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오봉
여성봉 바라보며 아직도 힘자랑하는 5형제봉
박광재 기자
▲ 4월 중순의 꽃샘추위로 도봉산 일대에 눈발이 날렸던 지난 10일 오후 우이암 쪽으로 산에 오른 등산객들이 앞쪽에 펼쳐진 오봉을 가리키며 이날 산행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심만수 기자
엄홍길(53·밀레 기술고문) 대장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오르내린 산은 도봉산(道峰山·739.5m)일 게다. 원도봉산으로 불리는 망월사(望月寺) 아래 집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뒷동산에 오르듯 산행하면서 세계적인 산악인으로서의 큰 꿈을 꾸었던 때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를 완등한 후에도 계속 찾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봉산은 ‘오늘날의 엄 대장이 있게 만든 모산(母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엄 대장도 쇄도하는 인터뷰와 행사를 되도록이면 도봉산에서 치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그는 “이번 주에는 어느 산을 추천하겠느냐”는 기자의 추궁(?)에 망설임 없이 “도봉산에서 보자”고 한다. 엄 대장은 “어제(9일)도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원도봉 쪽으로 올라 포대능선을 돌아 자운봉 쪽으로 내려왔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면서 “히말라야, 특히 안나푸르나와 맞먹는 날씨 변화를 경험했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머금은 4월인데 도봉산은 아직도 한겨울이었다”며 다시 도봉산행을 추천했다. 이번에는 그간 자주 찾지 못했던 오봉까지 돌아(?) 보자면서.
도봉산은 우이남능선과 도봉주능선, 포대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오봉은 그 주능선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삐죽이 뻗어 있다. 도봉산의 오봉만을 목표로 한다면 경기 양주시 장흥의 송추유원지 쪽에서 오르는 게 가장 좋다. 송추 남부능선을 타고 여성봉을 거쳐 1시간 반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송추 남부능선을 타고 오르노라면 왼쪽으로 송추북능선과 그 너머 사패산이 보이고,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이 잇따라 장엄한 자태를 뽐낸다. 오른쪽으로는 북한산 상장능선과 백운대, 인수봉 등이 바로 지척이다. 화창한 날에는 멀리 남서쪽으로 인천공항, 남동쪽으로 팔당호 두물머리까지도 보이는데 이날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 대장은 이날 오봉을 다녀오면서 좀 더 큰 원을 그리는 원점 산행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오봉에서 송추 쪽으로 하산하지 않고 도봉주능선으로 나와 포대능선까지 간 후 다시 신선대, 자운봉을 거쳐 다시 주능선을 타고 우이암을 거쳐 우이령 아래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제안했다. 도봉산 완전 종주 코스다. 6시간이 넘게 걸린, 조금은 ‘빡쎈’ 산행이었다.
지난 9일 ‘4월 중순 기상으로는 20년 만에 서울 지역에 눈발이 날렸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날 도봉산 주능선에는 또다시 눈발이 휘날렸다. 평년 기온보다는 낮았지만 오전만 해도 화창했던 날이 오후가 되자 급변했다.
오봉에 오른 뒤 주능선을 걸을 즈음이 오후 3시쯤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곧이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 오는 바람은 느낌상으로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에서 경험했던 그것과 같았다. 엄 대장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라며 걸음을 멈췄다. 엄 대장은 “이런 게 산이에요. 특히 초봄의 도봉산은 예측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지구 온난화’ 등 지구 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 같아요”라며 봄철 산행에서 주의할 사항을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그는 “봄철, 특히 4월의 산행에서는 동계 산행보다 더 철저한 준비와 주의가 있어야 합니다. 기온 변화에 대비한 옷가지는 물론, 특히 산불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다.
그는 오봉은 오르는 것만큼이나 보는 재미가 있는 산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시 히말라야 이야기를 이어갔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산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의 진정한 뜻은 아래에 선다는 것, 즉 ‘Under-stand’입니다. 산을 오르지만 산 아래에 서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진짜 ‘도봉산 오봉’이 그랬다. 오봉은 전문 산악인들의 몫인 암벽을 타는 재미도 있지만 일반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오형제’를 모두 감상하는 재미가 더 컸다. 오봉은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인다. 우이령 깊은 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올려다본 다섯째 봉은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 모습이다. 여성봉에서도 오봉이 잘 보이는데 또 다른 자태다. 우이암 쪽에서는 오형제의 순번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또 북한산 영봉을 오르다 보이는 오봉은 신비롭다.
오봉은 제1봉부터 제5봉까지 다섯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동쪽 봉우리를 첫 번째로 친다. 따라서 가장 서쪽에 제일 높은 키로 솟은 봉우리가 제5봉이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산악인들이 오봉 암벽을 동쪽부터 차례대로 등반하면서 정한 순번이다. 오봉에는 다섯 형제와 고을 원님의 외동딸에 얽힌 전설이 애틋하다. 물론 오봉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 만들어진 얘기다. 오봉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봉’이 최근에서야 그 이름을 얻은 것을 보면 그렇다. 옛날 도봉산 아래 부잣집에 힘이 장사인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새로 부임한 원님의 외동딸에게 모두 홀딱 반했다고 한다. 난처해진 원님은 산꼭대기에 가장 무거운 바위를 올려 놓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했고, 다섯 형제는 각자 커다란 바위를 하나씩 들고 산꼭대기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힘이 좀 부친 넷째 아들만 바위를 제대로 올려 놓지 못해서 지금도 오봉 제4봉에는 감투바위가 없다고 한다. 원님은 바위를 올려 놓은 네 명 가운데 사위를 골라야 했는데 망설이다가 그만 딸의 혼기를 놓쳤고, 원님의 외동딸은 혼례도 올리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옥황상제는 외동딸을 오봉이 마주 보이는 곳에 여성봉으로 환생시켜 주었다는 이야기다.
<출처> 2013. 4. 12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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