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안의 또 하나의 국가
카톨릭교회의 중심 바티칸 교황청
남상학
▲바티칸시티 정문
로마교황이 통치하는 세계 최소의 독립국 바티칸시티는 이탈리아 로마시내에 있다. 서둘러 일찍 갔는데도 성벽 옆으로 줄이 상당히 길게 서 있다. 바티칸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온다는 증거다. 바티칸에 들어가려면 여기도 독립국이라고 입국심사를 따로 한다. 우리는 유럽 지역 교육시찰연수단의 단체여행이어서 안내원이 입국심사를 대행하여 쉽게 끝났다.
현재 교황의 집무와 거처로 사용되고 있는 바티칸 교황청은 로마 북서부에 있다. 5km의 둘레는 중세 및 르네상스시대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면적 0.44㎢ 안에 700명이 산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가톨릭교회의 중심에선 바티칸 교황청은 지금도 전 세계에 걸쳐 정신적인 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교황은 영적인 권능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도 적극적이다. 주요 건물은 성 베드로대성당과 바티칸궁전이다. 또 교황선거회의가 거행되는 시스티나성당이 있다. 이들 건물은 그것 자체로서 이탈리아 문화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고, 또 바티칸 궁전의 일부를 차지하는 박물관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많은 소장품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관광객이 2만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먼저 바티칸 내에 있는 삐냐 정원(Cortile della Pigna)으로 발길을 옯겼다. 이 정원에는 거대한 청동솔방울 조각상이 있어 일명 솔방울 정원이라고 불린다. 4m 높이의 거대한 청동솔방울은 고대 로마 분수의 일부였다고 한다. 또 정원 한 가운데에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조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이것은 병들어 가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정원을 거쳐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가장 먼저 거대한 나선형 계단실이 눈에 띈다. 계단실을 나오면 왼쪽으로는 고대박물관이, 전면으로는 미술관이, 오른쪽에는 그레고리안 세속 박물관과 피오 기독교 박물관이 있다. 이 진입공간은 현대적 건축공간으로 박물관의 동선을 구별지어주는 역할을 하며, 방문객들은 관람이 끝나면, 나선형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 진입 공간과 계단실의 천창 또한 유리로 되어 있어 밝은 공간을 연출한다. 이는 박물관이나 기타 건축군의 어두운 내부와는 대비를 이루고 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이 박물관은 고대 미술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중요한 것만 훑어보는 데도 반나절이 걸리고, 몰려든 인파 때문에 꼼꼼히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의 소장품이 주로 강대한 제국이었을 때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해 온 것임에 비해 바티칸 박물관은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들이 개인이 수집한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2세는 바티칸으로 화가, 조각가 등 수많은 예술가를 초빙했는데 그 중에는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도 있었다. 이런 당대 최고의 예술가에게 건축과 조각, 그림을 맡겨 오늘날 박물관의 기초를 닦았고, 그 후 600년간 전 세계의 명작들을 수집하여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1층에는 회화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이집트 박물관, 도서관(일반인 미공개), 키아라몬티 박물관, 시스티나 예배당 등이 있고, 2층에는 에트루리아 미술관, 지도 갤러리, 라파엘로의 방, 라파엘로의 복도가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유물들로 가득 차 있다. 주요 작품은 고대조각에 《아포크슈오메노스》 《벨베데레의 아폴로》 《벨베데레의 토르소》 《라오콘》, 고대 회화에 《오디세우스 이야기》 《아르드브란디니가(家)의 혼례도》, 중세 회화에 《웨르기리우스사본(寫本)》 《여호수아기(記)》, 그리고 르네상스 회화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그리스도의 변용》,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聖)히에로니무스》, 카라바지오의 《그리스도의 매장》 등으로 이들 모두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고대박물관 안의 그레고리안 이집트 박물관에는 석관, 미이라, 장례용품 및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변하는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소장품으로는 유럽에서 대영박물관과 함께 가장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에는 4세기의 청동조각인 <벨레데레의 아폴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조각군 <라오콘>, 그리고 프락시스 텔레스의 원작을 복사한 <헤르메스> 등을 꼽을 수 있다.
라오쿤은 로마의 에스퀼레스 언덕 네로의 황금집 폐허에서 1506년 발견된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기원전 150~50년경으로, 트로이의 사제 라오쿤과 그의 아들들이 두 뱀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라오쿤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사제로서, 트로이전쟁 때 그의 동포들에게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있는 목마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트로이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이 좌절되는 것을 본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졸려 죽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들의 저주로 물뱀에 물려 죽는 라오쿤을 중심으로 왼쪽의 차남은 외면하고 있고, 오른쪽의 장남은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벨베데레의 아폴로(Belvedere Apollo)는 기원전 320년에 제작된 그리스 아티카 출신의 한 작가가 만든 청동상을 대리석으로 모방한 작품으로 태양의 신 아폴로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전양식의 걸작 중 하나로 왼손에는 아폴로 신의 상징인 활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등에 맨 화살 통에서 뽑은 신의 상징인 활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름다운 옷의 주름과 샌들의 세부 묘사가 정교하고, 남자이지만 여성의 몸매를 모델로 한 듯하다.
또, 키아라몬티 박물관 긴 회랑에는 석관, 조각, 프레스코 벽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회랑은 긴 통로를 지나 래피더리 갤러리와 브라치오 누오보에 연결된다. 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작품의 원본과 복사본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테네 여신의 거대한 두상이 여기에 있다. 이 박물관에는 나일 강 그림이 있는 갈레리아 라피다리아와 브랏치오 누오보와 같은 전시실과, 디오니소스의 형상, 아기의 석관 등이 있는 전시실을 빼놓을 수 없다.
2층 천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좌우 벽면에는 지도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그레고리안 에트루리아 박물관에는 에트루리아의 네크로폴리스, 즉 공동묘지에서 출토된 청동제품, 재항아리, 테라콧타, 금으로 된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회랑의 양쪽 벽에는 길이가 100m가 넘는 이탈리아 전역을 그린 지도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성 피오 5세 회랑에는 중세의 직물과 수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라스 천의 회랑에는 르네상스 정점에 선 거장 라파엘로(Sanzio Raffaello-1483-1520)의 제자들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한 10개의 훌륭한 작품이 유명하다. 그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세 제자를 거느리고 변화산에 올라간 예수와 그 양옆에는 승천했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그리스도와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은 명화 중의 명화다.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은 성 베드로 성당의 우측에 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먼저 바티칸 박물관을 거쳐야 하며 입구는 아담하나 곧 엄청난 규모의 건축과 역사적 유물에 놀라게 된다.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서기까지는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당 내에는 수많은 천정화가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방이 있어서 유명하다.
이 작품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을 받은 미켈란젤로가 천장 중앙부 800㎡ 넓이에 ‘창세기’를 그린 것인데, ‘어둠과 빛의 구별’ ‘해와 달의 창조’ ‘바다와 육지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 ‘노아의 제사’ ‘홍수’ ‘술 취한 노아’ 등으로 구성하였고, 그 주위에 ‘그리스도의 조상(彫像)’과 이스라엘의 역사 속의 ‘예언자’들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1534년 다시 바울로 3세의 위촉으로 정면의 제단화를 그렸다. 오른쪽 생명력에 넘치는 힘찬 손가락과 왼쪽의 힘없이 쳐져 있는 두 손가락은 지금이라도 서로 맞닿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 각각의 손가락에서 팔과 어깨를 더듬어 올라가면 신의 위엄 있는 얼굴과 지금 막 깨어난 듯한 청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육체 속에 영혼을 불어넣으려는 손길이 막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총 226㎡에 달하는 제단 벽면을 차지하는 프로스코 벽화는 벽면 전체를 상하 4층으로 나누어 7년에 걸쳐 위에서부터 천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심판의 장면, 묵시록의 7천사,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지옥을 격렬한 터치로 표현하였다. 작품 한복판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이 서 있고, 어떤 사람들은 천국으로 들림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작가는 그 옆에다 성 바돌로매의 벗겨진 껍질의 모습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모두 391명의 인물이 그려진 이 그림에는 사람의 모든 동작을 표현했으며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미켈란젤로가 처음에 그린 것은 모두 나체였으나 그 후 약간씩 옷을 입혔다고 한다. 그러나 해부학적으로 표현한 근육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여러 개의 방을 거치면서 너무나 많은 그림을 보자니 탄성과 함께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산 피에트로(성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은 서기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베드로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서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으로 지었으나. 서기 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것을 헐고 르네상스의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을 불러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단순히 규모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서도 가히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다. 성당의 경건미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바지나 팔이 없는 상의 같은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는 입장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어기면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한 파랑, 노랑, 빨강색의 제복을 입은 스위스 용병에게 여지없이 거절당한다.
대리석 기둥 사이로 들어서면 먼저 십자가형으로 된 성당 내부의 웅장한 공간에 위압당한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 바닥 중앙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마상이 서 있다. 오른쪽 구석 유리창 뒤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 만든 이 작품은 그가 젊었을 때의 대표작이며, 두 인물 성모마리아와 예수가 완벽한 미를 이루고 있고 성모 마리아의 슬픔에 잠긴 성스러운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성당 가운데 둥글게 솟은 돔 위에 있는, 작은 탑처럼 뾰족 솟은 첨탑이 바로 큐폴라(Cupola)이다. 커다란 돔 위에 작은 창을 통하여 환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돔 밑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베르니니의 작품 ‘천개’이다. 5층 높이에 해당되는 이 작품은 중앙대 제대를 덮고 있는데 교황만이 이 제대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성 베드로 좌상은 그 오른쪽에 있는데, 발은 신자들의 끝없는 입맞춤으로 청동이 많이 닳아 있다. 이 중앙 제대 바로 밑에는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한참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관람 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성베드로 성당 쪽으로 나왔다.
성 베드로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매주 일요일 정오가 되면 교황은 바티칸 궁전에서 창문을 열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그때마다 교황의 모습을 보려는 신도와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찬다. 광장 한 가운데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25.5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이 오벨리스크와 분수를 연결하는 바로 중간점에서 서서 주변의 주랑을 보면 4중으로 된 기둥들이 일렬로 보인다. 284개의 도리아 식 원주가 늘어선 반원형 회랑의 지붕 끝에는 140명의 성인상이 장관을 이루며 서있다. 거대한 광장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의 10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120년에 걸쳐 작업을 해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 11억의 신자를 자랑하는 가톨릭.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신앙의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황 수위권(首位權·Primacy)을 받은 시몬 베드로가 순교자로 죽은 곳 로마에는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시국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성지순례자들이 들러 교황에 얽힌 다양한 사연과 영성을 체휼해 간다. 바티칸박물관,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광장 등 명소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 등 예술작품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봤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그들의 작품은 너무나 황홀했다. 어떻게 저토록 강렬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을까? 신이 내리는 영감의 세계를 방문했다는 자부심으로 바티칸 방문을 마음속에 깊이 새긴다.
* 시스티나 성당 안의 프레스코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교황이 바티칸 궁전 창문을 열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성베드로 광장
(284개의 도리아 식 원주가 늘어선 반원형 회랑의 지붕 끝에는 140명의 성인상이 장관을 이루며 서 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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