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숲길
녹슨 철길이 청춘의 추억을 불러오는 경춘선숲길
박순욱 기자
경의선숲길을 먼저 가본 뒤 경춘선숲길을 가보면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의선숲길 중 가장 붐비는 연남동 구간 양쪽으로 늘어선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경춘선숲길 구간에선 별로 없다. 또, 강북 최대 상권 중 하나인 홍익대 상권을 끼고 있는데다 도심에서 가까운 경의선숲길과 달리, 경춘선숲길은 월계동, 하계동, 공릉동 등 서울의 북쪽인 노원구에 위치하고 있어 외지인들의 접근성도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경춘선숲길은 외지인보다는 지역주민들의 산책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산책하기 좋은 공원' 측면에서 볼 때는 경춘선숲길이 경의선숲길보다 훨씬 후한 점수를 주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첫째로, 전철역, 도로, 다리 등으로 인해 산책로가 끊긴 구간이 경춘선숲길이 경의선숲길에 비해 훨씬 짧다. 경춘선숲길은 전체 구간 길이 6km 중 공사 중으로 공원이 단절된 구간이 400여m에 불과해 5.6km 정도가 온전히 경춘선숲길로 조성돼 있다.
반면 경의선숲길은 거의 절반이 산책로가 끊겨 있다. 전체 구간 6.3km 중 실제로 숲길이 조성된 길이는 3.8km에 불과하다. 나머지 2.5km는 지하철역세권 개발, 육교, 도로 등으로 숲길이 끊겨 있다. 그러다보니 전체 구간을 한번에 걷겠다는 사람 입장에서는 걷는 재미가 아무래도 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걷는 재미가 쏠쏠한 것은 경춘선숲길이다. 사람들로 덜 붐비니까 호젓함도 더하다. 경의선숲길은 예쁜 카페를 비롯해 유혹거리들이 많은 반면, 경춘선숲길은 이런 인프라들이 별로 없어 걷는데 집중할 수 있다.
경춘선숲길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시작해 옛화랑대역을 거쳐 서울시계(경기도 구리시와 연결되는 지점)까지 총 6km 구간이다. 2010년 경춘선이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방치됐던 이 구간 약 5만5000평을 서울시가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첫 삽을 떤 시기가 2013년 10월이었다.
경춘선숲길 중 가장 먼저 조성된 구간은 2015년 5월, 행복주택에서 육사삼거리까지 1.9km의 2구간이다. 2016년 11월에는 1구간인 월계동 녹천중학교부터 경춘철교를 거쳐 공릉동 과기대입구 철교까지 1.2km, 2017년 11월에는 옛화랑대역에서 서울시계까지 2.5km의 3구간이 개통하면서 총 6km의 숲길을 조성했다.
경춘선숲길은 옛 철길을 원형 그대로 활용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텃밭 등이 경의선숲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이다. 대학 시절 경춘선 열차를 타고 대성리, 강촌 등으로 MT를 갔던 이들은 이제는 그 시절 철길을 열차가 아닌 직접 걸어보면서 추억을 되새길 것이고, 간혹 남자들은 춘천102보충대로 향하던 입영열차에서 내다보던 스산한 창밖 풍경이 머리로 스칠 수도 있겠다.
경춘선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거쳐갔던 20대 때의 설렘과 향수를 다시 떠올리기에는 이곳 경춘선숲길을 걷는 것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서나 가장 찬란하면서도 쓸쓸했던 ‘청춘’을 경춘선숲길 곳곳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산책길에 가족, 친구든 연인이든 동행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1구간]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출발해 경춘철교를 건너 공릉동 과기대입구철교까지 이어지는 1.2km의 1구간은 2016년 11월 경춘선숲길 중에서 두번째로 개통됐다. 이 구간은 옛 경춘선의 철길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해 과거 경춘선 기차를 타고 대성리나 강촌 등으로 MT가던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
▲경춘철교의 야경. 72년간 기차가 다니던 철교를 보행교로 리모델링했다. /서울시제공
1구간은 전체 3구간 중에서 가장 붐비는 숲길이다.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1구간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춘철교 양쪽 끝에 중랑천과 연결되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중랑천 산책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춘선숲길 1구간의 자랑인 잣나무 숲길. 이전에 열차가 다니던 시절부터 조성돼 있었지만, 안전을 이유로 주민들이 이용 못하다가 경춘선숲길 공원 조성을 계기로 개방돼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다. /박순욱 기자
경춘철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잣나무 숲길이 나온다. 이 숲길은 경춘선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 조성된 것으로 마치 산 속에 온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경춘선숲길 1구간 조성 이후 최고의 산책로로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잣나무 숲길 길이가 약 800여m에 이른다. 솔밭길을 기준으로 그 왼쪽에 보행-자전거 겸용 도로, 철길이 있고 맨 왼쪽에 텃밭이 길다랗게 이어져 있다.
1구간의 또다른 불편함은 근처에 매점이나 음식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식당을 가려면 숲길을 벗어나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할 경우, 간식거리나 도시락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식수는 텃밭 근처에 아리수 음수대가 있다. 공원관리소측은 "1구간에 매점형 카페를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춘선숲길 1구간을 가려면 1호선 월계역이나 7호선 하계역을 이용하면 가깝다. 최근 노원구는 1구간 일부를 정해 레일바이크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2구간]
행복주택공릉지구(거의완공돼 입주예정인 임대주택)에서 육사삼거리까지 1.9km에 이르는 2구간은 2015년 5월, 경춘선숲길 중에서 가장 먼저 개통됐다. 단독이나 다가구 밀집지역인 공릉동 일대를 가로질러 공원 접근성이 좋아 생기자마자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2구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릉동은 허름한 빌라와 통닭집, 작은 슈퍼마켓 등 옛 정취를 간직한 동네다. 경춘선숲길 조성 이후 이곳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숲길 양 옆의 단독, 혹은 다가구주택은 공원 조성 후 세련된 감각의 카페로 변신하거나 건물 자체를 신축하는 등 공원 덕분에 집값이 꽤 올랐다는 후문이다. 2구간 주변에 카페, 식당, 책방 등 아기자기하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생겨나 공릉동과 센트럴파크를 합쳐 ‘공트럴파크'라고 부른다.
▲경춘선숲길 2구간에는 공원 조성 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카페, 식당, 책방 등 특색 있는 가게들이 많이 생겨났다. /박순욱 기자
숲길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걷고, 얘기하고, 웃고, 먹고 마시는 풍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춘선숲길 전체 구간 중에서 가장 활기가 넘친다. 경의선숲길과 가장 닮았다는 얘기도 이 구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만, 다른 구간에 비해 숲길 가로 폭이 좁은 게 흠이다. 이 구간은 철길을 보행로로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다. 철로에 깔려 있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아날로그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자전거도 이 구간은 다소 속도를 줄여 이용하도록 공원측은 바이크족에게 당부한다.
2구간을 걷다보면 공릉동 도깨비시장이 나온다. 카페 하나 없는 1구간에 비해 2구간은 먹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족발, 닭강정, 꽈배기, 술빵 등이 유명하며 2900원으로 맛볼 수 있는 손칼국수집도 도깨비시장의 명물이다.
▲경춘선숲길 2구간의 또다른 볼거리인 공릉동 도깨비시장. 각종 먹거리가 풍성하다. /박순욱 기자
[3구간]
옛화랑대역에서 서울시계(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까지 2.5km에 해당하는 3구간은 작년 11월에 개통됐다. 옛화랑대역 주변은 야외 기차박물관 분위기다.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가치가 큰 문화재를 지칭하는 등록문화재 300호인 옛 화랑대역은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역사 내부는 철도 관련 전시장으로 쓰인다.
▲경춘선숲길 3구간 입구에는 증기기관차, 일본열차 등 여러 대의 기차를 전시해 기차박물관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순욱 기자
또, 어린이대공원에서 전시하던 협궤열차와 증기기관차를 옮겨와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 일본, 체코에서도 현지 열차를 들여와 전시하고 있어 이국적인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1구간의 방문자센터 열차와 마찬가지로 공원관리소측이 보행 시민들이 전시 열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두었다는 점이다. 객차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서 내부를 찍거나 차장 너머로 열차 바깥 풍경을 찍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구간은 경춘선숲길 3개 구간 중 가장 길이가 길다. 1구간보다는 배가 넘는다. 그래서 가장 호젓한 숲길이기도 하다. 1, 2구간에 비해 이용 시민은 적은 편이다.
▲경춘선숲길 3구간을 장식한 벌개미취 군락. 국화과 꽃으로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연한 보라색의 꽃이 핀다. /박순욱 기자
3구간 근처에 태릉, 강릉이 있어 잠시 숲길을 벗어나 능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이고, 강릉은 조선 13대 왕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이다. 태릉에서 강릉까지 약 1.8km의 숲길은 산책하기에도 아주 좋다. 동절기에는 일찍 문을 닫으니 참조해야 한다. 10월은 오후5시, 11월은 오후 4시30분에 닫는다.
<출처> 2018. 10. 13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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