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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영국

영국 런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살아가다

by 혜강(惠江) 2018. 2. 28.

 

영국 런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살아가다

 

 

트래블

 

 

 

런던 여행자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반짝이는 템스강의 풍경

 

 

 

  모든 여행은 현실과의 분리다. 가까운 곳으로 잠시 떠난 여행도 꿈같은 아름다움이 펼쳐지며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 속에 머물게 한다. 겨울의 런던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런던의 좁은 골목과 반짝이는 템스강, 눈 쌓인 하이드 파크와 차도 사람도 반대편으로 달리는 낯선 교통 체계까지, 영화 세트장 속에 들어선 것처럼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는다. 은막의 주인공이 되어 도시 곳곳을 누빈다.

  런던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 '노팅 힐(Notting Hill)'의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로맨스에 감동해 엘비스 코스텔로의 '쉬(She)'를 흥얼거리며 포토벨로 마켓을 구경하겠노라 다짐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80~90년대의 모든 작품에 뮤즈가 되어준 정든 뉴욕을 수십 년 만에 떠나 런던에서 '매치 포인트(Match Point)'와 '스쿠프(Scoop)'를 촬영한 우디 앨런을 비롯해 여러 감독들은 런던을 제각각의 프레임에 담아왔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런던을 로맨틱의 도시로 만든 '러브 액츄얼리'
 
 
 

영화 '러브 액츄얼리' 속 영국 수상의 우울함을 위로해주던 히드로 공항./ⓒShutterstock_IR Stone


 

  지금은 프러포즈의 정석이 되어버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적어 한 장씩 넘기는 그 유명한 장면 하나로 수많은 로맨티스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2003)는 영국을 대표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런던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장소, 히드로 공항에서 이 영화도 시작하고 끝난다.

 

  우울할 때면 히드로 공항의 도착 층을 떠올린다는 휴 그랜트의 극 중 캐릭터 ‘영국 수상’은 반가움에 서로를 얼싸안는 가족과 연인, 친구와 동료들로 가득한 그 공간에 사랑이 가득함을 다시금 깨닫는다고 했다. 연고 없는 여행자에게는 달려와 안아줄 사람이 없는 낯선 공간이지만 스크린으로 여러 번 눈에 익은 곳에 드디어 도착하는 반가움도 그에 버금가게 따스하다. 시내로 가는 교통편을 찾아보기 바쁘지만 공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고 떠나면 좋겠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런던 최고의 쇼핑 거리 옥스포드 대로의 셀프리지스 백화점은 <러브 액츄얼리>를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런웨이처럼 화려한 해로드 백화점과는 달리 런더너들이 부담 없이 찾는 오랜 역사의 백화점 셀프리지스에서 앨런 릭먼이 분한 ‘해리’가 비서에게 줄 목걸이를 사는 장면을 촬영했다.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배우 로완 앳킨슨이 능청스럽게 선물 포장을 하는 상점 직원 역할을 맡아 영화를 더욱 유쾌하게 만들었다.

 

 

 

실재하는 환상을 만나다, '해리 포터'

 

 

 

 

해리 포터 스튜디오


 

  런던의 추위에 맞서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를 흥얼거리며 런던 교통의 요충지 킹스 크로스 역으로 가보자. 호그와트로 출발하는 기차가 칙칙폭폭 연기를 뿜으며 달릴 준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오랜만에 동심이 깨어난다. '해리 포터(Harry Potter)' 시리즈(2001~2011) 의 영화 8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차역 장면들을 모두 이곳에서 촬영했다. 역 한편에 사람들이 한데 모여 카트 손잡이를 잡고 해리 포터처럼 벽으로 들어가는 듯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면 9¾ 플랫폼을 잘 찾아온 것이다. 작은 기념품 상점과 기념 촬영을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는 이곳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곳이다. 실제로 영화는 4번 플랫폼에서 촬영했지만 킹스 크로스 역에서 '해리 포터'의 '그 플랫폼'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 런던 시에서 만든 곳이다. 마법사가 된 기분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0년에 걸쳐 8편의 영화로 탄생한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 시리즈의 상당한 분량은 런던 외곽 왓포드 정션에 위치한 ‘워너브라더스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진정한 '해리 포터' 팬이라면 당일치기 여행으로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지팡이 가게, 도깨비 은행,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 그리핀도르 기숙사와 대강당, 덤블도어의 방, 영화에 사용된 특수 분장과 영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버터 비어를 한 손에 들고 런던 밤거리를 질주하던 나이트 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세트장을 나서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념품 상점이 기다리고 있다. 개구리 모양의 초콜릿과 온갖 맛의 젤리빈, 금빛 스니치 앞에서 지갑을 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소중한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기쁘게 뛰어들어가는 옥스포드 대로 / 셀프리지스 백화점


심판의 카타르시스, '브이 포 벤데타'


  런던을 상징하는 템스 강변의 아름다운 건축물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웨스트민스터궁도 물론 여러 영화에 등장했다. 파시즘이 만연한 가상의 미래를 그린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2005) 에서는 ‘V’가 멋지게 웨스트민스터궁을 폭파시킨다. 오케스트라의 힘찬 연주에 맞춰 셀 수 없이 많은 폭탄이 빅 벤의 시침과 초침을 날려버리는 신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확실한 것은 없다. 기회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실제로 의사당 폭파를 계획했던 가이 포크스를 모델로 한 것이다. 포크스는 실패했으나 V는 성공해, 매년 11월 5일 폭죽놀이를 하는 런더너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자유의 카타르시스를 영화로나마 선사했다. 도시의 대표적인 심벌이기에 2017년 3월에는 빅 벤 근처에서 자동차 테러가 발생했고 치안은 더욱 강화됐다.

 

  런던 시민들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두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평온한 모습으로 템스강을 바라보고 선 웨스트민스터궁은 다치지 않은 채 여전히, 변함없이 강건하다. 

 

 

 

뉴요커의 눈에 비친 런던, '매치 포인트'

 

 

마법사가 되고픈 동심들이 가득한 역내 기념품 상점


  로맨스와 액션 외에도 런던은 수많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다. '007'의 스파이물, '셜록(Sherlock)'의 추리물, '패딩턴(Paddington)' 같은 동화가 있다. 그리고 여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거장 우디 앨런의 로맨스 스릴러 '매치 포인트'(2005)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하려는 테니스 강사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분)’가 처남이 될 ‘톰(매튜 구드 분)’의 약혼자 ‘노라(스칼렛 요한슨 분)’를 만나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런던에서 펼쳐진다.
  주인공들이 삼자대면하는 ‘테이트 모던’은 냉한 영국 상류층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옛 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만든 현대 미술 갤러리로 런던의 오늘과 내일을 상징하는 세련된 곳이다.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다.
  런던의 젖줄 템스는 영화 속 크리스의 신혼집인 펜트하우스의 통창 너머로도 멋진 자태를 뽐낸다.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야 할 것만 같은 런던 부촌의 브라운 스톤 건물과 검은 택시가 자주 보이는 '매치 포인트' 한 편으로 부족하다면 '스쿠프'(2006)와 '환상의 그대(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2010)까지, 우디 앨런 감독의 런던 3부작을 모두 추천한다. 
 
 

테이트 모던에서 바라본 세이트 폴 대성당.ⓒ Shutterstock_Bikeworldtravel / 테이트 모던의 인더스트리얼한 내부


런던의 가장 예쁜 모습을 담은 '노팅 힐'
 

노팅 힐의 파스텔 톤 포토벨로 거리./ⓒShutterstock_Christian Mueller


  런던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동네 노팅 힐을 배경으로 한, 평범한 서점 주인과 세계적인 영화배우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노팅 힐'(1999)은 런던을 가장 예쁘게 그려낸 영화 중 하나다. 극본을 쓴 리처드 커티스가 살던 동네였기 때문에 오렌지 주스를 사 오는 소소한 장면에도 가장 노팅 힐다운 분위기가 듬뿍 담겨 있다. 파스텔 톤 집들이 나란한 포토벨로 대로를 걸어 내려가며 골목골목에서 앤티크 상점과 컵케이크 가게, 브런치 레스토랑과 노천카페를 보물찾기하듯 발견하는 이 동네에서 보낸 하루만으로도 런던에 온 마음을 주게 된다. 휴 그랜트의 다정하고 조금은 어설픈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은 실제로 노팅 힐에 위치한 ‘트래블 북숍’에서 촬영했다.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팬들로 언제나 바쁜 서점이지만 실제로 책을 사 들고 나서는 손님은 본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문을 닫지 않고 용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노팅 힐 북숍’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여전히 외관은 쨍한 파란색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일상에 다시 젖어들었다가도, 불현듯 런던이 떠오른다. 서울 어디에서든 파란 대문을 볼 때면 노팅 힐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가만히 마음속에 피어난다.


· 글·사진 : 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바르셀로나 홀리데이', '프라하 홀리데이', '포르투갈 홀리데이' 등 다수의 유럽 관련 여행 서적의 저자.)

· 기사 제공: 대한항공 스카이뉴스



[출처] 2018. 2. 27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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