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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창덕궁 후원, 궁과 산 사이 왕의 정원

by 혜강(惠江) 2012. 12. 10.

 

창덕궁 후원

 궁과 산 사이 왕의 정원

 

 

글, 사진 : 안정수 취재기자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소중히 다듬어졌지만 생채기는 순식간에 났고

아물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창덕궁 후원,

잠시 걸음을 멈춰 정원이 내품는 숨결 속왕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겨울 바다로, 겨울 산으로 여행 가자는 결심에, 결심을 다시 얹어도 맘처럼 떠나기가 쉽지 않다. 추위에 심신이 움츠러들었나 보다. 덕분에 부담 없이 들려볼 수 있는 가까운 관광지를 살피게 되고, 괜찮은 곳을 찾았다. 몇 번을 가도 '그때'라는 배경에서 항시 멋스러운 고궁으로 '청승 한번 떨어볼까' 싶어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고궁의 한 공간은 '창덕궁 후원'이다. 먼저 창덕궁이라는 큰 그림부터 간단히 짚어보는 것이 순서겠다. 창덕궁은 태종이 만든 궁궐이다. 태조 다음 왕인 정종은 도읍을 개경으로 옮겼는데, 정종 다음 왕인 태종이 다시 한양으로 환도했다. 동시에 경복궁의 터가 안 좋다는 이유로 창덕궁을 짓게 된다. 태종이 경복궁에 머물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정적인 정도전과의 갈등, 왕자의 난으로 인한 참극의 현장이 경복궁과 직결됐기 때문이리라.

 

 

창덕궁 인정전 전경

 

* 창덕궁 인정전,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


 

  조선의 대표적인 궁이라 하면 많은 이들이 경복궁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의 왕이 오래 머물렀던 궁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된 후 창덕궁은 우선적으로 복구됐지만 경복궁은 고종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재건됐기에 오랜 기간 왕은 창덕궁에서 정사를 돌봐야 했다.

 

  임금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인물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극영화가 자주 등장하는 추세다. 왕을 둘러싼 모략, 신하들의 권력싸움으로 궁은 한시도 평안할 틈이 없는 공간으로 묘사되곤 한다. 영화 속 장면과 역사의 현장 사이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뒷모습에 웃기도, 울기도 하며 '왕의 본 모습은 어떠했을까' 자문하고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문득, 왕은 어디서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즐겼으며 사색에 잠겼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창덕궁의 후원이다.

 


 

인정전 내부

 * 인정전 내부 *


 

  현재는 '창덕궁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예전에는 숨겨진 정원이라 해서 '비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 해서 '금원'이라고도 불렸다. 그야말로 왕을 위한 정원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광해'라는 영화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광해군과 후원에 얽힌 역사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은 창덕궁 후원을 지나면서 몸을 숨겼는데, 이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옥새가, 광해군에 의해 폐비된 소성대비(인목대비)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자로 잰 듯한 비례, 질서, 규칙과 달리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시한 구조가 특징이다. 어찌 보면 궁으로 산자락이 자연스레 내려온 듯하고, 달리 보면 산자락에 궁이 얽매임 없이 내려앉은 형상이다. 자연과 궁궐 사이의 애매모호한 공간에 정원이 조성됐으니… 생각만 해도 기대감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후원의 문턱을 넘으면 펼쳐지는 부용지

[위/아래]창덕궁은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 후원의 문턱을 넘으면 부용지가 펼쳐진다.

 

 

  창덕궁 후원 입장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현장에서도 입장권이 판매되나 그 양에 제한을 두고 있어 방문 전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기를 권한다.

 

  비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첫 관문이 언덕이다. 3분 정도 오르면 그늘진 내리막 너머로 햇볕이 내리쬐는 환한 공간이 보인다. 곧이어, 부용지라는 연못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부용정, 동쪽에는 영화당, 북쪽에는 주합루가 멋진 첫인상을 선사한다.


 

부용정영화당주합루

[왼쪽/가운데/오른쪽]부용정 / 영화당 / 주합루 *


 

  부용지는 사각형 연못과 그 가운데에 원형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구조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적 형태라고 한다. 흔히 연못가에 조성된 정자를 두고 꽃에 비유하곤 하는데, 부용정을 보면 왜 그런 비유가 흔해졌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위에서 내려다본 부용정은 십(十)자형을 띈다. 기본이 되는 사각 정자에서 십자 방향으로 한 면보다 작은 폭의 1칸이 더 튀어나온 모습이다. 다른 정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입체감이 전해지면서 만개한 연꽃이 떠오른다. 이 정자를 받치는 기둥 중 두 개가 연못에 담겨 있으니 감흥을 더욱 증폭시킨다.

 

  지방의 시험에서 합격한 선비들이 모여 시험을 치른다. 그 옆에는 임금이 있다. 영화당에서 자주 있었던 상황이다. 또 영화당 동쪽 춘당대라는 마당은 무과 시험이 시행됐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당은 많은 문인과 무인이 궁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 장소인 셈. 내려다보이는 부용지엔 태양이 미동도 없이 눈을 쏘아대는데 물결 하나 일렁이지 않으니 더욱 눈부시다. 시험보는 선비를 살피는 임금의 눈빛이 이러했을까.
 

 

부용지 일대 전경

* 부용지 일대 전경, 왼쪽부터 부용정, 부용지, 주합루, 영화당, 춘당대 *

 

어수문 앞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본 부용지 풍경

 * 어수문 앞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본 부용지 풍경 *


 

  부용지의 북쪽으로 산세를 이어받은 주합루 기와지붕의 실루엣이 일품이다. 주합루는 복층 구조로, 1층의 왕실 직속 도서관 '규장각'과 2층의 열람실 겸 전망 좋은 마루로 구성돼 있다.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라는 주합루의 의미처럼 부용지 일대에서 최고 높은 건물이며 많은 문인이 규장각을 통해 우주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련지

 * 애련지 *


 

  춘당대를 거쳐 효명세자가 독서를 즐겼던 '의두합'을 지나면 두 번째 연못 '애련지'에 이른다. 부용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전 분위기와 달리, 연못과 수목이 자라는 마당, 서로가 차분하게 어울렸다. 낮은 언덕의 능선이 가깝게 병풍을 쳐 아늑한 분위기다.

 

  '감성 충전' 알 것도 같으면서 정작 설명하려면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조합이다. 그렇다고 어려울 것도 없다. 창덕궁 후원에서 거니는 동안 생각의 나래를 맘껏 펼쳐보고, 시선이 닿는 하나하나의 생명력을 느껴는 사이에 감성이 충전되는 것 아니겠는가.

 


 

궐에서 가장 작은 건물 '운경거'사진찍는 모습아이들 모습

 * [왼쪽]궐에서 가장 작은 건물 '운경거' [가운데/오른쪽]남녀노소 불문하고 감성적 즐거움이 가득한 후원 *

 


  애련지를 지나 사대부 민가형식으로 만들어진 연경당을 통과하면 관람지(또는 반도지)와 존덕지가 있는 세 번째 연못가에 다다른다. 여기 연못과 연경당 사이에 '자리 한번 잘 잡았구나' 싶은 전각이 하나 있는데 익종이 독서를 하던 '폄우사'다.

 


 

폄우사와 존덕정

*[왼쪽/오른쪽]폄우사(왼쪽) 존덕정(오른쪽)  *

 

 

  관람지의 또 다른 이름인 반도지는 말 그대로 반도의 지형을 닮은 연못이라는 뜻. 이 연못에 어울리는 정자는 어떤 모습일까. 관람정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모습이 마치 부채를 펼친 것 같은 형상을 띤다. 좀 더 높은 지대의 존덕정은 인조 22년에 만들어졌으며 4각, 8각이 아닌 6각정이다. 지붕은 2겹으로 만들어져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옥류천 가까운 길가의 풍경옥류천 초입의 정자 '취한정'

[왼쪽/오른쪽]옥류천 가까운 길가의 풍경 / 옥류천 초입의 정자 '취한정'


 

  존덕지와 관람지 사이의 다리를 건너면 옥류천이 있는 마지막 정원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 옥류천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속 깊은 곳이라 해도 믿을 만큼 울창한 수림이 특징이다. 고요함에 산새의 지저귐이 도드라지고 흙내음도 점점 진해지며 긴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것처럼 차가운 냉기의 숲 내음이 폐부를 놀래킨다.

 


 

취한정에서 보이는 풍경

 * 취한정에서 보이는 풍경 *


 

  옥류천 일대는 임금의 우물 '어정', '소요암', 정자 등이 북악산에 안겨 조화를 이뤘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방문객과 정원 관련 전문가 등 많은 이들이 옥류천 일대를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으로 꼽는다. 옥류천이 흐르는 물길 주위로 취한정, 소요정, 용산정, 태극정, 청의정 등 정자가 세워졌지만, 그 사이에 여유는 부족함이 없다. 또 궁궐 건물 중 유일한 초가지붕인 청의정도 볼만하다. 지붕에 쓰이는 볏짚은 임금이 직접 심은 벼로 만들었다고 한다.
 

 

소요암 풍경소요암

 * 소요암 *

 

 

  소요정에서 보이는 소요암 풍경도 인상적이다. 높은 산 능선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랄까. 평평한 바위에 수로를 만들어 물이 흐르니 강이고, 그 끝에서 물이 떨어지니 폭포다. 이 뒤로 산처럼 바위가 버티며 사면에는 순조가 이곳 풍경을 노래한 오언절구 시가 새겨졌으며, 그 아래에는 인조의 친필인 玉流川(옥류천)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부용지, 애련정, 관람지, 옥류천 순으로 정원을 걸었다. 든든한 한 끼 챙겨 먹으면 차갑던 겨울바람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마음에도 든든한 무언가가 채워진 듯 추위가 시원하다.

 

  고궁과 얽힌 여정은 총정리가 어렵다. 너무 많고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공간마다 녹아있는 분위기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급변한다. 후원 또한 마찬가지. 같은 연못이지만 그 분위기는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으며 수많은 정자 또한 만들어진 시기와 특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존덕정애련정

*[왼쪽/오른쪽]인조 22년(1644)에 만들어진 존덕정 / 숙종 18년(1692)에 만들어진 애련정 *

 


 · 조선시대 왕의 정원이 내뿜는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후원. 오랜 세월 소중히 다뤄졌지만 생채기는 순식간에 났고 아물기까지는 다시 오랜 세월이 소요됐던 비운의 공간

 

  이렇게 소개해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좋은 노래의 감동을 악보로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법. 직접 가보시라. 창덕궁 후원이 처음이라면 해설사와 동행하며 관람한 후 가까운 시일에 다시 방문해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즐겨보시라.


 

여행정보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중부고속도로 하일IC → 공항방면 올림픽대로 → 동호대교 → 장충동, 을지로, 시청앞 → 광화문에서 우회전 → 안국동로터리 방향 직진 800m → 창덕궁

 

2.맛집

고려식당 : 불낙콩나물밥, 02-739-5293
문화식당 : 칼국수, 02-730-8941
떡삼시대 : 불고기정식, 02-737-3692
38번가김치찌개 : 고기 주는 김치찌개, 02-734-9024

 

3.숙소

호텔썬비 : 종로구 관훈동, 02-730-3451
아미가모텔 : 종로구 연지동, 02-3672-7970
리스호텔 : 종로구 연지동, 02-762-4343
가회한옥체험관 : 종로구 계동, 02-595-4939

 

 

<출처> 2012, 12, 12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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