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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양재천 걷기

by 혜강(惠江) 2011. 7. 19.

 

양재천 걷기

 

 

· 남상학

 

 

  양재천은 국내외적으로 자연형 하천복원의 대표사례로서 이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 될 정도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고, 유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도시 변신의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가 되었다. 

 

 

 

▲양재천 산책길은 남북 각각 세 단계로 길이 조성되어 있다.

 

 

   최근 걷기 운동의 효능이 강조되면서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걷기에 대한 인기는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거기다가 제주 올레길이 도화선이 되어 지리산 둘레길, 변산의 마실길이 개통되고, 영남대로 길, 백두대간 종주길도 열렸다. 또 최근에는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양구 펀치볼 둘레길, 내포 문화 숲길, 곡성 숲길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친환경 걷기 코스를 속속 개발하고 있다.    
    
  한국워킹협회가 걷기 운동의 효능에 대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걷기 운동은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암 등 한국인의 5대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 조절, 호르몬을 조절해 면역력을 증강시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걷기 운동은 다이어트에도 좋다. 규칙적이며 꾸준한 걷기 운동은 달리기에 비해 발목이나 관절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해 무릎에 부담을 별로 주지 않으며 부작용도 거의 없는 안전하고 쉬운 운동”으로 밝히고 있다. 실제로 한 연구 발표에 의하면 당뇨병 환자가 1주일에 최소 2시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39%가 낮아졌다고 한다. 또 발기부전 환자가 4㎞씩 1주일에 3차례 걸었더니 67%가 발기부전 치료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큰 효과를 봤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건강에 걷는 인구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도 운동부족인 나는 6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체중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둔해지고 활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꼭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는 동안 활기차고 건강하기 위하여 체중을 조절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양재천 걷기였다. 마음만 먹으면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집 가까이 있는  양재천에서 마음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양재천 가까이 이사 와서 살 게 된 것은 1977년 10월이었다.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나는 새로 지은 대치동 신해청 아파트(현재는 대치현대아파트로 재건축)로 이사하면서 강남에 처음으로 입성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양재천 일대는 잡초가 우거진 허허벌판이었고, 한가운데 작은 도랑이 흘러서 밤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여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았다. 그것이 양재천이었다. 그 양재천에서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인 두 아들과 함께 냉이를 캐고, 소리쟁이를 뜯었다. 그 뒤 개발의 붐을 타고 주변이 새롭게 정비되고, 하천의 유로를 변경하여 대형 콘크리트 하수관을 설치하는 토목공사가 이어졌다. 이어 주변에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양재천이 현재의 모습대로 형체를 갖추었다. 그 뒤로 나는 10년 후인 1987년 10월에 양재천 건너 개포동으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20여년이 넘게 살았다. 그러니까 30년 동안 양재천을 끼고 살아온 셈이다.

  양재천은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관악산(해발 629m)에서 발원하여 그 물길이 과천 시가지를 관류하다가 청계산에서 발원한 막계천, 여의천과 합류하여 서초구 양재동을 거친 다음, 강남구 대치동을 경유 탄천을 만나 한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그러나 양재천이 현재의 모습으로 가꾸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양재천을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다. 수질을 정화하고 생태하천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수관로와 호안을 정비하고, 제방은 콘크리트로 덮는 방식에서 벗어나 목초가 자라는 지역에 가깝도록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그 결과 양재천에는 피라미, 버들치, 송사리 등 각종 민물고기가 놀고, 오리와 백조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특히 5월 중순을 지나면 잉어가 산란을 위하여 돌과 자갈이 있는 양재천 상류로 떼 지어 올라와 산란할 자리를 찾는 등 진풍경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천변에는 갈대를 비롯한 각종 초목과 꽃들을 심어 단장했다. 이제는 다크 써클의 황제 너구리가족이 풀 속에 보금자리를 틀 정도로 양재천은 죽은 하천에서‘다시 살아난 하천’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을 거두어 생태하천으로 변모된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천변에 생태학습을 위해 습지 공간을 만들고, 군데군데 관찰로를 설치하여 아이들이 이곳에 서식하는 어류와 곤충, 새, 꽃과 나무 등을 관찰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만들었고, 논에 벼를 심어 우리의 주식인 쌀이 어떻게 자라고 얻어지는지를 익히도록 했다. 벼가 자라는 동안에는 논에 오리를 넣어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유기농법을 터득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양재천은 국내외적으로 자연형 하천복원의 대표사례로서 이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될 정도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고, 유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도시 변신의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양재천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시민들의 건강을 다지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걷기를 위한 길의 형태를 살펴보면, 양재천을 끼고 난 길은 세 갈래로 구분되어 있다. 개천을 따라 아래에는 개천길이 있고, 그 위로 개천과 둑 사이에 중간 오솔길이 있으며, 제일 위쪽에 둑길이 있다. 맨 아래 콘크리트로 포장한 개천길은 산책 및 자전거 도로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 길은 위쪽으로는 과천의 서울대공원에 이어지고 아래로는 한쪽은 분당으로, 다른 한쪽은 한강을 따라 잠원동, 암사동으로 이어진다. 중간 길과 둑 위의 길은 산책을 위하여 무릎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우레탄 재질로 깔았다. 만약 집중호우로 물이 불어나 아랫길이 잠기면 위쪽 두 도로를 이용하여 전천후로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야말로 친환경 걷기 코스인 셈이다. 그리고 양재천에는 하천을 가로질러 거대한 화강암으로 징검다리를 놓아 북쪽과 남쪽에 사는 주민들이 양쪽에서 넘나들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도심에 이런 친환경 개천이 있고, 개천을 끼고 건강을 다지는 길이 3중으로 설치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길에는 가로등을 설치하여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요즘 세 단계의 도로에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건강을 다지는 주민들로 길을 메운다. 간혹 애견을 끌고 바람을 쐬며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걷기가 목적인 건강족들이다. 이른 새벽에는 새벽잠이 없거나 가사에 얽매여 있지 않은 노년층이 많이 나와 일찍부터 걷기운동에 열을 올리고, 넓은 공터에선 그룹으로 생활체조, 태극권, 요가, 각종 무예를 본떠 만든 동작으로 몸을 풀고 체력을 강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낮에는 집안일을 끝내고 나온 아주머니들의 천국이다.


  그들은 대부분 복면차림으로 등장하여 희한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런 현상은 황사가 몰려오는 때만이 아니라 어느 덧 일상화 된지 오래다  차림도 황사가 불어 닥쳐 호흡이 곤란할 때 쓰는 마스크의 정도를 훨씬 뛰어넘어 마치 괴기영화나 핵전쟁 이후의 인간들의 차림새처럼 얼굴 전체를 괴상한 천으로 복면을 한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열심히 걷고 뛰기는 해야겠고, 과다하게 햇빛을 쐬면 피부노화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걷으며 햇볕에 조금 타는 것은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면 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비타빈 D는 햇볕을 받아 생성된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다. 외국 사람들은 피부를 탄력 있게 만들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햇볕을 쬐고 썬텐을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을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없지만 챙이 긴 모자나 선글라스 정도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들에게는 양재천의 경관이나 이미지는 아예 안중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늦은 밤에는 야간 조명등 아래 걷고 있는 커플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 부부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어디 이것뿐인가. 양재천에서는 휴일마다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단축마라톤을 출발하며, 또 주변 공원에는 롤러스케이트장과 농구장도 갖춰져 있어 젊은이들의 체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곳곳에 건강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기구를 갖추어 놓아 청소년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체력을 단련할 수 있다. 이처럼 양재천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체육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이제 양재천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 되었다.  

  나는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철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을 다질 수 있는 각종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매일 양재천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틈을 내어 걷기운동에 열심을 내려고 한다. 본격적인 노화 현상을 겪는 단계로 돌입했으니, 걷기 운동은 우리 나이에 가장 좋은 운동일 수 있다.


  뒷산 대모산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양재천을 열심히 걷다 보면 쇠퇴하는 근력을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고, 인대와 힘줄 또한 튼튼해 질 것이며, 골다공증을 방지하여 관절의 노화를 늦추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특히 컴퓨터를 많이 이용하는 나로서는 걷기 운동을 통하여 눈을 시원하게 하여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높은 청명한 가을이다. 양재천 주변 공원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굳이 단풍놀이를 위하여 멀리 설악산이나 내장산에 갈 필요가 없다. 바람이 불어 양재천변의 허연 갈대와 억새가 머리를 빗질하고 있는 형국이니 돈 들여 멀리 명성산이나 화악산으로 갈 필요가 없다. 다행한 것은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내가 혈압이 높아지면서 체중 조절의 필요성을 느껴 양재천 걷기에 열심을 내고 있으니, 나는 길동무 하나를 얻은 셈이다. 간단한 복장으로 양재천을 나서는 우리 부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 양재천은 남북을 연결하는 돌다리가 명물이다.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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