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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홀리 축제, 물감 ‘난장’으로 여자들 스트레스 푼다

by 혜강(惠江) 2018. 5. 7.

 

인도의 홀리 축제

 

물감 ‘난장’으로 여자들 스트레스 푼다

 

 

변종모 여행칼럼니스트  

 

 

 

한 해의 마지막 보름달 뜨는 날, 홀리 축제 여는 인도
매년 3월 초순, 물감 난장으로 여자들 스트레스 푼다.


부자, 걸인, 동물, 종교인과 여행자 모두

한데 모여 컬러풀한 잔치

 

 

 

인도에서 열리는 홀리 축제. 비르사나 지역이 가장 격렬하다. 여자들이 라티라고 불리는 대나무막대기로 남자들을 때리거나, 물감을 뿌리며 옷을 찢기도 한다. 여성의 억압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동시에 남자들의 액운을 씻어 낸다. 축복을 기원하는 사랑스러운 폭력이다./사진=변종모

 


  새해가 시작되는 봄, 소년은 나에게 노란색 물감을 힘차게 불었다. 카메라 렌즈너머로 환하게 웃는 소년은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듯 건강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능청스런 표정과 진지한 듯 어른스러운 면도 있었다. “친구, 이리로 가면 온통 물감에 젖어서 카메라마저 못 쓰게 될지도 몰라.” 그가 가리킨 곳은 골목의 바깥이었다. 소년은 대단히 은밀하고 정요한 정보를 내게 넘겨준 듯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그 골목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 축제의 골목에 도착하려고 15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흰두력으로 그 해의 마지막 보름달이 뜰 때, 본격적인 새해가 시작된다. 이때 인도 전역에서 화려하게 열리는 홀리(Holi)축제는 이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고해도 과장이 아니다. 보통 양력으로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가 이에 해당하는데, 우리의 봄과 그들의 새해가 같이 시작되는 것이다.

  홀리는 짧게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인도 전역의 골목을 형형색색의 물감이 아름답게 물들인다. 화려한 색채의 나라 인도. 그 중에서 더욱더 화려해지는 홀리축제. 오래 전부터 인도를 자주 다녔다. 하지만 홀리기간에 여행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처음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처럼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흥분된 상태였다.

 
◇ 이웃에게 물감 던지며 행복 전하는 날

  인도를 여행 한지 15년 만에 처음. 모든 처음은 그렇게 설레고 긴장되는 것일까? 도무지 몸과 마음 모두가 진정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인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그래서 아주 편한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인도라는 나라는 매번 새롭기만 하다. 홀리의 발상지 바르사나(Barsana)까지 기차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도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홀리축제를 본 적이 있나요?”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현지인에게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홀리는 짧게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인도 전역의 골목을 형형색색의 물감이 아름답게 물들인다./사진=변종모
 


  출발역에서부터 옆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얌전히 창밖을 보던 대학생이었다. 그냥 웃었다. 그리고 곧 웃음 보다 환하게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말문을 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홀리를 봤지요. 내가 태어난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이 홀리의 고향 바르사나예요. 굉장한 날들이지요. 아침부터 밤까지 며칠간 계속 축제가 열리는데, 아이 어른 할것 없이 매일매일 즐거운 날들이지요. 사원에 가서 기도를 하고, 이웃에게 물감을 던지며 건강과 행복을 전하는 날이기도 해요.”

  왼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에서 축제의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년도 축제기간에 맞춰 가족들을 보러 집에 가는 길이라며, 혹시라도 길에서 만나게 되면 내게도 흠뻑 물감을 던져 축하해 줄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청년 보다 먼저 내렸고 청년은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해피홀리(Happy Holi)”를 외쳤다.

  축제가 시작되려면 며칠 남았지만 축복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배낭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작은 간이역을 빠져나오자 색색의 물감이 든 바구니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 등 대여섯 가지 색의 바구니들이 끝없이 반복되며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 바구니들만 제외하면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지만, 확실히 사람들은 먼 여행을 앞둔 사람들처럼 상기되고 더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인도의 새해가 열리고 봄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서도 막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화려하게 피어날 꽃망울을 기다리는 봄일 것이다. 이미 인도의 온도는 우리나라의 한여름 보다 높은 열기를 뿜고 있었지만, 조금 더 뜨거운 인도의 한 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물감으로 물든 길을 걸어가는 여인/사진-변종모


  축제의 첫날, 이른 아침부터 쿵쾅거리는 음악소리 때문에 맞춰놓은 알람보다 일찍 잠이 깼다. 이미 축제가 시작된 것 같아서 서둘러 사원으로 향했다. 마을입구부터 사원까지 이어진 골목에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사방에서 총 천연색 물감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서부터 담장 위 그리고 어느 방향에서부터인지도 모르게 물감들이 무차별적으로 날아들었고, “해피홀리”라는 축복의 인사도 끊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골목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었고,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감을 날리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 여자들은 라티라는 대나무 막대기로 남자들의 액운 쫓아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작대기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는 사람들까지, 사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한 몸이 되어 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남녀노소 국적을 가리지 않는 축복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음식이나 음료수를 준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부자들과 사두들에게 공양을 하는 사람들, 구걸을 하는 걸인들과 그 사이를 열심히 오가는 개나 원숭이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 같은 여행자들이 있다.

  모두가 비슷한 분위기로 들떠 있었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에게 축복을 했다. 물감을 구하지 못한 여행자에게 자신이 가진 물감을 나누기도 하고 물감을 애써 피해 다니는 낯선 여행자들도 간혹 있지만,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그 골목 안에서는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축복이다. 봄을 축하하고 새해를 축하하고 처음 보는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화려한 퍼포먼스다.

  난드가온이 고향인 크리슈나와 이웃마을 바르사나에 사는 그의 연인 라다. 크리슈나가 연인 라다의 마을을 방문해 장난을 걸었고, 이를 라다와 친구들이 쫓아내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바르사나와 난드가온에서 가장 열광적으로 홀리가 열린다. 여자들이 라티라고 불리는 대나무막대기로 남자들을 때리거나, 물감을 뿌리며 옷을 찢기도 한다. 여성의 억압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동시에 남자들의 액운을 씻어 낸다. 그러니까 일종의 사랑의 매인 셈이다. 
 
 
                                                                                                ▲ 물감을 뒤집어쓴 남자들./사진=번종모


  사랑으로 가하는 힘. 여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하는 힘은 축복을 기원하는 사랑스러운 폭력이다. 이밖에도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홀리축제가 인도전역에서 이루어진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 밤, 신화 속의 마녀를 태우는 의식에서부터 사원 가득 꽃을 뿌리거나 물감을 뿌리며 가장행렬을 하는 곳도 있다. 지역이나 날짜에 따라서 다양한 축제가 만들어지지만, 한 해의 행복과 건강과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의미는 어느 지역이나 같다.

  도시를 옮겨가며 일주일 내내 축제를 따라 다녔다. 각 지역의 집집마다 골목마다 시작되어 사원까지 이어지는 모두의 축제. 좁고 어지럽게 이어지는 골목 안에서, 태어나 가장 많은 축하의 말과 축복의 인사를 받았다. 그것을 갚는 방법은 그들과 같이 “해피홀리”하고 외치며 함께 즐기는 일이 유일했다. 참으로 묘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열광적이고 광란에 가까운 시간도 있었다. 무질서와 아우성도 따라다녔지만 결국 서로에게 행복한 얼굴로 축하의 말을 전달하며 다가오는 1년의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은 같았다.

  이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축하의 새해가 매년 인도에서 열린다. 한 번쯤 그 골목에서 총천연색의 물감으로 당신의 한 해를 축복받아도 좋을 일이다. 어쩌면 그 한 번이 살아가는 동안, 평생의 축복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봄, 누구도 축복을 피해갈 수 없었던 축제의 골목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 이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축하의 새해가 매년 인도에서 열린다./사진=변종모


PS 홀리축제 즐기기
 
  흰두력에 의해 결정되는 홀리는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므로 인도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서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인도 전역에서 크고 작은 홀리축제가 진행되므로 꼭 특정한 장소이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바르사나(Barsana)와 난드가온(Nandgaon) 그리고 브린다반(Vrindavan)과 마투라(Mathura)에서 열리는 일주일간 일정에 맞춰 돌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델리로부터 3~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2018년 홀리축제는 3월 2일에 열렸다.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출처 : 2018. 3. 1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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