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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년 시인수첩 신인상 수상작 : 시그니처 외 / 김바흐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년 시인수첩 신인상 수상작>





시그니처 외


김바흐



깨어나면 새장의 새를 날리고 새 한 마리만 더 날릴 구실을 찾으면서 방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느껴져요 아름다움이란 치명적인 걸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문제는 A나B가 아니고 A에게서 B에게로 가는 과정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의사는 별명 하나를 내게 산뜻하게 포고해줬는데 곧 웃으며 이렇게 말해요 그런 썩을 표정 짓지 마요 죽을 병도 아닌데 걱정할 거 없어요 내 말만 잘 들으면. 그러나 환자가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들 수야 있는 존잽니까
자다 깨면 얼굴 안쪽으로 뭔가를 쑤셔 넣어요 아플 때는 뭔가 집어삼키는 일이 거룩해집니다 바나나와 전복, 냉동 딸기까지 아삭아삭 씹어 넘기고 나면 생각해요 탄산이란 무엇일까, 커피란, 향이란……나의 삶을 구성하는 가급한 것들
당혹감을 이기기 위해서랄까,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껏 설사하러갑니다 개인적 일의 핵심이랄까 오늘도 조각배의 침몰 소식이 소리 없이 전해져 오는 저녁, 너무 많은 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양 나는 해야 할 일만 빼놓고는 할 수 있는 뭐든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과에 다니는데 의사는 '집에 있는 게 모형처럼 보이는 병'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 건물과 콜라병, 옷가게, 돈을 넣으면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는 자판기, 수분 폭탄 물티슈, 신라면 , 닭대가리처럼 보이는 붉은 고무장갑…… 나의 꿈은 이것들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것이죠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에요



마누카꿀



짧은 건 아름다운 거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놓칠 이유는 충분하다 쿵,
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규모 있는
사업
버릴 때 소유하는 확장이란,
살뜰한 예각銳角


우리는 살았고, 살아 있었고 마음의 도읍을 자주 옮겼다
정복한 꿀이 정복할 꿀보다 많아질 때
정밀의 다른 이름으로 행복을 소유했다


떨어질 때 아팠던 며칠
버릴 때 장악하는 지난날
우리의 겨드랑이에서는 과일의 한 과정처럼 식초 냄새가 나


포플러나무로 만든 신발을 신고 당신을 만나러 갔다
누구나의 선택, 내밀을 존중할 줄 아는 나는
한 번쯤 더 고였다 흘러 없어진 대도


가엾고 가여운 말벌
오래 저장돼 섞이지도 않는
또렷한 며칠,



김바흐:

본명,  신희진. 연세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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