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화강
생명 되찾은 江의 '겨울 풍경'
석양이 강물 끝에 몸을 누이면… 北國 손님들의 '검은 군무'가 펼쳐진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울산의 길조’ 까마귀… 오염됐던 태화강 살아나며 10만 마리의 ‘보금자리’로
한겨울의 녹음, 십리대숲… 빽빽이 들어선 70만 그루 매서운 강바람도 막아줘
추억·낭만을 실은 나룻배… 폭 100m 남짓한 강 위를 천천히 오가며 경치 품어
▲ 울산의 대나무 군락지는 태화강을 경계로 철새와 사람을 가른다. 일몰 시각 잠자리에 들기 전 삼호대숲 위에 모여 군무를 펼치는 철새 까마귀의 모습./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매년 겨울이면 울산에는 북국(北國)의 검은 철새들이 날아든다. 시베리아에서 서식하던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먹이를 찾아 한반도 영남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울산 태화강 대나무 군락지는 겨우내 이 검은 손님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촘촘한 대나무 숲에 숨어드는 까마귀의 수는 약 10만마리. 감히 세어 볼 수 없는 수의 생명체가 강 위에서 무리지어 군무(群舞)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분명 경이로울 테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지난 8일 오후 5시 태화강 철새공원(삼호대숲) 맞은편 태화강 둔치에 자리를 잡았다. 10만마리 까마귀의 보금자리 앞에 섰건만 검은 생명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가을에 떠난 철새 무리에 미처 합류하지 못한 늙은 백로들만이 강 위를 유유히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해가 산 뒤로 모습을 숨겨 석양이 강물에 드러눕고 나서야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수만 마리의 까마귀가 강 하늘을 뒤덮었다.
울산에서 까마귀는 길조(吉鳥)다. 되살아난 생명의 상징이다. 태화강은 한때 '죽은 강'이라고 불렸다. 국내 최대 공업 도시로 질주하느라 환경오염에 무심했던 탓이다. 1996년만 해도 태화강 하류 수질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됐다. 악취가 진동하고 죽은 물고기가 떠올랐다. 뒤늦게 시민·환경단체와 기업이 태화강 살리기에 나섰다. 강으로 흘러드는 폐수를 차단하기 위해 하수 처리장을 만들고, 강바닥에 쌓인 오염물질을 정기적으로 걷어냈다. 오·폐수 유입을 막고 하루 4만t의 맑은 물을 흐르게 했다. 5급수 이하였던 태화강 물은 2007년 1급수 판정을 받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연어가 찾아오고, 숲이 살아나자 시베리아에서 까마귀들이 날아왔다.
울산에 까마귀가 날아들기 시작한 건 2004년 겨울부터다. 2005년 약 3만마리였던 까마귀는 태화강 생태가 점점 더 좋아지며 10만마리까지 늘었다. 처음 까마귀가 날아들었을 땐 주차된 차나 지붕으로 떨어지는 배설물 때문에 불청객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울산시와 시민단체들이 까마귀를 되살아난 태화강 생태의 상징으로 알리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이제 시민들은 까마귀와의 공존을 위해 매년 11월~2월 펼쳐지는 까마귀 군무 시간을 피해 빨래를 넌다. 울산시는 매일 아침 까마귀 배설물로 피해를 본 차량 300~
까마귀 군무에 귀를 기울여보면 의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악'이 아닌 '짹짹'하고 우는 갈까마귀의 울음소리다. 철새인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는 우리나라 텃새인 큰부리까마귀와는 좀 차이가 있다. 몸길이가 약 57㎝인 큰부리까마귀에 비해 10~20㎝ 작다. 잡식성으로 동물 사체까지 먹어치우는 큰부리까마귀와 달리 철새 까마귀는 곡식과 곤충을 먹는다.
오후 6시 30분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야 까마귀들이 대숲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크기가 작은 철새 까마귀들이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군무를 펼치는 것을 천적의 공격을 따돌리고 잠자리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수법으로 해석한다. 흔히 까마귀 무리를 질서가 없다고 해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고 부르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해놓은 순서대로 줄지어 천천히 대숲으로 들어서고, 나는 동안 서로 부딪히는 일도 없다. 대숲에 몸을 맡긴 까마귀들은 다음 날 동이 트기 30분 전 무렵이면 일제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무리를 지어 척과, 언양, 남창에서 멀리는 경북 영천까지 날아간다.
까마귀가 보금자리를 튼 삼호대숲 맞은 편에는 트레킹 코스로 사랑받는 '십리대숲'이 있다. KTX역인 울산역 경부선에서 5013번 급행버스를 타고 '태화루 정류장'에 정차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2014년에 복원된 태화루가 있다. 643년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 대사가 울산에 도착해 태화사를 세울 때 함께 지었다. 누각에 올라서면 태화강 주변에 있는 겨울 억새와 십리대숲이 한눈에 보인다.
▲ 삼호대숲 건너편 십리대숲은 산책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십리대숲은 길이가 약 10리(약 4.3㎞)에 달하고 면적은 14만2060㎡(약 4만3000평)다. 70여만 그루의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강가의 대숲 산책로 길이는 약 1.8㎞다. 십리대숲의 역사는 길게는 270년, 짧게는 1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십리대숲 설명문에는 1749년 울산 지역 읍지(邑誌)인 '학성지'에 이곳이 대밭이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홍수로 강변이 백사장이 됐을 때 한 일본인이 대밭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대숲의 음이온은 혈액을 맑게 하고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고 한다. 산책로 중간 중간 있는 긴 의자에 앉아 천천히 죽림욕을 즐기며 걷다 보면 남산나루가 나온다. 태화강에는 맞은편으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많지 않다. 대신 남산나루에서 매시 5분과 35분에 뱃사공이 나룻배로 사람을 실어나른다. 1000원을 내고 왕복행 표를 산 뒤 배에 올랐다. 뱃사공이 나루와 나루 사이를 잇는 줄을 잡아당겨 배를 움직인다. 강폭은 100m가 채 안 되지만 건너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자리에 앉아 뱃사공과 농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십리대숲과 억새를 눈에 담는다.
십리대숲 맞은편에 도착하면 30년간 취수탑으로 쓰던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태화강 전망대'를 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겨울에도 풍성한 대숲의 머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 뒤로 솟아 오른 남산의 헐벗은 모양새와 비교된다. 전망대 한 층 아래에는 카페가 있다.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카페 건물 자체가 360도 돌아가기 때문이다. 차를 한잔 들다가 나룻배가 떠날 시간에 맞춰 내려와 다시 강을 건넜다.
해가 저물어갈 때 즈음 오산을 벗어나 삼호대숲 맞은편에 있는 태화강 둔치로 향했다. 둔치 주차장을 지나면 까마귀 군무를 감상할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된 '까마귀 전망대'가 있다. 둔치를 따라 난 도로에는 2㎞ 구간에 걸쳐 식당 100여 곳이 모인 '십리대밭 먹거리 단지'가 조성돼 있다. 까마귀 전망대 근처에 있는 전통 찻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북국의 검은 철새가 모여들기를 기다린다.
[출처] 2017. 12.15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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