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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우리말배우기

오늘 한글날, "너도 배우니?" 美·유럽, 한글에 빠져들다

by 혜강(惠江) 2018. 10. 9.

오늘 한글날

"너도 배우니?" 美·유럽, 한글에 빠져들다

 

K팝 바람 타고… 美서 중국·독일어 수강 급감, 한국어 65% 급증

 

뉴욕 =오윤희 특파원 / 파리=손진석 특파원

 

 

 

 

 프랑스 파리 중심부의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사회과학 분야 엘리트를 양성하는 명문으로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모교다. 이 학교의 재학생은 졸업 때까지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수업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2006년 한국어도 개설됐다. 지난달 10일 열린 한국어 교양수업에는 9명의 학부 및 대학원 학생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은 "저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아요" "저는 언니보다 키가 작아요"처럼 비교하는 문장들을 돌아가며 익혔다. 2006년 처음 강의가 개설됐을 때는 한국어 한 강좌에 대여섯 명이 수강했지만 지금은 수준별 3개 강좌에 30여 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프랑스에선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뿐 아니라 수강생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한국어 과목이 개설된 초·중·고교는 모두 17개교. 그중 고등학교가 15곳을 차지한다. 작년부터는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선택 과목에도 한국어가 채택됐다.


 한국어과를 개설한 대학교도 4곳에서 올해 6곳으로 늘었다. 한국학과 입시 경쟁률은 10대1을 웃돈다. 올해 9월 파리7대학 한국학과는 정원 130명에 1412명, 국립동양어대학 한국학과에는 정원 150명에 1360명이 지원했다.

 K팝 인기를 업고 한국어가 글로벌 언어로 부상하고 있다. K팝 스타들의 해외 공연 때 외국인 팬들이 한글 노랫말을 동시에 따라 부르는 것은 이제 흔한 모습이다. 이들이 한글 노랫말을 따라 부르면서 한국어 학습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신시내티에서 온 줄리(22)는 지난 6일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의 4만여 명 관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방탄소년단 한국 가사를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고 따라 하다가 온라인 한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외국어 수강생 추이를 보면 '한국어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현대언어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6년 사이 미국 대학에서 중국어(-11%), 독일어(-16%), 일본어(-5%) 등 대부분의 외국어는 수강자가 줄었다. 한국어만 같은 기간 유일하게 65%가 늘었다.

 영국 BBC방송도 최근 "2013년에서 2016년 사이 미국 대학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전반적으로 줄었으나 한국어만 14%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2016년 한국어 수강자 1만4000명은 스페인어·프랑스어·독어·이탈리아어·중국어·아랍어·라틴어·러시아어 수강자 다음으로 많았다. 한국어가 세계 10대 외국어가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미국과 유럽 각국 대학에선 한국학과를 만들거나 한국어 강좌를 속속 개설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자유대·함부르크대·본대·튀빙겐대 등 6개 대학에 한국학과가 설치돼 있고, 하이델베르크대·쾰른대·라이프치히대 등 9곳에서 한국어 교양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역사가 깊은 독일 유수의 대학이다.

 영국 런던대학 연합을 이루는 SOAS(동양·아프리카학)칼리지의 한국학과는 한 학년 정원이 40명인데, 4대1의 입학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2016년 한국학과를 만든 영국 중서부 센트럴랭카셔대는 첫해 지원자가 100명을 넘어서자 학교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 개설한 지 수십년 된 중국학과, 일본학과 지원자가 매년 20~30명에 그쳤던 것과 뚜렷하게 비교됐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436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대인 에든버러대학도 한국학과를 개설하기로 해 영국 내 한국학과를 만든 대학이 4개로 늘어난다.

 세계 최대 규모 온라인 외국어 학습 사이트 듀오링고(Duolingo)는 급속한 수요 증가로 인해 작년 한국어 과목을 새로 개설했다. 개설하자마자 수강생이 2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어 연수를 받으려고 입국한 사람들은 3만명으로, 일반 유학생(2만80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전 세계한류학회 회장)는 "한류 소비자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좋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 해외 청년층 '최고 신상품'
디자인 상품 가치도 인정받아 한글 전면에 내세운 제품 인기

"프랑스 에리는 종인이를 사랑해. 항상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최근 파리에서 막을 내린 2019 파리패션위크 '구찌' 쇼 현장은 한글이 적힌 피켓으로 물결 쳤다. 패션쇼에 초청된 '엑소' 멤버 카이(김종인)를 보기 위해 모인 500여명 현지 팬의 응원 문구. 카이를 보러 프랑스 북부 릴르에서 왔다는 아드리엔 루소(22)는 "요즘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선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멋지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①최근 파리 패션위크 구찌 쇼에 참석한 K 팝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김종인·작은 사진)를 환영하려 모인 프랑스의 한 여성 팬이 한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②프랑스 리옹의 현지 한류팬 두명이 만든 '바빠요' 티셔츠를 입은 모델. '바빠요' '어서와' '건배' '소주' 등 한글로 된 티셔츠와 가방을 제작해 팔고 있다. ③지난 3월 한국 특별판을 제작하면서 한글을 표지에 써넣은 영국 트렌드 매거진 '모노클'. /최보윤 기자·etsy·모노클 홈페이지

 

 한글은 한류의 인기가 만들어낸 요즘 최고의 신상품이다. 해외 젊은이들 사이 세련되고 개성있는 언어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단지 외국어가 아니라 한글을 이용한 각종 패션 디자인 상품으로도 인기를 누린다. 해외 유명 핸드메이드 제품을 온라인 판매하는 '엣시(etsy)'에는 '한글(Hangul)'을 키워드로 한 상품만 546개가 된다. 엣시 사이트 내 인기 상점인 '바빠요(babbayo) 숍' 운영자 줄리아 쿠플랑은 "K팝 팬에서 시작해 한글을 배우다 한글 상품까지 내놓게 됐다"고 했다. 트렌드 분석 기관 '트렌더라'의 메건 콜린스 대표는 "대단한 문화 자본을 축적한 K팝 스타의 위세가 나날이 높아지면서 이들이 쓰는 언어, 행동 모두 젊은 층에 굉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했다.

 '디자인 상품'으로서 한글의 가치는 올 초부터 패션계를 달궜다. 영국 디자이너 브랜드 프린이 지난 3월 '긴장하라'는 한글을 새긴 가방을 패션쇼에 올린 데 이어, 나이키에서도 에어조단 '서울' 한정판을 내놓으면서 '화합과 전진' '서울'이란 한글을 새겨 화제가 됐다. 영국의 유명 디자인 매거진인 '모노클'도 지난 3월 한국 특집판을 발간하면서 '한국'이란 우리말을 표지에 올렸고, 패션지 '보그 브라질'은 창간 43주년 기념판으로 지난 5월 서울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40페이지를 할애해 한글 간판이 적힌 분식집 등을 배경으로 패션 사진을 찍었다.

 최근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글을 공부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인스타그램에 '#한국어공부'라는 해시 태그만 13만개. 도미니크 딘킨스 부부가 운영하는 '한글 배우기 인스타그램'(@DomHyo) 계정은 팔로어가 7000명이 넘는다. '한국어 수집가'라는 별명의 할리우드 배우 토머스 맥도넬은 트위터에 한글을 복사해 붙이면서 29만명 팔로어에게 '한글 사랑'을 뽐냈다. 유명 정치 칼럼니스트인 브로웬 매덕스는 최근 영국 일간 이브닝 스탠더드에 "BTS에 빠진 딸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게 됐다가 이제는 내가 더 열광하게 됐다"며 "기막히게 재밌는 한국 예능 프로의 자막에 푹 빠졌다"고 고백했다. 국립한글박물관 김희수 학예연구관은 "외국인들은 한글을 시각적으로 균형감 있고 생동감 있는 글자로 본다"며 "초성·중성·종성이 합쳐져 한 글자를 이루는 모아 쓰기가 그들 눈엔 완성도 높은 디자인 구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2018. 10. 9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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