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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홍천 와야리, 전상국이 다시 찾아간 소설 ‘동행’의 길

by 혜강(惠江) 2018. 9. 15.

 

홍천 와야리 

 

전상국이 다시 찾아간 소설 ‘동행’의 길 

 

 상처와 ‘동행’하며 넘는 구듬치… ‘ㅎㅎㅎ’ 소리가 들렸다

 


전상국 (소설가)

 

 

 

 

 

강원 홍천군 서석면 소재 구듬치고개. 살인범과 형사가 서로 신분을 감춘 채 함께 길을 걷는 여로형(旅路型) 소설인 ‘동행’에서 클라이맥스를 향하던 갈등이 마침내 해소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지금은 2차선으로 포장됐고, 그 이름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수하리는 ‘여울마을’이란 이름을 달아 그 푯말이 구듬치에 서 있다. 전상국 작가·엄주엽 선임기자

 



물걸리·자작고개·솔치재…  
어릴적 귀에 익은 고향 일대, 내 소설 속 무대로 등장시켜  
1950년 겪은 전쟁이 모티브  

홍천읍 말무덤이고개 넘으면 널찍한 들판 그림처럼 펼쳐져  
기미년 8열사 낳은 동창마을은 지금은 도로 생겨 ‘상전벽해’  

터널뚫리며 사라진 옛 고갯길, 독립만세 외친곳엔 슈퍼 하나  
북적이던 초등학교는 고즈넉, 고속도로 타고 많이 찾았으면


 

   ‘동행’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우리나라 문학작품에서 ‘동행’이란 제목을 가진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와 같이 간다. 그러나 함께 갈 수 없는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 어쩌다 함께 걸어가게 된 이야기를 소설로 쓰자는, 이십대 초반 그 작품을 발상했을 때의 흥분이 지금도 새롭다.  

 


 

 

 

▲ 춘천에서 서석면 수하리로 갈 때 갈라지는 와야삼거리. 지금은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내촌IC로 가는 길목이다.

 

 

 깊은 겨울밤 두 사내가 산속의 눈길을 터벌터벌 걸어간다. 그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키가 작은 사내는 6·25전쟁 때 지은 죄로 10년 형기를 마치고 나온 바로 그날 춘천에서 사람을 죽인 뒤 고향의 아버지 무덤을 찾아가 거기서 죽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선 살인범이다. 길 위에서 키 작은 사내를 만나 함께 가고 있는 또 한 사람, 큰 키의 사내는 춘천에서의 살인사건 그 범인을 잡기 위해 눈길을 나선 형사다. 

 실제의 소설에서는 형사가 끝까지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독자를 긴장시킨다. 이 때문에 교실에서 이 작품을 읽은 중학생들이 가끔 질문을 해온다. 작가님, 소설 속에 나오는 키 큰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야요?

 독자의 몫 남기기는 소설 결말에서도 계속된다. 오늘 자기 아버지 무덤에서 죽겠다고 말하는 키 작은 사내에게 큰 키의 사내가 담배를 건네주며 하루에 한 개씩만 피우라고 한다. 그 담배를 받아든 키 작은 사내가 말한다. 

 “뭐, 하루에 한 개씩 피우라구, 꼭, 한 개씩, 피.우.라.구요?”
 그걸 궁금해하는 독자도 없지 않다. 하루에 하나씩 피우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소설 속 작은 키의 사내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다음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ㅎㅎㅎㅎ ㅎㅎㅎ 


 눈 덮인 산속, 아직 눈이 조용히 비껴 내리고 있는 밤이었다.  1963년에 쓴 이 소설 결말 부분의 웃음소리 ㅎㅎㅎ은 웃음소리 의성어를 초성(자음)만으로 쓴 우리나라 최초의 문장이다. 이후 내 모든 소설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의 웃음소리는 ㅎㅎㅎㅎ으로 일관되게 쓰였다. 이것 말고도 풀피리 소리를 ㅍㅍㅍ으로, 뻐꾸기 소리를 워꾹워꾹 등으로 쓰는 등 내 소설 쓰기의 즐거움은 문법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등단 작품인 ‘동행’은 이후 내가 쓴 분단소설의 한 등식이 된다. 도시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이 고향을 찾아가는 귀소의지라든가 6·25 얘기를 다루되 반드시 오늘의 현실과 혹은 인생의 어떤 문제와 결부시키자는 작가의 의도 같은 것이 모두 ‘동행’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행’은 춘천에서 시작해 홍천 와야리까지 밤 눈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이 작품을 서울에서 쓸 때 내가 태어나 여섯 살까지 산 고향 마을 일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하기로 정했다. 어릴 때 귀에 익은 그 지명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물걸리, 와야리, 수하리, 풍암리. 그리고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을 가기 위해 힘들게 넘어 다니던 고개 이름이 작품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듬치, 자작고개, 말무덤이고개, 솔치재 등.  

 이렇게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마을 이름과 고개 이름을 내가 쓰는 소설 속에 그 위치와 지형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썼다. 내 상상으로 꾸며 만드는 이야기에 실제의 마을 이름이나 고개를 아무렇게 쓰면 어떠냐는, 그 무지가 문제였다.

 훗날 ‘동행’을 읽고 그 작품 속에 나오는 와야리 일대를 찾아왔던 독자들이 많이 당혹스러웠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야 얼굴이 뜨거웠다. 와야리를 가기 위해 넘어야 할 고개가 지르매재인데 작품 속에서는 와야리 반대편에 멀리 떨어져 있는 구듬치고개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독자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그 잘못을 뒤늦게 안 뒤 ‘동행’ 이후의 내 소설에서는 지명이나 그 위치 등을 그 현장을 몇 번씩 확인해 씀으로써 실제의 그것과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튼 ‘동행’의 무대를 내 고향 마을로 한 그것을 시작으로 해 이후 내 작품의 상당수가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향 마을 그 산천과 거기 사는 사람들이 내 문학의 발원이며 그 중심 모티브를 이뤘다는 뜻이다.

 

 

 

 

서석면 물걸1리의 동창마을. 전상국 작가가 어릴 적 자란 곳으로, 기미년 만세운동이 크게 벌어졌었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 

 

 ‘동행’에 나오는 와야리를 거치거나 서석 수하리에서 구듬치고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마을이다.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이 관군에 항거하다가 600여 명이 떼죽음을 당한 서석면 풍암리와 수하리 일대도 내 소설의 무대로 그려졌다. 단편 ‘맥’ ‘악동시절’ ‘물걸리패사’ ‘사형’과 중편소설 ‘하늘 아래 그 자리’ ‘지뢰밭’ ‘굿’ 등의 소설도 고향 마을 일대를 무대로 한 작품들이다. 특히 열 살 나이에 물걸리에서 겪은 1950년 여름 전쟁이 작품의 주 모티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유년시절에 각인된 기억이 분단의 상처와 그 아픔 치유의 이야기를 만드는 신명으로 살아났음을 뜻한다.

 홍천읍에서 44㎞, 읍에서 동북쪽 방향의 44번 국도와 나란히 흐르는 화양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다가 두촌면 철정에서 국도를 버리고 451번 지방도로로 들어서서 지르매재 너머 화상대리, 답풍리, 그리고 내촌면 면소재지인 도관리를 거쳐 와야리의 말무덤이고개를 넘어서면 널찍한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그곳이 바로 물걸리 동창마을이다. 읍의 동쪽 창고라는 뜻에서 동창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에는 조선조 중종 때에는 수백 가마의 대동미가 쌓여 있었다고 한다.

 여러 점의 보물이 남아 있는 신라시대 절터와 기미년 만세운동 때 여덟 열사가 나온 팔열사의 마을로 널리 알려진 동창마을이 지금은 내 어렸을 적의 그 마을이 아니다.

 


 

 

▲ 와야리의 초등학교는 입학생이 줄어 폐교됐고, 미술학교라는 팻말을 달고 있다.

 


 

 상전벽해,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뻥 뚫리면서 서울 도심권이 두 시간 거리로 좁혀진 것이다. 내촌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물걸리 동창마을이고 서석면 수하리도 지척이다. 더구나 내촌 면소재지에서 물걸리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그 험한 지르매재도 터널을 뚫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이제는 아예 없어진 와야리 고개와 함께 전설로만 남게 됐다. 

 

 

 

 

 

  동면 수하리와 풍암리에서 물걸리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구듬치고개나 솔치고개도 터널이 뚫리거나 낮아져 옛 고갯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길이 잘 뚫려 접근이 쉬워지긴 했지만 거기 그 땅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달라졌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미년 만세운동 때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던 물걸리 동창마을에는 슈퍼 하나와 식당 하나가 있을 뿐 옛날의 흥청거림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고향이 고향인 것은 그 산천을 지키고 사는 고향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몇 남지 않은 고향 친구들이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온 고향 마을을 다시 소설 속에 그려 오래오래 전하고 싶은 욕심이 꿈틀거린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넓어 보이던 동창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둘레의 잣나무만 짙푸를 뿐 비둘기 몇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을 뿐 한없이 고즈넉하다. 1941년 설립된 동창초교의 역사를 생각한다. 10회 졸업생인 내가 동창초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이 400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얼마 전 뉴스에 보니 동창초교는 올해 신입생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12명, 이웃 마을 와야초교가 분교가 됐다가 급기야 폐교가 된 것처럼 동창초교의 앞날도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마을 어디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농과 저출산 현상만 탓하며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많은 사람이 ‘동행’해 찾아와 시끌벅적 신명을 내는 그런 번창한 마을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구듬치고개를 넘는다.  

 

 

소설가 전상국은전쟁의 상흔과 고통받는 가족사 그려내…

분단소설 새 지평 열어

 

 

엄주엽 선임기자

 

 

   전상국의 작품에는 그의 고향이 자주 등장한다. 강원 홍천에서 1940년 태어난 그의 작품 바닥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겪은 전쟁의 상흔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명아가 ‘전상국 작품론’에서 지적했듯이, 그의 작품은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왜곡되고 뒤틀린 삶을 살아가는 ‘아베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교사생활을 하다 1963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등단작 ‘동행’은 그의 작품 경향을 예고했다. 그는 등단 이후 10여 년의 공백을 거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한국문학’에 발표되고 그해 한국문학작가상과 이듬해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한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화자인 ‘나’의 어머니가 6·25전쟁 때 미군에게 강간당해 낳은 백치인 ‘아베’, 그 ‘아베’로 상징되는 전쟁의 상처, 이를 못 이겨 가족들은 아베를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 가지만, 결국 그 존재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는 줄거리로 분단소설의 새 영역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늘 아래 그 자리’ ‘고려장’ ‘외등’ ‘여름의 껍질’, 연작소설 ‘길’ 등이 6·25전쟁에 의한 상처로 고통받는 가족사를 다루며 분단현실의 모순을 파헤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의 또 다른 줄기는 오랜 교직생활에서 겪은 교육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다룬 소설들이다.

 

   1980년 ‘세계의문학’ 봄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우상의 눈물’은 학교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또는 교사 상호 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위선과 합법적인 권력의 폭력성 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전상국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누구나 당연시하는 문제를 그렇게 여기지 못하는 ‘양심가책’의 상태에 놓여 있다. 저자는 위선적 세계의 질서와 타협하지 않는 이들의 주체적 힘에서 희망을 본다. 강원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이다. 올해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이 됐다.  

 

 

<출처> 2018. 8. 31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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