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백마고지 전적지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글·사진 남상학
* 백마고지 전적기념비 *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니더라도 북방의 겨울은 적막하다. 텅 빈 겨울 들판엔 간혹 쇠기러기, 재두루미 떼들이 힘찬 날갯짓으로 꺼윽꺼윽 소리를 지르며 날아오를 뿐 통행하는 사람이나 차량도 뜸하다.
* 민통선 안에 날아든 철새들
산정호수에서 출발하여 고석정을 경유,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勞動黨舍)까지 가는 길은 가끔 한적한 마을을 지나지만, 왼쪽으로 꺾어 백마고지전적지로 가는 길옆에 들어서면 길옆에 붉은 글씨의 ‘지뢰’ 표지판이 줄을 잇는다. 철책 안의 검은 현무암 무더기 속에는 지뢰가 묻혀 있다는 경계표시다. 나무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백로들의 아름다운 자태와는 사뭇 이율배반적이다.
* 노동당사 건물
* 이 지역은 지뢰지대가 많다.
철원읍 대마리를 지나 신명리로 들어서서 전적지에 오른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보병9사단의 백마고지 전투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전적관과 위령탑이 있는 곳으로 전투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는 전적지 정상에서 왼쪽으로 건너다 뵈는 철책 안의 야트막한 산이다.
불과 395m의 야산이지만, 올라보면 들판 한가운데 불끈 솟아 달려드는 적군의 모습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방이 훤히 보여 철원을 사수하고 주요 도로를 감시하는 군사적 최적지로서 철원평야 최북단 요충지였다. 백마고지(395고지)는 철의 삼각지대 한 부분을 감시하는 중요한 위치였던 것이다.
* 백마고지, 이곳이 전적지임을 일리는 돌비
지리적 여건상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철원군 북방에 있는 이 백마고지는 6.25동란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전투의 주역이었던 제9사단(별명:백마부대, ROKA 9rd Infantry Division)은 6·25가 발발한 1950년 10월에 서울에서 창설된 후 대전지역으로 이동하여 후방의 공비토벌작전에 임하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바뀌자 1951년 1월 제일선으로 투입되어 주로 인제·양구 지역과 철원·금화 지역에서 휴전 때까지 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950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9사단과 중공군이 10일 동안에 걸쳐 대 혈전이 계속되었는데, 그 10일간의 전투에서 이 산(백마고지)을 놓고 한국군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피아(彼我)의 포탄이 30만발이 작렬했고, 공격과 방어를 거듭한 결과 무려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는 기록은 당시의 전운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 백마고지 전적지 안내도와 전적지 전경
이처럼 백마고지 전투는 1950. 6. 25∼1953. 7. 27.까지 계속된 한국전쟁 기간 중, 철원 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고지 쟁탈전이었으며, 지역전투로는 세계전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였다. 한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3,428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중공군 1만 3천여 명을 격멸, 중공군 2개 사단이 완전 와해되는 전과를 기록하면서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거두었다.
흙먼지와 시체가 뒤엉켜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피아간의 포격으로, 효성산 언저리에 무명고지로 있던 이 산은 그때 집중적인 포격을 받는 바람에 1m정도 낮아졌을 정도로 황폐화되고 산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 전쟁으로 수목이 다 쓰러져버린 처참한 형상이 마치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했다는 설과, 참전 당시 어느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 대답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지만, 어쨌든 이를 계기로 이 고지는 백마고지로 명명되었고, 국군 역사의 성지가 되었다. 더불어 적 1개 군단을 궤멸시킨 제9사단에게는 백마 부대라는 영광된 호칭이 붙게 되었다. 백마고지 동남쪽의 삽슬봉이 폭격을 하도 맞아 아이스크림 고지가 되어버린 것처럼 전쟁은 지형도 지명도 바꿔놓는 것이다.
* 백마고지 기념관과 내부에 전시된 당시의 전투상황 게시물
그 후 백마부대는 1966년 5월 맹호부대에 이어 베트남전쟁에 참여하였고, 현재는 경기도 고양시 및 파주 일대에 주둔하면서 강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곳 백마고지는 현재 제5보병사단이 사수하고 있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두고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군은 정전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전투를 기념하여 백마고지 가까운 곳에 기념관과 전적비, 호국영령 충혼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해마다 10월 16일을 전승(戰勝) 기념일로 삼아 민·관·군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백마고지 전적 기념탑 *
전적지에 들어서면 중앙통로 위쪽 언덕 위에 끝이 뾰족한 두 기둥으로 된 기념탑이 높이 솟아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면 통로 좌측에 백마고지전적지라는 표지석과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백마고지 전투전적비가 있다. 그리고 통로 우측에는 지축을 밟고 높이 솟아오르는 백마가 그려진 백마고지전승비기 있다.
* 백마고지 전승비 *
잠시 둘러보고 중앙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돌을 쌓아올린 자리 위에 전사자들을 위한 위령비가 백마고지위령비가 서있고, 위령비 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국의 자유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이 격전지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은 영예롭고 백마혼은 무궁하리라. 장하다 임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이 고지에서 희생된 국군 504위(중공군 8,234위)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5사단 전 장병과 대마리 주민, 백마고지 참전전우회원의 뜻을 모아 세우다.” - 서기 1985년 6월 6일
* 위령비와 희생된 장병과 비문 *
그리고 위령비의 뒷면에는 모윤숙(毛允淑) 시인이 쓴 ‘백마의 얼’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백마의 얼’ 전문이다.
풀섶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적들이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끊는 피로 용솟음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다.
이 한 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같이
강물을 헤치며 산을 부수며 달려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따라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버렸나니
쓰러지고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리었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느니 지금도 그 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 우리는 그 품에 안겨 안식하노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며 후회 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리라
모윤숙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비롯한 수많은 전선시를 써내며 한국전쟁을 '숭고한 반공전쟁'으로 미화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죽음의 공포에 떨며 죽어갔던 어린 병사에게 울림 있는 시로 '조국의 품'을 부여한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정작 그 병사가 목숨 바쳤던 조국을 불명예스럽게 했던 장본인들이 모윤숙 자신을 비롯한 친일파'들이었다는 사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묻혀졌다. 정의감에 불타는 어린 병사가 살아남았다면 모윤숙의 헌정시를 어떻게 생각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비문에 새긴 모윤숙씨의 글 '백마의 얼' *
그 위령비 앞에 세운 또 다른 돌비에는 백마고지전투전사유공자비에는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명단이 계급별로 적혀 있다. 조국강토를 수호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숭고한 이름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대한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돌비에 새디그 이름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긴 이름들을 훑어보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 백마고지 전투 전사 및 유공자 명단 *
기념탑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동, 서 기념관(MEMORIAL GALLERY)이 있다. 기념탐으로 오르는 통로 좌우 대칭으로 설계한 건물이다. 기념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백마고지 전투 관련 여러 자료를 볼 수 있다. 백마고지 전투상황, 당시 사용된 무기, 부대장 김종오(金鍾五) 장군 약력, 각종 사진자료,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마크, 백마고지 전투 3용사 기념동판, 백마고지 전투를 다룬 서적, 당시 전투상황 주요 언론보도 등 전시물이 많다.
* 기념관 내의 전시물 *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동판 조형물은 백마고지 전투 3용사로, 강승우 소위(1930년, 남제주군), 안영권 일병(1924년, 전북 김제군), 오규봉 일병(1928년, 충남천안) 등 세 사람은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전투에서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예하 제1중대 제1소대 소속이었다. 이들은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을 들고 육탄으로 적진을 돌파, 적 기관총 진지를 격파한 뒤 산화한 영웅들이었다. 이 기념동판은 백마고지에서 수거한 탄피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 백마부대장 김종오 장군의 활약상 및 당시 전투상황을 저술한 책 *
*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을 들고 육탄으로 적진을 돌파, 적 기관총 진지를 격파한 세 용사의 돌판 *
그 곁에는 그들3용사에 대한 전투활약상과 노산(路山) 이은상(李殷相)이 쓴 ‘추모의 시’가 걸려 있다. 이들 자료들은 백마고지전투의 긴박하고 처절했던 상황을 자세히 전해주고 있다. 추모의 시는 이렇다.
여기 자유의 제단에 피의 제물이 되신 세 군신을 보라
그들은 짧은 인생을 바쳐 조국과 함께 영원히 살았다.
거룩한 우리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악랄한 공산도배들
그들과 싸우며 피로 물들인 백마고지!
한줌의 성한 흙이 없고 한 덩이의 옹근 바위가 없이
그토록 처절했던 포성과 포연 속에 쓰러진 젊은 혼들이
오히려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울려 하나니
아! 거룩하여라! 아름다워라!
그들의 희생의 높은 뜻이여
우리도 그 충정 그 신념 본받아 앞날을 바로잡아
천추만대에 부끄럼 없는 새 역사를 지으라고.
- 이은상의 ‘추모의 시’ 전문
* 세 용사의 활약상과 이은상씨의 '추모의 시'
그렇다! 우리도 그 충정 그 신념 본받아 앞날을 바로잡아 천추만대에 부끄럼 없는 새 역사를 지어야 한다. '추모의 시’의 여운을 안고 정상으로 오르면 안쪽에 두 개의 탑으로 우뚝 솟은 충혼탑이 있다. 충혼탑이 세워진 곳은 주변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 기념탑 옆에 세운 백마고지 전적비 등
전적지 끝 기념탑 뒤로는 상승각(常勝閣)이라는 누각이 있고, 그 누각에 아득히 트인 평야를 건너가 수많은 목숨들을 위로할 ‘民族自尊 統一繁榮’이라 쓰인 자유의 종이 8각의 종각 안에 달려 있다. 상승(常勝) 열쇠부대 5사단 장병들이 1990년도에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곳에서 젊은 용사들이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몸을 던져 얻고자 했던 것이 결국은 ‘민족자존 통일번영’일진대 하루속히 통일의 그날이 와서 이 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피 흘린 이 자리에 퍼져나갈 종소리가 그립다.
* 상승각과 백마고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틀, 백마고지는 현재 DMZ 내에 있다.
누각에 올라서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이곳 정상에 서면 DMZ 내 전방 아득히 당시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가 눈에 들어온다. 건너다보이는 철책 안의 해발 395미터 정도의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 바로 격전지였다니 왠지 실감이 가지 않는다. 지금 그 지역은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나는 뜰에 세워놓은 백마고지 사진표지판과 시야에 들어오는 실제의 모습을 대조해 가며 한 동안 전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지금은 인적이 끊어진 고지로 남아 있지만 황량한 고지엔 긴장감을 숨겨둔 채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 상승각에서 바라본 백마고지가 황량하게 보인다.
한국전쟁 관련한 많은 전적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서울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있다니! 이곳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전적지를 둘러볼 수 있고, 아직도 긴장감이 감도는 휴전선 가까운 곳에 있어서 안보 체험 여행지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된다.
안보관광은 철의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033-450-5558)에 신청하면 공무원이 안내를 한다. 코스는 제2땅굴, 철원평화전망대, 월정리역, 노동당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하계(3월∼10월)에는 오전 10시30분, 오후 1시, 오후 2시 30분 등 세 번 집결해 관광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함께 관광지로 이동한다. 출발 20분전까지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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