남 공화국의 수교로 시작되었다.  1954년 이후 한국은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의 친(親)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미국이 개입하여 베트남과 전쟁이 거듭하던 당시 미국의 요청에 의하여 1964년 남베트남(월남) 진영으로 연 인원 32만여 명의 군대를 파병하였다가  1973년 사이공 함락이후 완전히 철수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단교하였다.

 

  그후 1992년 12월 22일, 국제정세의 변동과 두 나라 사이에 신뢰가 획복되면서 대한민국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은 재수교하여 경제적, 문화적, 인적으로도 교류가 활발해지게 되었고, 무역 규모에 있어서 무시 못할 정도의 무역대상국이 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 베트남 정부가 사회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자본주의 기반 정책으로 과감하게 고쳐나가면서 아시아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을 경제 개발의 모델로 삼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불릴 만큼 가까워져 현재 베트남은 한국의 3대 투자 대상국 중 하나로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매우 활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한국 기업의 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1위국에 올라있다.

 

 더구나 박항서 축구 감독이 베트남 축구팀을 맡아 선전을 거듭하고 있어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은 극을 치닫고 있다. 한때 베트남 땅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어 적대적인 전쟁을 치렀던, 그래서 역사의 그늘이 드리운 베트남이 현재 친구로서, 동반자로서의 유대를 넓히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유대감을 표시하는 깃발

 

 

베트남 화폐단위는 '동(dong)'

 

 

 베트남의 화폐 단위는 동(dong)이다. 베트남에서 발행되는 은행권의 액면은 여러 가지가 있다. 10,000동, 20,000동, 50,000동, 100,000동, 200,000동, 500,000동은 지폐이며, 5,000동, 200동, 500동, 1.000동, 2,000권은 동전이다.

 

 동전은 현재 통용되지 않는다. 특히 20,000동관과 5,000동권은 도안 및 색상이 유사하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500,000동 100,000동 50,000동권은 플라스틱 재질의 얇고 강인한 이른바 첨단 폴리머지폐이다. 단위가 크고 종류가 많아서 복잡하게 느껴지며, 지폐의 모델이 모두 베트남 건국영웅 호치민인 관계로 시각적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

 

 베트남에서 물건을 살 때는 베트남 돈에서 ‘0’을 하나 제외하고 ‘2’로 나누면 한국 돈의 액수가 된다. 예를 들어 베트남 돈 100,000동은 100,000에서 ‘0’을 제외한 10,000을 ‘2’로 나눈 (10,000÷2) 5,000원에 해당한다. 여행 중에 흔히 마시는 물, 음료,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20,000동(한화 1,000원)이다. 환전 시에는 주로 10만동, 20만동으로 교환해 준다. 전통 시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달러 사용이 가능하므로 굳이 베트남 돈으로 환전할 필요는 없다.

 

 

 

 

 

베트남인의 의식주 

 

의상 : 아오 자이와 논(non)

 

 

 베트남 남자들은 갈색 셔츠와 흰색 바지를 주로 입고, 여성들은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ao dai)를 즐겨 입는다. ‘아오’는 ‘옷 또는 저고리’, ‘자이’는 ‘길다’는 의미로 ‘긴 옷’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미혼은 흰색, 기혼은 유색이다. 아오 자이는 19세기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6년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에 부적합하고 퇴폐적이라고 아오 자이 착용을 금지했다가 1986년 도이 머이 정책 추진 이후 완화되었다. 최근에는 각종 예식에서 즐겨 착용하고 여고생들의 교복이나 주요 기업체의 제복으로도 사용된다.  

 

  아오 자이와 함께 베트남 여인들의 상징인 논(non,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모자)은 13∼15세기 중 쩐(Tran) 왕조 시대에 유행한 모자로, 비가 올 때는 우산으로 햇볕이 내리쬘 때는 양산이 되며, 더울 때는 부채로 쓰인다.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 자이를 입은 고등학생들

 

▲ 논을 쓴 여인

 

◈ 음식 : 쌀국수 '퍼(Pho)'

 

 

  베트남의 음식은 쌀과 생선이 주식이다. 베트남은 3모작이 가능한 전형적인 농업국으로 미국에 이어 태국을 물리치고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베트남 쌀은 우리나라의 쌀과는 달리 퍼석퍼석하여 다이어트 쌀로도 통한다.  

 

 쌀을 이용한 빈대떡· 쌀· 과자 등도 많지만 주로 '퍼(Pho)'라는 쌀국수를 즐겨 먹는다. 쇠고기 뼈나 닭고기를 밤새도록 끓여서 우려낸 국물을 쌀국수에 붓고 야채와 닭고기를 얹는데 기본조미료는 액젓 같은 '느억맘'을 사용한다. 가격이 저렴하여 즐겨 먹는다. 쌀 이외에 빵도 많이 먹는데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프랑스 바게트 등 다양한 빵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만 사람들처럼 아침밥은 집에서 해 먹지 않고 거의 대부분 외식을 한다. 주로 쌀국수 '퍼'를 사 먹는 진풍경은 아친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아침 산책을 겸해 골목을 지나다 보면 흔히 목격하는 광경이다. 저녁도 밖에서 사먹거나 사들고 집에 들어가 먹는 일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생활의 편리함 때문이리라.

 

 

 

 

▲주식인 쌀국수와 거리에서 식사하는 모습

 

 

주택 : 좁고 기다란 것이 특징

 

 베트남의 일반 가옥 구조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베트남 집들은 대부분 좁고 길게 규격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토지 필지의 개념이 정형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로에 접한 면을 기준으로 5m에 안쪽으로는 보통 20m~25m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면에서 보면 좁은데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간 모양새다. 폭이 좁다 보니 최대한 건물을 붙여서 짓는 편이다.  그렇게 건물을 짓다 보니 도로가의 건물들의 경우 정면은 치장을 하는데 옆면은 그냥 맨 시멘트 벽체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에는 철 구조물의 문을 설치하고 바로 거실이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거실의 벽 쪽에는 작은 사당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좁은 복도를 따라서 일렬로 방이 늘어서 있다. 상류층의 주택이 아닌 서민 주택은 가장 끝에 화장실과 주방이 있다.

 

 2층의 경우도 구조는 비슷한데 거실의 사당이 있는 자리에 계단이 놓이고 2층도 1층과 마찬가지로 일렬로 방이 쭉 배열된다. 2층의 테라스가 있는 방 쪽에 제단을 만들고 그 곳을 제실로 사용한다.

 

 

 

▲베트남의 가옥의 외부와 내부, 2층 전면에 사당이 보인다. 

 

베트남의 교통수단

 

 

  베트남은 오토비이의 천국이다. 베트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 그대로 다낭에도 오토바이가 엄청나게 많다. 그 이유는 자국 제 차량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수입차에 대해 200%의 관세를 매기고 있기 때문에 차 값이 상당히 비싸다.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유지하기 힘든 형편이다. 

 

 게다가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이 열악하다. 따라서 남녀 할것없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오토바이다. 식구 숫자대로 오토바이가 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헬멧에 마스크를 한 오토바이 행렬은 참으로 장관이다.

 

 

 

 

▲베트남의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들

 

 

베트남 중부 휴양도시, 다낭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나라로 활처럼 휘어있는 국토의 길이만도 1,650㎞에 달한다. 다낭은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시 딱 중간(각 직선거리 600㎞)에 자리를 잡고 있는 베트남 중부 최대의 상업도시이다. 베트남에서는 호치민, 하노이, 하이퐁 다음으로 큰 4번째 도시이기도 하다. 다낭은 베트남 내 여느 도시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계획도시이자 해양 휴양도시로 이름이 높다. 

 

 다낭이 최근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우선 사계절 따뜻한 날씨인데다 비행거리가 짧고, 관광객을 수용할만한 충분한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유적이 많고, 천혜의 자연환경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가가 저렴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 등 다양한 매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라고 가까운 거리에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와 놀거리가 넘쳐나는 호이안을 함께 다녀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다낭은 항공, 호텔, 자유여행은 물론 패키지까지 고루 판매되는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다낭 시가지는 미케해변을 끼고 활처럼 휘어져 있다.  

 

▲다낭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사이를 흐르는 한강 

 

 

다낭 롯데마트 건너편 전통시장 방문

 

 

 다낭에는 한국의 롯데마트가 들어서 있어서 반가웠다. 한국의 의류나 식품들도 넘쳐난다. 그러나 한국 여행객이라면 굳이 베트남에 와서 한국의 마트에 들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들의 호기심은 당연히 베트남인들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재래시장에 있기 마련이다. 

 

  다행히 롯데마트 대각선 쪽에 있는 전통시장이 있었다. 골목마다 각종 상품이 가득 쌓여 있다. 베트남 전통시장은 한국의 전통시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베트남의 특산물인 커피, 게피, 견과류, 과일 말이 등 살 것이 많다. 굳이 물건을 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전통시장 구경은 볼거리가 많고, 또 전통시장은 그 나라의 삶의 모습을 쉽게 알 수 있어서 좋다. 이곳저곳 구경하며 기웃거리다가 짧은 베트남 말로 말을 붙여본다. 

 

 신 짜오(안녕하세요)

 깜 언(감사합니다)

 응온(맛있어요)

 땀 비엣(안녕히 계세요/가세요)

 

 이 정도만 사용해도 중간 이상의 환대는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손님된 입장에서 간단한 현지어 구사와 같은 작은 성의만 보인다면, 생각지 않게 견과류나 마른 과일도 얻어 먹을 수 있다.  

 

 

 

 

 

 

 

 다낭에서 만난 베트남의 모습은 활기찼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붐볐고, 오토바이는 사정없이 달렸다. 전통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저곳에 빌딩을 건축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나의 베트남 여행은 남부 호치민, 북쪽의 하노이에 이어 이번 다낭 여행이 세 번째이지만, 베트남 여행은 어느 때나 나에게 '젊은 베트남' '활기찬 베트남'으로 각인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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