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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영국

영국 코스트 투 코스트 트레일 경로, ‘폭풍의 언덕’을 가다

by 혜강(惠江) 2018. 8. 9.

 

 

영국 코스트 투 코스트 트레일 경로

 

 

에밀리 브론테가 깊이 사랑했던 ‘폭풍의 언덕’을 가다

 

 

글 |이영철(여행작가)

 

 

 

 

 

영국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Walk)’ 306km 국내 최초 답사기


 
 샤프마을을 벗어나며 철길 위 육교에서 잠시 멈췄다. 멀리서 기차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 ‘어? 피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기차가 휙 지나갔다. 일주일 전 내가 바로 저렇게 이곳을 지났다.

 영국 횡단길 CTC의 출발지인 세인트비스를 향해 가던 그날, 내가 탔던 빨간색 버진트레인(Virgin Train)이었다. 처음으로 영국의 장거리 열차에 앉았던 감흥이 새롭다. 졸음 밀려오는 두 눈을 부릅뜨며, 차창 밖 고속 필름으로 지나는 잉글랜드의 정취를 놓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빨간 버진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길게 늘어진 기찻길 위에 서면 왠지 모를 아련함이 밀려온다. 어딘가 낯선 곳으로 떠날 때의 기대가 있고,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는 설렘이 밀려온다.

 잉글랜드 북부를 횡단하는 CTC 길은 행정구역 상 두 개의 주(County)를 관통한다. 우리의 경기와 강원에 버금갈 위치의 컴브리아(Cumbria)주와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주이다. 한반도 DMZ 이남을 따라 파주에서 고성까지 횡단하는 도보 여행길이 생긴다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샤프수도원(Shap Abbey)을 지나면서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벗어났다. 컴브리아주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는 광활한 국립공원이었다. 전체 트레일의 3분의 1을 걸은 것이다. CTC의 종착지인 북해(North Sea)를 바라보는 로빈훗베이 절벽까지 이제 두 개의 국립공원이 남았다. 
 
 


 
컴브리아주의 레븐스톤데일 무어 전경. 무어 한가운데에 외딴 가옥들이 자주 보인다.
 
스마데일 언덕을 오르는 목초지 길.
 
 
매일 한두 개의 산을 넘고 호수를 지났다. 어제와는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방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황야와 지평선뿐이다. 영국의 고산지대 황야인 ‘무어(moor)’ 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본디, 바람이 거센 날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설쳐대는 바람 물결을 막아설 것은 지평선 안에 그 무엇도 없었다. 초원을 뒤덮은 잡초와 야생화들은 이깟 바람 따위 진작 면역이 되었다는 눈치다. 대지에 바싹 붙어 아주 낮은 자세로 똘똘 뭉쳐 있다.

 나무는 어쩐 일인지 한 그루 두 그루씩 서로서로 먼 거리를 두고 외롭게 서 있다. 흔들리지 않으며 꼿꼿함을 유지하려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들이다. 내 앞과 뒤로 듬성듬성 보이는 트레커들도 나처럼 무어의 바람결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모래사장을 걷는 것 마냥 발걸음을 옮기기에 약간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지만, 눈 가늘게 뜨고 고개만 숙여 주면 폐와 심장을 격동시켜 주는, 그런 에너지원 같은 무어의 바람이다. 

 

페나인산맥에서 만난 아홉 개의 돌무덤

 
  두 개의 무어 지역 사이 한켠에 오르톤(Orton)마을이 있다. ‘컴브리아 심장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A beautiful village in the heart of Cumbria)’이라는 홍보 문구에 끌려 하룻밤 머문 트레커들은 누구나 만족스런 기분으로 아침 길을 나선다.

 오르톤마을부터 길고 긴 돌담이 이어지고 돌담 안은 또 다른 돌담들로 구획을 나누며,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 초원에서 풀 뜯는 양떼들은 녹색 화폭에 흰색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마냥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녹음이 울창한 오르톤마을을 떠나는 길. 아스팔트는 얼마 안 가 목초지로 연결된다.
 
3~4일에 한 번은 꼭 비를 만난다. 영국의 비는 불편함보다는 선선한 기분을 더 느끼게 해주었다.
 
 
  길은 항상 돌담과 돌담 사이 푸른 초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들이 쌓이고 겹치며, 목초지에 가느다란 한 줄의 길이 만들어졌다. 길 자국이 희미해지는 지점에서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코스를 이탈하기 쉽다. 그나마 군데군데 세워진 이정표들이 확실한 가이드가 된다. 두툼한 목재 기둥에 ‘Coast To Coast’라고 쓰인 나무 팻말들, 한결같이 햇볕에 타고 비바람을 맞으며 시커멓게 색이 바랬다. 녹색 이끼 잔뜩 낀 모습에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다.

 컴브리아 지방의 마지막 황무지인 스마데일언덕은 잉글랜드 내륙의 또 다른 세상과 처음 조우하는 지점이다. 해발 320m의 야트막한 산 위에서 바라다보면 내일부터 오르내릴 요크셔 지방의 산군들이 흐릿하지만 웅장한 자태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앞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커비스티븐(Kirkby Stephen)’은 CTC를 나선 후 처음 만나는 도시다. 커비스티븐 거리는 차분하고 한산했다. 우직하고 견고해 보이는 영국식 건물들이, 이 도시가 옛날 언젠가 대단한 번영의 시절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 물살이 역동적인 에덴강을 건너며 커비스티븐과 작별했다. 잠시 완만하다가 이윽고 가팔라지는 오르막, 두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뿌려진 땀방울이 한 주먹 될 때마다 주저앉아 뒤돌아보았다. 산 아래 펼쳐진 경관도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멀어지는 커비스티븐은 또렷한 정물화 그대로지만, 어제 지나온 스마데일언덕은 멀리에서 어렴풋한 추상화가 되어간다.

 


 
1 리스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영국인들. 차를 한 잔 얻어 마셨다. 2 숙소에선 간단한 손빨래가 중요한 일과다. 다음날 아침 뽀송뽀송하게 마른 신발 깔창과 양말.
 

 

 해발 667m의 하트리산(Hartley Fell)은 잉글랜드의 등뼈인 ‘페나인산맥(The Pennines)’의 중심부다. 이곳이 분수령이 되어 서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저 멀리 아이리시해로, 반대편으로 모아진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흘러 북해와 합쳐진다.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같은 산줄기인 것이다. 하트리산 정상에는 나인 스탠다즈(Nine Standards)라 불리는 아홉 개의 돌무덤이 열 지어 서 있다. 저마다 사람 키 두세 배 높이이다. 누가 언제 어떤 연유로 이렇게 쌓았는지 궁금해졌다. 동행한 토니 해밀턴씨가 알려 주었다.

 “멀리 산 아래에 있는 스코틀랜드인들을 속이려 만든 거죠. 잉글랜드 군사가 주둔해 있는 것처럼 위장해 보이려고요. 삼사백 년 전쯤 세워졌을 거예요.”

 하트리산 정상의 아홉 개의 돌무덤은 주변으로 펼쳐진 장대한 경관과 함께, 뭔가 베일에 싸인 비밀 몇 가지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돌무덤 주변이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하다.

 2016년 현재에서 나인 스탠다즈의 역할은 두 가지다. CTC 306km의 절반을 지나는 분기점이라는 것과 잉글랜드 북부의 두 지방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영국의 컴브리아지방을 벗어남과 동시에 요크셔지방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두 번째 국립공원인 요크셔 데일스(Yorkshire Dales)가 시작되었다.

 계곡을 의미하는 ‘데일(dale)’은 ‘구릉 지대의 넓은 골짜기’를 일컫는다. 황무지 ‘무어(moor)’나 높은 언덕과 낮은 산을 가리키는 ‘펠(fell)’처럼 잉글랜드 북부에서 주로 통용되는 단어이다. 지나온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는 이름처럼 ‘호수’가 많은 국립공원이었고, 횡단 8일째에 들어선 요크셔 데일스는 20여 개의 계곡과 황무지 무어가 공존하는 국립공원이다.

 

 
무어(moor)는 거친 바람과 황량함이 가득한 영국의 황무지이며, 세계적인 명작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쓴 브론테 자매의 고향이다.

무어의 주인공은 보라색 야생화인 헤더 꽃이다.
 
 
 요크셔 지방에서 처음 만나는 시골 마을 켈드(Keld)는 뽀송뽀송하게 마른 아침의 신발로 기억에 남아 있다. 전날 하산 도중 만난 빗속에서 질펀해진 등산화가 문제였다. 대개는 신문지나 휴지를 신발에 채워 습기를 빨아들이곤 하는데 숙소 주인의 배려로 밤새 저온 드라이어에 말리는 호사를 누렸다. 잉글랜드 내륙을 지나는 매일매일, 나는 누군가로부터 크고 작은 배려를 받았다. 

 숙소의 가일스씨 부부와 작별하고 켈드마을을 떠나 본격적으로 요크셔 무어 지역을 걸었다. 멜벡스 무어는 해발 600m에 광활하게 펼쳐진 황야였다. 메마른 대지가 계속되나 했더니 어느 새 주변은 녹색 초원으로 바뀌었다. 얼마 후 들판은 보라색 야생화 물결로 뒤덮였다. 느리지 않은 내 발걸음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색감을 바꾸는 무어의 변신이 몽환적이다. 화창하진 않지만 적당히 흐린 하늘 아래 변덕 심한 여름 바람이 달콤하다. 몽유병자처럼 넋 놓고 꿈길처럼 걷다가 갑자기 훅, 뺨을 스쳐 달아나는 찬바람에 정신을 추스르기도 한다. 이대로라면 희미한 저 지평선까지도 쉼 없이 마냥 걸어갈 수 있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이런 길을 만났었다. 스페인 북부 내륙에 펼쳐진 메세타(Meseta)고원이 그랬다. 잉글랜드 북부 내륙에서 요크셔의 황무지 무어로 바뀌었을 뿐이다. 메세타를 뒤덮은 누런 밀밭의 물결은 이곳 무어 땅에서 보라색 헤더(heather)의 물결로 바뀌었다. 잉글랜드 무어랜드에는 헤더(heather) 또는 히스(heath)라고 불리는 야생화가 주인공이다. 멀리서 보면 보라색 꽃밭이며, 가까이 다가가 보면 형형색색의 덤불숲을 이루는 들꽃이다.

 

 

                                           ▲ 커비스티븐으로 가는 길. 돌담으로 구획을 나눈 목초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양떼들의 낙원이다. 

 

 

 잉글랜드 요크셔의 황무지 무어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다

 

 

브론테 자매의 문학적 토양이 된 무어랜드

 

 

 70년 전 이 지역 요크셔에서는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시골 촌구석의 자매가 거의 동시에 소설 한 권씩을 출간한 것이다. 언니인 샬롯 브론테가 <제인 에어(Jane Eyre)>를 발표했고, 몇 달 후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발표했다. 언니의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호평을 받으며 성공했지만, 동생 에밀리의 책은 반응이 시원찮은 상태에서 폐결핵으로 이듬해 생을 마쳤다. 서른 살의 짧은 생이었다.

 두 자매의 문학적 토양은 어릴 적부터 살았던 벽촌 마을이었다. 이곳 요크셔의 황무지, 헤더(히스) 꽃이 초원을 뒤덮은 무어랜드가 작가와 함께 있었기에 ‘폭풍의 언덕’이라는 명작이 탄생했다.

 ‘내 동생 에밀리는 무어를 무척 사랑했어요. 동생은 무어에서 황량한 고독을 느끼면서도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어요.’

 샬롯 브론테는 동생 에밀리가 죽은 후 그녀의 무어 사랑이 병처럼 깊었다고 어느 편지에서 술회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황량한 아름다움이, 오래전 살았던 불우한 여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상상해 본다. 자매가 살았던 당시에도 무어의 정경은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산을 내려와 맞이한 리스(Reeth)는 우리의 시골 같은 아담한 마을이었다. 고풍스런 건물과 도로 외에는 온통 녹색의 잔디물결이다. 노천카페에 맥주나 커피 잔을 놓고 앉은 사람들이 여름날 오후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었다.

 

 

해발 600m의 멜벡스 무어를 내려오면 리스(Reeth)까지 편안한 목초지가 이어진다 

 

 폐허로 남아 있는 리치먼드 캐슬. 천년 역사의 도시인 리치먼드의 상징이다.

 



  샌드위치와 함께 마신 생맥주 두 잔 때문인지 포만감에 취기까지 더해져, 예약된 숙소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오늘 남은 마지막 땀방울을 짜낼 즈음, 유스호스텔 글린턴롯지가 신비의 고성처럼 언덕에 나타났다.


 사방이 들판인 너무나 한적한 길, 언덕 너머에 과연 숙소 따위가 있기나 할까 걱정하던 차였다.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 중턱에 울창한 나무숲이 보인다 싶었는데 웅장한 고성 건물이 자태를 드러냈다. ‘어디서 봤더라?’ 잠깐 생각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영화 <폭풍의 언덕>의 그집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를 닮았다.

 ‘처음 이 집을 발견했을 때 누가 살았을까 궁금했다. 어떤 삶이었을까? 마음속으로 속삭임이 들려왔고 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2년 개봉된 영화 <폭풍의 언덕>은 작가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오래 전 소설로 읽었던 기억은 희미한 불씨로만 남아 있었다. 광적이고 비정상적인 캐릭터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소설 속 인물들은, 뒤늦게 본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그들의 삶이 이해되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요크셔의 무어 땅을 밟는 일은 나에겐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직접 느끼는 감동이었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두 남녀의 모습은 ‘폭풍의 언덕’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였다. 그 황야를 배낭 메고 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낭만적인 감상에, 얼마나 오랫동안 젖어들곤 했던가? 문득 캐서린의 말이 떠올랐다.
 
리치먼드를 나오는 길에 만난 CTC 이정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저 바람을 쐬어야겠어. 무어에서 불어오고 있어.”

 죽음을 앞둔 캐서린이 침대에 누워 그렇게 갈망했던 무어의 바람, 이제 나에게 현실이 되어 불어왔다.

 리치먼드는 CTC 길에서 만나는 가장 큰 도시이다. 글린턴롯지에서 스웨일강을 따라 18km를 걷다 보면 리치먼드 캐슬이 성탑부터 시야에 들어오고 이윽고 성 전체, 도시 전체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11세기 혼란스런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이곳 요크셔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이 성을 지었다.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열고 브리튼섬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정복왕 윌리엄에서 비롯되어 1,000년 역사가 숨 쉬는 리치먼드 캐슬인 것이다.   

 리치먼드 언덕에는 CTC 길을 개척한 알프레드 웨인라이트의 벤치가 놓여 있다. 의자 동판에 쓰인 작가의 저서 본문 문장처럼, ‘리치먼드의 황홀한 정경을 미리 볼 수 있는 곳(There is a thrilling view of Richmond ahead)’이다. ‘세인트비스에서 183km 왔고, 로빈훗베이까지 123km 남았다’는 이정표 한 줄이 가슴에 싸한 물결을 일으킨다.

 배낭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마냥 아늑해진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의 수고가 그에 의해 인정받고, 남은 길도 잘 가도록 격려 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세인트비스 해변의 출발 포인트였던 ‘웨인라이트 월(Wainwright’s Wall)’ 앞에서 사람들은 이 길의 개척자를 생각했지만, 길의 절반을 넘어 이곳 ‘웨인라이트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삶의 길에 대해 생각에 잠길 것이다. 

 


 

 한솔제지에서 30년 근무 후 2011년 퇴직해 세계 10대 트레일을 걸으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현재 10곳 중 2곳만 남겨놓았다.
 여행서적으로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자의 행복>을 펴냈다. 블로그 : 네이버 검색창에서 ‘누들스 라이브러리’ 하트리산 정상으로 이어진 길을 가는 영국인 트레커 토니 해밀턴. 산을 넘으면 요크셔 지방이 시작된다.

 

 

<출처> 2016. 9. 2 / 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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