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성
부산은 본디 산이다.
부산 이한수 기자 / 편집= 뉴스콘텐즈팀
*부산 금정산성 성벽이 정상 능선 따라 길게 이어진다. 길이 17.3㎞(일부 자료 18.8㎞)로 국내 산성 중 가장 긴 성벽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釜山)은 산(山)이다. 자주 잊는 사실이다. 대개는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바다를 떠올린다. 도시 북쪽에 금정산(802m)이 있다. 부산의 진산(鎭山)이다. 서울의 북한산처럼 도심의 배후를 이루는 주산(主山)이다.
정상과 능선 따라 산성(山城)이 길게 이어진다. 금정산성이다. 동·서·남·북 방향에 각각 문이 있다. 고구마 모양 타원형으로 생긴 긴 성벽이 4개 문을 잇는다. 길이 17.3㎞, 일부 자료는 18.8㎞라고 한다. 북한산성(12.7㎞)이나 남한산성(11.7㎞)보다 긴 국내 최장 산성이다. 산성 안내판에는 성벽 길이를 1만8845m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서울성곽(한양도성·18.6㎞)보다도 길다. 국내에서 가장 긴 성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겸손하게도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라고 썼다.
하루에 다 걸을 수는 없다.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동문~북문의 약 4㎞ 구간. 그중에서도 4망루~의상봉(641m)~원효봉(687m) 구간이 가장 좋다. 정상 능선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이 제일 잘 보인다. 화강암 절벽을 이룬 바위 봉우리 모습이 장관이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장하게 흐른다. 동·남쪽으로는 해운대 마천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성 쌓은 때는 삼국시대로 올라간다. 현재 모습을 갖춘 때는 조선 숙종 시기다. 숙종 29년(1703년) 경상감사 건의로 쌓았고, 순조 8년(1808년) 크게 보수했다. 외적(왜적) 방어 목적이라 하는데 산성을 쌓아 과연 적군을 막을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 때 왜군은 부산 상륙 후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은 압록강 건너 곧바로 한양으로 내달렸다. 산성은 외적 방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금정산성 북문
왜 고단한 민력(民力)을 들여 이 험난한 산지에 긴 성을 쌓았을까. 땀 흘려 직접 걷다가 나름대로 해답을 얻었다. 성벽 구간에 이르려면 최소 해발 500~600m까지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범어사에서 오르는 길은 험한 바위 구간이다. 제멋대로 흘러내린 크고 작은 바위를 딛고 1시간 이상 고된 산행을 해야 북문 성벽에 닿는다. 절집 아래 평지부터 오르려면 네댓 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적병(敵兵)이 굳이 힘들여 이 산성을 점령해야 할 까닭이 없다. 옛 전쟁에서 산성은 전투 시설이기보다는 대피 공간이었다. 산 아래 읍성에서 군사들이 최후를 맞는다 해도 몸을 피한 후속 세대가 모진 목숨 이어 또한 역사를 이어가도록 하는.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남아 지금이 있는 것이다. 동문에서 북문 방향으로 걷는데 중간 지점에 샘물이 있었다. 목을 축였다. 시원하다. 이런 물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산성 안에 마을이 있다. 산성마을이라 부른다. 500~600m 봉우리 능선에 둘러싸인 해발 400m 분지에 자리했다. 행정지명 부산 금정구 금성동이다. 면적 7.5㎢로 금정구에서 가장 큰 동이다. 깨끗한 물로 빚은 막걸리가 유명하다. 산성을 쌓던 시기 일꾼들에게 빚어내던 술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 한다. 지역에선 '토산주(土産酒)'라 부른다. 흑염소불고기도 특산 음식. 토산주와 함께 염소고기를 내는 식당이 여럿 모여있다. 일부 식당에서는 '토산주'를 직접 빚어 판다. 산성 걷기 후 염소불고기와 함께 토산주를 곁들였다. 염소고기를 석쇠에 구워 접시에 담아내는데 잡맛 없는 숯불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산행 이후 적당히 주린 배와 입맛을 돋우는 막걸리의 신맛 덕분이었을 것이다. 곁들여낸 음식 모두 괜찮았다.
*산성마을 식당에서 낸 염소고기 세트. 토산주(막걸리)가 시원했다.
마을에 딱 한 곳 있는 막걸리 양조회사(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에서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든다. 아담한 기와집 외벽에 정겨운 풍속화를 그렸다. 1979년 대한민국 민속주 1호로 지정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초 부산을 찾아 산성 막걸리 이야기를 꺼냈다. 군수사령관 시절(1960년) 즐겨 마셨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박영수 부산시장은 "주류 허가 없이 밀주로 판매하다 보니 숨바꼭질 단속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제조할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당시 양조장 제한 규정이 있어 새로 허가를 내주기 어려웠다. 고민하던 정부는 대통령령(제9444호)으로 허가를 내준다.
산성 걷기 코스는 여럿이다. 범어사에서 오르면 북문에서 동문 방향으로 내려온다. 산성마을에서 오르거나 온천동 금강공원에서 케이블카(로프웨이)를 탈 수도 있다. 어느 길로 오르든 동문~북문 구간을 걷고 산성마을에서 산행을 끝내기로 한다. 산미(酸味) 향긋한 막걸리가 기다린다. 부산에 간다면 금정산성을 찾아야 한다. 부산은 산이니까.
금강공원 케이블카
범어사
금정산성마을 홈페이지(sanseong.invil.org)에 따르면 마을에 흑염소·오리고기 등을 내는 식당 123곳이 있다. 동문에서 산성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같은 디자인으로 통일한 식당 입간판이 늘어서 있다. 흑염소석쇠불고기 1인분 3만8000원. 2인분부터 낸다. 토산주(막걸리) 한 되 6000원. 금정산막걸리(sanmak.kr, 051-517-0202)를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준다. 지하철 온천장역에서 산성버스(203번).
<출처> 2017. 6. 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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