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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부산. 경남

부산 송도해수욕장, 다대포해수욕장, 태종대 등 잠시 잊었던 추억의 공간들

by 혜강(惠江) 2017. 7. 15.

 

부산 송도해수욕장, 다대포해수욕장, 태종대 등

 

- 잠시 잊었던 추억의 공간들이 그립다 -

 

 

 

글·사진 박경일 기자(문화일보)

 

 

 

* 다대포해수욕장은 번잡스러운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참을 걸어나가도 수심이 정강이를 넘지 않을 정도로 너른 백사장이 광활하게 펼쳐진 적막한 다대포 해변은 늘 황홀한 낙조 풍경을 보여준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의 결이 뚜렷하다.

 


 지금이야 부산의 해수욕장이라면 누구나 휘황한 마천루를 두르고 있는 해운대를 첫손으로 꼽지만, 6·25전쟁 중 미군 휴양지로 활용되기 전까지만 해도 해운대는 부산 변방의 호젓한 해변에 불과했습니다. 해운대 인근의 광안리해수욕장도 그렇고, 부산 사람들이 해운대보다 더 좋아한다는 북쪽의 송정해수욕장도 그때는 비슷했지요. 사실 해운대의 바다는 조금만 나가도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고 파도까지 세서 수영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해수욕보다는 태닝을 하거나, 튜브를 타고 파도를 즐기는 데 좋은 해변이지요.

 해운대가 명성을 얻기 전인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최고로 꼽히던 해수욕장은 송도해수욕장이었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송도해수욕장이 1913년 개장했으니 그 역사가 올해로 104년을 헤아립니다. 한때 부산에서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꼽히던 곳. 그러다 부산 앞바다의 오염으로 쇠락해 폐장했으며, 이제 다시 문을 열어 오래전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곳.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송도해수욕장의 시작과 번성, 그리고 쇠락과 재기에 대한 것입니다.

 더불어 부산에서 ‘오래된 곳’들의 얘기도 덧붙입니다. 뜨거운 청춘에게 비장미 넘치는 명소였던 태종대, 죽음의 공간 위에 지은 집들로 빽빽한 부산의 아미동 산동네 마을. 9대째 문중에서 가꾸고 있다는 ‘아홉산 숲’의 맹종죽 대숲도, 비포장 산길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비밀 아지트 같은 무인카페도 찾아가 봤습니다. 이런 곳들에서 자주 맞닥뜨렸던 건 다름 아닌 ‘추억’이었습니다. 부산과 아무런 인연이 없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치열한 삶의 공간이었던 항구도시 부산. 그 도시의 오래된 공간이 보여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함께 건너왔던 누추하되 따스했던 ‘시간’이니 말입니다.

# 부산 최초 해수욕장의 탄생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 역사와 겹쳐진다. 우선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송도’라는 지명부터가 그렇다. ‘송도’는 일본의 명승지 ‘마쓰시마(松島)’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은 이름이다. 마쓰시마는 일본 센다이(仙臺) 앞바다의 소나무 울창한 260개의 섬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빼어난 경관으로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미야지마(宮島), 교토(京都)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와 함께 ‘일본의 3경(景)’으로 꼽히는 곳이다. 식민지 조선 땅에 온 일본인들이 제 나라 명승의 지명을 가져다가 제멋대로 부산의 해변에다 붙인 게 ‘송도’라는 얘기다.

  송도해수욕장을 조성한 건 한일병합 이후 부산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이었다. 잘 믿기지 않지만 그윽한 분위기의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인들이 부산 도심에서 4㎞ 남짓 가까운 거리의 해안을 깎아내고 모래를 부은 뒤에 인공 해수욕장을 만들었다.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한 일본인은 백사장을 조성하고 해변 앞의 거북섬에는 ‘수정(水亭)’이란 이름의 휴게소를 설치했다. 부산 최초의 해수욕장은 이렇게 식민지 체제 아래 일본인의 손으로, 또 일본인이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1920년대 중반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은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변에는 휴게소와 탈의시설, 구급시설이 들어섰고 숙박업소도 번성했다. 해수욕장 바다 한가운데는 해상 다이빙대도 있었다. 당시 사진엽서를 뒤져보다가 놀랐던 건 해수욕 풍경이 지금과 거의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남녀가 뒤섞여서 물놀이하는 사진이 100년 전의 것이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 부산 송도의 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을 이루는 만을 가로지른다. 암남공원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송도 해안 볼레길’. 볼레길은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 입구까지 해안 절벽을 철제 난간으로 이은 도보 길이다.

 

 

# 송도해수욕장의 네 가지 명물

  송도해수욕장의 전성기는 1930년대였다. 해수욕객이 늘면서 부산 남포동 도선장에서 송도까지 운항하는 정기 발동선이 떴다. 그 무렵 부산 송도해수욕장은 원산의 송도해수욕장과 함께 최고의 여름 휴양지가 된다. 자료를 뒤져 찾아낸 1935년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입장객 통계. 그해 송도해수욕장은 65일 동안 개장했고, 개장 기간에 16만6450명이 찾아왔다. 하루 평균 입장객이 2630명이었는데, 2만3000명 입장 기록을 세운 날도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송도해수욕장의 명성은 여전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명실상부한 최고의 해수욕장이었다. 1964년에는 이북 출신인 윤사명이란 여사장이 해수욕장 서쪽 언덕에서 거북섬까지 420m 구간을 오가는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부산 최초의 케이블카였다. 이듬해에는 돈을 내고 거북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출렁다리가 놓였다. 당시 송도해수욕장에는 명물 네 가지가 있었다. 거북섬을 잇는 케이블카와 출렁다리, 해수욕장 바다 한가운데 세운 다이빙대, 유람용 배인 ‘포장유선(包裝遊船·차양막을 친 놀잇배)’이었다. 이런 것들로 송도해수욕장은 한 해 여름에만 350만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송도해수욕장은 쇠락했다. 암남동 일대의 주거지에서 폐수가 유입되고 부산 앞바다가 오염되면서 해수욕장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게 결정적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안 지역개발로 모래까지 유실됐다. 출렁다리와 다이빙대는 1987년 태풍 셀마로 전파됐고, 케이블카는 이듬해 운행을 중단했다. 이로써 송도해수욕장의 영광은 끝나고 부산 최고의 해수욕장이란 지위는 해운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시대 변화의 바람은 태풍 셀마보다 몇 배나 더 강했다.

# 과거의 명물이 새 모습으로 등장하다



  마천루 숲으로 둘러싸인 해운대의 압도적인 명성에 밀려나고 말았지만, 사실 지금도 중년 이상의 부산 사람들에게 해수욕장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송도다. 부산에서 만난 중년들에게 송도해수욕장의 기억을 물으면 미소부터 지었다.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 송도에 얽힌 추억 하나 없는 이들이 없는 것 같았다. 마천루가 숲을 이룬 해운대보다 작고 소박한 송도해수욕장이 새겨놓은 기억이 훨씬 더 따스하고 오래가는 모양이었다.

 이런 추억을 자산으로 삼아 송도해수욕장의 과거 명물들이 하나둘씩 복원되고 있다. 복원의 속도는 빠르다. 사라진 출렁다리 대신 거북섬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곡선의 철골조 보행교 ‘구름 산책로’가 들어섰고, 거북의 모습을 형상화한 다이빙대가 세워졌으며, 기왕의 것보다 운행 거리가 4배나 긴 ‘부산에어크루즈’라는 이름의 세련된 케이블카가 지난 20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거북섬까지 운행하던 케이블카가 운행을 멈춘 지 29년 만이다.

 부산에어크루즈는 송도해수욕장 동쪽 끝 송림공원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서편 암남공원까지 1.62㎞ 구간을 운행한다. 암남공원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안에서는 구름 산책로와 푸른 바다를 발아래로 두고, 반대편 송림공원 쪽으로 되돌아오는 케이블카에서는 용두산공원과 부산 구도심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과거 송도해수욕장의 명물들이 크고, 길고, 세련된 것들로 대체되면서 송도는 이제 중년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자,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으로 다듬어진 셈이다. 

 

 

29년만에 움직이는 송도 케이블카

 

 

 

*암남공원 쪽에서 본 송도 케이블카.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와 영도다리 일대 등 부산의 구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다대포에서 황홀한 석양을 만나다

  송도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한때 전성기를 누리다가 쇠퇴의 길을 걸었던, 그러다가 다시 명소로 되살아나고 있는 곳이 바로 다대포해수욕장이다. 다대포는 송도보다는 멀지만 그래도 부산 도심에서 불과 8㎞ 거리에 있어, 송도가 쇠락했을 때 부산 시민들이 단골로 찾던 곳이었다. 다대포는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여서 강물이 싣고 내려온 모래가 유독 고왔다. 지속적인 모래의 퇴적으로 다대포가 가진 바다는 부산의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수심이 낮고 완만했다.


 그러나 1987년 낙동강 하굿둑 건설로 강물의 흐름이 막히면서 모래가 거칠어지고 갯벌화가 진행됐다. 수질 오염 문제까지 겹치면서 다대포는 이내 해수욕장의 기능을 잃었다. 쇠퇴하던 다대포해수욕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꾸준한 연안 정비사업 덕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정비사업을 통해 다대포는 이제 해변공원과 생태탐방로 등을 갖춘 운치 있는 해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부산지하철 1호선의 다대포연장선이 개통하면서 부산역과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지하철을 한 번만 타면 다대포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게 된 것도 다대포가 살아난 계기가 됐다.

 다대포는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이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이곳 다대포는 상업화된 느낌이 훨씬 덜하다. 다대포는 또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노는 해변이라기보다는,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종아리를 넘지 않는 낮은 수심의 백사장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게 더 어울리는 해수욕장이다.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이 떠들썩하고 역동적이라면, 이곳 다대포는 적막하면서 그윽하다. 특히 노을이 질 무렵의 다대포 백사장은 온통 붉게 물들어 황홀한 풍경을 선사한다.


# 태종대, 잘 다듬어 다시 명소가 되다


 기왕 찾아 나선 김에 부산의 오래된 명소 한 곳 더. 지금이야 ‘철 지난 여행지’쯤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부산의 태종대는 한때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던 관광지였다. 부산이 두르고 있는 바다 풍경은 사실 밋밋하고 단조롭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태종대의 갯바위와 바다가 보여주는 경관은 장엄하고 힘차다. 최근에 해운대와 광안리 주변 ‘이기대’의 경관이 조명받고 있지만, 바다 풍경이 힘차기로는 태종대에 어림도 없다. 곳곳에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태종대가 일찌감치 대표 관광지로 이름을 알린 건 그래서다.

 태종대는 정부의 계획 아래 정책적으로 개발된 관광지다. 태종대는 예로부터 태종무열왕의 전설이 전해지고, 부산을 찾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들던 명소였지만 곳곳에 해안부대 초소가 들어선 데다 도로가 없어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다. 태종대가 관광지가 된 건 1976년부터다. 정부는 일찌감치 1960년대 말에 태종대를 ‘유원지’와 ‘관광지’로 지정했다. 이어 1973년 순환도로를 완공하고 본격적인 관광지 개발계획을 세워 1976년부터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가 됐다. 태종대는 단숨에 전국적인 관광명승지가 됐다.

 그 무렵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해운대보다 태종대를 먼저 찾았다. 영도 등대와 주변의 깎아지른 기암이 바다와 어우러지는 장엄한 모습에 감탄했다. 비장감 넘치는 바다 풍경 때문이었을까. 영도 등대 못미처 유독 깎아지른 벼랑에는 ‘자살 바위’란 이름의 바위가 있었다. 정식 지명이 아니라, 거기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름이었다. 지금 자살 바위는 전망대가 들어서면서 사라졌지만, 자살을 막고자 바위 앞에 세웠던 ‘모자상(母子像)’은 40년이 넘도록 아직 남아 있다.

 낡은 관광지 취급을 받던 태종대는 최근 시설을 개보수하고 산책로를 단장하고 쾌적한 전기차를 들이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게다가 태종대 깊숙하게 들어선 절집 태종사에 해마다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만발하는 탐스러운 수국도 지금이 딱 제철이다.

# 300년의 세월이 기른 아홉산 숲


    

▲ 부산 기장군 ‘아홉산 숲’의 맹종죽 대숲. 굵은 대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부산 구도심의 송도나 다대포, 태종대에서는 멀지만 이즈음 부산으로의 여행을 떠난다면 ‘아홉산 숲’을 추천한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의 야트막한 산인 아홉산. 그 산자락 아래에 있는 아홉산 숲은 한 가문이 키워온 숲이다. 아홉산 숲은 남평 문씨 일가가 9대에 걸쳐 300여 년 동안 지켜온, 그리고 지금도 지키고 있는 숲이다.

 금강송, 참나무, 편백나무, 대나무가 뒤덮고 있는 아홉산 숲의 규모가 자그마치 52만㎡(15만7000여 평). 숲에는 아름드리 거목들이 울창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쳤으면서도 200∼300년생 소나무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건 문중에서 이 숲을 정성껏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문중에서는 경계를 치고 나무를 보호한 것뿐만 아니라, 이 숲에서 나무를 정성껏 길러내기도 했다.

 아홉산 숲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손으로 움켜쥐기 벅찰 정도로 굵은 대나무, 맹종죽이 이룬 대밭이다. 다른 나무들도 많지만, 아홉산에 간다는 건 이 대숲을 만나러 가는 것과 다름없다. 문중에서는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경제성이 높았던 대나무를 이 숲에서 길러냈다. 오솔길 산책로를 따라가면 두 곳의 맹종죽 숲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맹종죽 숲이다.

 대나무의 굵기는 죽순이 돋을 때 결정된다. 아무리 수령이 많아져도 처음의 굵기에서 더 굵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피에 흰 분이 묻어나는 대나무는 올봄부터 자란 것들이라는데, 불과 몇 달 만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았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아홉산 숲은 영화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간혹 유치원 체험학습 공간으로 내줬을 뿐 관광객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평 문씨의 종손이 땅을 팔고 빚을 내서 운영비를 대다가 사정이 어려워지자 농업회사법인을 차려 입장료 5000원을 받고 있다. 이렇게 관광객들을 받기 시작한 게 몇 년 되지 않는다. 개방 초기에는 예약자만 입장시켰지만 지금은 예약 없이 찾아가도 문을 열어준다. 그럼에도 아홉산 숲을 찾아가려면 서둘 일이다. 산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종손이 서너 달 빗장을 걸어둘 것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아홉산 숲처럼 오래 지켜온 시간을 정성으로 쌓아서 울울한 숲이 된 곳이 있고, 한때 번성한 뒤 쇠락했다가 그 시간이 다시 주목받아 살아나고 있는 곳도 있다. 놓아두어서 깊어진 곳과 다듬어서 더 빛나는 곳들이다. 그곳을 깊고 빛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시간’이다. 이런 곳들이 반가운 건 ‘시간’이 귀한 대접을 받는 듯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 = 송도해수욕장은 부산 구도심과 가깝다.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면 30분이 채 안 걸린다. 태종대는 영도의 최남단에 있다. 태종대 산책로에는 전기차 다누비가 운행한다. 한 번 티켓을 사면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재탑승할 수 있다. 다대포해수욕장은 부산지하철 1호선 역이 생겨 찾아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아홉산 숲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엔 불편하다. 해운대에서 아홉산 숲까지는 차로 30∼40분 정도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부산에서 숙소 선택권이 가장 넓은 곳은 해운대다. 해운대에서 가장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이라면 단연 파라다이스 부산이다. 해운대해수욕장 최적의 자리에 호텔이 들어서 있어 객실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마침 파라다이스호텔이 4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 16일 그랜드 오픈했다. 리뉴얼 개장을 기념해 오는 7월 20일까지 ‘올 뉴 파라다이스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20만 원(세금·봉사료 별도)부터, 디럭스, 프리미엄 디럭스, 스위트룸 등 종류와 새로 개장한 뷔페레스토랑에서의 조식, 오션 스파 이용, 파라다이스 키즈빌리지 이용, 부산 여행 체험 투어 등의 포함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패키지 종류별 혜택은 파라다이스호텔 홈페이지(www.busanparadisehotel.c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산 기장군의 아홉산 숲에 갔다면 거기서 머지않은 무인카페 ‘풍경 속으로’(051-723-1718)를 추천한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2㎞ 넘게 들어가야 하는데, 도무지 상업시설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숲 속에 무인카페가 있다. 입구의 우편함에 5000원을 넣고 들어가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다듬어낸 운치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각종 차, 오렌지와 참외, 뻥튀기 등을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다.

    

부산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출처 : 2017년 6월 28일 수요일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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