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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우리말배우기

한글은 “모든 소리 표기하는 완벽한 문자” -한글 우수성 알린 헐버트 박사

by 혜강(惠江) 2018. 10. 15.

 

 

“모든 소리 표기하는 완벽한 문자”

 

한글 우수성 알린 헐버트 박사

 

조종엽 기자

 

김동진씨, 1889년 美紙 기고글 확인

 

 

 

‘THE KOREAN LANGUAGE(조선어)’라는 제목의 1889년 뉴욕 트리뷴 칼럼. ‘조선, 서울에서 헐버트 교수’라고 필자가 명시돼 있다. 지면에 인쇄된 기고문은 한글 모음 ‘ㅏ’ ‘ㅗ’ ‘ㅣ’ ‘ㅜ’를 수직선과 수평선을 조합해 표현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제공

 

“한글은 완벽한 문자.”


 

 

 케이팝 등의 효과로 한글을 배우는 세계인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한글의 우수성을 학술적으로 서양에 알린 최초의 글이 새로 확인됐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68·사진)은 ‘고종의 밀사’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가 1889년 미국 ‘뉴욕트리뷴’에 기고한 글 ‘The Korean Language(조선어)’를 최근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조선에는 모든 소리를 자신들이 창제한 고유의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가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기고문은 한글의 과학성을 깊이 있게 논증했다. 

 지금까지 학계는 헐버트 박사가 3년 뒤인 1892년 1월 최초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을 창간하고 발표한 논문 ‘The Korean Alphabet(한글)’을 한글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린 최초의 학술적 글로 파악해왔다. 이번 기고문이 실린 뉴욕트리뷴은 시기도 앞서는 데다 당시 미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아 해외 여론에 큰 영향력을 지녔던 신문이다. 

 김 회장이 공개한 지면에는 영어 알파벳 사이에 한글 모음 ‘ㅏ’ ‘ㅗ’ ‘ㅣ’ ‘ㅜ’가 선명하다. 헐버트 박사는 이 기고문에서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 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한글 자모가 얼마나 읽고 쓰기 쉬운지 소개했다. 김 회장은 “국제사회에 최초로 한글 자모를 소개한 것”이라며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을 제대로 평가한 최초의 글”이라고 평가했다. 

 신문 기사 250줄가량의 장문인 기고문은 내용이 학술 논문 수준이다. 헐버트 박사는 “영미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며 글자와 발음의 일대일 대응을 설명했다. 알파벳은 모음 철자가 ‘a, e, I, o, u’밖에 없기에 읽을 때마다 다르게 소리가 나지만, 한글은 ‘ㅏ’에 획 하나를 더하면 ‘ㅑ’가 되는 것처럼 간편히 발음마다 여러 모음 글자를 따로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어가 지닌 구조적 아름다움과 단순성도 함께 설명했다. 

 기고문은 김 회장이 헐버트 박사의 손자 브루스 헐버트 씨로부터 2009년 스크랩된 형태로 넘겨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기고 시점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김 회장은 최근 헐버트 박사가 쓴 편지를 연구하다가 1889년 6월 9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The Korean Language’라는 글을 써서 신문사에 보낸다는 구절을 확인했다.

 김 회장은 “헐버트 박사는 같은 해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당시 쓰이지 않는 훈민정음의 자모 3개(옛이응, 여린히읗, 반시옷)를 찾아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훈민정음 연구에 열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헐버트 박사는 뉴욕트리뷴 기고 2년 뒤인 1891년 조선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판하기도 했다.

 미국인인 헐버트 박사는 고종의 최측근으로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 가운데 한 명이다. 이상설의 헤이그 특사증도 헐버트 박사가 이회영을 통해 전했다. 조선에서 교육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선교사로 활약했다. 역사학자, 한글학자로도 활동해 서양인으로서 한국학을 개척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한글의 존재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글로는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가 꼽힌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소략하고, “배우기가 매우 쉽고, 전에 결코 들어보지 못한 것도 표기할 수 있다”고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 헐버트 박사의 ‘뉴욕 트리뷴’ 1889년 기고 발췌 ▼


조선어 <The Korean Language>

 

 조선에는 모든 소리를 자신들이 창제한 고유의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가 존재한다. 음소문자인 조선 문자는 음절문자인 일본 문자와 매우 다르며, 각 음절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하는 조건 이상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문자는 간단해야 하고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혼란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소리를 모호함 없이 표현할 수 있을 정도만 글자 수가 있어야 한다. 즉, 최소의 글자로 최대의 표현력을 발휘해야 한다. …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 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음은 하나만 빼고 모두 짧은 가로선과 세로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ㅏ’는 ‘a’의 긴 발음, ‘ㅗ’는 ‘o’의 긴 발음, ‘ㅣ’는 ‘i’의 대륙식 발음, ‘ㅜ’는 ‘u’ 발음과 같다. 이렇게 글자를 모두 쉽게 구별할 수 있기에 읽기 어려운 글자 때문에 발생하는 끝없는 골칫거리가 한글에는 없다. …조선어 철자법은 철저히 발음 중심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 즉, 글자 하나당 발음이 딱 하나씩이다. …

 표음문자 체계의 모든 장점이 여기 한글에 녹아 있다. …

 ‘ㅑ’ 등의 이중 모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번 글자를 하나 더 쓰는 대신에 간단하게 획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예를 들어 긴 ‘a’ 발음은 ‘ㅏ’이고, 긴 ‘ya’ 발음은 ‘ㅑ’이다. 긴 ‘o’는 ‘ㅗ’, 긴 ‘yo’는 ‘ㅛ’이다. 아주 간단한 이 방법은 조선어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간결성을 크게 높여 준다. …단어 ‘quick’의 발음을 들으면 ‘kuik’으로 써야 하는데도 영어에서 그러지 않는 것이 조선인에게는 단어 ‘fun’을 ‘phugn’으로 쓰는 것만큼 어리석게 느껴질 것이다. … 
 
번역: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출처> 2018. 10. 15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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