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맛집 정보/- 맛집

토장국, 추억의 맛에서 건강 해장국으로

by 혜강(惠江) 2013. 6. 30.

 

토장국의 추억

 

추억의 맛에서 건강 해장국으로

 

  <금화로 불고기>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8-10 / 전화: 02-334-3312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나 같은 촌놈은 토장이란 말만 들어도 정겹다. 나지막한 흙담 너머 허물어진 장독대 위. 커다란 독에서는 된장이 익어갔다. 토장은 장에서 간장을 뺀 장, 즉 된장이다. 그 된장은 토담이나 토장이라고도 불렀던 이웃한 흙담의 흙 냄새를 닮아갔다. 그래서 토장(土墻)과 토장(土醬)은 촌놈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의미만으로 존재한다. 저녁이면 고만고만한 초가집 사이 고샅으로 퍼지던 매캐한 밀짚과 보릿짚 타는 냄새. 그리고 거기 얹힌 토장국 냄새. 서민의 일상 음식이었던 토장국은 어느새 잊혀진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 느낌 그 맛과 함께 건강식이자 훌륭한 해장국으로 서울에서 재탄생했다.

 

 레스토랑 같은 럭셔리 고깃집에서 토장국을?

 

 서울 동교동 <금화로 불고기>는 상호에서도 드러나듯 고깃집이다. 그러나 일반 고깃집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주인장이 외식업 종사자로는 드물게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인 출신이다. 대부분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시절 피아노를 전공한 여성도 소수였을뿐더러, 음악 전공자가 연만한 연배에 요리에 매료돼 음식점을 차린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둘째로는, 갤러리풍의 실내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고깃집으로서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호젓한 진입로, 우아한 조명, 시골 풍경의 유화 몇 점이 걸린 편안한 실내가 그렇다. 고깃집보다는 서양식 레스토랑 냄새가 더 짙다.

 셋째는 이름마저 가물가물해진 토장국을 멋지게 다듬어 식탁에 올린다는 점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특이점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세번째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상류층 출신의 여류 피아니스트와 토장국의 조합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하지만 맛을 본 사람들은 반색을 한다. 특히 중년 남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왜 그럴까?

 

귀족의 해장용 음식 효종갱도 근본은 토장국
 

  본래 토장국은 채소로 국을 끓일 때 소금의 짠맛과 채소의 풋내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된장을 넣고 끓인 국이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달랑 주 재료인 채소와 소금만 넣고 끓이면 무슨 맛이 나겠는가?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멸치나 다시마로 만든 ‘다시’를 넣고 끓여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일부 상류층에서만 고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의 서민들은 국물에 된장을 풀었다. 다행히도 된장은 훌륭한 식재료였고 된장을 풀어 만든 토장국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토장’이란 말은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토장국’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요리제법』이나 『조선요리법』에 처음 나온다. 기록은 이처럼 뒤늦게 나오지만 토장국은 조선후기 서민들이 즐겨먹었을 것이다.


  토장국이라고 해서 모두 서민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효종갱(曉鐘羹)이라는 토장국은 조선시대에 지극히 높은 신분의 극소수만 먹었다. 주로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성내에서 만들어 한양의 지체 높은 양반 댁에 배달했다. 새벽(曉)에 종(鐘)칠 무렵 성문이 열리면 배달했던 국(羹)이어서 이름이 효종갱이다.

  효종갱은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 소갈비, 해삼, 전복에 토장을 풀어 온종일 푹 고아 만들었다고 한다. 저녁 무렵 다 끓인 국은 식지 않도록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밤에 한양으로 날랐다. 길 찾기 프로그램으로 남한산성 중심지에서 사대문 안 북촌까지의 거리를 검색해봤다. 대략 30km의 거리에 승용차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이 긴 거리를 효종갱을 수레에 싣거나 지게에 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날랐다. 국이 식지 않도록 얼마나 걸음을 재촉했을 것인가.

  이들은 새벽녘에 한양성에 거의 도달했을 것이다.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파루 종이 울리고 성문이 열리면 비로소 도성 안으로 들어가 대갓집에 효종갱을 인계했다. 그때까지 국이 따뜻함을 유지해 해장에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효종갱은 고관대작들이 밤새 마신 술을 깨기 위한 숙취용 해장국으로 애용했다. 재료와 정성이 상상을 초월했던 효종갱, 예전에는 상류층 소수만 먹었지만 요즘에는 그와 비슷한 토장국을 <금화로 불고기>에서 맛볼 수 있다. 

 

효종갱을 닮아 속풀이에도 그만인 한우토장국

  한우토장국(속풀이, 7000원)은 일단 토장국 풍미를 제대로 재현했다. 예전엔 양식만큼이나 땔감도 귀했다. 밥을 안친 솥 아궁이 앞에 큼지막한 돌이나 흙벽돌을 놓고 옹솥을 걸었다. 한 번의 불 때기로 밥도 짓고 국도 끓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옹솥에서는 무시로 토장국이 끓었다. 그 토장국은 매일 먹어도 밥처럼 질리지 않고 맛이 좋았다. 그 좋은 맛의 비결은 토장, 즉 된장이었다. 토장국 맛의 8할은 된장이다.

  이 집도 역시 예사롭지 않은 된장을 쓴다. 충남 공주시의 ‘샘골농원’이란 곳에서 담근 2~3년 묵힌 된장이다. 인근 계룡면 상성리와 기산리 일대 농가에서 재배한 콩이 된장의 원료다.  이 된장이 예전 토장국의 맛과 풍미를 재현해주는 일등 공신이다. 여기에 5~6년 된 조선간장이 일부 가세한다. 역시 공주의 주인장 사돈댁에서 담근 장에서 뺀 간장이다.

  이 집은 고깃집이다. 1++급 암소 한 마리를 들여와 구이 등 부위별로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잔여육이 나온다. 이 잔여육과 양지, 사태, 소뼈를 넣고 국물을 낸다. 여기에 양파, 파뿌리, 쓰고 남은 무나 채소 등속을 함께 넣고 푹 고아 육수를 낸다. 이렇게 만든 육수는 예전 촌에서 먹던 토장국물보다는 고관대작들이 이른 아침에 받아먹었던 효종갱 국물에 더 가깝다.

  ‘한우토장국’의 우월한 맛은 월한 재료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불 조절과도 무관치 않다. 살짝 데친 배추 우거지에 미리 준비한 양념과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뭉근한 불에서 하루 정도 끓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배추의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함이다. 토장국의 맛은 고기와 소뼈와 된장 뿐 아니라 배추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잘 잡아내야 한다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마치 각 재료가 따로 겉돌지 않고,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화음을 이뤄야 토장국 맛이 좋다는 것이다.

  고깃집이어서인지 양지와 사태를 비롯한 고기도 아주 푸짐하게 들어있다. 7000원이라고 하기엔 미안할 정도다. 웬만한 대식가도 토장국 한 그릇이면 배가 꽉 찬다. 함께 내는 김치와 깍두기 파김치는 요리연구가인 주인장이 특히 신경을 썼다. 새우 액젓으로 담근 깍두기와 황석어젓과 갈치속젓으로 담근 파김치는 반드시 먹어볼 것을 권한다.

 카타르시스를 부르는 국물의 시원함과 개운함

  1++급 암소 고기, 국내산 콩으로 몇 년씩 숙성시킨 된장 등 양질의 재료로 긴 시간 정성 들여 끓인 토장국은 맛은 어떨까? 대개는 된장의 깊은 구수함과 고기와 채소에서 우러난 국물의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꼽는다. 뜨거운 상태에서 먹으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산모는 땀 흘리며 먹었더니 몸이 가뿐하고 힘이 생기더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스무 살이라는 여대생은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끓여준 그 맛이란다.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면서 처음 주문해놓고 망설이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토장국의 주 고객은 아무래도 중년 남성들이다. ‘내가 먹고 싶어했던 바로 그 맛’이라는 어느 중년 남성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어렸을 적 먹었던 추억의 토장국 맛과 숙취를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해장국 맛을 겸비한 맛이다. 더구나 고급 한우 암소고기 국물이지 않은가. 마치 예전 효종갱이 그랬듯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여러 세대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전통의 풍미다.

  고기 손님에게는 후식용으로 4000원에 판매한다. 아쉽지만 매주 일요일은 쉰다. 주인장이 공주에 있는 식자재 창고 관리와 식재료 관리를 위해 다녀오기 때문이다. 된장 간장 등 장류 뿐 아니라 김치류 등 기본 식재료는 공주에서 매입하고, 만들고, 저장한다.  토장이란 말 속에는 한 식구가 두레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던 지난 시절의 온기가 스며있다. 무럭무럭 김이 나는 토장국, 그리웠던 사람들, 그리웠던 시절, 살림은 넉넉지 않았지만 정이 넘쳤던 밥상을 떠올려준다. 그래서 토장이란 말만 들어도 눈물겹다. 나 같은 촌놈은….

 

<출처> 조선닷컴( 2013. 6. 14)

※편집자 주 :   현재 이 집은 폐업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