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가 길을 막는 ‘야생의 인도’
야생동물의 보고(寶庫), 인도 카지랑가 국립공원
카지랑가 | 글·사진 이로사 기자
▲ 카지랑가 국립공원의 평화로운 아침, 여행객들이 코끼리 사파리를 즐기고 있다. 코끼리 보호를 위해 사파리 횟수를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 따라온 아기 코끼리 두 마리가 줄곧 제 어미를 찾는 울음을 울었다.
카지랑가로 가는 길은 지난하다.
인도 북부의 델리에서 북동쪽 끝 아삼주의 주도 구와하티까지 3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 구와하티에서 다시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길이라 했다. “인도는 변수가 많다”고 델리의 가이드가 말했던가? 대책없이 길 위에서 버스가 섰다. 구와하티에서 카지랑가로 향하는 고속도로 한복판이었다.
사실 ‘다바 고속도로(DHABA HIGHWAY)’라는 간판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도로는 누가 봐도 국도다. 게다가 포장공사가 한창이어서 비포장과 ‘준’포장도로가 반복됐다. 추월과 경적음과 짙은 먼지가 덜컹대는 위장 위로 뒤엉켰다. 반복되는 진동과 먼지 바람이 익숙해졌을 때쯤, 어디선가 낯선 냄새가 섞여 들었다.
“타이어 타는 냄새 나는데요?”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슬쩍 미터기를 보니 70~80㎞/h. 체감 속도는 120㎞/h 이상이다. “아니, 이거 엔진 타는 냄새인가….” 누군가의 걱정 섞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푸르르, 주저앉아 버렸다. 국도(아니, 고속도로)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밖으로 나와 기자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여기가 어디죠?” “아삼주 노가온(Nagaon)입니다.”
운전기사는 미심쩍게 차를 손보고 있다. “아무래도 좀 걸릴 것 같은데요.” 화장실을 쓰려고 들어간 집에선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내준다. 아삼어만 쓰는 이들이라 가이드가 나서야 소통이 가능하다. 집에는 여자들과 노인,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서로가 2m쯤 거리를 두고 서로를 관찰하는 기묘한 형국. 집구경에 발리우드 음악에 맞춘 어린 아이들 춤구경, 코코넛·바나나 등 온갖 먹을 것들의 행렬과, 아삼주의 전통 스카프를 짜는 베틀 시범까지 보인 그들 덕에 ‘차가 퍼지길 잘했네…’ 생각한다. 서로 몸을 스칠 만큼 거리가 좁혀졌을 무렵, 어디선가 승용차 세 대가 도착했다. 버스를 버리고 그걸 나눠 탔다. 카지랑가에 도착한 것은 구와하티에서 출발한 지 무려 7시간30분이 지난 오후 3시30분쯤이었다. 차도 위로 원숭이가 지나갔고, 코끼리가 걷고 있었고, 해가 지고 있었다.
▲ 고속도로 한복판에 주저앉은 일행의 버스.
아삼 지역은 겨울(11~2월), 오전 5시쯤 해가 뜨고 오후 4시쯤이면 해가 진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새카만 밤이다. 산책을 나가려고 “길이 어둡지 않겠느냐”고 묻자, 호텔 직원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곧 달이 뜰 거예요.(No problem, moon is coming)” 달이라고? 그들에게 ‘가로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믿고 나섰는데, 한치 앞이 안 보였다. 이내 후두둑, 하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카지랑가 국립공원은 11~2월 4개월 동안만 문을 연다. 이곳은 3계절로 나뉜다. 3~5월은 무더운 여름, 비가 많이 오는 몬순 시즌이 6~9월이다. 지금도 가끔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데, 몬순 시즌에는 어떨까 싶다. 11월부터 2월까지가 건조하고 날이 좋아 여행하기엔 적기다.
도착한 리조트는 고급스러웠다. 유럽에서 온 노년의 관광객이 많았다. 프런트 직원은 “3~6개월 전부터 예약이 모두 마감돼요. 지금 외국관광객만 120명 정도 와 있습니다”라고 했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흙길 위에 가득한데, 그 사이에 이런 호화 리조트가 있다.
* 풀숲 사이로 외코뿔소가 숨어 지프차에 탄 불청객을 지켜보고 있다.
인도는 넓다. 인도를 떠올리고, 불교 성지 바라나시나 수도 델리만을 생각한다면 인도에 미안할 일이다. 카지랑가 국립공원은 세계의 3분의 2에 달하는 인도산 외코뿔소(1855마리)가 살고 있는, 야생 동식물의 보고다.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선 보기드문 곳. 유네스코에서 1985년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했다. 면적이 378㎢로 방대하다.
2006년엔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호랑이(5㎢당 한 마리/86마리) 서식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밖에 버팔로(1666마리), 인디아 사슴(468), 코끼리(1940), 인도 물소(30), 삼바(58) 등 많은 포유류들이 산다. 인도에서만 발견되는 훌록 긴팔 원숭이를 비롯해 각종 유인원들, 몽구스, 사향 고양이, 느림보 곰, 귀천산갑 등 작은 희귀동물들도 있다. 이 중 15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 리스트에 오른, 멸종 위기의 동물들. 카지랑가에 접한 브라마푸트라 강 등은 멸종위기에 처한 갠지스 돌고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다 누군가 차에서 내리자 느린 걸음으로 길 위에 올라서더니(중간) ‘여기는 니들이 올 곳이 아니야’라는 듯 상징적인 배설물을 내놓고(아래) 유유히 반대편 풀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짧은 탓에 서둘러야 했다. 다음날 오전 6시, 코끼리 사파리 길에 올랐다. 카지랑가의 세 구역(동쪽/중앙/서쪽) 중 중앙 구역이다. 카지랑가 공원 내 라이딩 포인트에는 코끼리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불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코끼리 등에는 방석깔린 안장이 달려 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마음 쪽이다.
코끼리들은 4~5명을 등에 지고 1시간 동안 초원을 누빈다. 높게 자란 억센 풀을 헤치면서, 발이 푹푹 빠지는 질펀한 늪지대를 150~200㎏ 이상의 등짐을 지고 걷는 것이다. 코끼리 보호를 위해 사파리는 오전 5시, 6시, 7시, 한 번에 45명씩 하루 3회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늪지대에 숨어 있는 외코뿔소 한 마리가 보였다. 한번에 출발한 10여마리의 코끼리들이 코뿔소를 토끼몰이 하듯 천천히 몰아갔다. 작은 언덕을 넘자 드넓은 초원이다. 코끼리들이 수세에 몰린 코뿔소 주위로 멀찌감치 뱅 둘러섰다. 풀뜯는 버팔로와 떼로 뛰어다니는 인디아 사슴도 만났다. 누군가 “국립공원에 개가 있네” 외쳤던 동물은 벵갈 여우였다.
사육사는 맨발로 코끼리의 양쪽 귀를 키 삼아 조종했다. 그가 갑자기 발 밑에 움푹 파인 자국을 가리킨다. “호랑이 발자국.” 그는 “호랑이를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라며 “그래도 잡아먹힌 동물들의 사체, 영역 표시 등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 시기, 이곳의 풀들은 허리 높이 이상으로 자라나 있다. 동물에겐 숨을 곳을 제공하는 훌륭한 위장처이지만, 그들의 터전에 침입한 불청객에겐 방해물로 작용한다.
가이드는 “2월 성수기가 끝나면 풀을 새롭게 자라게 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데, 그 이후 새순이 돋을 때쯤이 장관”이라고 했다.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물들이 장막이 벗겨진 무대 위 배우들처럼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오후엔 지프를 타고 공원의 동쪽과 서쪽 지역을 돌아보는 사파리. 각각 1시간가량 걸린다. 길 양쪽으로 다양한 초목 지대가 펼쳐진다. 열대 초원인 사바나 삼림지대, 열대 우림, 호수나 늪지대…. 공원의 서쪽은 동쪽 지역보다 고도가 낮다. 우기의 절정인 7, 8월엔 브라마푸트라 강의 수계가 높아져 서쪽 구역의 4분의 3이 물에 잠긴다고 한다.
이 때 많은 동물들이 공원의 남쪽, 높고 숲이 많은 지대로 이동한다. 풍광은 풀의 높낮이가 약간 다를 뿐 비슷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하늘이 다소 지겨워지고 있었다. 마주보며 오는 사람들과 서로의 얼굴을 찍는 일도 지쳤다. ‘오픈카’와 다름없는 지프의 뒤꽁무니에선 검은 매연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앞자리에 앉은 이는 심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 때, 길가 풀숲에서 느릿느릿 코뿔소가 나타났다. 현지인인 운전기사의 얼굴을 봤다. 긴장감이 역력하다. 누군가 한 명이 사진기를 들고 차에서 내리자 “차에 타!” 다급히 소리친다. “두 번 코뿔소에게 받혀 봤는데, 차가 다 망가지고 앞니도 나갔어요.” 코뿔소는 귀엽기만 하다. 운전기사는 계속해서 일정 거리를 두고 차를 후진한다. “코뿔소가 마음 먹으면 시속 80㎞로 달립니다.”
코뿔소는 느릿느릿 길 위로 올라와 자그마한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 쪽을 흘끗 쳐다봤다. 그리곤 보란듯이 커다란 똥을 떨어뜨려 놓고 반대편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전기사는 이 때다 싶어 도망치듯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순간 코뿔소가 휙, 위협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자리에서 졸던 남자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여행 길잡이
*델리, 콜카타 어디로 들어가도 좋지만 아무래도 가까운 것은 콜카타 공항. 인도 민영 항공사인 제트 에어웨이즈와 킹피셔 에어라인이 매일 방콕~콜카타 구간을 운항한다. 인천에서 방콕을 거쳐 콜카타까지는 총 8시간가량 소요된다.
콜카타에서 다시 구와하티(Guwahati) 공항까지 국내선을 타고 간다. 1시간가량 소요. 카지랑가(Kaziranga) 국립공원은 인도의 동북부 아삼(Assam)주의 주도인 구와하티 공항에서 250㎞가량 떨어져 있다. 국내라면 3시간 거리지만, 도로 사정 등으로 크게 속도를 낼 수 없어 5시간 정도 걸린다. 길 위엔 사람과 소, 염소, 돼지와 개, 트럭과 자전거, 짐수레 같은 것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인도는 루피를 사용한다. 1루피=25원 정도.
*국내에 따로 나와있는 패키지 상품은 아직 없다. 다만 국내 인도 전문 여행사에 요청하면 미리 예약을 할 수 있다. 인도 현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연결해 주거나, 호텔과 차량만 예약할 수도 있다. 인도 전문 여행사는 인도 소풍(032-421-7624), 인도로 가는 길(02-7230-333) 등. 하나투어(1577-1233), 모두투어(02-771-2112) 등 일반 대형 여행사를 이용해도 좋다. 인도정부관광청 홈페이지(incredibleindia.co.kr/sub2/sub2_6.htm)에 인도 여행을 취급하는 여행사 목록이 있다.
*영어가 가능하다면 인도 현지의 여행사 패키지 투어를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도 있다.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음은 카지랑가 국립공원 투어 상품을 운영하는 몇 개의 인도 현지 여행사 목록.
*숙소는 아이오라(IORA) 리조트(www.kazirangasafari.com)가 깔끔하다. 4성급 호텔로 모두 42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다. 카지랑가 국립공원까지 차로 5~10분 정도 거리. 이 주변에 숙소들이 밀집해 있다. 이들은 ‘차이’라고 부르는 차를 즐겨 마신다. 블랙티에 우유를 첨가해 끓인 것으로 영국의 밀크티와 거의 비슷하다. 지역 음식점에서 차이티는 한 잔에 4루피, 100원 정도다. 물은 생수를 사서 마시고, 식당에서도 생수를 시켜 마시는 게 좋다.
*문의는 인도정부관광청 02-2265-2235~6 http://www.incredibleindia.co.kr, 제트 에어웨이즈 02-317-8842, 카지랑가 국립공원 홈페이지는 www.kaziranga.co.in
<출처> 2010. 12. 7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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