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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남해

통영 장사도, 동백 우거진 해상공원 까멜리아(Camellia)

by 혜강(惠江) 2013. 10. 1.

통영 장사도

동백나무 우거진 해상공원 까멜리아(Camellia)

 

 

글·사진 남상학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녁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 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뻘에 외로히 외로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위의 시는 노랫말로도 사용된 이제하의 시 '모란동백'이다. 동백섬이라 이름이 붙은 장사도로 떠난다. 아름다운 남도의 작은 섬 장사도(長蛇島). 장사도는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산 4-1번지에 위치하며 통영에서 21.5㎞, 거제에서 남쪽으로 3㎞ 떨어져 있는데 정식 지명은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다.

 

 장사도는 2011년 12월에 개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섬이다. 흔히 장사도는 거제의 외도 보타니아와 비교되는데, 장사도는 자연 환경을 가능하면 훼손하지 않고 기존의 환경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총면적 약 390만㎡(약 11만8000평), 해발 108m. 폭 400m에 길이가 1,900m로 길게 뻗은 모양이 뱀과 닮았다고 '진뱀이섬'이라고도 불렸다. ‘진’은 ‘길다’의 ‘긴’이 구개음화 된 발음이다. 그런가 하면 기다란 섬의 형상이 누에와 비슷하다고 ‘늬비섬’ 또는 ‘잠사도’라고도 불렸다. ‘늬비’는 경상도 방언으로 ‘누에’를 뜻한다. 잠사도라고 불리던 것이 장사도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섬을 개발은 뜻있는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장본인은 거제에서 조선협력업체를 운영하던 김봉렬 씨(58세). 평소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김씨는 우연히 장사도의 절경에 취해 1996년 12억원을 들여 3명의 소유자로부터 섬을 매입했다.

  그는 경영하던 중소기업을 정리하고 200억여원이라는 거액을 더 투입, 16년의 각고 끝에 해상공원으로 개발했다. 경남도와 통영시도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섬을 개발하면서 그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최대한 인공미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옛 주민이 사용하던 주거지나 농경지를 활용하여 섬의 주요 시설들을 만들어 새 모습, 새 이름의 자연친화적 '장사도해상공원 까멜리아'를 개장했다.

  장사도는 섬 전체가 난대림 군락과 더불어 동백나무, 후박나무, 야생화로 뒤덮여 사시사철 푸른 숲을 볼 수 있다. 이 중 동백나무는 10만여 그루로 섬의 90%에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공원 이름도 ‘장사도해상공원 까멜리아(camellia·동백)’로 붙여졌다.


  장사도는 행정상으로는 통영시 한산면에 속하지만 거제도에서 더 가깝다. 따라서 통영의 도남동 통영항에서는 40여분 걸리지만, 거제도 가배·저구·대포에서는 10-20분 정도 걸린다. 우리 일행은 거제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섬 탐방에 중점을 두고 제일 먼저 장사도를 선택했다.

  마침 숙소가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KT수련관이었기에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가배항에서 배를 탔다. 가배항에서 장사도까지의 요금은 승선료 왕복 15,000원, 장사도 입장료 8,500원을 합하여 1인당 23,500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장사도 가배유람선(055-637-0070)의 ‘온누리호’에 승선했다.

 

 

 

 

  가배항을 출발한 온누리호는 굴 양식장의 하얀 부표가 정겹게 떠있는 바다의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20여분 정도 지나 장사도 입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장사도해상공원 ‘까멜리아(CAMELLIA)’라는 간판이 반긴다. 관람객이 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타고 온 유람선을 타고 다시 뭍으로 돌아가야 한다.

 

  섬 초입에서 나누어주는 탐방안내도에는 지도와 함께 탐방코스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지도를 들고 오르는 언덕 양쪽으로는 온통 동백나무 숲이다. 장사도에는 자생하는 동백나무가 10만 그루나 된다고 하니 거제의 동백섬 지심도와 겨뤄도 부족하지 않을 성 싶다.

 

  걷기에는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다. 길옆에는 누렇게 변했으나 탐스런 수국과 보라색 꽃잎을 자랑하는 추명국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섬그늘쉼터인 중앙광장에 들어서자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여인 조각상이 누워있다. 여인상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눈을 돌리니 소덕도와 대덕도가 푸른 바다위에 떠있다.

 

 


  중앙광장에서 한 숨 돌리고 바다와 마주한 온실을 왼쪽에 두고 무지개다리로 향했다. 통영사자상과 선녀상 등 조각상이 누워있는 길을 따라가면 장사도의 랜드마크인 무지개다리. 다라를 건너기 전 오른쪽 죽도초등학교 장사도분교 표지석이 보인다. 

 

 

 

 샛길로 이어진 장사도분교는 지금은 옛 교실 건물 자리에 교실을 복원하고 운동장 전체를 분재원으로 꾸며놓았다. 그러나 국기 게양대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이끼 긴 ‘충효’ 비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옛 정취를 자아낸다. 그 옛날 여기서 동요를 부르며 뛰어놀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분재원을 구경하고 붉은 색의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면 잇따라 전망대가 나온다. 달팽이전망대를 거쳐 다시 발길을 옮기면 섬의 북서쪽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승리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죽도를 필두로 비진도와 용초도, 한산도까지 펼쳐지고, 멀리 뾰족 솟은 통영 미륵산까지 보인다.

 

  1592년(선조25), 이순신 장군은 비진도와 용초도 근처를 지나 이곳 장사도, 가왕도, 병대도를 경유해 옥포해전에 나섰다. 임진왜란 해전 최초의 승리였기에 승리전망대라 이름하였으리라. 이어 다도전망대에 서면 한려수도에 점점이 떠있는 소덕도·대덕도·매물도·죽도·비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다리 아래에서는 필름 프로미네이트. 장사도의 옛 모습과 공원 조성과정 등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무지개다리 밑에서 나와 탐방로를 따라 중앙광장에서 바라보던 온실로 향한다. 온실 위 옥상을 걸으며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멋지다. 선인장, 소철, 야자수 등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온실 옥상산책로를 따라가면 남자 어린아이가 소변을 보는 광경을 눈을 가리는 시늉으로 엿보고 있는 여자어린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온실 내부의 선인장과 풍란도 눈길을 끈다. 큰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는 온실 위쪽 언덕은 소철, 선인장, 야자수가 돌들과 어울려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온실에서 나와 관람로를 따라가면 너와지붕을 한 섬아기집이 나온다. 섬 주민이 살던 집이다. 장독이며 부엌 아궁이, 너와지붕에서 조용한 섬마을 정취가 묻어난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학습관을 지나 미로정원으로 향한다. 조성 중이라 아직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어지는 길은 동백터널. 60m 길이의 동백터널은 이름처럼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이곳의 동백은 3월에 만개한다고 하니 이때쯤 장사도 관광의 백미는 아마도 붉은 동백꽃으로 방울방울 물든 동백터널일 것이다. 동백꽃들이 흩어져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 것인가.

 

 


  동백나무 숲길을 지나면 이어지는 길은 한려수도를 배경으로 펼쳐진 야외공연장. 1,000석이나 되는 꽤 넓은 공연장에선 정기적으로 공연이 진행된다고 한다. 외딴 섬,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이곳에서 공연을 열겠다는 기발한 발상을 누가 했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원형 계단으로 꾸며진 객석의 맨 위에는 김정명 작가의 브론즈, 큰머리 군상 12작품이 흥미롭다. 외국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군이나 무사의 청동상조각상이 아닌, 책, 성(性), 빌딩, 만화, 별자리, 브랜드, 상(賞), 종교, 십이지(十二支) 등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만들었다. 그 중에 ‘책’ 두상이 가장 인기 많다고 한다.

 

 

 

 

  야외공연장 뒤로 올라오면 부엉이전망대, 메일로드와 닿는다. 이곳에는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 선생의 시비 뒤로 자리한 빨간 우체통이 있다. 시비에는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과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의 ‘황혼에 서서’가 앞뒤로 새겨져 있다. 빨간 우체통은 그 옛날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가 수천 통의 연서를 주고받았던 로맨스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플라토닉 사랑시를 이곳 장사도에서 다시 읽게 될 줄이야!

 

 

 

 

 행복(幸福)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살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청마(靑馬) 유치환의 시 ‘행복’ 전문

 

 


  유치환의 시 ‘행복’은 사랑의 고백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시인 유치환도 우체국에 와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진정으로 행복하였다”는 고백, 이 얼마나 더 절박하고 더없이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이랴!

  광복 후 통영여중에서 국어교사였던 시인 유치환은 이 때 가사선생이던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서른여덟의 유부남이었고 정운 이영도 시인은 스물한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을 하나 키우는 스물아홉의 청상과부였다.

 

  이때 청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서를 보냈다.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있으면서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 이영도는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3년간의 끈질긴 구애에 정운의 마음도 움직였으나 떳떳하지 못한 둘의 만남은 늘 거북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청마는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여년을 한결같이 편지를 보냈다.

 

  한국전쟁 이전 것은 전쟁 중에 소실되었지만, 그 이후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5,000여통에 달했다. 그 중 200통을 간추려 ‘주간한국’에서『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을 1967년에 발간했다.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 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머언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네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

  - 정운(丁云) 이영도의 시 '황혼에 서서' 전문

 

 

시비 다른 한면

 

 

  2수로 된 이 작품은 1959년에 발표되었다. ‘애모’를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육성으로 부르기보다는 거대한 자연에 자신의 애정을 실어 고결한 영혼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 둘의 사연을 아는 젊은이들이라면 이곳 장사도 우체통에 한 편의 연서를 써 넣어도 좋으리라 .

 

 

 

  부지런히 부엉이전망대와 수생식물원을 살펴보고 작은 교회로 향했다. 예전에 교회가 있던 자리에 복원한 것인데 열 명쯤 앉으면 꽉 찰만한 크기여서 이름도 ‘작은 교회’였다. 교회 왼쪽에는 그 옛날 사용했을 법한 녹슨 쇠종이 있다. 이 작은 섬에 단순한 전시용이 아닌, 기도소리와 함께 종이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른쪽 동백나무 아래 비석하나가 있어 다가가 보았다. 옥미조선생공덕비다. 1981년에 세운 공덕비의 주인공은 1972년 이곳 죽도초등학교 장사분교에 부임했던 교사로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그는 새마을운동에 앞장서서 학교를 소공원처럼 꾸미고 자비를 들여 선착장을 만들고 교회를 세웠다.

 

  섬 환경과 주민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산업훈장도 받았다. 아동문학가이기도 한 그는 ‘진뱀이섬의 신화’라는 수기로 전국 최우수상도 받았다. 선생의 활약상은 유현목 감독의 ‘낙도의 메아리’란 기록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남다른 헌신과 업적을 전하는 공덕비 앞에서 나의 가슴은 찡하는 느낌이다. 나의 아버지 역시 6․25 전쟁 전후에 낙도(이작분교)에서 헌신하다 한 많은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 '뱀섬에 세운 십자가'의 '뱀'은 성서에서 볼 때에는 사탄을 뜻하는 것으로 미신이 많 은 장사도에 교회의 십자가를 세워 죄에서의 구원을 이루었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다.


 

  교회에서 발길을 돌려 나오면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하얀색의 누비하우스. 바다 전망을 위해 길게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스넥, 식당을 운영하는 집이다. 한려수도의 싱싱한 특산물인 멍게를 젓갈로 만들어 준비한 멍게비빔밥(성게미역국)은 바다내음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통영의 대표적인 충무김밥도 스넥 코너에 준비되어 있다.

 

 

* 장사도 누비하우스에서 맛본 충무김밥과 유자빵

 

 

  여기서 나와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미인도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대덕도 뒤편으로 보이는 섬이 바로 소지도. 소지도는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미인도라 불린다. 미인도(소지도)가 잘 보이는 곳이라 미인도전망대다.

 

  오똑한 콧날, 볼록한 가슴, 접은 무릎까지 섬은 영락없이 여인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미인도만이 아니다. 남해의 보물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소덕도, 대덕도, 소매물도, 매물도, 가약도, 국도, 소지도… .

 

맨 우측이 '미인도'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바다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나 커피, 음식을 즐긴 후 미인전망대에서 확 트인 바다를 감상하고 나면 마지막 방문지로 찾는 곳은 야외갤러리다. 산책로 여기저기에서 흥미로운 조형작품을 감상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준 높은 문화공간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으레 그렇듯이 탐방의 마지막은 운치 있게 자리잡은 카페테리아에서의 안온한 휴식. 동백나무 그늘 아래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진한 향기를 맛보며 장사도 탐방의 대미를 장식할 차례다.

 

 

 

  장사도를 탐방하는 데는 2시간이면 족하다. 출구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맨발공원과 허브가든을 지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해발 100m 안팎의 섬이지만 내려가는 길이 약간 가파르다. 노약자는 나무데크로 된 게단을 이용하면 편하다. 출구선착장으로 내려서는 길, 저 멀리 우리를 싣고 갈 유람선이 장사도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정보


▶교통/ 배편

 

  장사도에 가기 위해서는 통영과 거제에서 유람선을 이용해야 한다. 통영 도남동에 자리한 통영유람선터미널(055-645-2307)에서 장사도행 유람선을 타면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거제에서는 세 곳에서 장사도행 유람선이 뜬다. 동부면 가배항(055-645-0070)과 남부면 저구항(055-632-4500) 그리고 대포항(055-633-9401)에서는 10-20분이면 닿는다.

  유람선 운항은 유동적이니 반드시 전화로 미리 문의해야 한다. 그리고 요금 역시 출발하는 곳에 따라 다르다. 모든 정보는 장사도해상공원 까멜리아(055-633-0362, www.jangsado.co.kr)에서 검색하면 된다.


▶숙식


 우리가 이틀을 묵었던 kt거제수련관은 거제시 동부면 가배에 있다. 사원과 그 가족의 복지를 위한 시설이지만 비수기에는 일반인에게도 대여한단다. . 이용하려면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장사도에서 숙박은 불가능하다. 통영이나 거제에서 숙박을 해결해야 한다. 장사도 내에 자리한 카페테리아에서 차 한 잔을 즐길 수도 있고 누비하우스에서는 멍게비빔밥과 해초비빔밥, 충무김밥, 유자꿀빵 등도 맛볼 수 있다. 탄산음료, 기타음료는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카드 계산은 가능하나, 현금인출기는 섬 여건상 설치되어 있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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