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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남해

전남 보길도, 텅 빈 듯한 고요… 은빛 바다 홀로 빛나네

by 혜강(惠江) 2014. 1. 16.

 

전남 보길도

 

텅 빈 듯한 고요… 은빛 바다 홀로 빛나네

 

 

보길도(완도) = 글·사진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

 

 

 

▲ 전남 완도군의 보길도 중리 해변의 뒤쪽 능선을 타고 2㎞쯤 오솔길을 걷다가 만나는 해안절벽 ‘돛치미 끝’에서 바라본 바다. 전복 양식장 사이를 지나는 배가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수면 위로 부드러운 주름 문양을 그려내고 있다.

 

    전남 완도군의 보길도. 340여 년 전에도, 또 지금도 그 섬의 주인은 고산 윤선도입니다. 당쟁과 사화로, 또 잇따른 전란으로 어지러웠던 세상을 등지고 절해고도로 들어왔던 그는 이 섬에다 꿈에 그리던 이상향을 만들었습니다. 연못을 막아 그 가운데 그윽한 정취의 정자를 세웠고 마을이 바라보이는 산 중턱에 서재를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거기서 은둔하며 수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그 자취가 지금도 보길도 부용동에 고스란히 되살려져 있습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남도의 섬, 보길도로 갑니다. 보길도는 여전히 윤선도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보길도에 윤선도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즈음 보길도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윤기로 반짝이는 난대림 초록 숲. 밭두둑에서 벌써 간질간질 올라오는 냉이와 쑥. 섬 곳곳에서 막 붉게 피어 하나둘 떨어지는 동백…. 활처럼 둥글게 휘어진 통리와 중리의 해변은 일출 무렵의 여명으로 붉게 물들었으며, 섬 남쪽의 능선을 걸어 당도하는 해안 절벽 ‘돛치미 끝’의 바다는 한낮의 햇살을 받아 온통 은박지처럼 반짝였습니다. 예송리 해변에는 파도에 떠밀린 자갈이 달빛 희미한 깊은 밤에도 자그락거렸습니다. 겨울이면 보길도는 외지인들의 발자취가 끊겨 텅 비어 고요해집니다. 드나드는 파도소리만 남은 적막한 섬에서 세상에 등 돌리고 은거했던 섬 주인의 향기는 한결 더 짙었습니다.  

 

 

윤선도의 풍류 닮은 ‘은은한 풍경’ 

 

 

▲ 보길도 동쪽의 백도리 마을의 자그마한 포구. 마을 뒤편으로 노화도와 석도, 소안도 등의 섬들이 떠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은 대개 세연정을 비롯한 부용동 일대만 돌아보고 나가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사진 왼쪽은 보길도 청별항의 정반대 쪽 뾰족산 아래 보옥리의 공룡알 해변에 누군가 쌓은 돌탑. 공룡알 해변이란 공룡알처럼 둥글고 큰 돌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른쪽은 보길도의 대표적인 명소인 세연정. 고산 윤선도는 여기서 손님을 맞거나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 난대림의 숲에서 뚝뚝 떨어지는 동백  

 

  “간밤에 눈 갠 후에 시절 따라 경치가 다른고야
  이어라 이어라
  앞에는 온 세상이 유리같이 언 바다, 뒤에는 눈에 천 겹으로 둘러싸인 백옥의 산
  삐걱삐걱 어사화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세상이 아니로다.”
 
          -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동사(冬詞) 중에서

  전남 완도의 화흥포항에서 차를 배에 실었다. 마침 조류가 거의 없는 ‘무쉬’ 물때다. 바다는 장판지처럼 고요했다. 양식장 부표와 지주식 감발 사이를 헤치고 보길도로 가는 바닷길. 고산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에서 겨울 보길도의 ‘유리같이 언 바다’와 ‘눈이 겹겹이 쌓인 산’을 노래했지만, 거울 같은 남쪽 바다를 미끄러지는 청해진카페리호의 갑판 위는 봄볕같이 따스한 햇살로 환했다. 페리호 난간에 기대 옥빛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겨우내 단단한 긴장으로 뭉쳐 있던 몸과 마음의 근육이 절로 녹신녹신 풀어지는 것 같았다.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 일생을 거의 유배지와 절해고도에서 보냈던 고산 윤선도. 보길도는 누가 뭐래도 윤선도의 섬이다. 진도와 완도 일대 섬의 간척으로 엄청난 부를 일궜던 해남 윤 씨 가문의 재력을 바탕으로 윤선도는 세상을 등지고 보길도로 들어와 도합 13년을 은둔하며 기막힌 정원과 거처를 꾸렸다. 그의 행적을 두고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을 때 섬으로 들어가 혼자만 유유자적했다’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그가 외딴섬에 꾸며놓은 정원의 풍류와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계곡수를 받아내 만든 유려한 연못 곁에 세워놓은 세연정이 그렇고, 부연동의 굽어보는 자리의 동천석실도 그렇다. 최근 복원해 옛맛은 없지만 낙서재와 곡수당의 자리도 모자람이 없다.

  겨울 보길도는 텅 비어 있었다. 완도의 화흥포와 해남의 땅끝항까지 거의 한 시간에 한 대씩 카페리호가 오가지만, 겨울에 페리호는 승객보다는 전복을 실으러 들어오는 대형 활어차들 차지다. 드나드는 이가 없는 겨울은 보길도가 한 해 중 가장 고요한 때다. 섬의 풍경에서 계절은 잊힌다. 섬 여기저기서 자라는 붉은 정념의 동백만 저 홀로 꽃을 후두둑 떨군다. 난대림의 숲도, 자그마한 밭두렁도 온통 평화로운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밭 아래는 지난가을부터 피고 지던 보랏빛 해국이 지지 않고 여태 남아 꽃을 피우고 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바닷바람도 그 끝이 차거나 맵지 않다.

# 풍류와 묵향이 그윽한 곳…부용동


  완도 화흥포에서 뜬 배는 보길도가 아니라 노화도의 북쪽 동천항에 닿는다. 노화도까지 가서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가야 한다.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여객선이 보길도에 직접 닿았는데, 지금은 육지에서 좀 더 가까운 노화도까지만 운항한다. 노화도에서 가장 큰 항구는 이목항, 보길도에서는 청별항이다. 이 두 항구는 서로 딱 마주보고 있는데 보길대교가 이 두 항구를 잇는다. 보길도의 청별항은 여기서 윤선도가 찾아온 손님을 떠나보냈다고 해서 ‘맑은(淸) 이별(別)’이란 제법 서정적인 이름을 얻었다.

  항구에는 바다를 끼고 그만그만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1층은 횟집으로 2층은 민박을 놓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여름은 물론이거니와 봄부터 가을까지도 제법 북적거리지만 이즈음에는 문 연 집을 찾아가보기 어렵다.

  노화도에서 보길도로 건너가면 열이면 열, 모두가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 부용(芙蓉)동부터 찾아간다. 뒤에 두고 있는 격자봉을 중심으로 산들이 둘러치고 있는 꽃술 형상의 자리. 그래서 마을 이름도 꽃이름인 ‘부용(芙蓉)’에서 가져왔다. 부용동은 바다 가운데 섬이면서도 바다가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함경도 삼수와 경상도 영덕 등 거친 유배지를 들락거리던 윤선도는 여기에 이르러 ‘선계(仙界)’라 이르고, 말년에 별장을 짓고 은둔했다.

  윤선도의 자취 중에서 가장 빼어난 세연정은 부용동으로 드는 초입에 있다. 물을 받아 비정형의 연못을 만들어두고 그 가운데 앉힌 정자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풍경을 즐기며 노닐었다. 모르긴 해도 보길도에서 윤선도가 남긴 어부사시사와 서른 두 편의 한시도 묵향 그윽한 세연정에서 지어 내려갔을 것이었다. 세연정의 매력이라면 문을 모두 접어 활개 치듯 위로 들어올린 모습인데, 아쉽게도 지난해 여름 태풍으로 문이 망가져 한창 보수 중이다.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물길의 석축도 한꺼번에 손을 보느라 부산하다.

  부용산 아래는 근래에 복원된 낙서재와 곡수당 등이 있고, 맞은편 산자락에는 ‘동천석실’이 있다. 윤선도가 생전에 은거하며 책을 읽었다는 곳이다. 이제 막 꽃을 틔우기 시작한 동백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산 중턱에 바위 정원을 거느린 한 칸짜리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으면 부용동 일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미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기암의 경치를 보여주는 자리도 아니지만, 부드럽고 아늑한 마을 풍경에 마음이 절로 순해진다.

# 보길도에서 만난 또 다른 삶…심원위재


  보길도는 여전히 ‘윤선도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섬에 윤선도만 있는 건 아니다. 보길도에는 고암 김양재의 고택 ‘심원위재(深原緯齋)’도 있다. 지은 지 200년 남짓 된 고택인데 행랑채에 낸 문을 들어서면 ‘행율당(杏律堂)’이란 현판을 내건 사랑채 앞으로 난대림의 초록 정원이 펼쳐지는 곳이다. 마당에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굵은 나한송과 그보다 더 우람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고, 날렵한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그만그만한 나한송은 여기저기서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굵고 풍성한 나무는 또 처음이다. 안채의 뒤쪽에도 잘 가꿔진 후원이 있다. 후원에는 완도 땅에 나뒹굴던 것을 배로 실어와 맞춘 고려 때의 부도도 세워져 있다.

  심원위재의 주인 김양재는 300년 전쯤 보길도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제법 큰 부를 일궜던 경주 김 씨 일가의 후손이다. 그는 생전에 간척사업과 임업, 교육사업 등을 펼쳤는데, 세연정 옆의 보길초등학교도 그의 아들인 상근의 손으로 세워졌다. 후손들이 손을 댄 사업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모두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들이었다. 부를 일궜으되 주민들을 부리거나 착취하지 않고 시간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 투자하면서 착실하게 부를 쌓았다.

  사실 윤선도의 보길도 은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외딴섬에서나마 낙원을 꿈꿨던, 시대와 불화한 뛰어난 건축가이자 빼어난 문장가로 보는 이들도 있고, 당시 궁벽했던 섬사람들의 고통에는 눈 돌리지 않았던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따라붙는다. 거기다 대면 섬 주민들과 교유하면서 부를 나눴던 경주 김 씨 일가의 보길도에서 삶은 좀 다른 데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정년퇴직으로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뒤 경주 김 씨의 후손인 아내와 함께 심원위재를 지키고 있는 박옥걸 아주대 명예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박 교수는 “윤선도가 섬 생활로 부를 쌓은 게 아니라 해남의 문중에서 부를 가져다가 부용동 원림을 꾸몄다”며 “섬사람들은 오히려 윤선도의 그늘 밑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먹거리를 얻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은둔과 풍류는 곧 피폐한 삶을 이어가는 섬 주민들에게 제 주머니를 나누는 일이었고 그런 사실을 윤선도 자신도 알았을 것이란 얘기다.

 
# 겨울, 보길도에서 반짝이는 것들
   

  겨울 보길도는 윤선도 말고도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일출 무렵이면 예송리 해안의 앞바다는 온통 붉은빛으로 반짝이고, 오후 나절의 망끝전망대로 향하는 길에서는 바다가 은박지처럼 반짝인다. 망끝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의 바다는 또 얼마나 붉게 반짝이던지….

  통리와 중리해변의 눈부신 은모래 백사장이며 공룡알 해변의 진짜 공룡알만 한 둥근 바위들이 바닷물에 씻겨 반짝이는 모습은 또 어떤가. 동천석실로 어이지는 숲길에도 동백나무 이파리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른 아침의 여명에 보길도 내만의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양식장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섬사람들의 노동의 풍경 또한 눈부시다.

  보길도는 겨울이면 외지사람들이 발을 끊어 텅 비지만, 섬사람들은 외려 겨울이 더 바쁘다. 보길도 앞바다를 가득 메운 전복 양식장을 관리하고, 전복의 먹이로 줄 다시마를 기르는 양식장을 돌보느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이런 모습을 가장 감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돛치미 끝이다. 돛치미란 ‘도끼날’의 방언. 섬의 남쪽 길에 뻗어 나온 곶에 도끼로 자른 듯한 절벽이 바로 그곳이다. 중리해변의 뒤쪽 구릉을 따라 바다와 섬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 오솔길을 따라 2㎞쯤 가면 길게 뻗어 내린 곶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가 나타난다. 보길도에서 윤선도를 지우고 바다의 아름다움만으로 말하자면 돛치미 끝으로 이르는 길과 돛치미 끝에서의 경관을 단연 첫손으로 꼽을 수 있다.

  돛치미 끝에 서면 긴 곶과 그 너머의 작은 섬들, 그리고 온통 바다를 가득 메운 전복 양식장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를 배들이 수면 위로 반짝이는 주름을 만들며 오간다. 바위에 앉아 남녘의 나른한 햇볕 속에서 이런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남쪽 저 너머에서 벌써 봄의 기운이 수런대고 있는 듯하다. 하기야 완도를 넘어오면서부터 남녘땅의 양지바른 쪽에는 벌써 냉이며 쑥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었다.

 

예송 해변 펜션·민박 추천…상록수림 걷기·달밤 갯돌 구르는 소리 ‘운치’ 

 

◆ 보길도 가는 길= 보길도는 전남 완도의 화흥포항과 땅끝마을에서 카페리호가 운항한다. 완도로 가든 땅끝으로 가든 해남 땅을 가로질러야 한다. 
 
 

   먼저 화흥포항 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를 지나서 죽림갈림목에서 영암∼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강진무위사 나들목으로 나간다. 18번 국도를 타고 해남 쪽으로 가다가 55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북평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해 완도대교를 건넌다. 화흥포항은 완도의 서남쪽에 있으니 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해안도로를 타고가면 된다. 땅끝선착장은 강진무위사 나들목에서 13번 국도를 타고가다 성매교차로에서 806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길 끝까지 가면 된다.

  완도의 화흥포항에서는 대략 1시간에 1대꼴로, 해남의 땅끝선착장에서는 30분에 1대꼴로 노화도까지 페리호가 운항한다. 보길도와 노화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어 노화도에서 내려 육로로 보길도로 들어가면 된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노화도까지 승용차 뱃삯은 운전자 1명의 운임을 포함해 편도 1만8000원. 보길도의 윤선도유적지만 보겠다면 모르겠으되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겠다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보길도 예송 해변의 펜션이나 민박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다. 예송 해변의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300년 된 반달 모양의 상록수림을 걷는 맛도 좋고, 달밤에 해변으로 나가 갯돌이 자그르르 구르는 소리를 듣는 운치도 즐길 수 있다. 민박집에서는 숙박객의 주문을 받아 아침식사를 차려내기도 하는데, 다양한 해산물로 차려내는 어촌의 밥상이 푸짐하다.

이쪽의 펜션들은 이즈음에 시설을 개·보수해 방도 깔끔한 편이다. 원룸형 펜션 풀하우스(010-4065-7455)나 식당을 겸하고 있는 낙원펜션(061-554-9624) 등을 비롯해 민박과 펜션들이 제법 많다. 관광객이 뜸한 비수기인 이즈음에는 따로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가도 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노화도의 이목항 주변에는 시설이 괜찮은 모텔이 두 곳 있다. 크로바모텔(061-555-5656)은 바다 건너 보길도 청별항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가 빼어나고, 갈꽃섬모텔(061-553-8888)은 바다전망은 없지만 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겨울철에 보길도에서 맛집을 꼽으라면 난감한 일이다. 보길도에는 청별항 쪽에 식당들이 몰려 있는데, 이즈음에는 거의 문을 닫아 썰렁하다. 마주 보고 있는 노화도의 이목항에는 백반집과 횟집들이 제법 있긴 한데 차려내는 음식은 다 거기서 거기라 특별히 추천할 만한 곳이 없다. 다른 계절이라면 모를까, 여느 관광지의 푸짐한 밥상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출처> 2014. 1. 15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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