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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인도.네팔,스리

성찰의 나라 인도&네팔, 혼잡함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영혼의 풍요

by 혜강(惠江) 2016. 5. 11.

 

 

  성찰의 나라 인도&네팔

 

혼잡함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 영혼의 풍요를 찾아서


 

 

 

 

   급속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 안정적인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이 생각하는 삶의 만족도는 과연 행복할까. 여러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성공만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결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여행을 떠나려 한다. 인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 이외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거리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걸어 다니거나 누워있고, 오토 릭샤, 택시, 버스, 트럭들이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 혼잡함 속에 머리 위에는 까마귀들이 공중을 선회하고, 건물들 지붕 사이에는 원숭이들이 건너다니는 풍경.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소들은 비닐봉지 속에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헤쳐 놓고, 지린내와 악취, 매연 때문에 거의 숨을 쉴 수가 없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이나 풍광을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행의 길이 인도 여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인도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난하고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그곳이지만 지구 어느 곳 보다 정신적인 풍요와 안정이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 성지 ‘쿠시나가르’에서 얻은 깨달음

 

 

 

 

   인도에서는 불교가 탄생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됨에 따라 남아 있는 불교 유적들이 푸대접 받고 있었다. 오히려 주변의 불교를 믿는 국가들의 신도들이 찾아와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지라 불교 유적이 있는 곳은 특히 교통도 열악하고 가난한 지역이 많아 찾아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필자가 여행할 당시 북인도는 이상 기후로 매일 짙은 안개가 끼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씨가 계속돼 기차는 늘 연착과 취소가 반복되었다. 게다가 15~25시간 정도 연착하는 상황에 맞닿으면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람들은 신의 뜻이고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순응하며 불평 하나 없이 담요를 깔고 역 바닥에 누워 잠을 자거나 앉아 기다린다. 정말 성격이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이해가 안 되지만 인도에서 아무리 화를 내고 따져 물어도 해결은 오직 하나 기다림뿐이라는 사실이다. 마음을 비워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인도에는 불교의 4대 성지(네팔 룸비니(Lumbini)-부처님의 탄생지, 인도 부다가야(Buddha Gaya)-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 사르나트(Sarnath)-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곳, 쿠시나가르(Kushinagar)-부처님이 죽음을 맞아 열반한 곳) 중 세 곳이 포함되는데 쿠시나가르로 가기 위해 바라나시에서 고락푸르까지 가는 밤 열차를 탔을 때 일이다. 


  인도 기차는 보통 의자로 되어있는 일반석과 이등석 침대칸, 일등석 침대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나는 보통 인도인이 타는 이등석 침대칸을 이용했었다. 나의 침대가 꼭대기 3층에 있어 등산화를 벗어 1층 침대칸 밑에 밀어 넣고 3층에 올라가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그런데 내 자리에서 내려와 신발을 찾으니 없어졌다. 결국 나도 인도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치르는 수업료를 톡톡히 낸 셈이다. 당황한 나는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임시방편으로 호텔 욕실용 슬리퍼를 꺼내 신고는 역무원에게 경찰서(도난 증명서 발급을 위해)를 같이 가달라고 요청했다. 역무원은 내게 신발을 비닐 주머니에 넣어 당신이 자는 침대칸에 같이 올려놓았어야 한다며 충고를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락푸르에 도착해 호텔 주인에게 운동화를 살 수 있는 가게를 물어봤는데 인도인들은 더운 날씨 덕에 샌들만 신기 때문에 운동화 품질이 안 좋다며 만약 네팔로 여행 갈 계획이 있다면 그곳에서 등산화를 구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3일 뒤에 네팔 포카라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당분간 슬리퍼로 버티기로 결정하고 돌아다녔다. 원래 슬리퍼는 맨발로 신어야 하는데 겨울이라 추워 양말을 신고 신으니 엄청 미끄러워 고생을 했다. 


  부처님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를 돌아보고 그 곳에 있는 한국 절 ‘대한사’를 찾아갔더니 한국 스님은 제게 의미 있는 말씀을 해주셨다. 인도에 와서 돈을 안 썼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만약 비싸더라도 일등석 기차를 탔다면 칸막이가 되어있으니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발을 가져간 아이는 그것을 팔아 가족에게 보탬이 됐을 것이니 그냥 보시한 셈 치라는 말씀이었다.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만 옳다는 생각,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말씀에 내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경험한 ‘네팔 룸비니’

 

 

 

 

   국경을 넘어 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를 찾아갔을 때 또 한 번의 시련이 있었다. 그곳의 ‘국제 성원 구역’은 세계 불교 국가들의 사찰이 모여 있는 곳인데 포장이 되어있지 않는 흙길이었다. 등산화만 있으면 15분이면 가는 거리를 슬리퍼로 가는 내겐 버거울 뿐이었다. 돌아다니는 자전거 릭샤도 안 보여 나는 할 수 없이 맨발로 흙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고생스런 상황에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얼마쯤 걸어가니 눈앞에 지나가는 자전거 릭샤를 발견했다.

 

  보통 인도나 네팔의 릭샤꾼들은 외국인에게 정상 가격에서 3~4배를 부르기 때문에 반드시 흥정하고 타야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부르는 가격대로 다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힘든 여정을 겪은 나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기차가 제시간에 오기만 해도, 버스를 무사히 타고 다음 여정으로 이동할 수 있을 때도, 내가 크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배가 고플 때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모든 것이 감사했다. 


  우리는 사실 인도와 네팔보다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넘쳐나는 물건의 홍수 속에서 그 물건이 귀한 줄 모르고 흥청망청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물건 하나하나라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쓸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등산화를 잃어버렸을 때 내 마음은 지옥이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내겐 중요한 마음공부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인생무상을 몸소 느낀 ‘바라나시’

 

 

  인도에는 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인도 사람들은 ‘강가’라고 부른다)이 있다. 신들의 어머니 강인 이 강물에 목욕하면 죄가 씻어지고 그 물을 성수로 마신다. 또 힌두교에서는 죽은 다음 화장을 해 갠지스강에 뿌려지면 다음 세상에 좋게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갠지스강의 바라나시(Varanasi)는 힌두교 성지로 인도의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세계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는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죽음과는 단절된 상태로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바라나시에 가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두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구시가지 골목을 걷다 보면 사람과 자전거, 소들이 뒤섞여 지나가는 속에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매고 이동하는 운구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행렬을 따라가면 충격적인 화장터의 모습이 나온다. 나무 장작 위에 죽은 이를 올려놓고 향불을 피우며 갠지스강의 강물을 뿌리고 힌두교 의식을 지낸 후 불을 지펴 화장 한다. 인도인들을 무심한 표정으로 타들어 가는 육신을 바라본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의 경우 장작을 충분히 구하지 못해 완전히 타지 않은 상태로 강가에 띄워 보낸다. 한쪽에선 아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세례가, 그 옆에서 죄를 씻어내기 위한 목욕과 자신의 옷을 빨고 있는 사람들, 성수를 마시기 위해 물병에 강물을 담는 사람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 갠지스강을 뱃사공이 젓는 배를 타고 둘러보는 순례자들과 여행자들, 인생의 시작인 탄생과 현재의 삶, 그리고 마지막인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곳, 죽음도 하나의 일상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또 죽음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란 말이 있듯이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가는 세상이다. 죽은 이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헛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인생무상과 덧없음을 몸소 깨닫게 해주는 곳이 바로 갠지스강인 것이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해변과 리조트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점점 삭막해지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 번쯤은 고생스럽더라도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자기 성찰의 여행을 떠날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스강에서 치러지는 ‘힌두교 의식(푸자)’. 
 
 
 
▲ 도 니르바나 만디르 사원.

 

인도에 가면 발밑을 조심하세요

 

 

 

 

  힌두교에선 많은 신을 믿는데 그중 3신이 주요 신이다. 브라흐마(창조의 신), 비슈누(유지의 신), 시바(파괴의 신이자 춤의 신) 신을 숭배하는데 특히 인도인들은 시바 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춤으로 우주의 생성과 파괴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난디’라고 불리는 소를 타고 다닌다. 따라서 힌두교도들은 소를 숭배하여 절대 죽이지도 않고 소고기도 먹지 않는다.(인도의 맥도날드 햄버거는 소고기가 아닌 양고기를 사용한다) 옛날 인도인들에게 소는 정말 귀중한 동물이었다. 인간에게 영양 공급을 위한 우유, 그리고 소의 분비물인 똥은 마른 풀잎을 섞어 반죽하여 말리면 훌륭한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이지 않은 소들이 모두 거리를 배회하게 되었고 곳곳에 소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인도를 여행할 때는 항상 잘 보고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똥을 밟게 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또 이동이 편한 캐리어 가방을 끌고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여행한 바라나시의 구시가지는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의 좁은 미로인 데다가 소들과 사람, 자전거 릭샤 등이 서로 뒤엉켜 혼잡한 곳이었다. 내 캐리어 가방은 소똥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수난을 당했다.


 

고생조차 잊게 만든 인도의 맛

 

 

  인도여행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고생을 한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도 음식이었다. 인도는 전 세계 치매 환자가 가장 적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커리를 즐겨 먹기 때문이라 한다. 몸에 좋은 다양한 커리 요리를 늘 즐겨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 사모사




▲ 짜이를 마시는 사람들




▲ 짜파티와 난

 

 

◆사모사(Samosa)=인도인이 즐겨 먹는 간식으로 만두피에 으깬 감자, 채소 등을 커리에 버무린 것을 삼각형으로 빚어 튀긴 것인데 이것 2개와 밀크티(짜이) 한 잔이면 영양 만점 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짜이(Chai)=짜이를 끓이는 모습은 마치 신성한 음료를 만드는 듯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신선한 우유를 국자로 저어가며 끓이다가 홍차 잎, 계피, 정향, 생강 등의 향신료와 설탕을 넣은 후 달이듯이 저어 끓인 인도식 홍차 짜이는 인도인의 아침을 여는 음료로 거리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국민 음료이다.  


짜파티(Chapati)와 난(Naan)=잘 반죽한 밀가루를 탄두르(Tandoor)라는 화덕에 붙여 구운 빵인데 즉석에서 굽기 때문에 각종 커리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또한 닭고기를 여러 향신료에 재운 뒤 화덕에서 구워낸 탄두리치킨도 담백함을 즐길 수 있는 인도의 대표 음식이다.

 

 

<출처> 한국교직원신문(2015.5.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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