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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작 : 안식 외 4편 / 정우신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작>



안식 외 4편


정우신

 



죽은 자의 가슴 위에 석류를 올려놓았다

 

지상의 한 칸에서 식어가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로 들어가 몸을 데웠다

 

손톱이 없는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서로 주고받았다

 

빛이라는 가장 긴 못에 박혀 어둠의 심장에서 뿌리의 모양으로 말라가는 사내

 

석양이 호수에 눈물을 뱉어내면 분수는 슬픔을 동그랗게 밀어 올렸다

 

허공의 눈을 찢으며 날아가는 새떼들

 

새의 눈이 얼굴 위로 쏟아지면 쥐가 달려와 안개의 떫은 맛을 골라냈다

 

숲 속에서 아이들은 석류을 들고 망치질을 했다 말이 없는 두 발목을 종이로 감쌌다

 

죽은 나무 안에 누워본다

 

뿌리는 어둠을 키우며 나를 뱉어낸다

 

 


 

 

움직이는 것은 슬픈가.

차가운 것은 움직이지 않는가.

 

발목은 눈보라와 함께 증발해버린 청춘, 다리를 절룩이며 파이프를 옮겼다. 눈을 쓸고 뒤를 돌아보면 다시 눈 속에 파묻힌 다리, 자라고 있을까.

 

달팽이가, 어느 날 아침 운동화 앞으로 갑자기 떨어진 달팽이가 레일 위를 기어가고 있다.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반찬을 몰래 집아 먹다 잠든 소년의 꿈속으로. 덧댄 금속이 닳아서 살을 드러내는 현실의 기분으로

 

월급을 전부 부쳤다. 온종일 걸었다. 산책을 하는 신의 풍경, 움직이는 생물이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없다. 공장으로 돌아와 무릎 크기의 눈덩이를 몇 개 만들다가 잠에 든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슬픈가.

가만히 있는 식물은 왜 움직이는가.

 

밤이, 어느 작은 마을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밤이 등 위에 정적을 올려놓고 천천히 기어간다. 플랫폼으로. 플랫폼으로. 나를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창밖으로 내리는 눈발의 패턴이 바뀐다.

 

간혹 달팽이 위로 바퀴가 지나가면 슬프다고 말했다.

 

잠들어 있는 마음이 부풀고 있다.

 

나를 민다.

나를 민다.

 

 


번식

 

 

미나리가 자라면

미나리를 캐러 가자 칼을 쥐고

휘두르는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야

 

행주를 삶으며

따듯한 냄새를

모두 놓쳐버렸다

 

물의 폭력이란 그런 것이구나

 

소파에 누워 창밖을 본다

어김없는 봄은

어떤 기분으로 걸어갈까

 

구름이 자신의 그림자에

물을 붓듯

발등이 부풀고

 

차분히

자라는 것

 

염소는 발굽에 걸린 풀을

골라내며 울고 있다

 

 


식구들

 

 

우리의 식탁에는

큰아빠와 할머니와 고모와 고모부와 사촌 형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주인 없는 컨테이너 아래에는 고양이가 산다.

사람들은 먹다가 남긴 음식을 놓아두고 간다.

 

여러 동물이 모여든다.

 

동생은 고양이를 몰래 들고 왔다가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여러 번 그렇게 한다.

식탁 밑이 나와 동생의 자리이듯

어떤 고양이는 밥을 먹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

 

사람들은 먹이를 던져주며 기쁨을 느낀다.

고양이가 어둠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자세를 한껏 낮추다가 간다.

한없이 귀여워하다가도 발톱이 보이면

돌로 머리를 친다.

 

주인이 오면 우리는 자는 척을 한다.

현관에서 늙고 아픈 냄새가 퍼져오지만 우리는 잠바를 입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주인은 우리가 얌전히 있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낀다.

이리오렴. 이리오렴.

그렇게 여러 번 침을 뱉는다.

 

나는 동생을 가방에 넣고 다른 동네를 다녀온다.

동생은 내가 담겼을 때의 기분을 느꼈는지 한참을 울다가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고양이가 고양이를 공격하려다가 복종한다.

 

우리는 밤마다 오줌을 맞는다.

컨테이너에 불이 들어오기를 기도한다.

 

 

하얀 레코드

 

 

꿈의 뒷페이지들, 종이 꽃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구름으로 들어간 참새는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숲을 돌아다녔다 머리끈을 풀어 줄기를 묶었다 그곳에 검지발가락을 넣었다 뺐다 죽어가는 꽃을 유리컵으로 옮겨 심은 뒤 깨트렸다 선인장에 양말을 뒤집어 씌워놓고 다른 이름이 되기를 기도했다

 

나는 잠든 소녀의 스케치북에 굴뚝을 그려본다 끓고 있는 눈발들, 반대편 누군가는 따듯할까 이곳을 찢어 벽난로에 넣고 싶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창문 하나가 없어질 것 같다

 

멀리 가고 싶은 날은 침을 뱉으며 이불을 털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옷가지를 들고 웃었다 색을 갖는다는 것은 따가운 일이었다 나는 소녀의 빈 다리에 누웠다 화분 받침대를 비집고 나온 뿌리들

 

허공이 한없이 좁다 디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발밑에는 눈보라가 날지 못하는 새들을 몰고 다닌다 우리는 아래가 없으니까 떠다닐 수도 없으니까

 

나는 소녀의 꿈에 한 발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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