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의 화진포
호수·바다·해당화·소나무가 어우러진 경승지
글·사진 남상학
▲화진포 호숫가와 해변에는 예쁜 해당화가 유난히 많이 핀디.
고성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꽃 피는 나루’라는 뜻의 화진포(花津浦)로 달렸다. 예로부터 호수 주변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강원도 ‘고성의 꽃’이다. 그래서 고성군은 군화(郡花)를 해당화로 정했다.
굳이 화진포가 ‘고성의 꽃’이라고 한 이유를 들자면, 먼저 화진포는 호수가 예쁘다. 풍경은 거대하지만 고즈넉하다. 면적 72만평, 16㎞의 둘레를 자랑하는 사철 호수 주위에 여름 한철 해당화가 핀다. 더구나 광활한 호수 주위에 50~100년생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붉은 해당화가 어우러진 풍광은 어디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여름철 이곳을 방문했던 나는 해당화와 소나무 숲이 연출하는 풍광에 황홀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 가을로 물들어가는 화진포 호수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염담호수(鹽淡湖水)엔 숭어, 연어, 도미, 잉어, 붕어, 장어, 빙어 등의 갖가지 물고기 떼가 놀고,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 등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새하얀 고니 떼가 노니는 모습은 마치 '백조의 호수'를 연상케 한다. 갈대 숲 속에 풍부한 먹이가 있어 철새들에게 알맞은 휴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화진포는 해변이 아름답다. 소나무 숲을 경계로 호수와 이웃하고 있는 바다는 수 만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 해변의 모래는 모나즈 성분으로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한자의 울 '명'자와 모래 '사'자를 써 '명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의 백사장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으며 경사가 완만할 뿐만 아니라 뒤로 해송이 우거져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강원도 최북단 청정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더구나 화진포 앞바다에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랄까? 드넓은 바다 한 가운데 점을 찍어놓은 듯 금구도(金龜島, 거북섬)가 떠있다. 해변에서 5백여m 떨어져 있는 금구도는 대나무 숲과 갈매기의 나는 모습은 천하의 절경이다. 조선 말기에 김삿갓은 금구도의 파도를 ‘화진 팔경’ 중에 포함시켰다. 금구도는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거북이와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이 섬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경치도 아름답지만 광개토왕의 능이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실제로 섬에는 화강암으로 축조된 2중 구조의 성벽과 보호벽 · 방파성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 문헌에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들이 엿보인다.
▲ 화진포 앞 바다에 있는 금구도, 이곳에 광개토대왕릉이 있었다고 한다.
또 화진포에는 유명 인사들이 별장을 짓고 살았다.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리라. 일제강점기에는 외국 선교사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고, 8·15해방 후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인물 이승만, 이기붕, 김일성 등의 별장지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 집들이 남아 있다.
이 중 해안가 산기슭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은 김일성이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를 찾았던 곳이다. 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 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금 ‘화진포’의 성 내부에는 김일성의 정체, 독재체제 구축과정, 한국전쟁 도발, 그리고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도발만행 등 북한관련 자료를 판넬식으로 게시하고,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 등 관련자료 사진도 전시해 놓았다.
▲ 화진포 해변 기슭에 자리잡은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이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언덕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이승만 별장은 바다는 보이지 않고 화진포 호수만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서로 3km 정도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외부는 별장답지 않게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별장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한데 어우러진 화진포 두 개의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까닭에 화진포의 세 별장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부는 침실과 집무실로 쓰이던 방 두 개와 거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유물들을 전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단출한 가구와 물건들 그리고 생전의 사진들에서 소박하게 살았던 그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중간쯤 소나무 숲 속에 이기붕 별장이 있다. 이 세 별장은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이기붕 별장
이 모든 조건 덕분에 화진포는 일찍이 호수주변에 경치가 워낙 뛰어나 예로부터 풍림(楓林), 취연(炊煙), 정각(亭閣), 귀범(歸帆), 낙안(落雁), 해당(海棠), 치수(治水), 농파(弄波) 등의 화진 팔경이 유명하였다.
화진포에 가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천천히 호숫가나 해변을 갈으며 바람결 하나, 물빛 하나 차근차근 눈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느껴볼 일이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이곳에 와서 고요한 풍광에 취해 시를 읊었다고 한다. 정영기 시인은 '화진포에서' 라는 시에서 "
...옥빛 바다가/ 큰 바위를 안고 살아가는 곳/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가/ 솔바람과 함께 소리치는 곳/ 그곳에 작은 별장 하나 짓고 싶다. ... 흔적은/ 내 몫이 아니니/ 훌훌훌 옷을 벗어 던져라// 큰 바위 뒤에 숨어서/ 옥빛 바다와 사랑을 하면 되고/ 한 번을 사랑해도/ 해금강의 바위처럼/ 하얗게 부서지면/ 그곳이/ 내 작은 별장이 되리라."
라고 읊었다. 이 외에도 화진포에는 화진포생태박물관과 해안 북쪽에 화진포 해양박물관이 있다. 특히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개, 산호 물고기 화석 등 1,500여종 4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어 학생들이 관람하기에 좋다.
▲화진포해양박물관(이곳엔 희귀한 조개와 산호 물고기 화석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듯, 해당화 피는 호수와 깨끗한 바다를 갖춘 뛰어난 자연 경관, 역사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숲 속의 세 별장, 해양박물관 등이 있는 화진포는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고성의 대표적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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