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및 정보/- 터키.그리스

아테네, 신화와 올리브 나무의 도시

by 혜강(惠江) 2018. 4. 21.

 

아테네

 
신화와 올리브 나무의 도시

 

신(神)의 키스가 닿은 땅, 석양에 녹아든 거룩함을 온몸으로…

 

 

이병철·시인  

 

 

 

 

 

아테네에 있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161년에 지어진 것으로 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마리아 칼리스, 엘튼 존, 조수미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이곳에서 공연했다. / 이병철 시인 제공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렇게 썼다. 나는 무슨 복으로 에게해를 두 번 여행하게 됐을까. 아부다비에서 아테네로 가는 에티하드 항공기에 올랐다. 중동 향신료인 커민 냄새가 이따금 코를 찔렀다. 비행기가 밤을 뚫고 빛 속을 날자 신화와 올리브의 땅, 그리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난뱅이야.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한 대목이다. 한때 국가 부도 위기에도 몰렸지만 올리브 나무는 푸르고 사람들은 활기찼다. 지하철을 타고 오모니아역에서 내렸다.

 'omonia'는 '의견 일치'라는 뜻으로 '조화'를 의미하는 영어 'harmony'의 어원이다. 몇 해 전 그리스 사람들은 '오히(oxi·반대)'라는 의견 일치를 이뤘다.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 수용을 반대한 것인데, 아직도 'oxi'라고 적힌 스프레이 글자가 햇살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수블라키 집에 들어갔다. '피타(pita)'라는 빵에 양이나 소, 돼지고기를 차지키 소스와 함께 싸서 먹는 피타 수블라키는 아테네의 패스트푸드다. 그리스 맥주 '미토스(Mythos)'를 곁들였다. 그곳 음식을 먹기 전에는 아직 그곳에 도착한 게 아니다. 수블라키를 한입 씹자 그리스가 실감 났다.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걸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흘러든 골목마다 은은한 술 향이 났다. 몇 개의 골목을 통과하자 머리 위로 내려앉는 그림자가 육중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신들의 언덕! 파르테논 신전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대리석 기둥 사이로 하늘이 붙들려 와 미(美)의 영원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석양에 젖은 사람들이 전부 신처럼 거룩하게 보였다. 아테네 여행 첫날은 요람을 닮은 신전 앞에서 저물었다.

 

 

 

①수블라키를 만드는 아테네 상인. ②국회의사당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이뤄지는 모습.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과거 터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군악대 연주가 무거운 물살로 밀려왔다. 그 물살을 따라 근위병들이 범선처럼 미끄러져 왔다. 군악대 연주는 장중했고, 근위병들의 행진에는 절도가 있었다.

 모나스티라키 시장을 찾았다. 껍질을 벗겨놓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포유류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고, 엄청난 크기의 생선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스 전통 증류주인 라키와 알프스 암염, 캐슈너트, 마카다미아, 올리브 따위를 산 후 관광열차 '해피 트레인'에 탔다. 이름 그대로 행복한 기차는 아테네 도심의 복잡함과 권태를 지나 공원의 상쾌함, 골목의 호기심으로 나를 태우고 다녔다.

 열차에서 내려 리카비토스 언덕에 올랐다. 아테네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장소다. 하늘이 달아오를수록 마음도 눈동자도 뜨거워졌다. '죽여준다'는 상투적 관용어가 절로 나왔다. 어떤 황홀한 순간에 빠져 죽어도 좋을 때 쓰는 말이다.

 석양은 어둠과 빛의 중간, 따뜻함과 차가움의 중간, 이 세상과 저세상의 중간으로 스며들었다. 가느다란 빛들이 피아노 현처럼 세상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석양의 연주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는 사이 밤이 되었다.

 다음 날,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찾았다.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고대 예술품들 사이를 걸었다. 조화와 균형, 비례 가운데 저마다 표정과 숨결을 지니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얼굴, 꿈틀거리는 대리석 근육, 여인의 깨진 발꿈치를 오래 들여다보는 동안 신의 계시를 들은 사람처럼 나는 수니온행 버스가 금방 출발하리라는 걸 직감했다. 박물관을 나서서 터미널로 향했다.

 

 

수니온곶 절벽 위에 서 있는 포세이돈 신전.


 아테네에서 수니온까지는 한 시간 반쯤 걸린다. 아테네 남부 해변은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자 올리브 나무로 가득한 들판이 나왔다. 구불구불한 도로 옆으로 바캉스를 허락하지 않는 자존심 센 바다가 펼쳐지는 순간, 온몸의 피가 과일 주스처럼 달아졌다. 저 멀리 수니온곶 절벽, 외롭게 서 있는 포세이돈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수니온의 유일한 음식점이자 관광 안내소인 한 타베르나 앞에 멈춰 섰다. 차가운 그리스 와인을 마시며 나는 포세이돈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금빛으로 몸이 물든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듯 석양은 왔다. 바다를 껴안고 키스하면서,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몸짓으로.

 아테네로 돌아왔다. 마지막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아크로폴리스도 해피 트레인도 수블라키도 리카비토스 언덕도 시장의 생선 비린내도 모두 아쉬워 잠들 수 없었다. 죽기 전에 그리스를 두 번이나 여행한 커다란 행운도 이제 끝일까. 아니, 마치 신앙처럼, 한 번 여행하면 두 번 여행하게 되고, 두 번 여행하면 세 번 여행하게 되는 그리스를 나는 믿기로 했다.

 

 

            

항공: 인천에서 아테네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기착지를 경유해 보통 16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 지하철을 이용해 피레우스 항구에 가면 산토리니, 크레타, 미코노스로 가는 고속 페리를 탑승할 수 있다.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수니온과 '그리스의 나폴리'로 불리는 나프폴리오 등 아테네 근교 여행지들은 시외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음식: 그리스 와인과 올리브는 수출 규모가 작아 쉽게 접할 수 없는 만큼 꼭 맛볼 것을 권한다. 쇼핑 명소 에르무(Ermou) 거리의 '타나시스 수블라키(Thanasis Souvlaki)'는 전통 음식 무사카를 비롯해 수블라키, 그릭 샐러드, 와인과 맥주를 판다.

 

 

 

[출처] 2018. 4. 20 / 조선닷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