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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학교 관계

군산 근대문화유산 답사기(2) -2015년 숭람회(崇藍會) 하계연수

by 혜강(惠江) 2015. 8. 28.

  

전북 군산 

군산 근대문화유산 답사기(2)

 -2015년 숭람회(崇藍會) 하계연수 -

 

 

· 사진 남상학

 

 

   2015년 8월 10일(월) 오전 9시 30분, 숭람회 하기연수차 전라북도 군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군산은 일본 강점기 근대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로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숭람회(崇籃會)는 학교법인 숭의학원 산하 숭의초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숭의여자고등학교의 전·현직 교장으로 조직된 모임입니다. 그 이름은 숭의(崇義)의 ‘崇’과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의 유학자 순자(荀子)가 말한 ‘靑出於籃靑於籃(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을 이르는 말)’에서 ‘籃’의 글자를 딴 것입니다.  

 

  한평생 숭의학원에서 학교관리자로서 봉사한 사람끼리 친목을 도모하며, 선․후배 간 경험을 나누며 가교들 돈독히 하기 위해 1992년에 조직되어 올해로 23년째가 되었지요. 숭람회의 2015년 여름연수는 1박 2일 일정으로, 13명의 회원이 참가하였습니다.

 

 

군산은 일제 수탈의 통로였습니다. 

 

 

    전북 군산은 1899년 개항을 했습니다. 1899년이라고 하면 우리의 국력이 약해져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탈을 받을 때였지요. 이런 상황에서 군산에는 개항과 함께 일제 자본이 밀려 들어왔고, 일제는 군산을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탈하는 근거지로 삼았지요.  

 

  소설가 백릉(白菱)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1937년 ‘탁류(濁流)’라는 소설에서 1930년대 일제의 수탈을 적나라하게 고발했지요. 그 소설의 무대가 바로 군산입니다. 군산 도심엔 일제강점기 경제수탈과 문화침략을 보여주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옛 군산세관 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나가사키18은행 군산지점, 조선미곡회사 쌀 창고, 군산 내항 부교(浮橋), 신흥동 일본인 가옥(히로쓰 가옥),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 건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東國寺) 등 1900년대 군산을 점령한 일본인들을 기억하는 공간과 그에 맞서 우리의 정신을 이어온 사람들의 기록이 담긴 공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군산에서는 근대문화역사가 녹아 있는 현장을 산책하며 둘러볼 수 있는 군산의 ‘구불길’을 만들어 놓았지요. 그 길을 걸으면 고스란히 근대문화역사의 자취를 만납니다. 길 자체가 유적의 보고인 셈이지요. 유적은 구불길 6-1길인 ‘탁류길’에 몰려 있습니다. 백릉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인 원도심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는 시간여행입니다. 

 

 

1박 2일 연수 일정 

 

  숭람회 연수단은 그 자취를 선별하여 첫째 날은 숙소인 고우당(古友堂)을 중심으로 근대역사가 묻어있는 건물을 탐방하고 둘째 날은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등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정으로 짠 것이지요.  

 

 첫째 날 : 서울 출발 오찬(두메골 보리밥정식) 경암동 철길 이성당→ 초원사진관 히로쓰가옥 동국사 군산항쟁관 고우당(숙소,짐 풀고) 군산여고 교정 월명공원 해망굴 해망굴 수산물종합센터 만찬(어청도횟집) 고우당(숙박)

둘째 날 : 조식(한일옥 무국) 근대역사박물관 (구) 군산세관 근대미술관(구 18은행)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오찬(궁전 갈치찜) 부잔교진포해양공원 영국빵 채만식문학관 귀경

 

 

 

  우리는 첫날의 일정을 끝내고 고우당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둘쨋날 일정에 따라 군산의  근대문화유적을 돌아보았습니다.

 

 

<제2일>  

 

아침식사 - 한일옥(군산시 구영3길 63, 신창동 2-1, 063-446-5491)

 

  초원사진관 바로 앞집, 이 집은 무국으로 유명합니다. 무국은 얇게 썬 무와 양념한 쇠고기를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 국입니다. 70 전후의 나이인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국을 시켜 먹었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자주 만들어 주시던 맑은 장국 무국은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고 감미가 도는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쇠고기 무국은 오랫동안 얼큰한 김치찌개나 구수한 된장찌개에 저만치 밀려나 있었던 음식이었는데, 군산까지 와서 비로소 먹게 된 ‘한일옥’의 소고기뭇국은 이른 아침의 피로함을 더는 보양식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윤인호 교장이 기쁜 마음으로 부담해 주셨습니다.  

 

  이 식당 2층에는 일제강점기 시대 골동품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추억의 물건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모습이 달라져도 옛것에 대한 향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구 군산세관

(군산시 해망로 244-7, 장미동 49-38, 전화 063-730-8700) 

 

  근대역사박물관  바로 오른쪽에 옛 군산세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군산에 있는 근대건축물 중 건축미가 가장 뛰어난 곳 중 하나입니다. 벨기에에서 수입한 적벽돌로 지어진 유럽양식의 건물로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독일인 건축가가 지은 건물로 1908년에 준공한 것이지요. 독특한 첨탑 모양 장식도 이국적입니다.  

 

  현재 호남 관세전시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군산세관의 역사와 그 역할, 특히 당시 쌀의 거래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도지정기념물 제87호)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시 해망로 240, 장미동 1-67, 063-454-7870)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5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물류 유통의 중심 기지였던 군산의 역사를 담은 해양물류역사관과 근대생활관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1930년대 거리의 상점과 미곡판매점 등이 축소돼 전시돼 있고, 주조장과 일제 수탈의 역사 등 자료들이 전시돼 있어 당시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지요. 

 

  전시실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1930년대 군산의 영동상가를 재현한 거리가 펼쳐지지요. 개성상인이 많아 송방골목으로 불린 거리에 있던 잡화점, 인력거차점, 형제고무신방, 조선주조주식회사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력거차점 앞에서는 당시 남학생 교복과 여학생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인력거에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 인기입니다.

 

  쌀을 거래하던 군산미곡취인소는 오늘의 증권거래소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미곡 가격으로 일종의 투기를 하던 곳이지요. 미두장이라 불리던 이곳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여러 인물이 드나들며 투기하고 돈을 잃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군산미곡취인소 맞은편에는 가난한 조선인이 살던 토막집이 재현되어있습니다. 당시 월명동, 개복동, 창명동 등 산비탈을 따라 토막집이 있었는데, 《탁류》에서 여주인공이 살던 곳도 콩나물고개 위의 토막집입니다. 

 

  군산 내항을 재현한 공간에는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배를 정박한 모습, 수위에 따라 오르내려서 ‘뜬다리’라 불린 부잔교의 모형도 전시하고 있지요. 그런가 하면, 군산 최초의 극장인 군산극장의 전신인 군산좌, 군산 최초의 한국인 중등교육 기관인 영명학교와 군산역을 재현한 공간,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담은 모형도 볼 수 있습니다.   

  

 

 

 

군산 근대미술관(구 18은행 군산지점)

(군산시해망로 230, 장미동 32) 

 

   군산 근대미술관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왼쪽 길로 300m 정도 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군산에서 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었습니다. 일본 제 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두고 있던 일본 지방은행으로 조선에서는 1890년 처음 문을 열었지요.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지점을 개설했는데 군산은 1907년에 조선에서는 일곱 번째 지점으로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군산에 들어와 무역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은행 업무가 주목적이었던 만큼 건물 자체는 단순하게 설계했습니다

 

  따라서 이 은행은 일본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갈취하는 자금줄 역할을 했다고 봄이 좋겠습니다. 제18은행은 현재 근대미술관으로 개관해 기증된 미술작품과 지역작가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국가 등록문화재 제372호) 2층에는 안중근 의사 여순감옥 전시관이 있어 안중근 의사의 활약상을 잠시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근대건축관

군산시 해망로 214, 장미동 23-1

 

    근대건축관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지배를 위해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한 건물이지요. 일본인이 특혜를 누리며 상권을 장악하는 발판이 되었죠.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도 나오는 이 건물은 지붕 경사로를 급하게 만드는 일본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특징으로 채광을 위해 지붕 중간중간에 작은 천창을 냈습니다.  

 

  2층 건물이지만 실제 높이는 4층 건물과 같은 이 건물은 지을 당시 군산 최대의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동판을 이어 붙여 일본 무사의 투구처럼 뾰족하게 만든 지붕이 인상적이지요. 당시 군산 거주 일본인의 돈은 군산의 쌀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근대 군산의 건축, 구 조선은행의 역사 등을 엿볼 수 있는 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등록문화재 제 374호)

   

  근대미술관관 옆 내항 4거리에 있는 100년광장은 개항 100년주년을 맞이하여 1999년 조성되었습니다. 이 광장에는 쉴 수 있는 정자와 독서상과 철마 등이 있습니다.  

 

               

 

 

 

 

 

 

 

 

 

 

 부잔교(浮棧橋)

- 군산 내항  

 

  부잔교는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간다고 해서 ‘뜬다리’ 부두라고도 하는데, 군산 내항에는 현재 3개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은 1899년 군산이 각국 조계 지역으로 개항된 후 군산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1905년 제1차 축항공사를 시작해서 1921년까지 연 80만 톤에 달하는 수출입 화물의 하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군산에서 생산하고 군산으로 모여든 수많은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언제든 배가 닿을 수 있도록 뜬다리를 만들었지요. 1918년~1921년과 1933년 준공됐다고 합니다.    

 

 

 

진포해양테마공원

(군산시 내항2길 32, 장미동 1-4, 전화 063-446-7678)

 

  진포해양공원은 군산 내항에 조성된 해양공원으로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으로 기록되는 최무선 장군이 바다에서 싸웠던 뜻깊은 곳입니다. 처음으로 화포를 개발하여 진포 앞바다에서 일본군에게 승리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각종 역사서는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만들어 진포(鎭浦)에서 왜구 병선 500척을 패퇴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만 3천여㎡의 공원 부지에는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거둔 진포대첩을 기리기 위해 4천 200t급 해군 상륙함을 비롯하여 전투기, 정찰기, 수송기, 장갑차 등 1950년대를 전후해 우리 군(軍)에서 사용됐던 16종의 육.해.공군의 각종 퇴역 장비가 전시되어 시민의 안보교육과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군상륙함 (LST) 위봉함 676호은 약 48년간 전투활동은 물론 훈련 및 실습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퇴역하여 지금은 안보교육 학습장과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의 명 해전부터 우리나라 해전의 역사 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영국빵집

(군산시 대학로 144-1, 신풍동 1001-11, 전화 063-466-3477)

 

  군산에는 ‘이성당’ 말고도 또 다른 의미의 명물 영국빵집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문을 열어 동네 빵집으로 꾸준히 이름을 알리다가 군산에서 생산되는 ‘흰찰쌀보리’라는 보릿가루를 반죽에 섞어 빵을 만들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흰찰쌀보리는 희고 찰기가 있는 품종으로 군산에서 대량 생산됩니다. 보리는 원래 농약을 칠 필요가 없는 곡물이어서 안심이 되는 데다 찰쌀보리가 찰기까지 더해 쫀득한 빵으로 차별화한 것이지요. 보릿가루를 50% 정도 섞어 만드는 단팥빵과 부추빵을 비롯해 100% 보리 반죽으로 만드는 보리만쥬가 영국빵집의 대표 빵이 되었지요.  1박 2일의 숭람회 군산 시간여행을 마치면서 회장인 김학선 교장이 회원 전원에게 2만원 상당의 빵을 선물로 제공하였습니다.  

 

 

 

 

 

채만식문학관

(군산시 강변로 449, 내흥동 285, 전063-454-7885)

 

 이날 오찬은 궁전갈치찜(신창동 47-1, 063-445-7770)에서 마치고, 마지막으로 우리 여행단은 군산시 내흥동에 있는 채만식문학관을 찾았습니다.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고봉인 채만식(1902~1950)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다 익산에서 돌아간 전북인입니다. 그래서 군산에는 문학과 외에 임피면에 작가의 생가터, 집필가옥, 채만식 선생 묘소 등이 있지요.  

 

    조선일보에 연재(1937년 10월∼1938년 5월)했던 소설 ‘탁류’는 일본강점기 군산 사람들의 생활을 세세히 기록했던 작품이었지요. ‘탁류’는 ‘태평천하’와 더불어 채만식의 대표작으로,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어두운 세태를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소설 ‘탁류’ 외에도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등 풍자적인 작품으로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근대 풍자문학의 대가입니다. 그런데 1940년 7월 ‘나의 꽃과 병정’을 시작으로 해방 전까지 14편의 친일 성향의 글을 씀으로써 오점으로 남겼습니다. 광복 후 그는 <민족의 죄인>(1948)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하여 자성하는 글을 써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국민 앞에 사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영리한 사람들이 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일본 사람을 따랐다. 역시 적지 아니한 수효의 사람이 핍박을 받을 용기가 없어 일본 사람에게 복종을 하였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 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었다.”(‘민족의 죄인’)

 

  문학관에는 그의 친일에 대한 내용은 생략된 채 친필원고와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군산 출신인 그는 ‘탁류’를 통해 일제강점기 군산의 상황을 풍자 묘사함으로써 채만식문학관은 군산의 '문학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답사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연수단은 채만식문학관 답사를 끝으로 군산 근대문화유산 답사의 대단원을 마감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해에 일제 수탈의 현장인 군산을 여행지로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숭람회 회장 김학선 교장과 총무 이광수 교장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창립 이후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화기애애한 가운데 친목을 다져온 숭람회가 자랑스럽습니다. 전통이 있고 화목한 학원 분위기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믿어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김호중 교장, 이영배 교장(건강문제),권갑윤 교장(해외거주) 이 불참한 가운데 총 12명이 참가하었습니다.

 

 

퇴직 교장

 전용흥 교장, 남상학 교장, 유재영 교장, 김삼봉 교장, 오용환 교장, 김학선 교장,  우남일 교장, 윤인호 교장, 강상대 이사

 현직 교장

최병기 교장(중학교), 이광수 교장(고등학교), 박재현 교장(초등학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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