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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년 시와표현 신인문학상 수상작 : 저녁의 저울 외 4편 / 김문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년 시와표현 신인문학상 수상작>



저녁의 저울 외 4편


김 문


 


저녁언저리엔 허기의 그을음이 묻어있다
담장 위를 지나가는 검은 고양이 눈 속에 저울이 있다  
사뿐, 저녁이 저울에 앉는다 눈금이 바르르 떤다
끼니를 놓치고 담장의 그늘을 핥고 있는 혀
그늘 속엔 고양이의 배고픈 시간들이 있고
입을 다문 눈금들이 동그랗게 앉아있다

 

고양이가 담장을 몇 번이고 다녀가고
어둠 밖에서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지금 교신 중,

 

동그란 말들이 호두나무가지에 매달려있다
귀를 앓고 나면 사라진 것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소리를 받아 적고 동그란 무늬를 갖게 된
담장과 호두나무 사이의 말들,

 

저울의 도식은 눈금보다 절박한 내부를 가지고 있다

 

저녁의 마음과 아침의 마음은 서로 다른 무게
밤을 나가서 아침을 물고 들어오는 것들은
물기 많은 몸으로 온다
그을음도 없이 오는 저녁은 배고픈 저녁
길모퉁이에서 맞닥뜨리는 퀭한 눈빛들  

 

저녁의 저울엔 공복이 가장 무겁다

 

 


잠깐 멈춘 바람
 
 
 묵화는 바람의 그림
 늘그막의 아버지는 바람과 친했다 풍이 든 손이 나뭇잎처럼 떨렸다 손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 붓을 잡은 아버지의 그림엔 잠깐 멈춘 바람으로 가득했다

 

 묵의 그림은 인화된 바람의 군도群圖 선을 가두고 선에 갇히는 화풍,  방바닥에 화지를 펴놓고 기우림으로 앉은 아버지, 온몸의 숨을 몰아 붓끝에 바람을 풀어 놓는다 그때 아버지의 손끝에서 흔들리는 화조花鳥를 보았다

 

 붓끝을 흘러나온 검은 숨결에
 가끔 맑은 피를 섞는다
 희미해진 것들은 흩어지는 홑잎이 되었다
 천년 정분의 화지에 사내의 묵은 숨결이 젖어들고
 옷깃에서 몰약 냄새가 났다 
 기암절벽 위 누옥 한 채,
 더 이상의 풍경은 내보이지 않겠다는 듯

 

 묵향을 따라온 화풍은 떠날 뜻이 없는 바람 산수를 거닐며
 동색同色으로 늙어간다 묵은 수천의 빛깔을 은유하고
 여백은 비문을 남긴다
 
 짐승과 나무와 불의 통증이 음각된 묵
 저절로 피었다 지는 꽃이나 놀라 도망가는 노루가 주된 소재지만
 손끝의 떨림에 우수수 지거나 달아나고 마는 친근親近들,

 

 머무르고 고이는 파계의 행보들
 오래된 계절풍이 눌어붙어있는 아버지의 묵화 한 점

 

 낙관이 없다

 

 

 
 맹그로브체류기
 
 
짠물은 먼데서 온다.
 
 불시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볕은 물을 마시고 갈증이 더 깊어졌다. 구겨진 물살이 맹그로브나무 아래서 허리를 펴고 줄기들은 촘촘히 그늘을 엮는다. 산란기 어종들 그늘이 고인 쪽으로 모여든다.
 
 모처럼 쉬는 날, 공단 근처 싱거운 귓바퀴들 모여들어 시끌벅적한 상가. 쏘아올린 말들로 북적인다. 어떤 말들은 쉼표도 없이 한 뭉치로 꼬여서 난청을 끌고 다닌다. 짠물을 떠돌던 말은 맹물의 말에 기대고 싶었던 걸까, 정붙일 곳 없는 말들, 저와 비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에 달라붙는다.

 

 저녁 무렵 누가 물 위를 떠도는 발자국을 건졌다고 한다. 젖은 발들의 춤은 발자국이 발자국에게 보내는 고백.

 

 맹그로브는 새끼가지를 제 몸에 심는다. 만조의 어느 날, 새끼를 떼어내어 물에 띄워 보내는 어미. 물에도 모서리가 있다. 물결소리에도 베이는 잠, 어린 맹그로브들은 물위를 떠다니며 자란다. 어디든 몸 닿는 곳에 뿌리를 박는다.

 

 잔업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 공중전화부스에서 마침표도 없이 끊긴 안부에 좁고 비탈진 눈길을 자꾸만 따라오는 짠물. 차가운 흰 빛이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새벽이면 주인할머니는 방마다 연탄불을 갈아주러 다닌다. 방문 앞을 서성이는 할머니 발자국은 불꽃보다 뜨겁다. 맹그로브 한 그루 보일러파이프를 흐르는 물소리 따라 멀리 눕는다.

 

 

 
궤적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 기억
오래 망설이던 기억들이 눈이 되는 걸까
네 쌍의 눈과 여덟 개의 발로 건너다닌 허공
날아다니는 곤충의 궤적엔 무한의 공중이 들어있다

 

첫 번째 사냥은 첫 번째 배고픔이다
서쪽의 어둠을 벽으로 쓰고 동쪽을 창문으로 쓴다
그의 날개는 하늘이다
널따란 날개 사이로
허공을 닮은 보호색은 투명하고 끈적하다
 
하늘에 덫을 놓는 기술은 바람에게 배운 것
바람만이 출구를 알고 있다
구름의 방향과 바람의 속도를 계산하면
끼니는 완성된다
 
저 곤충의 뱃속엔 허공을 포위하는 그물이 들어있다

 

포위된 공중, 갈색나방 한 마리의 마지막 몸짓,
단단한 적막이 출렁인다

 

죽음이란 한 번쯤 공중에 버린 자기 궤적에 걸리는 일

 

대롱대롱 매달린 갈색나방의 부동,
전리품이 전시된 길목으로 허기가 모여든다

 

 

 

접힌 곳으로 돌아오는 것들

 

 

  아버지를 데려간 계절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돌아왔다 집안의 한 남자가 떠나고 짚을 걷어냈다 뜨겁게 달구어진 주름진 지붕, 비가 올 때마다 후끈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난다

 

 빗소리가 떨어지던 자리에 정오의 처마가 접혀있다 검게 탄 처마가 물결무늬로 내려오면 마루에 걸린 산수화에서 간간이 물소리가 들린다

 

 인대가 느슨해진 죽침竹枕이 잠을 베고 있는 마루, 부러진 말들 접혀진 페이지로 모여 든다 갇힌 글자들 어떻게 날개를 얻을까 뒤척인 흔적도 없다 

 

 잠 쪽으로 잠시 접혀진 시간 누군가 가만가만 나를 넘기고 있다 나는 이 적요의 손길이 좋아 스르르 페이지를 놓친다 졸음엔 낯익은 독서와 낯선 독서가 있다 안경알은 눈 감은 쪽이 무겁고 책은 읽은 쪽이 더 무겁다

 

 걸음이 아픈 계절, 기약 없이 떠났던 길들이 접힌 곳으로 돌아온 저녁, 멸치국물 냄새가 어둑한 밥상에 둘러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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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길 외 4편 


 

 

1.
한 줄이다
모텔의 창을 열면
해송의 우듬지에 수평선이 걸려 있다

 

위험 도로 끝, 이라고 쓴 이정표 아래
입을 벌린 물고기
바다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2.
바닷가 소나무
거친 바람을 맞는 것이 타고난 업이다
파도소리 밀려와 앉을 틈 없이
벗겨져 나가는 소나무의 살 허물,
맨살 위로 짠 바람 빛나게 몰려온다
검은 눈물이 된 솔방울
긴 속눈썹이 젖는다
누가 저 눈물을 호리병에 담아 위로해 줄 것인가

 

3.
솔잎이 뭉쳐진 줄 알았다
죽어 누운 새 한 마리
솔잎 깃털 사이로 하얀 뼈 몇 개 삐죽 올라와 있다
눈을 감싸던 동그란 뼈
허공을 굴리며 먼 바다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제 바람은 그의 날개를 가볍게 들어 올릴 것이다
망망대해를 날아
한 점, 찾을 수 없는 마음 지나는 동안
어쩌면 아침 햇살이 될 지도 모르지

 

4.
위험 도로 끝, 그 앞에 다시 선다
끝이라는 말은 얼마나 많은 칼날을 품고 있는가
부드러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침묵, 그 기둥에 매달려
얼마나 많은 거리를 헤매어 다녔는지
옥상으로 향하는 젖은 발걸음에 놀라
축축해진 꿈을 깨면서도 알지 못했다
호흡하는 매 순간이
끝의 끝, 시작의 시작인 것을
길의 끝이라 한들 무엇이 그리 위험하겠는가
가속도를 붙이며 달려 온 이 곳

 

5.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 앉는다
허공을 지우며 가는 갈매기 한 마리
바다의 발톱 한 끝이 가슴을 치고 달아난다

 

 

  

가시에 대한 명상

 


노을에 발을 담근 어둠
턱을 괴고 마을을 내려다본다
지붕 아래, 살점 속 가시 발라내는 저녁이 있다

 

가시를 키우며 물고기는 자라난다
물고기만 가시를 품는 걸까
좌우대칭의 가시는 쇠창살이다
마음의 중심을 향해 쌍검을 휘두르며
한 떼의 물고기들 몰려온다
가시의 힘에 의지해 푸르게 살 오르는 물결,
얼룩말 파도 위를 물고기 기수가 달리고 있다
밤새 대양을 넘어 가쁜 숨을 해변에 쏟아놓는다

 

눈물도 가시가 되어 목에 걸릴 때가 있다
꾸역꾸역 찬밥을 밀어 넣어 보지만
生의 가시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찌르고 어루만지며 가는 길은
기도가 눈물을 덮는 시간이다
좁쌀 같은 알을 품은 물고기
눈물은 유선형으로 구부러져 물살을 헤엄쳐 나간다

 

은빛 달의 바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얼음의 지층

 


발목에 추를 달고 누웠다

 

병실 커튼 뒤에서 나는
얼음의 계곡을 오르는 한 마리 물고기
구름처럼 떠 있는 부레에 얼음은 차 오르고
마음 둘레를 지나 지느러미까지 확장이 된다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하는 냉각의 속도를 가늠해본다
수초들은 더 이상 등지느러미를 간질이지 않는다
얼음의 무게에 몸을 씻는다

 

나뭇잎은 찢어진 일기장으로 물밑에 가라앉았다
등고선의 계단을 걸을 때마다
눈물로 얼룩진 일기장
무게의 중심이 기울어진다
쇳덩이 추들이 줄을 당길 때마다
공중에서 기울어진 발자국들 걸어 나온다
발 디딜 물길이 차고 단단하다
붉은 혀를 내밀어 소리치지만
내게서 떠나야할 언어들은 뻐끔거리다 얼어버린다

 

밤새 켜 놓은 옆 병실의 웅성거림이
얼음의 지층 아래 물소리로 흐른다

 

물결마다 숨어있는 빛을 햇빛이 들어 올린다

 

 

 
난독難讀

 


저토록 절박한 세레나데 들어 본 적 있는가
초록별 움트기 시작한 논바닥에
쏟아지는 개구리 떼울음

 

민박집 한켠에 벗어던진, 양말처럼 구겨진 언어
한꺼번에 와글대며 달려든다
끊어 읽을 행과 연도 구분되지 않는
난독의 문장
헤쳐 가며 이 밤을 읽는 수밖에

 

돌아누울 때마다 겹겹의 울음 벽
소리 내지 않는 마음도 슬쩍 끼워 놓는다
살만하니까 이런다
살만하니까
말끝을 채우지 못하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꽃대 같은 그녀
도려낸 유방에서
쏟아진 울음 풍선 환하게 떠오른다

 

개구리 알처럼 붙어있는 별
꼼지락거리며 부화하는 꼬리가 반짝인다

 

봄밤이 붉게 부풀었다

 

 

 

유추프라카치아*

 


1.
모래가 숨 쉬는 방 안
어둠이 등을 말고 누웠다
잃어버린 고양이, 우주의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남겨진 자의 울음을 들고 들어선 골목
그림자가 앞장을 선다

 

가족을 찾습니다
전봇대에 붙여 놓은 전단지, 찢겨져 있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의미가 잡풀 같이 자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야생의 쓰린 소리가 났다
가을을 밀고 가는 귀뚜라미 울음 속
허공을 헛디딘 마른 꽃들이 떨어져 내린다

 

편두통의 송곳, 밤새 하늘을 긁어댄다


2.
상처의 안쪽을 더듬으며
쓰윽 핥아주는 가시 혓바닥
가시투성이 시간이 거기 매달려 피 흘리고 있었다

 

야생의 눈동자에 들어선 허공
초점 없는 뼈들이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입김보다 가벼운 생의 털가죽이 패여 나가고
엉겨 붙은 핏덩이
사십일, 사막의 바람은 그의 살마저 모조리 발라냈다
잿빛으로 무너지는 몸의 무덤
쓰레기더미의 그를 들어 올리는 손이 있었다


3.
링거 줄에 매달린 고양이의 호흡
말줄임표로 떨어지며 말없는 말을 한다
태양을 바라보던 오후 네 시의 눈동자 가늘게 닫힌다

 

어디로 갔을까
그가 데리고 떠난 내일來日, 발자국이 없다
무중력 시간의 날개, 발자국이 없다

 

우주,
고양이를 묻고 내려오는 산길
말린 혀처럼 떨어진 잎들
풍화되는 시간의 틈 사이로 흐른다
흘러 구름이 되고, 흙이 되고, 나무南舞가 된다
낙엽을 덮고 생각에 잠긴 떡갈나무
떨어지는 잎들은 제 무게를 땅에 내려놓아 가벼운데
그 무늬까지 껴안은 어깨 출렁거린다

 

햇솜보다 가볍던 호흡,
빗물에 젖는다

 

 

* 유추프라카치아 : 아프리카에 있다는 결벽증이 심한 음지식물, 사람의 손길이 한 번 스거나 닿으면 죽지만 한 사람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닿으면 잘 자란다는 상상의 식물. 사랑 받야 할 대상을 일컫는 상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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