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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맛집 정보/- 맛집

없어서 못파는 통영 명물 '오미사꿀빵'

by 혜강(惠江) 2011. 5. 2.

 

 

통영 명물 '오미사꿀빵'

 

사람에 대한 배려와 손맛의 정감 담긴 원조 맛

 

  월간외식경영 / 글·사진 심상용(원조코리아 기획 팀장)     

 

 

 

 

 

  40여년 전, 경상남도 통영의 골목길에서 간판도 없이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배급받아 만들어 팔기 시작 해 인근 통영여고, 충일여상 학생들을 통해 맛이 알려지며 통영의 대표 명물이 된 것이 있다. 바로 충무 <오미사꿀빵>. 현재 창업주 정원석 옹(76세)에 이어 그의 아들 정창엽 대표(오미사꿀빵 도남점 대표)가 대를 이어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 부자의 꿀빵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의 춥고 매서운 날씨,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무주구간의 눈보라를 뚫고 진주에 이르자 따뜻하고 화창한 봄 날씨가 취재진을 반겨주었다. 따뜻하고 화창한 통영의 날씨는 눈 뿐 아니라 눈길을 달려온 취재진의 긴장감까지 녹이고 있었다. 오면서 보았던 설경은 간데없고 도로변 남새밭에 돋아 난 푸른 새싹하며 푸른 바다의 끝에 그어진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니,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나폴리’라고 하는 말이 수사(修辭)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취재를 요청하고 약속시간을 정해 내려왔건만, 멀리서 오는 취재진에 대한 걱정과 배려를 담은 수차례의 안내전화를 해 온 <오미사꿀빵> 정창엽 대표를 만났다.


만들면 금세 나가 ‘없어서’ 못 팔아

 

 

  <오미사꿀빵> 도남점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를 조금 넘은 시간.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빵을 만드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취재할 수 있겠다고 예상했던 취재진은 빵집 문을 들어서자 차분히 의자에 앉아 반갑게 맞아주는 정 대표 내외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빵은 벌써 다 만들었느냐’, ‘완제품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빵은 아침 일찍부터 만들기 시작해 12시면 모두 만듭니다. 전국에서 주문받은 물량을 제외한 매장 판매분은 이미 다 팔리고 없습니다”고 대답해 놀랐다.

  현재 정 대표 부친이 운영하는 항남동 매장과 정 대표가 운영하는 도남동 매장에서 각각 생산, 판매되고 있는데,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만들어 하루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꿀빵이다. 실제로 세 시간여의 취재동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빵을 찾는 손님이 어림잡아 오십 여 명은 넘었는데, 그중 몇몇은 ‘항남점에 없어서 여기 도남동까지 왔는데 여기도 없다니 난감하다’,  ‘어제도 왔다가 그냥 갔는데 오늘도 없느냐’면서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넉넉하지 못한 사람도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빵

 

 

  투박하나마 양이 많고 저렴한 이유는 당신의 그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자기연민이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아들 정 대표는 말한다.

  “어릴 적 제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빵집 대표도 아니었고 사업가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냥 작은 구멍가게에서 투박한 빵을 값싸게 만들어 주머니사정 시원찮은 여고생들의 푼돈을 벌어들이는 그런 분식집 아저씨, 그 정도랄까요? 아버지의 빵이 별달라 보이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후에도 저는 아버지의 빵이 싸고 커서 잘 팔리려니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줄곧 제가 아버지의 빵을 만들며 살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4남매인 저희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빵을 만들어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생활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서 별다른 변화나 수완도 없이 다만 빵을 열심히 만들어 팔기만 하셨고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이란 말을 떠올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으며 많은 말을 듣고 배웠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남는 말은 ‘넉넉치 못한 사람들도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8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성수기에 시 차원에서 물가인상 점검단속을 나온 적이 있었는데 유사품들이 성수기를 노려 빵값을 올려 받은데 비해 이곳은 값을 전혀 인상하지 않아 단속 나온 직원이 오히려 의아해 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은 지나 이제 굶는 사람은 없다지만 ‘넉넉지 못한 사람들에게 빵값이 부담되지 않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란한 겉모양보다는 값싸고 편리한, 실용적인 포장용기를 찾으려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도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탈리아 수입 냉동고를 구비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은 모습에서는, 고집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가업이어 아버지의 빵 만들면서 아버지 알게 돼

 

  창업주 정 옹이 폐쇄성 폐질환으로 더 이상 꿀빵 만들기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업을 물려받고자 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완강하게 가업 잇기를 거부했던 이가 바로 지금의 정 대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분식집에서 꿀빵을 만들어 온 삶을 보고자란 2남 2녀 자식들에게 꿀빵 만들기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생업일 뿐이었다.

 

  정 대표는 대학에서 임산공학을 전공하고 광산이나 채굴현장의 건축기술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빵 만들기가 남루하고 지루한 생업일 뿐이라고 늘 생각해하며 거칠고 험한 건설현장을 떠돌아다니는 그를 부모님은 항상 불안해 하셨다. 그리고 위험하고 거친 일을 하며 자리 잡지 못하고 객지를 떠돌기보다는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가업을 이어받을 것을 권해왔다. 때문에 아버지의 기력이 점점 쇄약해져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게 될 무렵 어머니가 조용히 아들 정 대표를 불러 가업을 물려주고자 했다.

 

  “아버지 평생의 꿈이 번듯한 제과점을 만들어 보는 건데 이제 아버지 손으로는 힘들어졌으니 네가 그 꿈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간곡히 요청하셨다. 그래서 정 대표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통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지의 꿀빵 만들기를 이어받아 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하면서 자신만만했습니다.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아버지보다 무언가 젊은 감각으로 창의적으로 만들어 봐야지’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그게 쉽지 않더군요. 아버지께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야 하느니라’ 하는 말씀 하나하나를 그냥 노인네의 넋두리 혹은 노파심으로 흘려듣곤 했는데 빵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실패의 원인과 해결의 답이 그 사소한 말씀들 속에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수없이 곁에서 보아왔던 반죽과 성형의 과정이 그냥 어림짐작의 눈대중이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까 놀라울 만한 감각이었습니다. 재료들의 정확한 성분비율을 적어달라는 저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정확한 레시피도 있겠지만 그 기본에 더해지는 노하우가 있더라고요.(웃음) 계절의 날씨며 그날의 습도까지 가늠하여 조금씩 배합비율과 작업과정을 달리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보통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 맛이 주는 정감과 느낌 담겨 있어

 

 

  간판도 없는 작은 분식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에 알려진 통영의 명물이 되었고 ‘없어서 못 파는’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처음 이 일을 물려받으러 들어오면서 가졌던 생각 중에 하나가 바로 생산성 향상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많이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아버지께서는 항상 새벽부터 일하기 시작해 아침이면 빵을 만들어 좌판에 내놓으셨죠. 사람들은 아침부터 와서 제 각각 필요한 만큼씩만 사갔지만 오후가 되기도 전에 다 팔려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당신은 당신과 어머니의 노력에 기대어 만드실 수 있는 만큼만 만들고 다 팔리면 일찌감치 문을 닫아걸곤 했어요. 일을 배우고 어느 정도 이력이 붙을 때 쯤, 이왕 시작하는 거 많이 만들어 많이 팔고, 그러면서 규모도 늘리고 시설투자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아버지께서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한번 해 보라고 하셨지요. 반죽기계, 성형기계를 들여놓고 생산량 증가을 위해 인력도 확충했지요. 그러나 철저한 실패였습니다. 기계는 사람만 못하더라고요. 작업 후에 기계들 청소하고 정비하느라 시간은 더 걸렸고 불량률도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예전의 동글납작하고 반듯한 모양새에서 풍기는 정감이 사라진 느낌이랄까요? 그 때 알았습니다. 빵은 재료 못지않게 정감과 느낌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아버지께서는 저의 의기(意氣)를 꺽지 않으면서 절대 잊지 못할 값비싼 깨달음을 주셨던 거지요.”

 

 

 

 

 

정 옹 숙원사업 위해 새 사업장 건설 중


  <오미사꿀빵>은 지금 정 옹이 운영하던 시내 항남점과 정 대표가 운영하는 도남점 두 곳에서 각각 빵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의 사업 전망이나 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정 대표는 수줍은 듯 조용히 취재진을 이끌고 어디론가 안내한다. 새 사업장 건설 현장이다. 노후된 생산시설개선과 규모 확장의 의미도 분명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버지 정 옹의 바람이었던 ‘번듯한 제과점을 여는’ 숙원사업을 완성한다는 효심이 이번 새 사업장 마련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단다.


  취재진을 안내하며 건설현장 곳곳을 소개하던 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기계로 대량생산 해 보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해 기계들은 헐값에 팔아치웠지만 그 손해를 보상해 주고도 남을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그 때 고용했던 ‘사람’입니다. 기계는 사라졌지만 기술력을 습득한 숙련된 노동력을 얻었다고 할까요? 아버지께서는 기계로 만드는 빵의 부족함을 알려 주셨고 이를 통해 저는 숙련된 노동력을 키워 아버지 방식의 제한된 생산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무한한 자본이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건평 462.81㎡(140평) 규모의 신축 건설현장에서 곳곳에 넉넉하게 자리잡은 제빵실 못지않게 잘 구비된 직원 복지시설을 보면서 <오미사꿀빵>의 밝은 미래와 무한발전을 점쳐본다.


 

<출처> 2011. 4. 8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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