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그곳에 세상 모든 BLUE가 있었다
몰디브=글·사진 박송이 기자
▲ 파크 하얏트 하다하 리조트 워터빌라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망.
푸르다고 그게 다 같은 푸른 색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말입니다. 다채롭고 미묘하게 분산하는 푸른 색의 스펙트럼을 만날 수 있는 곳. 여기는 인도양의 몰디브입니다. 아쿠아마린, 스카이블루, 아이스블루, 인디고블루, 로열블루, 프러시안블루, 코발트블루, 네이비블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블루’가 여기 다 모여 있습니다. 아쿠아마린, 스카이블루에서는 ‘풋내 나는 젊음’이 느껴지고 인디고블루의 색감에서는 ‘탱탱한 활기’가 활시위처럼 당겨져 있습니다.
코발트블루의 ‘몽환’과 로열블루의 ‘우아함’ 그리고 프러시안블루의 ‘깊은 감동’과 네이비블루의 ‘먹먹함’은 또 어떻고요. 몰디브에 머무는 내내 저편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기울기에 따라, 혹은 이쪽에서 그 푸른색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의 갈피에 따라 하늘과 바다는 끝없이 다양한 ‘블루계열의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끝없이 막막하기만한 바다가 아니라 거칠지만 때로는 성스럽고 아늑하기도 한 ‘인도양’이 품은 그곳. 거대한 인도 대륙 서남쪽의 바다 한가운데서 몰디브는 ‘가만히’ 숨쉬고 있었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는 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 불렀습니다. ‘라 마르’란 바다를 정겹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 여성형 명사. 노인에게 있어 바다란 늘 은혜를 베풀어 주는 곳, 모성처럼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존재였던 것이지요. 반면 바다를 그저 일터나 정복하려는 대상 혹은 적쯤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남성형을 써서 ‘엘 마르(el mar)’라 불렀답니다.
그렇다면 몰디브 바다는 물어볼 것도 없이 ‘라 마르(La mar)’입니다. 눈부신 햇볕과 여유 있는 평화 속에서 바다는 투명한 수천 종의 산호와 물고기를 길러 냅니다. 휴식과 위안을 얻으려 그 바다를 찾아온 인간들에게도 따스한 위로를 건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어르고 보듬어 주는 ‘모성의 바다’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몰디브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푹신한 선베드에 길게 다리를 뻗고 누웠습니다.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을 펴들고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piano)’의 선율이 흐르는 이어폰을 꽂았습니다.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던’ 일상은 마술처럼 ‘사치와 평온과 쾌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마침 펼쳐든 페이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장을 여기 옮겨 봅니다.‘나는 그때서야 내가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여겨졌다….’
보고… 만지고… 안기고… 꿈결같은 ‘바다와의 동행’
▲몰디브의 바다와 하늘은 환상적인 푸른색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카메라를 대는 족족 눈부신 풍경화가 완성된다.
몰디브의 공항은 좁고 어두웠다. 1980년대 우리나라 시외버스정류장 같았다.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 퀴퀴한 냄새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우와~’ 나오자마자 터지는 탄성. 눈앞엔 완벽한 아쿠아마린 빛깔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에메랄드그린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두컴컴한 잿빛 공항과 어울리지 않는 눈부신 바다. ‘몰디브에 왔음’을 알려준 것은 바다였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1200여 개의 산호섬. 리조트가 있는 하다하 섬은 남쪽 끝부분 적도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국내선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요트를 타고 또 한 시간을 가야 했다. 두두두두두왜애애애애앵~~.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몰디브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다는 로열블루 빛깔의 도화지였다. 도화지 위 섬은 먹물을 떨어뜨려 놓은 듯했다. 먹물 방울이 번져나간 자리마다 에메랄드빛이 테두리를 만들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생물의 모습과도 같았다. 손을 갖다 대면 ‘꿈틀’ 움직일 듯싶었다. 다양한 모양의 터키석이 파란 융단 위에 올려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섬을 감상하는 동안 한 시간은 금방 흘렀다.
요트로 갈아타고 바다 위를 질주했다. 이번엔 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 또한 아이스블루빛 하늘에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새처럼 날아오르고 산처럼 포근히 내려앉았다가 솜털처럼 잘게 쪼개졌다. 몽실몽실 양털이 되었다가 우아한 학처럼 두 날개를 펼쳤다.
구름의 ‘행위 예술’ 또한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긴 여정만큼 내가 대자연의 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열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저 멀리 하다하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4일간의 파라다이스. ‘천국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모든 것을 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모든 여행에 ‘공식’ 같은 건 없지만 몰디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고, 걷고, 먹고, 보고, 듣고, 마시고, 뛰고, 타고, 헤엄치고… 이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있는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을 걸어도 좋고 이글대는 햇볕 속에서 카약을 타거나 스노클링을 해도 된다. 하염없이 바다만 쳐다보고 있거나 비치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것도 더할 나위 없다. 워터빌라 테라스에 나와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좋다. 철썩… 퐁당… 촤르르… 점프를 하거나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물고기들이 빚어내는 기가 막힌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내 여행의 공식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였다. 몸이 원하는 대로, 가슴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걱정은 한국에 돌아가서 하는 걸로. 구명조끼만 믿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살찔 걱정은 접고 다양한 음식들의 맛과 향을 만끽했다. 아이들처럼 최대한 귀엽게, 하늘을 향해 ‘큰 대(大)자’로 점프하며 사진도 찍었다.
너무 많은 두려움을 접은 탓이었을까. 카약을 타다 아이폰과 함께 입수(入水)했다. ‘만약’을 접다보니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망각해 버렸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아이폰은 부식이 시작됐고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터지지 않을까 잠시 두려웠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카약에 집중하기로 했다. 팔이 아프도록 노를 젓고 난 뒤에야 뭍에 올라 뒤처리를 시작했다. 전원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폰은 떠났지만 슬프지 않았다. 왜냐고? 아프고 슬프고 두렵고 힘든 건 몰디브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니까.
# 뛰어드는 순간 신세계가 열린다
몰디브 여행의 백미는 스노클링이다. 인도네시아 발리나 필리핀 세부와 같은 휴양지도 리조트 시설이나 해변만 보면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바다는 수준과 격조가 다르다. 발리와 세부의 바다는 단조로운 흑백이지만 몰디브는 ‘총천연 컬러’다. 그것도 HD급 화질. 더없이 맑고 투명한 물 덕분에 선명한 형광빛, 오색찬란한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발리나 세부에서는 바다의 속살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야 하지만 몰디브에선 그저 빌라 문을 열고 입수만 하면 된다. 워터빌라 앞바다도 훌륭하지만 라군과 리프의 경계 부근이야말로 스노클링의 ‘핫스폿’이다. 두려움 반, 설렘 반. 요동치는 심장을 꽉 움켜잡고 ‘핫스폿’에 뛰어들었다. 입에 물면 구역질이 나던 산소 호스도 물에 들어가니 편해졌다. 몸을 띄워 눈과 입을 바닷속에 담갔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후~ 흡~ 후~ 흡~ 호흡소리 외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호흡소리를 이렇게 가만히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살아있음을, 숨쉬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바닥엔 각양각색의 산호들로 가득했다. 영지버섯, 포테이토, 누룽지, 미니 녹용 다발… 어쩜 산호가 다 음식 모양으로만 보이는지…. 물고기들은 관광객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형광노랑, 파랑, 주황, 줄무늬…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다양하고 화려한 물고기는 먹이 찾기에 몰두해 있었다. 물고기들의 일상일 뿐인데 그것을 내 눈으로 본다는 건 ‘대단한 혁명’이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 가슴이 벅차 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그건 눈으로 확인해야 할 일이다.
# 캄캄한 밤바다… 그 넉넉한 팔에 안기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가 사라진 ‘먹빛 몰디브 밤바다’도 감동적이다. 늦은 오후 ‘선셋 피싱’을 위해 크고 높은 배를 타고 바다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바다는 천천히 태양을 삼켰고 점차 로열블루 →코발트블루→ 네이비블루 → 쪽빛으로 변해갔다. 한바탕 떠들썩한 월척 행진이 끝나고 나니 이미 바다엔 칠흑같은 어둠이 내렸다.
2층 갑판에 팔을 베고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또 언제던가. 한쪽 배가 부풀어 오른 반달은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은한 달무리가 환상적인 밤바다. 시원한 바람의 터치, 출렁이는 파도의 애무.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두웠지만 무섭지 않은, 고요하지만 슬프지 않은…. 이 정도의 밤바다라면 혼자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청새치를 잡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던 그 ‘산티아고 노인’도 밤바다에서 위안을 얻었을 거라 생각했다.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머리에 별을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걸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랬을 것이다.
사는 게 싫증나고 외로울 땐 몰디브 바다에 한번 안겨볼 일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곳. 그곳엔 약발 좋은 ‘휴식’과 ‘위안’이 기다리고 있다. 까뮈가 말한 것처럼 ‘지상의 열매는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빛 속에 열려 있다.’ 우리는 그저 ‘입으로 깨물기만 하면 될 일이다.’
# 하늘서 바라본 바다…바다서 바라본 하늘
몰디브 가는길 · 묵을곳 · 먹을것
◆ 몰디브 가는 길 = 몰디브의 국적 항공사 ‘메가 몰디브’는 지난해 파행 운항 끝에 직항편을 중단했다가 8월 말부터 재취항을 시작했다. 일요일 오전 1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9시간 만에 몰디브의 수도 말레에 도착하는 직항편이다. 말레 도착시간은 오전 6시30분. 밤을 새운 비행이 고단하긴 하지만 몰디브 내 국내선 항공기와 보트를 이용하기 쉽도록 오전 일찍 도착하도록 시간을 맞췄다. 연착되더라도 몰디브 내 리조트 체크인에는 지장이 없다.
◆ 몰디브의 리조트 = 몰디브엔 100여 개의 리조트가 있다. 수중환경, 비치, 교통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파크 하얏트 하다하는 다국적 호텔체인인 하얏트 계열 최상의 브랜드로 몰디브 내에서도 뛰어난 수중환경과 비치를 자랑한다. 말레에서 몰디브 국내선 항공기로 1시간, 요트로 다시 1시간을 가야 하는 먼 거리지만 고생한 만큼의 ‘낙(樂)’이 있다. 워터빌라 앞에 펼쳐진 바다의 전망도 좋지만 물속은 더욱 환상적이다. 스노클링, 스킨스쿠버는 꼭 한번쯤 경험해 볼만하다. 액티브한 활동이 싫다면 요가센터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지거나 스파를 받으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좋다. 몰디브식 쿠킹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여직원 1명이 상주하고 있어 손글씨로 쓴 한국어 웰컴카드도 받아볼 수 있다.
메인풀 앞 레스토랑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먹는 아침식사 또한 훌륭하다. 다양한 빵과 과일을 비롯해 각종 달걀요리와 누들이 준비되어 있다. 파크 하얏트의 부주방장이 한국인이다. 양식이 물린다면 김치 한 접시 부탁하는 것도 괜찮을 듯. 다양한 메뉴와 품격 있는 레스토랑 덕에 게으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리조트의 휴양객들은 한번 식사할 때마다 2시간은 기본. 천천히 여유롭게, 달콤한 휴식을 만끽한다.
<출처> 2012. 9. 5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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