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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올해 개방한 조선 왕릉 삼릉(三陵) 삼색(三色)

by 혜강(惠江) 2013. 5. 7.

                                                  

 

수도권 왕릉 개방

올해 개방한 조선 왕릉 삼릉(三陵) 삼색(三色)

 

남양주=글·최홍렬 기자 /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 경기도 남양주 사릉을 찾은 관람객들이 안개 낀 소나무숲 길을 걷고 있다. 사릉에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애절함과 통한이 서려 있다. 사진은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6시 30분쯤 촬영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그동안 들어가 볼 수 없었던 조선시대 왕릉 3곳이 올해 공개됐다. 경기도 구리 동구릉 경내에 있는 조선 18대 왕 현종(1641∼1674)과 그의 비 명성왕후(1642~1683)의 능이 나란히 있는 숭릉(崇陵)을 비롯해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13대 왕 명종(1534~1567)의 강릉(康陵),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6대 왕 단종(1441~1457)의 비 정순왕후(1440~1521)의 사릉(思陵)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보존되어 있는 조선왕릉에서 봄의 정취를 느껴보자.

 

 

 

사릉

  한 나라 왕비였던 여인의 피맺힌 통한이 꽃으로 맺혀 봉오리를 피워올린 것일까. 비운의 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가 묻힌 사릉(思陵) 주변에 할미꽃이 피었다. 붉은빛을 띤 자주색이다. 능으로 가는 길목에 얼굴을 내민 들국화와 꽃다지, 씀바귀도 나름의 사연을 가슴에 안은 채 노란 꽃을 피운 것 같았다.

  인근 산에는 산벚꽃이 마치 능선 중간중간 폭탄이라도 터트리듯 하얀 꽃을 피워올리느라 정신이 없지만, 소나무 숲길을 따라 정순왕후를 만나러 가는 길은 숙연한 마음으로 가라앉는다. 사릉은 농익은 봄빛에 감싸 안긴 채 고즈넉한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았다.

  1457년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등되었고, 그 후 단종을 영영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1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이별을 하게 된 다리가 서울 청계천 영도교(永渡橋)다. 이제나저제나 단종을 그리는 정순왕후의 애틋한 마음이 다리 이름에 녹아 있다. 그는 이후 동대문 밖에 있는 허름한 민가에서 지냈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산봉우리 거북바위에 올라 영월을 향해 구슬피 통곡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산봉우리를 동망봉(東望峰)이라 이름 붙였다. 한 많은 삶이 그녀로 하여금 쉽게 눈조차 감지 못하게 했을까. 단종이 죽고 정순왕후는 64년을 더 살았다. 죽을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능호를 '사릉'이라 했다.

  사릉은 소나무숲이 에워싸고 있다. 멀리서 보면 소나무 동산 가운데 능이 자리한 모습이다. 키 큰 소나무 사이로 홍살문과 제사 올리는 정자각(丁字閣)이 바라보이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그래서 사진 찍기 좋은 출사지(出寫地)로 이름나 있다. 특히 동트기 전 안개에 싸인 소나무숲을 찍기 위해 새벽 걸음을 하는 사진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소나무숲길에는 비비추·붓꽃·금낭화·앵초·매발톱 등 흔히 보기 어려운 야생화들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여행수첩 

 

전철: 중앙선(용산~용문) 도농역에서 하차 후 길 건너 23번 버스로 환승→사릉, 경춘선(서울 상봉~춘천) 금곡역에서 하차 후 길 건너 23, 77, 55, 7-7번 버스로 환승→사릉

버스: 서울 길동에서 23번 버스 이용→남양주시 금곡동→사릉, 남양주시 금곡동에서 23, 77, 55, 7-7번 버스 이용→사릉

승용차: 남양주시 금곡동(금곡역, 금곡사거리)에서 진건·사릉 방향 2㎞,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북부간선도로→46번 국도 춘천 방향→퇴계원사거리→진건·사릉 방향 6㎞

문의
: 사릉관리소 (031)573-8124,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강릉, 잘생긴 무인석<武人石>이 지키는 곳…

이끼 낀 박석<薄石>이 운치 더하네

 

 

김성윤 기자

 

   강릉(康陵)은 조용했다. 잔디 다듬는 직원 서넛 말고는 없었다. 열심히 걷기 운동 하는 중·장년 여성들로 가득한, 근린공원처럼 돼버린 서울의 다른 왕릉과는 사뭇 달랐다. 강릉·태릉 등을 관리하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중부지구관리소 이상현(57) 소장은 "아직 일반 개방된 게 알려지지 않아선지 관람객이 평일에는 하루 20명, 주말에도 30명이 될까 말까 하다"고 말했다. "호젓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녀갈 만한 능이지요."

  조선 명종(明宗·1534~1567)과 그의 비(妃) 인순왕후(仁順王后)를 모신 강릉은 서울에 있다. 문정왕후(文定王后)를 모신 태릉(泰陵) 인근이다. 어머니 문정왕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살아생전 명종의 처지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한 배치다. 이 소장은 "과거 원형 보존 위주 정책에서 '왕릉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보존'이라는 인식 변화에 따라 개방하게 됐다"고 했다.

  이 소장과 함께 강릉에 들어갔다. 입구는 삼육대학교 정문 바로 옆에 있다. 면적이 7700㎡(약 2300평)으로 다른 왕릉과 비교해 아담한 편이고, 산책로도 없다. 이 소장은 "불암산 둘레길을 돈 다음 삼육대 정문으로 나와 강릉에 들르면 좋은 코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평상(3개)과 벤치(4개), 피크닉 테이블(4개) 등이 있으니 쉬거나 가벼운 식사를 하기에는 알맞겠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넓고 납작한 박석을 깔아 만든 참도(參道)가 이어졌다. 이끼 낀 박석이 운치 있었다. "왼쪽은 높고 오른쪽은 낮지요? 왼쪽은 혼령이 다니는 신도(神道),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입니다. 어도 옆으로 다른 신하들이 다니는 길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정자각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동서 방향의 맞배지붕과 남북 방향 맞배지붕이 다시 맞물린 십자 모양 건물이 간결하면서도 엄숙하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강릉봉향회가 양력으로 매년 4월 첫째 일요일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

  대부분 왕릉에서는 능침(陵寢)에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놨지만, 강릉에서는 올라가 볼 수 있다. 아직 관람객이 적어 가능한 일이다. 이 소장을 따라 정자각 뒤 왼쪽에 있는 좁은 길로 능침에 올라갔다. 능침을 둘러싼 곡장(담)은 동그란 돌과 기와를 교대로 박아 장식했다. 십이지상이 각각 해당 방향을 향해 바깥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서서 능을 지켰다. 이 소장은 "능침 앞에 놓인 돌은 혼유석(魂遊石)"이라고 알려줬다. "종묘대제에 참석했다가 돌아온 혼령이 다시 능으로 들어가시기 전 잠깐 머무는 곳입니다. 일반 무덤의 상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제수를 올리는 곳이 아닙니다." 능을 지키는 무인석(武人石)과 문인석(文人石)이 크고 잘생겼다. 미술에 해박하지 않은 이가 보기에도 꽤 수준급 조각이었다. "태릉과 강릉은 석상이 뛰어납니다. 보물감이에요."

  이 소장은 왕릉관리소에서 35년을 일했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왕릉이 아름답다고 못 느꼈어요. 그러다 2~3년 전부터 '참 아름답구나' 느껴지더라고요. 5월 10일 전후, 능을 둘러싼 참나무숲이 여린 연두색에서 진한 녹색으로 바뀌는 계절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하루 중에는 해 질 무렵이 가장 느낌이 좋고요." 이 소장은 한창 돋아나고 있는 참나무 잎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행수첩

 

전철: 1호선 석계역, 6호선 화랑대역, 7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버스 환승
버스: 석계역 73·1155·1156, 화랑대역 73·202· 1155·1166, 태릉입구역 73·1155·1156(‘삼육대앞’ 하차. ‘태릉·강릉’에서 내리면 많이 걸어야 한다).
문의: 태릉관리소 (02)972-0370,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출처> 2013. 5. 3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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